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제9장 롯, 우리를 일깨우는 경고 창19:16 스크랩
“롯이 지체하매(꾸물거리자)”(창19:16).
▲1 롯은 누구인가?
롯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조카이다. 롯은 참된 신자였고, 회심한 사람이었고,
진짜 하나님의 자녀였고, 의롭다 함을 받은 영혼이었고, 의로운 사람이었다(벧후2:7-8).
주변에 횡행하는 “불법의 행실로 그 심령이 상했다”(벧후2:8)
많은 흠과 결점과 연약함이 있지만,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다.
▲2 본문은 롯의 행동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롯이 꾸물거리자” - 급히 서둘러야 할 때 그는 오히려 더뎠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 뒷걸음질 쳤다. 촌각을 다투는 순간에 오히려 시간을 허비했다.
서둘러야 할 때 늑장을 부렸다. 열심을 내야 할 때 무덤덤했다. 너무나 기이한 일이다!
더 두려운 사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백성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롯과 같은 태도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분명히 하나님의 자녀이고 아는 것도 많은데, 그대로 살지 않고, 실천은 적고,
수년 동안 답보 상태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많다. 더 이상 자라지 않는 것이 정말 신기하다!
이들은 머리 되신 그리스도를 붙들고, 진리를 사랑한다. 좋은 설교 듣기를 좋아하고,
설교 중간 중간에 드러나는 복음 교리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만족스럽지 못한 무엇인가가 있다.
목회자와 자신들보다 더 성숙한 그리스도인 친구들의 기대를 무너뜨리는 일을 계속한다.
천국을 믿지만 갈망하지는 않는다. 지옥도 믿지만 무서워하지 않는다.
주 예수님을 사랑한다고는 하지만 그분을 위해 하는 일은 아주 미미하다.
마귀를 미워하지만 마귀를 불러들이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싸워야 할 싸움이 있다는 것도 알지만 이미 전쟁을 마친 사람처럼 행동한다.
알만큼 아는 사람이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정말 놀랍다!
희생하는 것을 무서워하고, 자기를 부인하기를 꺼린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오른 눈을 빼어내 버리라--”는 예수님의 명령은 도무지 따르지 못할 것 같다.
이런 사람은 항상 세상과 보조를 맞추려고 한다.
세상으로부터 결연히 돌아서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찾고,
미심쩍은 오락거리나 세상과 관계를 지속할 그럴듯한 변명과 명분을 만들어 내는 데 아주 교묘하다.
나름대로 명분을 갖고 세속적인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정당화 하려고 애쓴다.
이런 사람은 게으름, 나태함, 못된 성질, 자만심, 이기심, 조급함 등
자기를 괴롭히는 죄악들과 거의 싸우지 않는다.
이런 죄악들이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마음속에 자리하도록 내버려 둔다. 이들은 모두 롯의 형제자매이다.
▲3 롯이 머뭇거린 이유는 무엇인가?
1) 그가 젊었을 때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롯은 믿음으로 선택하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 선택했다.
영원에 속한 것을 바라보지 않고, 잠시 지나가는 것만 고려했다.
단지 비록하고 “물이 넉넉한” 것이 그 이유였다(창13:10). 그곳은 소돔과 가까웠다.
그는 이 사실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 자신이 얻을 이득만 생각했지, 영혼의 유익은 고려하지 않았다.
2) 롯은 죄인들과 함께 뒤섞일 특별한 이유가 없음에도 그렇게 했다.
성경이 금하는 잘못된 선택을 하고 불필요하게 세상적인 사람 사이에 자리 잡는 것처럼
자신의 경건을 해치고 영원에 대한 관심에 해로운 것도 없다.
그렇게 할 때, 여러분 영혼의 박동은 약해지고 무기력해진다. 죄에 대한 느낌도 무디고 둔해진다.
영적으로 분별하는 눈도 침침해져서 급기야 선악을 구분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손과 발 마디마디에는 영적인 마비가 찾아와, 시온으로 가는 길에 메뚜기조차 버거운 짐이 되어
절룩거리며 걷는다. 이 일은 자신의 가장 악랄한 원수에게 통행권을 팔아넘기는 것이다.
삼손 같이, 자신의 머리털을 잘라 블레셋 사람에게 스스로를 내어 주고,
두 눈이 뽑히고, 연자방아를 돌리는 노예로 전락하는 행위이다.
- “꾸물거리지” 않기를 바란다면, 세상적인 사람과의 불필요한 사귐을 조심하시라.
롯과 같은 선택을 할까 조심하시라. 자기 영혼이 생기 없고, 나른하고, 졸립고, 게으르고,
나태하고, 무익하고, 굼뜨고, 육적이고, 어리석고, 둔한 상태에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면,
롯과 같은 선택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1)집이나 거처를 잡을 때 이 사실을 잘 기억하라. 몸뿐 아니라 영혼도 편한지 고려해야 한다.
복음을 설교하는 곳이 가까이에 있는가? 영혼을 돌봐 줄 참된 하나님의 사람이 가까이 살고 있는가?
생명을 사랑한다면, 이런 것을 무시하지 말라.
2)직업을 선택할 때 이것을 기억하라. 급여가 높고, 일이 수월하고, 이점이 많고, 전망이 밝다고 다가 아니다.
영혼을 먹일지 아니면 굶주리게 할지, 영혼이 번성할지 아니면 퇴보할지,
금을 너무 비싸게 주고 살 수도 있다. 롯과 같은 선택을 할까 조심하라.
3) 아직 결혼 전이라면, 남편이나 아내를 선택할 때 이를 기억하라.
보기에 좋고, 취향에 맞고, 비슷한 점이 많고, 애교 넘치고, 호감이 가고,
편안히 살 집을 가졌다고 다가 아니다.
여러분이 꿈꾸는 결혼이 하늘의 것을 추구하는 데 도움이 될지 아니면 이 땅의 것을 추구하게 될지,
그리스도께로 더 가까이 이끌리게 될지 아니면 세상으로 더 나아가게 될지,
가족의 신앙이 더 왕성하게 자라갈지 아니면 더 퇴보하게 될지,
영광을 향한 간절한 소망을 따라 이 모든 것들을 고려할 수 있기를 바란다.
백스터가 말했듯이, 결혼하기 전에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십시오.”
어디에서도 결혼을 통해 회심하게 될 것이라고 하지 않는다.
영혼이 궁핍하고 주리게 된다면, 지갑이 두둑해진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안식일을 팔아 좋은 거처를 장만하지 말라! 죽 한 그릇을 위해 장자의 자리를 팽개친 에서를 기억하라.
롯과 같은 선택을 할까 조심하라! 아무리 머뭇거리더라도 참된 신자는 결코 쫒겨나지 않는다.
하지만 꾸물거리는 자의 신앙이 번성하기를 기대할 수 없다. 은혜는 부드럽고 예민한 식물이다.
소중히 품고 가꾸지 않으면, 이 악한 세상에서 곧 병들고 만다.
아무리 빛나는 황금이라도 습기에 계속 노출되면 그 빛이 바래지기 마련이다.
가장 뜨거운 쇠도 금방 차가워진다. 쇠를 벌겋게 달아오르게 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냥 내버려 두거나 찬물을 약간만 뿌려도 새까맣고 딱딱하게 되어 버린다.
▲4 롯의 우유부단함이 초래한 결과는 무엇인가?
저는 항상 탁월한 거룩과 영적인 유익은 긴밀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행복과 “온전히 주님을 따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머뭇거리는 신자라면,
하나님께 잘 쓰임받고 그리스도를 닮은 성도가 되리라는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믿음을 통해 누리는 큰 위로와 평화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1) 멸망해가는 소돔 사람들에게 롯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롯의 식구 외에는 소돔 사람들 가운데 단 한사람도 의인으로 발견되지 않았다.
심지어 집안의 종들 가운데서도 한사람도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미적거리는 영혼은 세상에서도 유익이 되지 못하며 하나님께도 영광을 돌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2) 롯은 자기 가족이나 친지, 관계된 사람들이 천국에 갈 수 있도록 돕지 않았다.
사위들도 소돔에 닥친 심판을 경고하자 농담으로 여겼다.(창 9:14)
롯의 처도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고,
두 딸도 아비를 유혹하여 아비로 하여금 악독한 죄를 짓게 만들었다.
머뭇거리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가족들로부터 무시를 당한다.
머뭇거리는 신앙을 가진 부모가 경건한 자녀를 두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아이의 눈은 귀로 듣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보고 받아들인다.
아이는 항상 여러분의 말보다 행동에서 더 많은 것을 본다.
3) 롯은 죽을 때 아무 증거도 남기지 못했다.
롯이 산에서 도망하지 못한다고 소알에 살게 해달라고 호소하는 것이나
소알에서 떠난 후에 굴에서 보여준 행실은,
그가 얼마나 은혜 안에 거하지 못했고 그 영혼이 얼마나 하나님과 떨어져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 후에 그는 성경에서 사라진다. 비참한 말년을 보냈을 것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과 다윗의 임종은 들어서 알지만,
유독 롯의 임종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듣지 못한다.
롯의 임종은 정말 암담했던 것이 분명하다! 머뭇거리는 신자는
일반적으로 자기가 뿌린 대로 거둔다. 구원을 받기는 하겠지만, 마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다(고전3:15).
- 물론 “꾸물거리지” 않는 신자라고 해서 항상 세상이 주목하는 것은 아니다.
노아는 120년동안 복음을 선포했지만, 아무도 그를 믿지 않았다.
예수님은 심지어 자기 백성으로부터도 높임을 받지 못했다.
“꾸물거리지” 않는 신자라고 해서 가족과 친지가 다 회심하는 것은 아니다.
다윗은 자녀가 많았지만, 그중 대다수는 경건하지 못했다.
하지만 롯의 악한 선택, 가족이나 세상에 유익이 되지 못한 것과
머뭇거리는 신앙 사이에는 연관이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것이 롯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며 우리에게 경계를 하도록 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여러분은 롯처럼 머뭇거리는 신앙이 만연한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신자라 고백하고, 많은 부분에 있어서 훨씬 더 경박해졌다.
특정한 형태의 기독교가 유행처럼 번져가고 있다. 교회의 특정한 파벌에 속해서
그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만 열심이다.
대중적인 신앙서적은 서점에 나오기가 무섭게 책상에 꽂힌다.
모임마다 참석하고, 회원으로 가입하고, 설교자에 대해 토론도 하고,
선풍적으로 유행하는 새로운 프로그램에 흥분하고 열광적으로 참여한다.
하지만 이런 일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고, 은혜 없이도 누구나 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이 기독교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교회에 만연해 있다.
반면, 하나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는 삶은 여전히 현저하게 드문 일로 남아 있다!
- 참된 영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순례자와 나그네처럼 세상을 살아가고,
시간 사용과 대화와 오락과 옷차림과 누리는 기쁨에 있어서 세상과 구별되고,
어느 곳에 있든지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증거하고, 누구와 있든지 우리 주님의 향기를 발하고,
항상 좋은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자기보다 더 낫게 여기고, 겸손히 기도하고,
잠잠하며, 사랑하고, 인내하고, 온유하고, 죄짓는 것은 어떤 행태든지 무서워하고,
세상에 사는 동안 겪게 될 위험한 일에 대해 항상 깨어 있는 것과 같은 삶 - 은
참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사람 사이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설상가상으로 이런 삶을 살지 못한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이에 대해 가슴 아파하지도 않는다.
베드로 사도는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할 것을 부탁한다(벧후1:10).
게으르지도 말고, 부주의하지도 말라. 작은 은혜에 안주하지도 말고,
세상보다 약간 낫다고 만족하지도 말라.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은 바라지도 말라.
그리스도를 섬기면서 동시에 세상과 보조를 맞추어 보려고 하지도 말라.
천국에 대한 소망과 영광을 향한 갈망으로 행복하고 싶은가? 쓰임 받고 싶은가?
그렇다면 꾸물거리지 말라.
그리스도 재림의 때에 준비된 자로 드러나고 싶은가?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밝히고 담대하게 그리스도를 만나고 싶은가?
그렇다면 꾸물거리지 말라! 신앙을 통해서 섬세한 위로를 누리고 싶은가?
성령의 증거를 느끼고 싶은가? 어둡고, 불평 많고, 침울하고, 신경질적이고,
우울한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가? 그렇다면 꾸물거리지 말라!
병중에도, 그리고 임종 시에도 자신의 구원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누리고 싶은가?
믿음의 눈으로 하늘이 열리고, 그리스도가 여러분을 맞으러 일어나시는 것을 보고 싶은가?
여러분이 떠난 후에 분명한 증거를 남기고 싶은가?
우리가 위로 넘치는 소망 가운데 여러분을 무덤에 안치하고,
여러분의 상태에 대해 의심 없이 이야기하기를 바라는가? 그렇다면 꾸물거리지 말라!
사는 동안 유익한 사람이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꾸물거리지 말라!
우리 중 단 한 명도 머뭇거리는 자가 없었으면 좋겠다! 시간은 머뭇거림이 없다.
죽음도 마찬가지이다. 심판도, 마귀도, 세상도 그렇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도 머뭇거리지 말아야 한다.
여러분이 머뭇거리는 자라면, 즉시 그리스도께로 가서 고침을 받아야 한다.
어떤 일은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방법이다. 즉시 고침을 받으라!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라.
의원이신 그 분은 바로 거룩한 일을 시작하실 것이다. “오직 네 죄를 자복하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내가 너희의 배역함을 고치리라”(렘3:13,22).
또한 자신의 영혼뿐만 아니라 형제 자매가 꾸물거리는 것을 보거든 그들도 깨워야 한다.(히 3:13, 10, 24)
“형제여, 자매여, 롯을 잊었는가? 깨어라! 롯을 기억하라! 깨어,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