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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21세기에 큰 믿음이 필요합니다

LNCK 2019. 7. 24. 08:15

◈지금 21세기에 큰 믿음이 필요합니다        마15:28             19.07.14.설교스크랩

                                                                                *원제목 : 십자가 위의 세 언어

     


21세기에 무엇보다도 큰 믿음을 가져야 됩니다.

(자기 야망의 거품이 빠진)  큰 믿음!

 

예수께서 사람들을 도덕적인 이유 때문에

나무라신 적은 별로 없는데

믿음이 없는 것을 보고는 늘 나무라셨어요.

 

그리고 예수님이 사람에게 하실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은

믿음을 칭찬하신 것이었습니다.

네 믿음이 크도다!

내가 이스라엘에서 이만한 믿음을 본 적이 없도다!

네 믿음대로 되리라!’

   

예수님이 하신 최고의 칭찬은

믿음을 칭찬하신 것이고

큰 믿음, 믿음이 커야 큰 역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


어느 성도님 댁에는 딸만 넷이 있는데

이 네 자매가 같이모여 있으면 너무 재미가 있어서

그 이외의 친구를 둘 필요를 못 느낀다고 합니다.

 

한국인들이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같은 한국사람들끼리 함께 있으면 너무 재미있어서

특별히 외국인들을 친구 삼을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그래서 외국에 이민을 간 사람들도

그 나라 국적을 취득하고 수 십 년을 살았지만

집에서 식사할 때는 반드시 한국음식을 먹고

주일 날에는 한국교회를 가고

 

코리아타운에서 한국 친구들을 만나고

TV에서 한국 드라마를 보고

한국 뉴스를 듣고

한국 정치 상황에 대해서 흥분하고

그리고 기회만 되면 한국을 찾아옵니다.

한국인들보다 더 한국적입니다.

 

유학을 간 학생들도 그렇습니다.

외국인 학생보다는 같은 한국 학생들끼리 어울리는 것이

너무도 재미있어서

팔이 안으로 굽듯이

한국의 문화와 한국의 정서와 한국교회 쪽으로 돌아옵니다.

 

한국은 한국기독교인들에게 메카와 같은 장소입니다.

외국에 있는 한인 교회들이, 그 나라에 있는 외국교회를

흉내내려 하지 않고

반드시 한국에 있는 유수한 교회를 흉내내려 합니다.

 

심지어 교회 이름을 정할 때도

한국에 있는 교회 이름을 따서 지으려 합니다.

 

제가 캐나다 토론토에 있을 때

어느 교회 장로님들이 저를 찾아서

제가 이전에 명성교회에서 인턴한 것을 알고

토론토의 자기들 교회 이름을 지을 때 명성교회로 짓고 싶은데

한자로 어떻게 쓰느냐고 제게 물어봐서

할 수 없이 알려드린 적이 있습니다.

    

외국에서 목회하는 한국 목사님들은

한국에 있는 교회가 청빙하면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옵니다.

 

어느누구도 저는 이미 여기서 중요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데 갈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찾을 수 없고

불러주는 게 고마워서 만사를 제쳐놓고 한국으로 달려옵니다.

 

대한민국은 해외에 흩어져 있는 교포들에게

메카와 같고 나의 살던 고향과 같은 곳입니다.

 

한국에서 무엇을 해야 사람들이 알아주지

밖에서 하면 관심도 없고 알아주지도 않습니다.

 

누가 외국사람에게 시집을 가면

레이더 화면에서 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한국 사람에게 시집을 가야 부러워하든지, 씹든지 하지

외국사람에게 시집가면, 관심 밖이 됩니다.

 

연예인이 국내에서 활동을 해야 알아주지

외국에서 활동을 하면, 아무리 크게 활동을 해도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공을 해도

한국 사람들이 알아주는 성공을 해야 되고

명문학교를 가도 한국인들이 알아주는 학교에 가야 됩니다.

한국사람이 알아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한국인들은 외국에 여행도 많이 가고

유학도 많이 가고 출장도 가지만

돌아왔을 때는 늘 한국이 더 좋다이렇게 말합니다.

 

한국이 더 살기도 편하고, 배달도 잘 되고

인터넷도 잘 되고, 외국에 가니까 쇼핑할 것도 없더라

이렇게 말들을 하는데

 

다행히죠. 한국이 좋다고 하는 것은 다행입니다.

 

 

그러나 이런 정서가 우물안 개구리가 되게 할까 염려됩니다.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글로벌 마인드를 갖지 못하게 할까

염려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유럽에 있는 대부분의 나라들은

여러 언어를 구사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네덜란드만 하더라도, 네덜란드 어를 하고

독일어를 하고, 영어를 반드시 구사합니다.

 

벨기에도 그렇고요, 또 여러 나라가

한 언어가 아닌, 여러 언어를 구사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이유는

 

외국어를 배웠기 때문이 아니고

외국어를 쓸 기회가 자연스럽게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영어를 배우기 위해 애를 씁니다.

얼마나 긴 세월동안 얼마나 노력해서 영어를 배웁니까.

 

그러나 배운 후에 영어를 쓸 기회가 별로 없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끼리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끼리 놀고, 우리끼리 어울리다 보니까

외국인들과 어울릴 일이, 섞일 일이 있어야 외국어를 자연스럽게 쓰게 되는데

우리가 좋고, 우리끼리 어울리다 보니까

그렇게 힘들게 외국어를 배웠는데

쓸 일이 별로 없는 것입니다.

    

우리 역사를 되돌아봐도 그렇습니다.

우리 민족이 과거에 자의에 의해

타 민족과 섞인 적이 별로 없습니다.

 

우리가 타민족과 섞을 때는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였습니다.

 

남의 나라가 쳐들어왔거나

식민지가 되었다거나

타의에 의해서 타민족과 섞였지

우리가 원해서 스스로 다른 문화, 다른 언어,

다른 민족과 섞인 적이 별로 없습니다.

 

전쟁을 할 때도

20세기에 우리가 전쟁을 한 유일한 나라는

북한입니다.

같은 한국사람끼리 싸웠습니다.

 

그러니까 싸워도 같은 한국사람끼리 싸웠습니다.

또 어울려도 같은 한국사람끼리 어울리는 것입니다.

신기한 일이 아닙니까!

그래서인지 지금도 북한에 러브콜을 보냅니다.

어느 나라와도 당당하게 외교를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신앙적으로도 여파가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해외에 선교사들을 많이 보냈습니다.

맞습니다. 미국 다음으로 많이 보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낸 선교사들은 대부분 보병 foot soldier입니다.

발로 뛰는 병사들입니다.

 

비유하자면 포병도 없고, 통신병도 없고, 정보과도 없습니다.

지휘관은 더욱 없고, 전략가도 없습니다.

전부 다 발로 뛰는 보병입니다.

 

대부분의 선교사가 그렇습니다.

그들이 소속한 선교단체는 대부분 외국의 선교단체입니다.

 

미국인의 단체에 소속해서 미국인의 감독을 받습니다.

미국인이 지휘합니다.

 

저희 교회가 지난 번에 터키에 비전트립을 갔습니다.

터키에 사는 이란인들을 위한 목회를 하는 선교사님 교회에 찾아갔는데,


그 교회를 다니던 이란인 성도가

교회는 그 (한인 설립)교회를 다니는데

인터넷으로 누구의 설교를 듣나 봤더니

미국인 부흥사의 설교를 듣는 것을 보고

제 김영준 목사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 아직도 기독교 정신세계를 다스리는 것은

미국인들이구나!’

 

우리가 그렇게 열심히 선교를 하고

교회를 섬기지만

결국 그들이 누구의 설교를 듣느냐?

미국인 목사들의 설교를 듣고

미국인들이 쓴 책을 읽으면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우리는 발로 뛰는 것 뿐이지요.

 

아직도 사상을 주도하는 분들은

미국인 백인 크리스천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기도만 하면 될 줄 알았습니다.

우리의 헌신, 우리의 열정이 있으면

세계선교를 이룰 줄로 생각했는데,

여러분, 외국인들이 우리보다 기도를 많이 하는 것 같습니까?

외국인들이 우리보다 신앙이 좋은 것 같습니까?

 

한다면 우리가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이 헌신했지요.

그러나 무엇이 문제냐?

 

우리가 선교사를 많이 보내기는 하는데

다 보병만 보냈고 지휘관이 별로 없습니다.

 

우리는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라는 찬송가를 그만 불러야 됩니다.


때로는 이름도 필요하고, 빛도 필요합니다.

복음을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이름도 있어야 되고

빛도 있어야 됩니다.

 

 

왜 우리가 우리의 한계를 못 벗어납니까?


1 첫 번째 이유는 김치 때문입니다.

김치 때문에 외국에 가서 적응을 못합니다.

외국에 가서도 늘 김치, 고추장을 들고 다닙니다.

 

참 이상한 것은, 한국에 살 때는

튜브에 들어가 있는 고추장을 눈여겨 보지도 않던 사람이

비행기만 타면 고추장을 찾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비행기만 타면 라면을 찾습니다.

벌써부터 한국 음식이 당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녀들에게 김치맛을 들게 하면 안 됩니다.

애들이 외국에 가서 적응을 못합니다.

한국 음식이 생각이 나기 때문입니다.

 

2 두 번째 이유는 한국어 때문입니다.

아무리 우리의 정신적 가치가 위대하더라도

한국어의 장벽 때문에

우리끼리 그것을 소비하고, 우리끼리 나누는 것으로 그칩니다.

 

아무리 한국에 유수한 설교자들이 있어도

한국어의 장벽 때문에

우리끼리 그것을 듣고, 우리끼리 나누는 것으로 그칩니다.

 

반대로 미국 어느 시골에 목회자가 설교를 하더라도
인터넷을 통해서 위성방송을 통해서

전세계에서 들을 수 있는 이유는

그 설교가 뛰어난 이유 말고도

영어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들을 수 있습니다.

실시간으로도 들을 수 있습니다.

전세계와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언어의 장벽이라는 것이 이처럼 중요합니다.

 

우리는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해야 합니다.

(이런 측면도 있습니다.)

싱가포르, 홍콩, 인도처럼!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하는 것은 민족의 혼을 파는 게 아닙니다.

이건 상식적인 것입니다.

 

인터넷을 하는 사람치고

영어가 없이 코딩할 수 없습니다.

 

영어는 더 이상 미국인의 언어도 아니고

영국인의 언어도 아니고

이건 세계적인 언어가 되었고

학술적 언어가 되었습니다.

 

 

◑21세기에 지금 큰 믿음이 필요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십자가 위에 팻말을 달았습니다.

그 당시 십자가에 누구를 못 박을 때

그 사람이 지은 죄를 적어서 함께 붙엿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빌라도가 패에다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말을

3개의 언어로 썼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어, 로마어, 헬라어

3개의 언어로!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이미 그 일은 세계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미 세계적인 차원에서 그 일이 벌어지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히브리인에게도 복음이 증거되었고

로마인에게도 복음이 증거되었고

헬라인에게도 복음이 증거된 것은

 

이미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고발한 자는 히브리인이었고

사형을 집행한 자는 로마인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이것은 전세계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21세기에

우리의 문화, 우리의 음식, 우리의 것,

이것만을 주장하게 되면

어떻게 사람낚는 어부가 되어서

땅끝까지 복음을 증거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열심, 기도, 헌신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이것은 전략이 필요하고,

계획이 필요하고,

지혜가 필요하고,

장기적인 준비를 해야 되고,

이 일을 할 수 있는 인재를 키워야 되고,

그리고 그들을 지원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됩니다.

 

그냥 보내고 잊어버리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 모든 것은

우리에게 지혜를 필요로 합니다.

 

우리 민족은 머리도 좋고

부지런하고

얼굴도 잘 생기고 심성도 착한데

 

그런데 부족한 게 있다면

소극적이고

너무 얌전하고

글로벌한 마인드를 가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에게 더 큰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세계를 넓고 할 일은 많다!’ 라고 말한 분이 누굽니까.

그런 인물이 우리 나라에 필요합니다.

세계를 넓고 할 일이 많다!’

 

밖에서 벌어서 안을 살찌우게 한다라고 말한 분이 누굽니까.

정주영 회장이죠. 얼마나 위대한 사상입니까.

밖에서 벌어서 안을 살찌우게 한다!’

    

삼성이 만들면 다르다라고 말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정신은 본 받을만 합니다.

 

최고를 추구하는 정신!

 

그렇기 때문에 다른 회사도

삼성만 그런 것 아닙니다.

 

'우리가 만들어도 달라요!'

이렇게 해야 되는데

 

그러나 그런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기독교인들도 최고를 추구하려 하지 않습니다.

최고의 교회음악

최고의 신앙컨텐츠

최고를 추구하는 것은 마치 겸손하지 않은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은데

 

하나님은 가장 높은 하나님이십니다.

가장 위대한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면

그것은 가장 선하고, 가장 뛰어나고

가장 놀라우리라고 기대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대양 육대주에 선교사를 보내게 해 달라고

기도한 분이 누굽니까.

수 십 년 전부터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오대양 육대주에 선교사를 보내게 해 달라고!’

 

그런데 이런 말을 했던 분들은

이제 거의 다 돌아가셨거나 은퇴하셨고

이제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지금 우리 세대가 이런 말을 해 주지 않는다면

우리 후손들은 좁은 생각, 작은 믿음,

어두운 비전을 갖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21세기에 무엇보다도 큰 믿음을 가져야 됩니다.

큰 믿음!

 

예수께서 사람들을 도덕적인 이유 때문에

나무라신 적은 별로 없는데

믿음이 없는 것을 보고는 늘 나무라셨어요.

 

그리고 예수님이 사람에게 하실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은

믿음을 칭찬하신 것이었습니다.

네 믿음이 크도다!

내가 이스라엘에서 이만한 믿음을 본 적이 없도다!

네 믿음대로 되리라!’

 

예수님이 하신 최고의 칭찬은

믿음을 칭찬하신 것이고

큰 믿음, 믿음이 커야 큰 역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영화 <패튼>을 보면

2차대전에 미국의 명장 조지 패튼 장군의 일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는 명장입니다.

승리가 급하고, 자기 고집이 강하고,

그리고 말실수가 잦았습니다.

그래서 두 번이나 지휘권을 박탈당했습니다.

 

그런데 패튼이, 그 영화를 보면

이제 D-Day 작전을 앞두고

패튼이 아이젠하워를 찾아가서

나에게 지휘권을 돌려주십사고,

내가 다시 전쟁에 나갈 수 있게 해 달라고

내가 다시 전쟁에서 싸울 수 있게 해 달라고부탁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러분 이것이 군인의 정신입니다.

전쟁에 나가 싸워야 군인입니다.

 

군대를 지휘해야 지휘관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나님의 종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는다면

그 동안 그 많은 것을 배우고

그 많은 것을 훈련한 이유가 어디에 있다는 말입니까?

 

남들은 나가 일할 때

나도 나가서 일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일 하러 가세 일 하러 가

삼천리 반도 위해

 

이것은 이제 옛날 찬송이고

삼천리 반도 뿐만 아니고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고

일하러 가야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도 그렇고

국가를 위해서도 그렇고

민족을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일하러 가야 됩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이 많습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알고

지금부터 준비하고 계획하고

꿈을 가지면

반드시 그렇게 됩니다!

할렐루야! 기도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