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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 위의 선수들

LNCK 2019. 6. 29. 13:29

https://blog.naver.com/karamos/222135516275

 

링 위의 선수들       출7:8~22        2014.11.02.

 

서론

 

오늘은 출7~12장까지의 내용을 개관적으로 살펴보며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특별히 출7~12장까지의 내용은 하나님과 바로가 10라운드 권투시합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의 제목을 ‘링 위의 선수들’이라고 붙여보았습니다.

 

1974년 홍수환 선수가 WBA 밴텀급 타이틀전에서 15회 판정승으로 세계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그는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쥔 이후 아주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엄마! 나 챔피온 먹었어!”

 

아마도 국민들이 권투를 좋아했던 이유는 자신의 심리상태를 반영해 주었기 때문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강한 펀치 한 방에 상대가 KO패를 당하면 통쾌한 감정을 느끼지 않습니까?

 

당시에는 스포츠 중계를 하면 보통 레슬링 아니면 권투였습니다. 레슬링이 인기였던 이유도

한국의 김 일선수가 일본선수를 박치기로 받아서 넘어뜨릴 때

일본을 향해 응어리졌던 국민들의 마음이 풀렸기 때문이 아닌가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출7~12장까지는 이렇게 10라운드에 걸친 권투 시합과 비슷한 내용이 전개됩니다.

왜냐하면 이 경기는 애굽의 바로가, 여호와 하나님께 도전장을 냈기 때문에 벌어진 경기이기 때문입니다.

 

5:2절에 바로가 가로되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도 보내지 아니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는 여호와 하나님을 업신여겼습니다.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내가 아는 신들의 이름 중 여호와라는 이름은 등록도 되지 않았다”는 식으로 말을 했습니다.

아주 오만방자한 바로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바로에게 “내가 누구인지, 내 능력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해 주겠다”는 의지로

출7~12장 사이에 열 가지 재앙을 애굽에 내리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도전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반드시 응전하십니다. 그러면 누가 이기겠습니까?

도전하는 자가 이기겠습니까? 답은 뻔합니다.

하나님이 100% 승리하시고, 도전자는 100% KO패를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 사실을 살아있을 때 알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죽은 이후에 알게 됩니다.

 

빌2:10~11절에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결국 모든 입이 예수가 주시고, 여호와가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살아있을 때 고백하고 믿은 사람은 천국에 가는 반면,

죽어서 고백하는 자는 이미 구원의 때를 놓친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출7~12장에는 자칭 신이라고 하는 애굽의 바로와 10라운드 경기를 펼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십니다.

 

물이 피로 변하는 재앙, 개구리가 올라오는 재앙, 모든 티끌이 이로 변하는 재앙,

파리 떼가 모든 음식에 붙는 재앙, 가축에게 전염병이 도는 재앙,

사람의 몸에 독종이 생기는 재앙, 우박의 재앙, 메뚜기 재앙,

어두움이 3일 동안 온 땅을 덮는 재앙, 애굽인의 장자를 죽이는 재앙입니다.

바로는 이 열 가지 재앙을 맞고 완전히 KO패해서 들것에 실려 퇴장하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31절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이런 열 가지 재앙의 역사적인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이 사건을 신화로 여깁니다. 그러나 애굽 사람들이 수치스러워서 삭제하고 기록하지 않으려고 한

이 사건들을 하나님은 출에 고스란히 보존해 놓으셨습니다. 결코 신화가 아닙니다.

 

애굽에 내린 열 가지 재앙은 동일한 패턴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출7~12장의 내용을 개괄적으로 살펴보고,

네 가지 주제로 나누어 생각해 보겠습니다.

 

◑1. 링 위에 올라간 선수들

 

여호와 하나님이 내 세우신 선수는 모세와 아론입니다. 대표는 모세고, 아론은 대변인입니다.

모세는 이 싸움이 자신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출6장 30절에 “모세가 여호와 앞에서 고하되 나는 입이 둔한 자이오니

바로가 어찌 나를 들으리이까”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입이 둔해서 바로를 이길 자신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도 비슷한 고백을 한 적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2장 16절에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라고 말했습니다.

 

영적인 일은 자기 자신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런 영적인 전쟁은 구약의 거성인 모세나, 신약의 최고 사도인 바울도 감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두 가지를 주셨습니다. ‘권세’(Authority)와 ‘말씀’(Message)입니다.

출7장 1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너로 바로에게 신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권세가 좋을까요? 능력이 좋을까요?

고속도로에서 120km로 달리는 덤프트럭을 세울 수 있는 힘은 능력에서 옵니까?

권세에서 옵니까? 권세입니다. 교통순경이 세우면 서야 하는 것입니다.

제 아무리 힘이 좋은 레슬링 선수라도 달려오는 덤프트럭을 완력으로 세울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권세와 능력을 모두 가지고 있으면 좋겠지만,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권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요1:12절에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2).

보통 권세가 아닙니다. 마귀를 대적하면 떠나가는 권세입니다.

 

두 번째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출7:2절에 “내가 네게 명한 바를 너는 네 형 아론에게

말하고 그는 바로에게 말하여 그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보내게 할지니라”

 

권세와 말씀을 가지고 있는 것은 엄청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복음의 메시지를 주신 줄로 믿습니다.

 

모세의 사명은 하나님을 대표하는 사신으로 하나님의 메시지를 더하지도 빼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증거하는 것이었습니다. 능력은 누가 행하십니까? 하나님이 행하십니다.

칼빈은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이 연약한 인간 뒤에 감추어져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모세와 아론의 상대는 누구입니까?

링의 다른 편 코너에는 애굽의 술객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바로가 보낸 사신입니다.

출애굽기에는 그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딤후3:8절에는 정확하게 두 사람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 같이 저희도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리운 자들이라.”

 

바로가 선수로 내 보낸 사람은 얀네와 얌브레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름부터가 벌써 얌체 같습니다. 이 애굽의 마술사들은 마귀의 능력을 가지고

기적을 같이 행했습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던져 뱀으로 만들었을 때, 그들도 똑같이 따라했습니다.

 

모세가 나일 강물을 피로 변하게 만들었을 때도 그들은 따라했습니다.

개구리를 뭍으로 올라오게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마술사들은 개구리 재앙 이후로 더 이상 사람을 속일 수 없었습니다.

마술은 마귀의 능력이기도 하지만 눈속임입니다. 그래서 세 번째 재앙이었던 땅의 티끌을

쳐서 이로 변하게 하는 일은 할 수 없었습니다. 속이고 싶어도 속일 수 없는 것입니다.

 

출8:19절에 “술객이 바로에게 고하되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 하나

바로의 마음이 강퍅케 되어 그들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더 이상 우리는 따라하지 못하겠다는 고백이었습니다.

 

바로의 선수들은 세 번째 라운드에서 다운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섯 번째 재앙이 독종이었는데,

출9:11절에 보면 술객들도 몸에 독종이 생겨 모세 앞에 설 수 없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술객도 독종으로 인하여 모세 앞에 서지 못하니

독종이 술객들로부터 애굽 모든 사람에게 발하였음이라” (출9:11).

 

세 번째 라운드에서 다운당하고

여섯 번째 라운드에서는 완전히 KO패를 당해 들것에 실려 퇴장하게 된 것입니다.

 

▲또한 모세가 바로를 상대하기 위해 지팡이를 들고 나온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당시 애굽 사람들에게 지팡이(홀)는 왕권을 상징하는 물건이었습니다.

 

모세는 바로를 상징하는 지팡이를 들고와서 바로와 그의 선수들을 조롱하는 것입니다.

네가 왕이냐? 하나님이 왕이시다!”라는 의미입니다.

 

술객들도 지팡이를 뱀으로 만드는데 성공하였지만,

모세가 가지고 온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켰습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을 상징하는 동물은 봉황이고, 바로를 상징하는 동물은 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지팡이가 술객들의 지팡이를 삼킨 것에서 바로를 조롱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권투선수들도 본격적인 1라운드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서로 기선제압으로 하기 위해

얼마나 중얼거리는지 모릅니다. 이것은 본 경기 들어가기에 앞서 상대의 기를 꺾고 조롱하는 행위입니다.

 

우리 편에서는 모세와 아론이 나왔고, 반대편에서는 얀네와 얌브레가 출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KO패를 당하고 퇴장하게 되었고,

이제 바로가 직접 경기에 나와 싸울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2. 이 싸움의 근본 목적

 

출5:2절에 “바로가 가로되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도 보내지 아니하리라”

 

바로가 여호와께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그에게

나는 이런 존재라는 사실을 계속해서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출7~12장까지의 말씀을 자세히 보면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이 어떤 것인지

확실히 보여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목적을 읽을 수 있습니다.

 

“내가 내 손을 애굽 위에 펴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야

애굽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시매” (출7:5),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니 네가 이로 인하여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셨느니라

볼찌어다 내가 내 손의 지팡이로 하수를 치면 그것이 피로 변하고” (출7:17),

 

“그가 가로되 내일이니라 모세가 가로되 왕의 말씀대로 하여 왕으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와 같은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니” (출8:10),

 

“그 날에 내가 내 백성의 거하는 고센 땅을 구별하여 그곳에는 파리 떼가 없게 하리니

이로 말미암아 나는 세상 중의 여호와인 줄을 네가 알게 될 것이라” (출8:22),

 

“내가 이번에는 모든 재앙을 네 마음과 네 신하와 네 백성에게 내려

너로 온 천하에 나와 같은 자가 없음을 알게 하리라” (출9:14).

이 싸움을 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이 반복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의 자비하심(인자)을 경험함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분이시구나! 내게 영생을 주시고 나로 지옥가지 않게 하시고

천국에 가게 하시며, 이생을 사는 동안 복을 주시고 인도하시는 좋으신 분이시다!”

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이 좋아서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원수들은 그의 진노를 경험함으로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 얻어터지며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서운 분이시구나!”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경험함으로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에 대해서 나쁜 말을 하고 나쁜 생각을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훼방합니다.

 

로마서 11장 22절에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바 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멸망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엄위를 보고, 구원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인자를 보며

하나님을 알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와 엄위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된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를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하여 알게 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사랑 속에 계속 거하시기를 바랍니다.

 

◑3. 이 싸움의 방식

 

열 가지 재앙이 내린 기간은 대단히 짧습니다. 이 싸움은 속전속결로 진행되었습니다.

출7:7절에 “그들이 바로에게 말할 때에 모세는 팔십 세이었고 아론은 팔십삼 세이었더라”

 

첫 싸움이 벌어질 때 모세의 나이가 80세였고, 아론의 나이가 83세였습니다.

그리고 신명기 29장 5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생활이 40년 동안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모세의 죽음을 기록한 신34:7절을 보면 모세가 살은 나이가 120세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광야에서 40년을 방황하다가 120세에 죽었다는 것은

모세와 바로의 이 싸움이 모세가 80세가 되던 그 해에 모두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싸움의 방식은 속전속결, 초전박살, 즉각응징이었습니다.

 

바로는 하나님으로부터 속전속결로 당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연적인 현상들을 이용해서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자연적인 현상에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능력을 더하셔서 기적이 되게 하셨습니다.

 

출8:22절에 “그 날에 내가 내 백성의 거하는 고센 땅을 구별하여

그곳에는 파리 떼가 없게 하리니 이로 말미암아 나는 세상 중의 여호와인 줄을 네가 알게 될 것이라”

애굽 땅에는 파리 떼가 달라 붙은 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하는 고센 땅에는

파리 한 마리 꼬이지 않게 하셨습니다.

 

또 출9:7절에 “바로가 보내어 본즉 이스라엘의 생축은 하나도 죽지 아니하였더라

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완강하여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애굽 사람들의 가축은 모두 다 죽어나갈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축은 하나도 죽지 않게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큰 기적입니까?

가축에 해로운 병균이 이스라엘 쪽으로 오지 않고 애굽을 향해서만 갔던 것입니다.

 

또 출10:19절에 “여호와께서 돌이켜 강렬한 서풍이 불게 하사 메뚜기를 홍해에

몰아 넣으시니 애굽 온 지경에 메뚜기가 하나도 남지 아니하니라”

메뚜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모세의 기도로 메뚜기는 한 마리도 남지 않고 다 도망갔습니다.

 

출10:23절에도 “그 동안은 사람 사람이 서로 볼 수 없으며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으되 이스라엘 자손의 거하는 곳에는 광명이 있었더라”

 

애굽은 삼 일 동안 온 종일 캄캄한 반면, 고센 땅은 광명이 임했습니다.

이것은 모두 자연 현상에 개입하셔서 기적으로 바꾸신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입증합니다.

하나님의 기사와 이적입니다.

 

▲그러면 이런 기사와 이적이 일상적인 일일까요? 시도 때도 없이 계속 일어나는 일일까요?

미국 풀러 신학교에서 교수로 있던 피터 와그너를 중심으로 일어난 신사도운동을

전개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교회는 매일 기적이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기적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일상적인 사건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본문에서 하나님이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신 것은

항상 이러한 기사와 이적을 일으키시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10:2절에 너로 내가 애굽에서 행한 일들 곧 내가 그 가운데서 행한 표징을

네 아들과 네 자손의 귀에 전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내린 열 가지 재앙을 후손들에게 계속해서 들려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적을 일상적으로 일으키시겠다면 이런 말씀을 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이 말씀은 이 때 일어난 열 가지 이적과 기사 속에 특별한 메시지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런 기적을 계속해서 일으키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 시기에 일어난 이적과 기사 속에 담긴 메시지를 계속해서 후손들에게 전하라는 것입니다.

 

성경 역사 속에 기적이 많이 일어난 시기는 세 시기였습니다.

본문의 출애굽 시기와 엘리야, 엘리사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기, 예수님이 사역하던 시기였습니다.

 

얼마든지 기사와 이적이 일어날 수 있지만, 이것은 늘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1960년대, 하나님의 교회에 부흥을 주실 때는

기사와 이적이 참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주시고 이 복음이 진리라는 것을 입증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일하신 방식이었습니다. 우리는 기적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말씀 속에 나타난 복음을 따라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며 살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4. 바로 왕의 반응

 

하나님의 재앙을 내리실 때 바로의 반응은 어떠하였습니까?

그는 마음을 강퍅케 해서 불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주신 메시지는 두 가지였습니다. 내 백성을 가게 하라는 것과

내 백성으로 나를 예배하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는 매번 마음을 강퍅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불순종합니다.

 

그런데 의아한 것은 바로의 마음이 강퍅하게 된 것이

출7:3절에 보니 하나님이 하신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고 나의 표징과 나의 이적을 애굽 땅에 많이 행하리라마는” (출7:3).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 구절을 가지고 하나님이 바로에게 악을 행하게 하셨으므로

책임이 하나님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나님이 악의 주인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바로는 자기 마음조차도 스스로 조절할 수 없는 존재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바로의 마음속에 이미 악이 가득하였고,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지 않는 한

바로는 계속해서 악을 행할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바로는 자기 마음도 통제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내 마음대로 살 수 있다는 계산을 가지고 착각하며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술에 중독된 사람이 술을 끊겠다고 마음으로 결심하고

작정하면 술이 끊어집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담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까지만 피고 내일부터 건강을 지키겠다고 마음 먹어봐도 마음 먹은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시는 절대적인 주권자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보여줍니다. 잠언 21장 1절에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보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이 은혜를 부어주시지 않으면 절대로 복음에 반응할 수 없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을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은혜를 부어주셔야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바로가 자기 마음을 통제하지 못한다고 해서 책임이 면제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악을 주입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로의 마음은 이미 악으로 충만합니다. 스스로 악을 범하고 있지만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책임은 본인이 져야 합니다.

 

▲바로는 불순종할 뿐만 아니라 재앙이 거듭되니까 타협안을 제시하였습니다.

마귀는 항상 믿는 자에게 타협안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모세와 아론은 단 한 번도 타협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1차 타협은 출8:2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라.”

 

2차 타협은 8:28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가 가로되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광야에서 희생을 드릴 것이나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

그런즉 너희는 나를 위하여 기도하라.”

 

3차 타협은 10:11절입니다. “그는 불가하니 너희 남정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

이것이 너희의 구하는 바니라 이에 그들이 바로 앞에서 쫓겨나니라.”

 

마지막 4차 타협은 10:24절입니다. “바로가 모세를 불러서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 양과 소는 머물러두고

너희 어린 것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

 

모세와 아론은 단 한 번도 바로의 타협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부분적인 순종은 결코 순종일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순종은 완전히 순복하는 것입니다.

 

결국 바로는 자신의 장자와 애굽 백성들의 장자가 모두 죽는 재앙을 당하고 나서야

완전히 굴복하였습니다. 출12:31~32절에 “밤에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이르되

너희와 이스라엘 자손은 일어나 내 백성 가운데서 떠나서 너희의 말대로 가서

여호와를 섬기며 너희의 말대로 너희의 양도 소도 몰아가고 나를 위하여 축복하라 하며”

 

바로는 하나님께 완전 KO패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10라운드에요.

이로 인해서 위대한 출애굽의 사건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결론

 

인류역사는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의 계속된 싸움입니다(창 3:15).

하나님은 뱀의 후손들에게 계속해서 재앙을 내리시며 하나님의 엄위를 보여주십니다.

 

요한계시록 15~16장의 내용은 출애굽기 7~12장과 아주 비슷합니다.

출애굽기에 기록된 재앙의 내용과 비슷한 재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류역사 내내 자신을 대적하는 자들에게 갖가지 재앙을 부으시는 것입니다.

군사적, 경제적, 건강상의 재앙을 내리십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바로와 같이 하나님을 계속 훼방하는 반면

이런 재앙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는 복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계시록 16:15절에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믿음이 있는 사람은 계시록15:4절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모세의 노래’를 부른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모세의 노래가 무엇입니까? 오직 여호와만이 참 하나님이시고,

여호와 하나님만이 거룩하신 분이시고,

여호와 하나님만이 우리의 예배를 받으실 분이시라는 것이 모세의 노래입니다.

 

여러분의 입술에는 모세의 노래가 있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에는 모세의 노래가 있습니까?

우리는 절대로 교회 나와 앉아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훼방하고 도전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예배를 드리고, 헌금을 내고, 기도를 하며 충성하겠느냐?”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엄위와 일곱 대접의 심판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하나님이 복을 주시고 인도하시며,

천국에서 영영한 복을 누리게 하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이러한 은혜가 풍성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