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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라일, 『거룩』 히12:14 출처
◑제3장 거룩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12:14)
▲1. 무엇이 참되고 실천적인 거룩인지,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거룩하다고 하는가?
1) 성경에 드러난 하나님의 생각을 마음에 품는 습성이 거룩이다.
하나님의 판단과 합치하는(그분이 미워하시는 것을 미워하고, 사랑하시는 것을 사랑하는) 습관이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의 잣대로 판단하는 성향이다.
하나님의 생각에 전적으로 부합한 사람이 가장 거룩한 사람이다.
2) 거룩한 사람은 죄로 드러난 모든 것을 피하고, 알려진 모든 계명을 지키려고 애쓴다.
그는 하나님을 향해 분명히 돌아선 사람이고, 온 마음으로 그분의 뜻을 행하고자 하며,
세상을 실망시키는 것보다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것을 더 두려워하고,
그분의 모든 길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한다고 말한 바울과 같은 것을 느끼는 사람이다(롬7:22).
“내가 범사에 모든 주의 법도들을 바르게 여기고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한다고 말한
다윗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시119:128).
3) 거룩한 사람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처럼 되고자 분투한다.
그분을 믿어 날마다 평강과 능력을 받아 누릴 뿐 아니라,
그분의 마음을 품고 “그분의 형상을 본받고”자 애쓰는 사람이다(롬8:29).
그리스도가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며 살려고 하며,
그리스도가 자기를 비워 스스로 낮아지신 것처럼, 마음을 낮은 곳에 두고 겸손하려고 한다.
성부의 뜻을 행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음료와 양식이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말도 안 되는 거짓 고소 앞에서도 그분은 온유하고 오래 참으셨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그리스도가 죄인을 향한 긍휼과 사랑이 충만하셨다는 것을 기억한다.
타협하지 않고 담대하게 죄를 거부하셨다는 것을 기억한다. 기도하기를 쉬지 않으셨다는 것을 기억한다.
4) 거룩한 사람은 온유함과 오래 참음과 양선과 인내와 친절한 성품을 추구하고 혀를 다스리려고 애쓴다.
시므이가 저주를 퍼부을 때 다윗이 보여주었던 태도가 좋은 예이다.
아론과 미리암의 비난 앞에 섰던 모세 역시 좋은 모범이다.
5) 거룩한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절제한다.
육신의 정욕을 죽이고, 애착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색욕을 억제하고,
정욕을 제한하기를 힘써서 언제든 그것들이 제멋대로 나대지 못하게 한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은 얼마나 적절한가?(눅21:34)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라는 사도 바울의 말은 또 어떤가!(고전9:27)
6) 거룩한 사람은 사랑과 형제 우애에 애쓴다.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말했으면 하는 대로 말하고,
대접받고 싶은 대로 다른 사람을 대접하는 황금률을 따라 살려고 노력한다.
바울은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고 말한다(롬13:8).
7) 거룩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자비와 박애의 정신으로 대하려고 애쓴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정도에서 만족하지 않고, 선을 베풀려고 한다.
8) 거룩한 사람은 순전한 마음을 추구한다.
자신의 마음은 조그만 불똥이 튀어도 금방 타오르는 부싯깃과 같음을 잘 알기 때문에,
유혹의 불꽃이 마음에 튀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한다.
9) 거룩한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한다.
그것은 노예근성에서 비롯된 두려움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버지를 사랑하기 때문에 항상 아버지 목전에 있는 것처럼 행하는 아들로서의 두려움을 말한다.
10) 거룩한 사람은 겸손하다. 마음을 낮은 데 두고 항상 다른 사람을 자기보다 더 낫게 여긴다.
다른 사람의 마음보다 자기 자신의 마음에서 더 많은 악을 발견한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말했던 바울의 마음에 공감한다.
11) 거룩한 사람은 삶의 모든 의무와 관계에 있어서 신실함을 추구한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골3:23).
좋은 남편과 좋은 아내, 좋은 부모와 좋은 자녀, 좋은 상사와 좋은 부하, 선한 이웃,
좋은 친구, 착한 국민, 그리고 사적으로든 공적으로든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 힘써야 하고,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올바르게 행동해야 한다.
이런 열매를 맺지 못하는 거룩이라면, 이는 정말 보잘 것 없는 것이다.
12) 거룩한 사람은 영적 사고방식을 갖기 위해 힘쓴다.
살아가면서 해야 하는 일들을 소홀히 하지는 않지만, 그 마음과 생각의 우선순위를 장차 오는 삶에 둔다.
하늘에 보화를 둔 사람처럼 살려고 하고, 본향을 향해 길을 나선 나그네와 이방인처럼 이 세상을 살아간다.
무슨 일이든, 어디에서든, 누구와 있든, 자신을 하나님께로 가까이 이끄는 것일수록 더욱더 소중히 여긴다.
이상이 “거룩하다” 일컫는 사람이 추구하는 성품이다.
그러나 아무리 거룩한 삶을 산다 해도, 남아 있는 죄의 가능성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거룩한 사람이 가장 비참하게 여기는 것은, 항상 “사망의 몸”과 함께 지내야 한다는 사실이다(롬7:24).
선한 일을 할 때도 그에게 “악이 함께 있”다(롬7:21). 옛 사람이 사사건건 그를 방해한다.
하지만 그는 남아 있는 죄와 타협하지 않는다. 이것이 거룩한 사람이 갖는 탁월함이다.
거룩한 사람에게서 드러나는 성화의 사역은 예루살렘 성벽과 같다.
“곤란한 동안에”도 성은 계속해서 중건되었듯이 말이다(단9:25).
성화는 점진적인 사역이다. 가장 밝게 빛나는 태양일지라도 표면에는 흑점이 있다.
가장 거룩한 사람도 성령의 저울에 달아 보면 많은 흠과 결점이 드러난다.
그들의 삶은 죄와 세상과 마귀와의 끊임없는 전쟁이다.
때로는 전쟁에서 이기지 못하고, 오히려 정복당할 때도 있다.
그러나 부족하게나마 거룩의 특징을 갖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이 중심으로 바라는 바요, 간절한 기도 제목이다.
저는 참된 거룩이야말로 위대한 실재라고 담대하고 확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거룩은 빛이다. 만약 거룩이 있다면, 그것은 스스로 자기를 드러낼 것이다.
거룩은 소금이다. 만약 거룩이 있다면, 그 맛이 느껴질 것이다.
거룩은 값비싼 향유이다. 만약 거룩이 있다면, 그 향기를 피해 숨을 수 없다.
신앙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도 때로는 뒤로 미끄러지고,
죽은 자와 같이 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나 불순물이 섞였다고 해서 금이 아닐 수는 없다. 희미하고 어둡다 해도 빛은 빛이다.
아직 어리고 연약한 은혜라고 해서 그것이 은혜가 아닐 수는 없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고의로 자신을 죄에 방임하면서 겸비하지 않고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을 “거룩하다”고 할 수는 없다.
“죄를 가장 무거운 짐, 슬픔, 어려움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참된 신자일 수 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다.”(오웬)
▲2. 실천적 거룩이 매우 중요한 몇 가지 이유
1) 우리가 거룩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분명히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5:20).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살전4:3).
알렉산더 레이턴은 “이점에서 복음과 율법이 일치한다”고 했다.
2) 우리가 거룩해야 하는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위대한 한 가지 이유와 목적이 거룩이기 때문이다.
그는 에베소 교회에,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은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신자가 택함을 받은 것은 “거룩하게” 되기 위해서이다.(엡1:4).
신자의 부르심 또한 “거룩한 부르심”이다(딤후1:9).
신자가 고난을 받는 이유도 “거룩하게 참여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히12:10).
3) 우리가 거룩해야 하는 이유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구원의 믿음을 가졌다는 유일하게 바른 증거가 거룩이기 때문이다.
야고보 사도는 죽은 믿음을 경고한다(약2:17). 참된 믿음은 거룩하게 한다.
사랑으로 역사하고, 세상을 이긴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이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다는 유일하고도 안전한 증거는 거룩한 삶이다.
4) 우리가 거룩해야 하는 이유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사랑하는 유일한 증거가 거룩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14:15).
예수님의 머리를 찌른 가시면류관은 우리 죄로 만든 것이다.
우리 주님의 손과 발과 옆구리를 찌른 것도 죄이다.
그분을 겟세마네와 갈보리 십자가로 데려가 무덤으로 이끌어 내린 것도 우리의 죄이다.
오른손을 잘라 버리고 오른 눈을 빼내어 버리기까지 죄를 미워하지 않는다면,
또 죄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우리 마음은 싸늘하게 식은 무정한 마음임에 틀림없다.
5) 우리가 거룩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참된 자녀된 유일하고 건전한 증거가 거룩이기 때문이다.
하늘 아버지를 닮지 않은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의 “자녀”라 말해 봐야 헛된 것이다.
삶으로 자신이 어느 가문 사람인지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6) 우리가 거룩해야 하는 이유는, 이것이야말로 다른 사람을 위하는 가장 좋은 길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항상 우리를 지켜보는 주변 사람에게 해를 주거나 유익이 되거나 둘 중 하나이다.
우리의 삶은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 무언의 설교이다.
7) 우리가 거룩해야 하는 이유는, 지금 누리는 위로가 거룩에 많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죄와 슬픔, 거룩과 행복, 성화와 위로 사이가 얼마나 긴밀한지 자주 잊어버린다.
선한 일에 무관심하고 거룩한 삶을 살려고 힘쓰지 않으면서,
자신의 칭의를 아주 생생하게 느끼고 부르심에 확신을 갖고 있다는 것은 부질없는 소리이다.
8) 우리가 거룩해야 하는 이유는, 이 땅에서 거룩하지 않으면 천국을 준비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죽음이 우리를 변화시키지 못한다.
각자가 숨을 거둘 때의 그 성품으로 다시 일어나게 된다.
지금 여기서 거룩에 대해 외인이라면, 우리가 머물 곳은 어디에도 없다.
그리스도를 죽게 한 죄와 짝하고, 그리스도의 원수들을 사랑하고,
그리스도의 친구들을 멸시한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기쁨으로 만나 뵐 수 있을까?
거룩하지 못한 사람에게 천국은 가장 불행한 장소가 될 것이 분명하다.
영광의 거룩한 날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은혜의 학교에서 받는 훈련을 통과해야 한다.
▲3. 적용
1) 여러분은 거룩한가? 아니면 거룩하지 않은가?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을 볼 수 없다”(히12:14)
이 말씀은 우리 마음을 살피고 우리의 삶을 되돌아 보게 한다.
지옥에 있는 저 가련한 영혼도 생각하는 정도는 다 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구원을 받으려면 세상과는 다른 사람, 곧 거룩한 나라요, 구별된 백성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구원받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하고 물을 수 있다.
주 예수께서는 1,800년전에 이미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셨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7:14).
구원받는 자가 적을 것이다. 구원을 얻기 위해 수고하는 자가 적기 때문이다.
다른 일에서와 마찬가지로, 신앙에 있어서도 고통이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제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사실은, 주님을 보기 원한다면 거룩해야 한다는 것이다.
천국에서 성도로 발견되고자 한다면, 이 땅에서도 성도여야 한다.
2) “거룩의 중요성에 대해 과연 얼마만큼 느끼고 있는가?”
이 주제를 대하는 이 시대의 성향이 염려된다.
주님의 백성이 이 주제에 걸맞는 생각과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사데 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도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하나님께서 칭의와 성화를 하나 되게 하셨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자주 잊는다.
여러분에게 성화의 표지가 없다면 여러분의 칭의에 대해 말하지 말라.
“그리스도인의 의무와 성화를 깎아 내리는 것은 은혜의 방편이 아니다.
믿음과 행함은 피로 맺어진 친구다.”(레드퍼드)
바울처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롬7:24)라고 말하려면,
더불어 “푯대를 향하여—달려가노라”(빌3:14)고 말할 수 있어야한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많은 신자들이 더 신령하고, 더 거룩하고, 더 단호하고,
하늘에 더 마음을 두고, 더 온전한 마음이 되기를 소원한다.
오늘날 더 높은 표준의 개인적 거룩이 필요하지 않은가? 인내와 열정은 다 어디 갔는가?
사랑과 믿음의 역사는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인가?
지난 시대에 도드라졌던 신앙의 능력은 어디 있는가?
그 옛날 세상을 뒤흔들고, 성도들을 세상과 구별하게 했던 분명한 품격은 어디로 갔는가?
우리의 포도주는 물 탄 포도주가 되었다. 우리의 소금은 짠맛을 거의 잃었다. 모두가 반쯤 잠들어 몽롱하다.
오웬은 말한다. “그리스도가 죽으셨는데 어찌 죄가 살아 있을 수 있으며,
그분이 이 세상에서 못 박히셨는데, 어찌 우리가 세상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세상에 대해 못 박히고,
세상은 그에 대해 못 박힌 사람의 영혼을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단 말인가!”
3) 거룩해지기를 열망하는 모든 사람에게 몇 가지 권면을 드린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시작하라. 자기 죄와 연약함을 절감하고
그리스도께 피하기까지 여러분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주님은 모든 거룩의 뿌리이며, 시작이다. 거룩해지는 유일한 길은
믿음으로 그분께 나와 그분과 합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에게 지혜와 의로움이 되실 뿐 아니라, 성화도 되신다.
그 누구라도 바울이 놓은 “거룩”의 기초인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다.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지혜는 정죄받을 어리석음이다.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의로움은 죄책과 정죄다.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성화는 죄와 더러움이다.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구속은 속박과 예속일 뿐이다.”(트레일)
계속 거룩한 사람으로 남고 싶은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라.
그리스도를 모든 충만으로 충만하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기쁨이다.
그리스도에게 있는 충만은 성도의 모든 필요를 채우고도 남는다.
그분은 위대한 의사이다. 한결같이 온전하기를 바란다면, 날마다 한결같이 그분께 나아가야 한다.
그분은 여러분이 매일 먹을 만나이며, 매일 마셔야 할 샘물이 나는 반석이다.
광야 같은 이 세상을 이기고 다 지나가기 위해 날마다 붙들고 기대야 할 강한 팔이다.
바울은 참으로 하나님의 사람- 거룩한 사람, 열매를 풍성히 맺는 성숙한 그리스도인- 이었다.
비결이 무엇인가? 그리스도가 그의 “모든 것의 모든 것”이었다(엡1:23).
여러분이 바울이 고백한 이런 일을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체득하여 알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우리가 느꼈던 것보다 더 절실하게 거룩의 중요성을 절감하기 바란다!
우리의 남은 해가 우리의 영혼과 더불어 거룩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그분이 다시 오실 때, 우리 모두가 흠과 점이 없는 평화 가운데 발견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