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세상에 복이 될지라 골3:23, 마10:42 설교일부녹취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고 말씀해 주셨고
이 말씀은 평소 아브라함의 삶에
소명 같은 것이 되었습니다
그 말씀이 일단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내가 너한테 복 줄거야!'
그런데 그 다음에 꼬리표가 붙습니다
'그런데 그 복 가지고 너만 잘 사면 안돼!
내가 너한테 복을 주는 목적이 있어!
너 혼자 잘먹고 잘 살라고 주는 게 그 목적은 아니야
네가 복을 받으면 그걸 네게서부터 세상으로 흘러 보내서
많은 사람이 복을 받게 해다오!
그게 내가 너를 택하여 네게 복을 주는 목적이야!"
이것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복의 근원이 되라'
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자기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복이 결코 아닙니다!
"흘려보냄" "나눔" "섬김"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인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마치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이 주신 커다란 소명이요 사명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 않으나 잘 된 사람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에서 복 받은 사람들과
뭐가 다르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에도 (오)복을 받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세상적 의미의 복이지만 *영원한 복음 아닙니다
소위 오복을 받은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태어나면서 남보다 지혜로운 사람,
태어나면서부터 남보다 부자인 사람,
또 그 높은 지위와 권력을 얻은 사람,
벌다 벌다 못해서 자기 돈이 얼마인지도 모르는 사람들도
세상에는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 저들의 복은, 자신들에게만 집중되어 있습니다
복이 타인에게로 흐르지 않습니다 아래로 흐르지 않습니다
즉 '복의 근원'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부익부 빈익빈이 되면서
자기들이 받는 복이,
오히려 인간 세상에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기도 합니다
저들이 아브라함처럼만 살 수 있다면,
즉 복의 근원이 되어, 복을 흘려 보내고, 복을 세상과 두루 나눈다면
세상은 얼마나 좋은 세상이 될까요!
세상의 부한 자들이,
세상의 힘있는 자들이
자신들이 받은 복으로, 가진 복으로
그 복을 받지 못한 세상 사람들을 섬기려 한다면
아브라함이 처음 본 나그네를 섬기듯 그렇게 섬기려 한다면
세상은 하나님의 나라가 되지 않겠습니까!
▲세상엔 그런 사람이 그래도 가끔씩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주 최부자도 예가 아주 좋은 예고요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그래도 세상이 이만큼이나 돌아가는 것 같아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저들은 자신의 어마어마한 부를 가지고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들을
더 나아가서는 너무 어려운 나라와 아프리카 대륙을 섬기는
그런 삶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위 세상에서 꼭 잘 나가고 잘 사는 사람이 되어야지만
세상을 섬길 수 있을까요?
부하면 부한대로 가난하면 가난한대로
높으면 높은데로 낮으면 낮은대로
다 아브라함같이 될 수는 없을까요?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꼭 부자가 되어야만 복의 근원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꼭 돈이 많아야만, 힘이 있어야만
복의 근원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어린 소자에게 냉수 한 컵 주는 것도
상을 잃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는데, 마10:42
냉수 한 컵은 누구나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가난한 자라도, 남을 도울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 마음 자세, 복의 근원으로 살겠다는 마음이 중요한 것이죠!
▲과거에 우리나라에서 '성시화 운동'이라는 같은 것들이 있었지요
그 도시의 꽤 많은 교인들이 집회로 함께 모였고
하루는 제가 성시화대회에 초청을 받아서, 가서 하나님 말씀을 전했습니다
성시화가 될려면
우리 예수님 믿는 사람들이
아브라함처럼 자기 복을 흘려보내는 '복의 근원'이 되면
그것이 세상사람들에게 감동을주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게 되어서
그 도시가 성시화되는 길이 아니겠는가..
그런 방향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그 집회에 참석했던 교우들중에
여러 직업의 사람들이 있을 수 있었을텐데요
그 설교를 듣고서 어느 배관공이,
그러니까 집수리도 하고 배관도 시공하는
집사님 한 분이 헌신하셨습니다
1주일에 하루는,
자기를 위해서 돈 벌지않고 무료로,
돈이 없어서 제때 수리를 못하고
불편하게 살아가는 이웃들을 찾아가서
그 집을 수리해 주고, 배관공 일을 봉사하겠다고
마음 먹고 실제로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여러분 1주일에 하루를 그렇게
이웃을 위해서 낸다는 것은
큰 봉사요 헌신이 아닐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뜻을 같이한 배관공들이
즉 배관공 크리스천들이 하나 둘 모여서
큰 사역을 이루었다는 소식을 후에 들었습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말씀들 중에
귀히 여기는 말씀들 중에
골로새서 3장 23절이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우리의 하는 모든일을
가난하든 부하든
높아 보이든 낮아 보이든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 앞에는 귀천이 없습니다
차별이 없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않고
아브라함이 나그네를 하나님 섬기는 마음으로
우리 직업을 쓸 수 있다면
우리는 다 아브라함과 같이
복의 근원이 되는 삶을 살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삶의 자세로 아브라함은
우연히 소돔 성을 향해 지나가는 나그네들을 섬기다가
하나님 섬겼습니다
하나님 섬기게 되니까
당연히 상을 받았지요
그래서 25년 가까이 끌어오던
아들을 주시겠다는 약속이
그때 종지부를 찍게 되었습니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중 하나에게
냉수 한 컵이라도 주는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마10:42 *certainly, 우 메
하나님이 얼마나 약속하고 싶으시면
"결단코"라는 그 단어를 쓰시겠습니까?
"결단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하시니라
▲제가 승동교회에서 첫 담임 목회를 했었습니다
아주 추운 겨울날이 었는데요
제가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옷이 꽤 말끔한 걸인 한 분이
구걸하러 제 사무실에
저를 찾아왔었습니다
대개 그런 경우 얼마라도 드려서
보내드리곤 했었습니다
그날도 찾아오신 분께
작은 돈만 드렸으면 했는데
그날은 어떻게 하나님이 제게 은혜로운 마음을 주셔서
날이 워낙 추웠고요
또 솔직히 그분 옷에서 냄새가 난다거나 만약 그랬으면
제가 사무실에 들이거나 그러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분은 옷도 깨끗하셨고
아마 구걸하는 일이 익숙해 보이지 않는
몸을 쭈뼛쭈뼛하는 것이 더 안스러워 보여서
제가 사무실에 들어오시라고 했습니다
돈은 좀 있다 드릴터이니 우선 날이 너무 추우니까
여기 소파에 앉아서 난로 앞에서 좀 불좀 쬐고
몸 좀 녹이시고 차 한잔 하시고 가시라 그렇게 했습니다
차 한잔을 마시면서 그 분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목수일을 하는 분인데 사고를 댱해서 다쳤고
그 다음부터는 일을 못하게 되었고
또 그러는 동안에 가정이 깨지고...
뭐 그래서 결국은 이렇게 노숙자처럼 되었는데
용산에 있는 가톨릭에서 하는 그 쉼터에서 잠은 자는데
그 쉼터에서 공짜로 밥은 안 준답니다
끼당 300원을 내야 되는데 그 가톨릭이 돈 벌려고
그러는게 아니라 나가서 구걸이라도 해서
움직이라고 하는 건강한 정신으로
그러라고 하는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구걸을 왔다 그랬습니다
이제 다 그 얘기를 마치시고 가시겠다
그래서 제가 돈을 좀 드렸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그분이 돈을 사양하시는 것입니다
난 걸인이 돈을 드리는것 사양하는 것 처음 봤습니다
그러면서 눈물이 좀 글썽글성 하시더니
"돈은 좀 받아 봤는데 차 대접은 처음 받아봤습니다
목사님 돈보다도 차가 더 좋으네요"
제가 드린 돈으로 차를 샀으면 꽤 많이 마셨을 것입니다
차 한잔이 그보다 더 귀하다
그 때 제가 깨달았습니다
'아! 그래서 예수님이 소자에게 냉수 한그릇이라도
주는자는 상을 잃지 않으리라
아! 냉수 한 컵에도, 차 한 잔에도 그런 마음이 있었구나!'
마음이 담긴 차 한잔이든
대륙을 움직일 만한 돈이든
하나님 보시기엔 같아 보이지 않으셨을까
"차 한잔이 귀하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주변을 돌아보시면서
내가 섬김을 받아야 할 사람들, 즉 나를 섬겨줄 사람만 찾지 마시고
내가 섬겨야 할 사람이 누군가를 보시고
꼭 돈으로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차 한잔으로,
봉사하는 것으로,
그를 도와주는 것으로"
이렇게 섬기게 됨으로써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의 축복의 증인들이
다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20
타자 Y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