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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절의 규례

LNCK 2019. 8. 6.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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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절의 규례            출12:15-20            2001.07.02.

 

 

유월절(1월 14일) 다음날(1월 15일) 밤부터 일주일간이 무교절입니다.

그러므로 유월절과 무교절은 연결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3대 절기를 무교절, 칠칠절, 장막절 이렇게 말합니다.

 

무교절이 유월절과 함께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무교절이란 무엇입니까?

무교병을 먹는 것입니다. 누룩 없는 떡을 먹는 것입니다.

 

‘쓴 나물’은 애굽에서의 고난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년 유월절과 무교절을 통하여

그들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오늘까지 오게 되었는가?’ 하는 것을 계속 반복하여 확인하고

그들의 자손과 자손에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12:17절 "너희는 무교절을 지키라 이 날에 내가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었음이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영원한 규례를 삼아 대대로 지킬지니라"

 

▲유월절이란 애굽에서 이스라엘이 구원받은 날입니다.

그런데 그 구원의 날에 가장 중요한 사건이 어린양의 희생입니다.

그리고 그 피를 바른 집은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피흘림이 없으면 사함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피를 바른 집안에서는 어떠한 외부의 위협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참된 평안, 참된 안식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유월절 다음 날부터 이어지는 일주일간 무교병을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누룩 넣은 (부풀은, 발효된) 떡을 먹습니다.

그러나 무교절 일주일간은 누룩 넣은 떡을 먹지 못할 뿐 아니라

집안에 누룩도 없애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교절의 가장 중요한 규례입니다.

 

그런데 만약 누룩을 없애지 아니하고, 누룩이 들어있는 떡을 먹으면

이스라엘에서 끊어지리라는 것입니다.

12:15 ‘무릇 첫날부터 일곱째 날까지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어지리라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끊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교절기에 누룩이 없는 떡을 먹는 것이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누룩없는 떡이 무엇을 뜻하기에 이렇게 누룩을 없애라는 것입니까?

이미 하나님의 진노는 어린양의 피로 넘어간 것입니다.

더이상 심판과 진노가 어린양의 피 아래서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룩을 제거하지 않으면 끊어진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유목민인데, 이들이 공동체에서 추방이 된다는 것은

거의 사형과 마찬가지의 형벌이 됩니다.

그러므로 누룩을 무교절에 철저하게 집안에서 내어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린양의 피 아래 있는데도 계속하여, 애굽의 사상과 의식이 박혀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서도 조금만 어려우면 어디로 가자고 합니까?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그 때가 좋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비록 노예로 살지언정 마실것과 먹을것이 풍부한 그때가 좋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누룩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애굽의 종이 되어도 잘 먹고 잘 살수 있는데

왜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하는가 하는 정신이 ‘애굽의 누룩’이라는 것입니다.

*누룩 : 뭔가 변질되게 하는 것

 

애굽의 풍요와 안락한 삶을 얼마나 동경하였을까요?

이러한 누룩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을 주장하지 못하도록

무교절마다 누룩을 내어 버리는 것입니다.

 

단지 누룩만 없애는 것으로 다 되었다고 한다면, 그야말고 문자적이고 외식적인 것입니다.

평소에는 누룩넣은 떡을 먹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교절에 누룩이 없는 딱딱한 떡을 먹으면서 자녀가 묻는다고 합시다.

‘아빠, 다른 날은 누룩을 넣은 부드럽고 맛있는 떡을 먹는데

왜 무교절에는 이렇게 딱딱한 떡을 먹어야 하나요?’ 라고 묻는다면

 

여러분이 이스라엘의 아버지라면, 뭐라고 대답하여야 하나요?

‘자식아, 하나님께서 무교병을 먹지 말라고 하셨으면 먹지 않는거야’

이렇게 대답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우리가 어떻게 애굽에서 구원받아 나왔는지를 전달하면서

애굽의 종살이와 그들의 사고방식에서 탈출하여 나왔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애굽 나라의 삶의 방식을 따라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약의 ‘누룩’의 의미를 보면, 잘 이해됩니다. 아래에 나옴)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교절은 지켰을지라도

그 내용 면에서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 무교절을 지키면서도, 마음은 애굽을 그리워한 것입니다.

애굽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누룩임을 알고 버리라고 하신 것인데

오히려 애굽은 사모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생을 하는 것입니다.

어린양의 보혈을 바르고 나왔는데도 그 보혈의 능력안에서

참된 생명과 기쁨과 평안을 누리지 못한 것은

그들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누룩을 제거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무교절을 문자적으로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고 하더라도

예수님께서 보시기에는 온통 누룩 덩어리입니다.

 

마가복음 8:14-21절입니다.

‘제자들이 떡 가져오기를 잊었으매 배에 떡 한 개밖에 그들에게 없더라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제자들이 서로 수군거리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열둘이니이다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일곱이니이다

이르시되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시자

제자들은 어떻게 알아 들었습니까?

7병2어로 4천 명을 먹이시고 남은 조각이 7광주리였는데

이 떡을 가지고 오지 않는 것으로 알아들은 것입니다.

 

제자들은 누룩이라는 말을 듣고서 먹는 떡으로 알아들었는데,

예수님은 누룩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가복음에서도 역시 알아듣지 못합니다. 이 두 곳을 보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은 얼마나 하나님의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 순종라는 지파인지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할만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무교절을 지키지 않았겠습니까?

참으로 철저하게 무교절을 지킨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 제일 많이 저주를 받은 집단입니다.

‘화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하신 것입니다.

 

율법은 그렇게 잘 지키지만, 그러나 너희의 속에는 누룩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그릇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속은 더럽다는 것입니다. 회칠한 무덤이라는 것입니다.

속에는 온갖 더러운 것이 가득한데, 밖으로는 종교적인 것들로 치장을 하고 다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리새인의 누룩입니다.

 

그리고 사두개인은 노골적으로 현실적입니다. 천사도 없고 내세도 부활도 없다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현실중심입니다.

 

이들과 함께 하는 자가 역시 헤롯입니다. 세상의 권세와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에 잘 보여서 왕의 지위를 가지고자 하는 자입니다.

유대 땅에서 살면서도 늘 지향하는 것은 로마의 힘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다 누룩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누룩을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교절의 누룩을 제거하라는 것이 단지 이스트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애굽의 사상, 가치관, 사고방식을 제거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이스라엘의 쓴 뿌리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것들이 교회 안에 누룩이 되는 것입니다.

어린양의 피의 순전한 능력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변질시키는 누룩들이

얼마나 많이 침투하여 들어오는지 모릅니다.

 

성도란 이미 거룩한 떡에 참여 된자로서 누룩없는 떡이 되었는데도

계속하여 누룩이 침투하여 들어오는 것들을 왜 방치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바울사도가 고린도 교회에 책망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5:1-8절입니다.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런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고린도 지역이 여러 가지 성적인 타락이 심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나오는 사람가운데 자기 아버지의 아내를 취한 자가 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이러한 것은 이방인도 하지 않는 일이라면서

이러한 자를 그 교회 공동체에서 추방하라는 것입니다.

 

마치 무교절에 누룩이 들어있는 떡을 먹으면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추방하듯이

물리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누룩이라는 것입니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교회란 누룩 없는 한 덩어리의 거룩한 떡이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우리가 하나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왠 누룩이 들어와서 퍼지게 하도록 내어 버려두느냐고 책망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누룩없는 자라는 것입니다.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 합니다.

 

결국 누룩을 내어버리는 것이 무엇을 드러내는 것입니까?

그리스도의 희생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안에 수많은 누룩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계속하여 이러한 누룩이 들어와서 변질시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피를 부정하게 여기도록 누룩이 들어오고 있음을 알고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의 누룩과 사두개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셨습니다.

이들의 교훈과 사상이 무엇입니까?

 

마16:11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12 그제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막8:15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바리새인들이 율법주의자입니다. 율법이 무엇을 증거하는지를 모르고

율법 지키는 것만이 최고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율법 지킴은 결국 자기들의 자랑과 자기들의 의가 되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기뻐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지키는 자기들의 기쁨과 영광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외식적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얼마든지 이러한 형태가 나올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현실중심적 (사두개인) 입니다. 기독교의 복이란 전부 영적입니다.

물론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먹고 마시고 입고 하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집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아버지께서 악인이나 선인이나

다 동일하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추구하는 바는

이 세상의 썩어질 것들이 아닙니다. 믿음의 내용이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5:8절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한 누룩도 말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없는 떡으로 하자"는 것입니다.

 

유월절 어린 양의 온전한 희생이 누룩없는 순전하고 진실한 떡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무교절을 율법적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거룩하게 된 떡에 붙어 있음이 명절을 지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예수님의 피를 이야기하여도,

그 보혈의 능력을 찬송하여도 그 안에서 무엇을 그리워하고 사모하고 있습니까?

 

만약 우리가 세상을 그리워하고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서 살려고하는 것은

누륵을 제거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속하여 쓴뿌리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이르게 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이러한 쓴뿌리가 나오지 않도록 두려움으로 자신을 살피교 교회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히브리서 12:14-17절을 봅니다.

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15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16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17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우리 안에 교묘하게 들어오는 누룩과 쓴 뿌리로 인하여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게 될까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15

 

그러므로 누룩이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완전성을 자꾸만 흐리게 만드는

사상과 교훈들입니다. 이러한 누룩을 주의하시고 날마다 그 은혜를 사모하면서

믿음의 주요 온전케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이것이 날마다 무교절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