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 루이스의 3번의 회심 출처
김 진혁 교수
동영상 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4WAYcx25h1M
C.S. 루이스 (1898~ 1963)
20세기 대표 기독교 변증가, 기독교 작가
▲프린스턴 신학교에 20년이나 총장을 하셨던
아키발 발리산더 신학자가 계십니다
그분이 하셨던 말씀중에 유명한 말이 있는데
"하나님은 지구상의 어떠한 일보다도
죄인 한 명의 회심에 가장 큰 영광을 받으신다" 라는 표현을 하셨습니다.
그 말은 다른 말로 하면
기독교의 핵심이 "회심"에 있다 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C.S. 루이스의 인생에 재미있는 것 중의 하나는
그가 살았던 다이나믹한 역동적인 삶도 있었지만
그가 여러 번의 회심을 거쳤다는 점에 있습니다.
저희가 한 번 회심한다고 얘기합니다.
회심, 즉 이전의 삶을 끊고
새로운 삶을 산다고 생각할 때..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단계를 걸쳐 저희를 부르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요..
C.S. 루이스는 흔히 학자들이 말할때에
"3번에 걸쳐 회심을 했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앞서 말씀 드렸듯이
C.S. 루이스는 20세기에 대표적인 변증가,
'나니아 연대기' 소설을 쓴 작가로
알려져 있는데요
C.S.루이스와 가장 친했던 친구 중의 1명인
영문학자인 오웬 바필드 가 있습니다.
오웬 바필드는 C.S.가 죽은 후에
<On C. S. 루이스>
즉 C.S.루이스에 대하여 짧은 논문을 쓰는데요,
거기서 뭐라고 말하냐면
"C.S.루이스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5명의 C.S. 루이스를 알아야 한다" 라는 표현을 합니다
그러면 5명의 C.S. 루이스가 누구냐 하면
1. 저희가 잘 아는 <기독교 변증가로서의 C.S. 루이스>입니다.
2. 어린이 문화 뿐만 아니라 루이스가 '우주 삼부작' 이라는 S.F소설도 썼고
여러 문학작품을 남겼습니다.
<작가로서의 C.S. 루이스>의 모습!
3. 루이스의 본업은 무엇이냐
루이스는 신학자가 아니었습니다
본업은 옥스포드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가르쳤다
휄로우(교수)였습니다
<영문학자로서의 C.S. 루이스>입니다
이 3명의 모습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C.S.루이스의 작품세계를 잘 알기 위해서는
이 3명의 루이스, 혹은 이런 세 다른 양식의
루이스의 글을 읽어야 되고요,
그런데 바필드는 2명의 루이스가 더 있다고 얘기하는데요
4. <무신론자로서의 루이스>입니다.
5. <유신론자로서의 루이스>입니다.
루이스의 전기를 읽다 보다면 그가 정말 예수님을 믿기 이전과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얼마나 삶이 달라진지 알 수 있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오웬 바필드는 루이스를 잘 이해하기 위해선
무신론자의 루이스와
유신론자의 루이스 2명를 다 알아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그의 과거 무신론적 배경
그렇다면 저희가 질문해 봐야 할 것 중의 하나가
"왜 C.S.루이스는 무신론자가 되었을까?" 입니다.
왜냐면 당시 영국이라면 다 모두 다 거의
기독교인 인 기독교 국가였지요.
그 가운데서 루이스는 어떻게 다 무신론자가 되었을까요?
루이스가 1898년 생인데요
약 10년 후에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게 됩니다.
루이스는 어머니에게 상당히 애착심을 많이 느꼈고요.
아버지와는 관계가 좀 불편했던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루이스는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안정된 행복과 평온하고
듬직하던 모든 것들이 내 삶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예 이것이 9살 때 루이스가 어머니의 죽음을 표현했던 말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게 무엇이냐하면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루이스의 아버지가 아이들을 돌봐야 하잖아요.
형이랑 루이스, 두 아들이 있었는데 어떻게 할 줄을 모르는 거예요.
아버지는 그래서 아이들과 감정의 선을 끊어 버립니다.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지요.
그래서 아이 2명은 이제 잉글랜드의 기독(기숙)학교로 보내지게 되고요,
그리고 그 이후로 아버지와 상당히 힘든 관계를 유지하게 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무엇이냐면
루이스가 아버지와 잘 친하게 지내지 않고 형식적인 관계를 좀 유지하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러 가잖아요.
그런데 그 때 아버지의 달력을 보게 되는 거지요.
아버지의 달력을 봤더니, 어머니의 죽은 날로부터 달력이 안 넘어가 있었어요.
그리고 그 달력 밑에 명언들이 적혀 있었는데요.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그날 명언이 무엇이냐하면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중에 나왔던 유명한 구절입니다.
'사람은 죽음을 견뎌야 한다'는
그 구절을 읽게 되고요.
어떤 면에서는 루이스가 그 표현을 이제는
아주 노골적으로 자기 삶의 모토다 라고 내세우지는 않았지만
루이스가 죽고 난 이후에 묻혔잖아요.
그 묘비석을 보면 그 구절이 적혀 있습니다
'사람은 죽음을 견뎌야 한다'
이렇게 어머니의 죽음은 어린 루이스에게 큰 충격과
그리고 어떤 것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비극적 경험이 되었습니다.
▲루이스는 또 공부를 잘 해가지고 옥스포드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는데요.
옥스포드 대학에 들어가자 마자 1차 세계 대전이 터져서 징집하게 됩니다. *1917년
1차 세계 대전에 프랑스 전선에 보내지게 되고요.
거기서 많은 친구들을 잃게 되고 그리고 전쟁의 참혹상을 보게 됩니다.
그 때 루이스가 1차 세계 대전의 참혹한 모습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참혹하게 뭉개졌으면서도
짜부러진 딱정벌레처럼 움찔거리던 사람들.
앉아 있는 시체나 서 있는 시체.
풀 한 포기 없는 맨땅의 전경!"
이렇게 친구들의 죽은 모습.
의미없이 죽은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루이스는 이제 '과연 신은 존재하는가?' 하는 생각을
젊은 나이로부터 생각하게 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루이스가 또 다른 무신론자로 가게 되는
이론적인 배경이 있는데
영국 사립학교와 옥스포드대학교에서 받았던
그런 논리학 중심의 합리주의적 공부 때문입니다.
거기서 "모든 믿음에는 그에 합당한 증거가 있어야 된다"
그런 내용을 학교에서 익히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믿으려는
믿음의 증거가 있어야 되는데 그래서 기독교 신앙을 회의하게 됩니다.
▲그리고 또 루이스가 영향을 받았던 많은 사고 중에
하나가 뭐냐면 당시 유행했던 프로이드 심리학입니다.
프로이드 심리학에 따라서 루이스는
'종교라는 것은 아주 미성숙한 인간,
원시적인 인간이 세상살이에 두려우니깐
그 두려운 감정을 감추고,
그것을 투사해서 만들어낸 인간의 창작물이다'
그러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교육의 영향을 받으면서
루이스는 무신론자가 되어가고 있었던 거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무엇이냐면 루이스도
자기의 전기에서 표현을 하지만
'하나님도 자기를 무신론자로 가게 내벼려 둔게 아니라
그 전부터 자기를 이제 특이한 방식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라는 고백를 하게 되는데요
그게 뭐냐하면
저희가 지금부터 살펴 볼 루이스의 3번의 회심 이야기입니다.
◑세 번의 회심 .. C. S. 루이스만 경험하지 않았다
루이스가 3번의 회심을 했다 라고 얘기를 하는데요,
이것은 루이스만 독특한 것이 아닙니다.
특히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공부를 많이하신
철학자나 신학자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의 삶을 보면 전부 다 우리가 생각하는
한번 이전 과거 삶을 끊고 기독교인이 되는것이 아니라
차례 차례 기독교 신앙의 깊이 있는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면 4세기의 대표적인 신학자인 어거스틴이 있지요
어거스틴을 보며는 '고백록'이라는유명한 책이 있어요.
그 책을 보면
1, "지적 회심"을 가지지요
그 전에는 어거스틴도 마니교라는 이단에도 빠졌다가
이렇게도 있다가 어느 날 지식적으로 '신이 있다'는 것을 믿게 되고 그 다음에
2. "마음의 회심"을 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되면서
완전히 그리스도인이 되는것을 볼 수가 있고요.
3. 그 다음에 암브로시우스 교부 밑에서 신앙생활 하면서
완전한 회심에 이르러.. 종국에는 당시 최고 기독교 변증가요, 신학자가 되지요.
▲그리고 17세기에 파스칼은 유명한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유명한 말을 남겼지요
파스칼 같은 경우도 보면
여러 번 회심을 겪은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자기가 말 했던 '결정적 회심의 사건' 이라고 얘기 하는데요
그 일을 겪기 전에 마음의 변화도 있고,
고민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C.S.루이스의 세 번의 회심
C.S.루이스도 루이스를 보면 여러 번의 회심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요
그것을 재미있게 기록한 것이 뭐냐하면 그의 전기인
"예기치 못한 기쁨"에 나옵니다
▲1. 회심은 자기가 불렀을 때는 '상상력의 세례'(1915)라고 불렀습니다
저희가 흔히 생각할 때
회심 할려면 결단력이 대단히 중요하잖아요
루이스에게는 중요한 것은 (비슷하게) 상상력 이었습니다.
루이스가 아직 학생시절 이었을때 *18세 때
즉 옥스포드에 가서 합리주의 교육을 받기 전에
1차 세계 대전에 참여하기 전에 수영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기차를 타고 수영을 하러 가는데
어느 날 수영장에서 오는 길에 기차역에서
'이번 주말에 뭘 읽을까?' 하고 뒤척 뒤척거리다가
가판대에 있는 책 1권을 고르게 되지요.
그 책의 제목은 죠지 맥도날드 라는
스코틀랜드 동화작가이자 목사님이 쓴 책 '판타스테스'
그 책을 집어들고..
증기 기관차 시대잖아요.
증기 기관차가 노을에 비친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웠겠어요.
그 아름다운 노을을 보면서 루이스의 마음이 움직입니다.
이제는 그 책을 읽으면서
'밝은 그림자' 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밝은 그림자'가 뭐냐하면
보통 저희는 빛과 어두움 2로 나누게 되지요
어떤 밝은 그림자가 있으면
그것은 완전 어둡지도 않고, 완전 밝지도 않은, 그런 그림자가 있습니다
상상력의 세계란 그런 밝은 그림자를 찾아주는 거지요.
우리가 흔히 '영성이다 믿음이다' 그럴 때
잘못 생각 하는 것 중의 하나가
세상을 완전히 뒤로 하고 점점 더 하나님께로 나간다 하고 생각하는 건데요
루이스가 상상력의 세계를 발견한 것은 무엇이냐 하면
이 세계는 변하지 않는데, 이 세계가 새롭게 보이는 것
그런 경험을 하게 하는 것이지요.
'상상력이 가지고 있는 포용력이 중요하다' 라고 그는 얘기합니다.
C.S. 루이스는 이제까지 자기가 알았던 모든것,
그가 경험했던 아름다운 자연들,
그런 건 다 그대로 있었는데
자기가 그 모든 것을 뒤로 버리고 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에 새로운 것이 비추기 시작했다. (새롭게 보기 시작했다)
라고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그게 "이성과 신앙"이라고 저희가 흔히 이야기를 해요
기독교의 두 축이라고 해서
하나는 잘 믿어야 하고, (신앙)
하나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야 되고 (이성)
그리 성공하지 못 했습니다.
그런데 루이스가 했던 것이 무엇이냐하면 '상상력'이지요
그게 뭐냐 하면
"이성" 같은 경우에는 분석적이죠 쪼개죠
그렇기 때문에 자꾸 나눌려고 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상상력"이라는 것은 서로 다른 것을 묶어 놓은 것이지요
그래서 루이스 시대 이전 시대, 즉 계몽주의 시대는
상상력을 수준이 낮은 인간의 정신작용을 봤습니다.
왜냐하면 서로 다른 물체를 묶어서
존재하지 않는 그런 물체를 (상상력이)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면, '황금'이란 물체를보고, '산'이란 물체를 봅니다.
그럼 상상력은 '황금산'이란 존재하지 않는 물체를 하게 되는 것이지요.
루이스 같은 경우에는
'그것이 아니다
상상력은 없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새롭게 보게하는 힘이다'
라고 말합니다.
이 때가 루이스는 한국으로치면
고등학교 때지요.
어떤 말에서는 루이스는 상상력이후 회심후 무신론자가 되어 버립니다.
그렇지만 자기말로는 '상상력의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어떤 면에는 나중에 계속 신앙을 가질 수있는 원동력이 되었던 거지요.
루이스는 자기의 전기에서
"그날 그 때 왜 자기가
'판타스테스'란 책을,
전혀 알지 못했던 책을 골라 내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것은 신비다."
라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루이스는 이제는 전쟁도 갔다오고 하면서 무신론자가 된 이후에
점점 더 강화된 무신론 신앙을 가지게 되었는데요
▲2. 그러다가 1929년에 이제 유신론으로 회심하게 됩니다
그가 유신론으로 왜 회심하게 되었느냐면
성경을 열심히 읽는 것 보다는
인문학 공부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신앙도 중요하지만
이성도 중요합니다.
정말 인문학을 비판적으로 공부하다가 보면
어느 순간에는 '거기에는 절대적인 절대자가 있다
거기에는 궁극적인 원인이 있다'
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래서 루이스는 자기가 회심했던 그 순간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1929년 나는 결국 하나님께 항복했다
결국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게 됐다"
어떻게 보면 이성적으로는
하나님을 계속 거부할려고 했지만
그러나 자기 이성에 스스로 정직하다 보니까
거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나는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게 됐다"
라면서 자기의 회심을 다음과 같은
한마디로 요약합니다.
"그 날의 회심은 영국을 통틀어
가장 맥 빠지고 내키지 않는 회심이다"
자기가 얼마나 회심하기 싫어서
끝까지 버텼으면, 이런 표현을
썼는지는 모르겠는데요..
그래서1929년 회심하게 되고요
조금 조금씩 학자마다 연대차이가 있습니다마는
▲3. 세 번째 회심
그런데 루이스는 아직 끝내 기독교로 아직 완전히 회심하지 않습니다.
외부에서 사람들이 말하기 시작합니다.
'왜 너는 신의 존재를 믿기 시작하고 교회도 나가기 시작하는데
왜 기독교인이 안 되니?' 하고 물어봤더니
루이스가 한 유명한 말을 뭐냐 하면
"아무리 봄이 좋더라도 동물원에 가서 사는 사람은 없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신이 좋다해도
자기가 굳이 기독교인이 될 필요는 없다" 리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루이스의 친한 친구였던
우리에게는 <반지의 제왕>을 쓴 작가로 유명했던
J.R.R.톨킨이 있는데, 그는 가톨릭 신자였어요.
그는 루이스가 기독교인이 안 되는 걸 굉장히 애닳아했지요.
그래서 톨킨과 다이튼 교수라는 또 다른 친구 2명이 작정하고
어느날 루이스와 끝장 토론을 합니다.
같이 저녁을 먹고요 그리고 함께 산책을 갑니다.
산책을 가는데 워낙 뛰어난 지성들의 대화니까 끝이 안 나지요.
그래서 밤이 늦도록 대화를 하다가 봤더니 새벽 3시가 종이 울렸어요.
그때 톨킨은 결혼했고
루이스는 아직 미혼이었거든요.
톨킨은, 자기는 아내가 기다린다고 하고 집으로 돌아가고요,
다이튼은 영문학자인데 자기는 기차타고 돌아가야 하니까
한 밤 중에는집에 못 가니까 한시간동안 더 남아 루이스를 설득을 하게 되지요.
그런데 루이스는 그때에 회심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다 헤어져서 집에 돌아와서 혼자 생각을 하게 되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톨킨이 루이스를 설득하는 방법이 재미있어요.
루이스 같은 사람에게
우리가 하듯이 4영리를 가지고 '이게 기독교 진리야, 그러니 믿어!' 라고 했으면
루이스 같은 경우에는 흥미를 잃고 믿지 않았을 수 도 있습니다.
그런데 톨킨 같은 경우에는 루이스가 영문학자, 인문학자이고 그러니
'너 좋아하는게 신화들을 분석하는 것이잖아?
그래서 전 세계의 신화를 보면
(그 중심에 신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신화가 있습니다)
그래서 너 그 신화 좋아하잖아
그 신화랑 복음서를 너 한번 비교해 봐!' 라고 얘기했던 것이지요.
그리고 그 때 루이스가 상상력이 확 넓어집니다.
상상력이 넓어지면서
'그래 그 신화를 보면서 복음서와 한번 비교해 볼까?' 라고 비교해 봤더니
다른 '죽은 신의 신화'에서는, 신이 죽은 것으로 끝나지만,
"복음서에는 신화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게 역사의 시작이 되었다"
'신이 곧 죽고 다시 사는 것이, 복음서에서만 (새) 역사가 되었다'
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그 상상력이 넓어지면서
루이스는 기독교의 복음을 받아 들일 준비가 되게 되었지요.
그래도 루이스는 아직 신자가 아니었고요
어느 날 그의 형 원(형 이름)이 군인 출신입니다
여러분 전쟁 영화에 보면 2차 세계 대전 영화를 보면
오토바이를 타고 가보면 한 옆에 한 사람이 타게 되었는데요
형이 운전을 하고 루이스가 옆에 타고 동물원으로 놀러가게 되지요.
그 중년의 두 남자가 동물원에 놀러갔는데,
루이스의 말에 의하면
"동물원으로 갈 때 자기는 기독교인이 아니었는데
동물원에서 나왔을 때는
자기가 기독교인이 되어 있었다" 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아까의 2번째 회심과 마찬가지로
맥 빠지고 내키지 않는 회심처럼 표현되었지만
재미있는 것은 '아무리 봄이 좋아도 동물원에 살지 않는다는 사람이
동물원에 갔다가는 기독교인이 되는'
하나님의 유머코드를 볼 수 있는 사건입니다.
이렇게 루이스는
3차례의 회심의 과정이 있었고
그 때 중요했던 것이 상상력으로 회심 1st.
그리고 지적인 회심 2nd,
그리고 기독교인으로의 회심 3rd이 있었습니다.
◑그의 세 번째 회심 1931
우리는, 회심이 너무 중요하고
회심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라고 말하지만
저희가 '어느 한 번의 회심'이라고 말하고 주장한다면,
좀 다 설명하기 어려운
그런 일도 있을 수 있지요.
아까 말씀드렸던 성 어거스틴, 파스칼, C.S.루이스 등
다 기독교 신학의 대가들 이었고요
다들 각 시대의 기독교 신학을
변증해 주고 생각해 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어떻게 보면 그들의 회심이
좀 천천히 이루어 졌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강의를 맺으면서 몇 가지 소개를 해드리려고 하는데요
앨리스터 맥그라스 라는 유명한 영국신학자가 있습니다.
최근에 <루이스의 전기>를 써서 더 유명해 졌는데요.
그분이 쓴
<위대한 기독교의 사상가 10인>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거기서 초대교회부터 20세기까지
위대한 기독교 사상가들을 뽑아는데요
그 중 마지막으로 뽑힌 사람이 C.S. 루이스입니다.
근데 10인 중에 들지 못한 사람들이 여럿이 있는데
여러분이 잘 아시는 감리교의 창시자 죤 웨슬리, *웨슬리는 부흥운동가, 목회자, 신학자는 약함
또는 네덜란드의 신학자 아브라함 카이퍼!
그런 분들이 10인 중에 못 들어갔는데, 루이스가 10위에 들었죠.
그 이유중의 하나는 무엇이냐면
루이스는 이전 기독교에 없었던 '상상력'을
기독교의 아주 중요한
아주 핵심적인 개념으로 삼았다 라는데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C.S.루이스는 단순히
기독교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변증서를 쓰는것이 아니라
상상력을 풍부히 표현한 <나니아 연대기>
같은 작품을 쓰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루이스와 함께
상상력을 재발견한 저희는
새로운 변증학과 새로운 기독교 문화 등장의 시대를 열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또 상상력의 회심을 이야기 할 때
저희가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그것은 바로 "우정"입니다.
루이스가 혼자 상상의 나라를 폈을 때는.. 그게 얼마 후에 꺾일 수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그때 당시에 다양한 상상력을 실험하고, 생각을 교류하고,
서로가 쓴 글을, 서로 읽고 답장해 주고 했던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아까 말씀드렸던
반지의 제왕 작가 J.R.R 톨킨이 있었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루이스를 잘 알게 된 톨킨은
루이스가 기독교인이 못 되는 이유는
"논리의 문제가 아니다, 증거의 문제가 아니다"
톨킨이 볼 때 루이스의 문제는
"상상력의 방향이 잘 못 되어 있다.
상상력을 이렇게 살짝 틀어주면
자연스럽게 기독교인이 될 것이다"
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저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그런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우정 공동체의 중요성"입니다.
그래서 루이스의 작품 중에 계속 나오는 것이,
예를 든다면 <나니아의 연대기>에도 나오고,
<반지의 제왕>에도 나오고,
중요한 포인트가 뭐냐면
"함께"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함께 했기 때문에
그들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었다"는 얘기이지요.
"함께"는 루이스의 판타지 문학에 나오는 공통된 주제입니다!
타자 Y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