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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을 분노케 한 설교 - 자신을 점검하십시오 P1 P2 / 폴 워셔

LNCK 2019. 9. 6. 17:04

www.youtube.com/watch?v=VV8vXf3mmKg

www.youtube.com/watch?v=u-nFf5bZR1Y

◈많은 이들을 분노케 한 설교 - 자신을 점검하십시오     고후13:5     출처

 

 

제가 오늘 밤에 할 설교는

정말 많고도 많은 교인들을

분노하게 한 설교입니다.

 

많은 나이 드신 분들과

그리고 젊은이들을 분노하했죠.

 

제가 이 설교를 전했을 때

많은 젊은이들이 분노했지만

이 설교를 듣고

가장 무섭게 화를 낸 사람들은

그 젊은이들의 부모였습니다.

 

제가 어떤 부모님들에게서

놀라운 부분을 발견했는데

 

만약에 자녀들이 부모님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로

고백하기만 한다면

부모님들은 그것을 붙잡는 듯하고

그 부모님들은 확신과 기쁨을 얻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서

자녀들의 믿음을 의심하기라도 하면

부모님들은 불쾌해하더군요

 

그것은 마치 우리가

진실을 듣기를 원하기보다는

거짓 희망을 붙잡으려는 하는 것 같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이유는

진리를 들으면 천국을 갈수 있을 거라는

거짓된 희망이 흔들리기 때문이고

그런 사람들은 실제로

천국에 갈 수도 없습니다.

 

정말 많은 기독교인들이

특히 미국에 있는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고 있고

구원받았다고 믿는데

그 이유는 설교자들이 그들에게

그들에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저는 그 구원뱓은 사실을

어떻게 아냐고 묻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믿음으로"라고 말하죠.

 

그런데 아무도 두번째 질문을 하지 않더군요.

"어떻게 당신이 믿는다는 것을 알죠?"

 

만약 오늘 밤 여기서 모임을 파하고

모든 사람들을 보내서

이 도시 전역에 찾아가게 된다면

 

우리는 이 도시에 거주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믿는다고 하는 것을 듣게 될 겁니다.

아시겠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죠.

 

오늘 밤 술집이나 마약 거래상을 가거나

전 세계에 있는 카지노에 찾아가 얘기해보면

많은 사람들이 믿는다고 말할 겁니다.

 

그런데 중요한 질문은

우리가 믿는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하냐는 것이죠,

 

많은 사람들이 믿는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요?

 

여기 미국에서 기독교는

2 가지 교리가 있는데

우리는 그 2 가지를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정말 중요한

2 가지 교리가 있는데

 

첫 번째 교리는 이름하여

저는 이 명칭을 좋아하지 않지만

오늘 밤에는 쓰도록 하죠.

 

그건 신자의 안전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로 믿는 사람은

거듭났고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이

그들의 구원을 지키시는 것이죠.

 

신자의 안전

그런데 우리가 잘 듣지 못하는

다른 한 교리가 더 있습니다.

 

신자의 안전이라는 교리뿐 아니라

확신의 교리라는 것이 있습니다.

 

모든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 아래 보호를 받습니다.

이것이 안전의 교리입니다.

 

그런데 확신의 교리는

어떻게 우리가 참 신자라는 것을

확신하느냐에 관한 것이죠.

 

우리가 참 신자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어떤 사람은 제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저는 그냥 아는데요?"

 

그러면 저는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또 이렇게 말하더군요.

" 저는 제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제 구원을 확신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의

마음이 거짓되고 악하다고 합니다.

사람의 마음의 악함은

우리가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마음을

신뢰할 수 있으십니까?

이 약해지기 쉬운 방법을

의지할 수 있으십니까?

 

어떠 사람은 또 이렇게 말하더군요

"저는 제가 구원받았다는 걸 압니다.

저의 목사님이 그렇게 말했거든요"

 

언제부터 사람에게

그와 같은 권위가 있었나요?

그런데 모든 답변 중 최악은 이것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구원받은 것을 압니다.

저는 하나님과 동행하곤 했기 때문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구원에 대해서

어떠한 확신도 가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동행한다면 구원받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멈춘다면

구원을 잃어버렸다고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제 말의 요점은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사실은

단순히 한 번 회개했기 때문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회개를 계속 하는 것으로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한번 믿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믿고 있기 때문인 거죠.

 

그리고 단순히 과거에

하나님과 동행한 것 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계속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기에 알 수 있는 것이죠.

 

왜냐하면 선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은

그 일을 끝마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135절에 보면

바울이 한 교회에 갔을 때

그들 중에 많은 사람이 육신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교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았죠,

 

"당신이 마지막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한다고 한 적이 언제입니까?

바울은 이런 중생의 경험에 관해 묻지도 않고

그는 직접 현재형으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만약에 제가 어떤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 사람은 지난 3-4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해 온 것처럼 보이고

성도들을 사랑하고

기도하기를 애쓰고 말씀을 사모하고

다른 신지들과 모이는 등

여러 가지 일을 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들은 점점 하나님과 멀어지고

믿음을 떠나기 시작합니다.

세상과 죄를 용납하기 시작하고

다른 악한 것들도 받아들입니다.

 

또 악인들과교제하는 것을 즐기기 시작하죠.

저는 그들에게

"당신은 기독교인이시잖아요.

뒤로 물러나서는 안 됩니다"

라고 하지 않습니다.

 

저는 가서

"당신은 신앙을 고백했었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당신이 신자라고 선언했으나

지금 당신은 불신자들과 똑같이

살고 있군요.

 

당신이 지금 이 순간까지

하나님을 전혀 몰랐던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지금 까지의 모든 가식들은

굉장히 육신적인 일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하나님의 일이

지속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바울의 말 뜻은 무엇입니까?

"네 자신을 시험하라"

자신을 시험하십시오,

시험을 치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제가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천국과 지옥

영원과 죽음

이러한 것들이 여러분에게

실감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에게는 정말 실제적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은행 계좌의

넉넉한 돈이 들어있다거나

자존감이 높다거나

하는 것을 신경쓰지 않습니다.

 

만약에 오늘 단 한 가지

오늘 단 한 가지 저에게서

잠을 앗아가는 것은

 

여러분 중 많은 분들이 죽어서

지옥에 갈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을 시험하십시오.

이것은 그저 미신 같은 것도 아니고

하루 정도 걱정하고 끝날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영원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의 영혼은 평안하십니까?

 

만약 당신이 자신을 성경에 비추어

자신이 시험해 본다면

당신은 완전하십니까?

거듭나셨나요?

 

하나님의 능력 아래 보호를 받으시나요?

이제 시험해 볼 시간입니다.

 

그리고 더이상 감정에 의존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말을 의존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당신을 자칭 기독교인들과

비교하는 것을 멈추십시오,

 

왜냐하면 이 미국에

대부분의 자칭 기독교인들은

사실은 구원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남부 침례 집회에서

몇몇 지도자들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우리가 만약 성경 말씀을 제대로 적용한다면

감히 말하건대

등록 교인 중 10-15%

안 되는 사람들만이

구원받았을 것이라고요.

 

그리고 이게 남부 침례회에만

적용된다고 여기지 마십시오.

이건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적용됩니다.

 

바울이 말합니다. "자신을 시험하십시오"

"자신을 검증하십시오,"

그저 가볍게 검사하지 마십시오

설교자들이 하는 말만 듣지 마십시오,

 

그리고 사탄이 당신의 마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빼앗게 놔두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여기 계신 동안

그리스도가 함께 하시는 동안

그리고 말씀이 선포되는 동안

자신을 검증하십시오.

 

이것은 치명적인 것입니다.

죄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죠.

죄는 문 앞에 도달해서

당신을 지지하길 원하죠.

 

여러분이 여기 계신 동안

그리고 그리스도가 함께 계시는 동안

자신을 검증하십시오.

 

제가 남아프리카에 갔을 때

제가 안데스산맥을 등반할 때면

작은 다리를 건너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 다리는 밑이 보이지도 않는

협곡 위에 자리 잡고 있죠.

밧줄을 점검하고

나무 바닥을 점검합니다.

이 다리가 안전한가?

철저히 검증합니다. 왜죠?

 

여러분이 만약 다리 중간을 가는 도중

다리가 부러지면 끝장이기 때문이죠.

 

어떤 면에서 구원은

여러분이 붙잡고

의지하는 구원은

말총 horse's hair 과도 같습니다.

 

여러분이 영생의 문으로 들어가려 할 때

여러분이 의지하는 것이 다름아닌

말총과도 같은 것이라면

지옥불이 타오르는 동시에

여러분이 의지하는 것이 타버리고

추락하게 될 겁니다.

 

자신을 검증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진실된 기독교인에 대해서

뭐라고 말씀하는지 들으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의 빛 아래에서

당신을 검증하세요,

만약 여러분이 그 시험에서 불합격한다면

회개하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당신을 하나님의 자비하심 아래 굴복시키세요.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질 때 까지 부르짖으세요.

 

이 말씀은 다른 주제인데요, 그렇죠?

이 주제로 다른 설교를 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마치기까지

이 미국의 어리석은 기독교를 보십시오.

 

"제가 하는 말을 따라 하십시오.

그게 아니라 여러분은

하나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분의 일을 마치기까지

부르짖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참된 그분의 힘, 완성된 그분의 힘,

완전한 그분의 힘,

 

그러면 저희가 어떻게 시험할 수 있나요?

우리의 삶을 어떻게 시험할까요?

오늘 밤 어떻게 자신을 시험하죠.

 

여러분이 참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먼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봐야 합니다.

요한일서 5장을 보십시오,

요한은 그 복음서에서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요한복음 2031절에 그는

복음서를 쓴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리스도시라는 것을

사람들이 믿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영생에 이르도록 하게 하는 것이죠.

 

그러면 그가 요한 서신을 쓴 이유는요?

요한일서 513절을 보십시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이들에게

이 사신을 쓴 이유는 이렇습니다.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합이라"

 

여러분이 중생했는지 궁금하십니까?

그렇다면 요한일서를 읽으십시오.

 

왜냐하면 요한일서에는

여러가지 시험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늘 저녁 저희는 시험을 볼겁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들을 귀를 주시길 기도합니다.

 

한 가지 말씀드릴까요?

정말 잘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마음의 소리를 듣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기울이세요.

 

여러분의 아버지가 여러분의 구원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듣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어머니가 여러분의 구원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듣지 마십시오.

 

"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은밀한 사생활과

비교해 보십시오.

 

제가 이 말을 하는 이유가 뭘까요?

여러분과 같은 청년들에겐

거짓에 현혹된 부모님들이 많이 계신데

정말 믿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겉보기에는

부모님의 말씀을 잘 따르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그 말씀은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없습니다.

 

그리고 혼자 있는 동안은

여러분은 진짜 자신의 모습을 알지요,

 

그리고 여러분 중 어린 아이가 아닌 분들

어른들, 십대의 후반이신 분들

여러분들이 세상에서 살 때

그 세상에 있을 때

여러분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봅니다.

 

여러분의 부모님들은 모릅니다.

여러분 중에 성인이신 분들

교회 성도들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혼자 있을 때의 모습

그 모습을 오늘 밤

하나님의 말씀과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계신 동안의 예쁜 모습이 아닌

이 공간에 있는 모습을 말고,

왜냐하면 여기서는 종교적인

가면을 쓸 수 있으니까요!

 

여기 계신 모습이 아니라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의

자신의 모습을 생각해 보시고

 

오늘밤 하나님의 말씀과 비교해 보시고

그 말씀 앞에서 자신이 올바른지 보십시오,

"꼭 해보시기 바랍니다."

 

"폴 목사님,

오늘 말씀이 좀 심하신데요?"

라고 물으실 수 있습니다.

아니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에 여기 천천히 움직이시는 기차가

움직이고 있는데

만약 제 어린 아들이

그 기차 앞에 서있는 걸본다면

 

여러분 제가 그 아이에게

귓속말로

"아들아 피하거라"라고 하길 원하나요?

 

여러분은 제가 아무런 동요 없이

그저 작은 손짓으로

그 아이를 말리길 원하나요?

 

아니면 제가 크게

"안돼!!!"라고 소리쳐야 하나요"

 

그러면 여기에서 제가 이 말씀을

어떤 태도로 설교해야 할까요?

 

여러분의 은밀한 생활을 생각하시고

하나님의 말씀과 비교해 보십시오.

 

요한일서 15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모든 요한의 기록에서 처럼

바로 설명하지 않고

나중에 설명을 하죠.

 

여러분이 이 구절을 계속 읽어나가시면

요한이 두 가지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실 겁니다.

 

가장 먼저 우리가

빛에 대하여 이야기 할 때

요한복음 3장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는 거룩함과

의로움에 대해 말하는 것이죠.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죄가 없으시고

실수도 없으시고 그림자도 없으십니다.

아주 부도덕함도 없으시죠,

하나님은 시험받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 속에는 아직

악의 속성이 남아있기 때문이죠.

 

하나님은 악이 없으십니다.

악이 하나님께 명령을 할 수 없죠.

하나님은 악을 거부하시고 경멸하십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그렇지만 이 사실은

여기서 요한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요한은 여기서 거짓 선생들의

집단들에 대해언급하고 있는데

그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아주 어두우시고 그림자 같으며

숨어 계신 분이라고 말하죠.

그리고 하나님이 내밀한 분이라고 설파합니다.

 

하나님은 감추어져 있으시고 어두우셔서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알려져 있다고 말이죠.

 

그래서 제가 믿기로 요한은

그러한 거짓 선지자들을 대립하며

이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주의 깊게 들어보십시오,

요한이 하는 말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이 말의 뜻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분이 어떤 분인지

그리고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

계시하셨다는 말입니다.

아주 명백하게말이죠.

 

그러면 제가 여기서 이 사실이

미국의 모든 것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만약에 대중매체가 이것을 믿는다면요.

미국인들은 어떤 종류의 신을 믿습니까?

미국 정치인들이 믿는 신은 어떻습니까?

 

그 신에게 여러분들이 기도할 수는 있으나

그 신을 정의 내릴 수는 없죠,

사람들은 정치적인 연설에서

그 신에 관하여 말하지만

그 신의 뜻이 무엇인지는 말할 수 없죠,

 

그런 신은 참 편리하네요. 왜냐고요?

여러분들은 그런 신 앞에

어떠한 책임도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그가 누군지 모르고

그가 무엇을 원하는 지도 알 수 없죠.

그래서 여러분들은 육신적이고

악한 마음이 원하는 대로 따릅니다.

 

그러한 신은 정말 편리하죠,

그리고 그러한 신이 바로

일부 자칭 기독교인들이 믿는 신입니다.

 

요한은 여기서 그것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정확하게

그분이 어떤 분인지 정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아주 명백하게

그분이 요구하는 것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숨겨진 분이 아닙니다.

 

이 사실을 숙지하시고

다음 구절을 보시겠습니다.

 

                  

▲1.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이 말뜻은 무엇입니까?

 

"만약에 우리가 구원받았다면"

이라는 뜻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분을 안다고 하면

만약 우리가 그분 안에 거한다면 말이죠,

 

미국에서는 오랜 기간 동안

어떤 신학교에서 한 가르침을

전파해 왔었는데

우리는 그 가르침대로

가르침을 받아왔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말씀이 말하는 것이

기독교인 중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과

기독교인 중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는

사람의 차이를 말한다고 알고 있죠,

 

사람들은 이 성경 구절을 대할 때

"만약 우리가 그분을 안다고 하면

만약 우리가 그분을 안다고 하면서

아직 어둠 속에서 행한다면

우리는 혼란스러운 기독교인 입니다."  요일1:6

라고 받아들이죠.

 

그렇지만 이 구절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이 구절이 말하는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그분과 동행한다고 하면서

아직 어두움에 거한다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진리를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

어둠 속에 거한다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여러분의 마음 속에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풀 목사님, 목사님은 제 마음을 모르시죠."

"전 제가 구원받았다는 걸 안다니까요?"

그러나 저는 여러분의 마음에

관심을 갖지 못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요한이 말하는

요점은 그게 아니니까요.

그 뜻은 이렇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한다고 하면..."

 

이 말은 우리가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

우리가 아직 어두움에 거한다면

우리는 거짓말쟁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어두움 속에서

행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가장 먼저 우리는

어두움이 무엇인지 알아야겠죠.

어두움은 빛의 반대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

아직도 행한다면

여기서 행한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페리파데오. 돌아다닌다는 뜻입니다.

삶의 방식을 말합니다.

 

만약 우리가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

우리의 삶의 방식이

하나님의 말씀 및 그분에 관련된 것들과

대치된다고 하면

또 하나님의 뜻과 맞지 않는다고 하면

우리는 거짓말쟁이입니다.

 

이것이 이 구절이 의미이고

이 구절이 말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종소리와 같이 명쾌하죠.

 

제발 제 말을 들으십시오, 여러분

다시 설명드리겠습니다. 다시 보십시오.

 

6절에 보면

"우리가 그분과 동행한다고 하면서..."

 

우리가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

어떻게 행하나요.

 

우리의 삶이 어두움을 따르는 방식이고

우리의 삶의 방식이 하나님의 속성과 본질에

대치가 된다면 .. 이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삶에 방식이

하나님의 속성을 전혀 반영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우리의 삶의 방식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분의 방식과 전혀 다르다면

우리가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들을 귀가 있으신가요.

여러분은 반드시 깨달아야 합니다.

    

////////////////////////////////////  P2  ////////////////////////////////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하는 행동들을

여러분들은 보실 수 있죠.

 

마치 사람들 머리 

안개가 잔뜩 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종교는 정말 위험한 것입니다.

 

정말 많은 미숙한 어린 청년들이

만약 여러분이 기도문만 따라 하면

천국에 간다고 설교하고 있죠.

 

그리고 그들이 한 사람에게

이렇게 말해주는 그 순간

그 사람의 머리 위에는

안개가 따라붙는 겁니다.

 

그러나 지금은 안개가 걷어버릴 시간입니다.

더 깊고 더 위대한 빛으로요.

그 빛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제 말을 들으세요.

요한이 말하기를 당신이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말하면서

 

여러분의 삶의 방식이

그리고 여러분 자체가

하나님의 특성을 반영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여러분의 행동이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고

항상 그러하다면, 요한은 말합니다.

당신이 기독교인이라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2. 그러면 다음으로 넘어갑시다.

여기 다음 시험이 나옵니다.

 

             

요일1:8"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여기서 요한이 말하는 것은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하면

우리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진리가 우리 안에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사를 통틀어서 보면

기독교의 여러 계통 중

극단주의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죄가 없는 완벽주의를 믿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성경은 아무리 성숙하고

가장 경건한 기독교인이라도

죄에는 약하다고 가르칩니다.

 

이 가르침의 뜻은 이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진정으로 중생했다고 하면

그 사람이 진정 하나님의 자녀라면

그 사실에 대한 가장 중대한 증거는

그 사람이 자신의 삶 속에서

죄에 대한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자주 회개하고

죄를 고백할 것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목사님들이

제가 이 말씀를 전할 때 미소를 짓죠.

왜냐하면 목사님들은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시니까요.

 

제가 교회에서 말씀을 전할 때

하나님께서 일을 하시면

그리고 그 일이 죄에 관련된 것이라면

 

제가 발견한 놀라운 사실은

이 미국 교회들에서

사람들이 말씀 앞에 굴복하는데

일부는 앞으로 나와서 기도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가장 경건하고

가장 충성된 영적인 사람들이

앞으로 나와 자신의 죄에 대해

애통해 하는 것이죠.

 

그리고 가장 육신적이고

불경건하고 증오심 많고 짓궂고

악한 교인들은 마치 그들이 완벽한 사람인 양

얼음장 처럼 차갑게

저 뒤에 앉아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회중 안에서 불신자와 신자의

차이점을 듣고계신 것입니다.

 

진정한 기독교인은 죄에 민감합니다.

죄에 민감하고

또 민감합니다.

 

제가 질문 하나 드리죠.

여러분이 마지막으로 자신의 죄에 대해

애통해 적은 언제입니까?

정말 무서운 일입니다.

 

여러분이 마지막으로 자신의 죄 때문에

무너진 적은 언제입니까?

정말 무서운 일이라고요,

 

여러분 중에는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이해가 안 되는 분도 계시겠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대한

그분의 질투하는 사랑을 말씀하셨습니다.

교회에 대해서는

그 사랑이 더 크지 않을까요?

하나님께서 당신을 지키십니까?

 

제가 신학교를 다닐 때

저는 책을 정말 사랑했었습니다.

제가 신학교에 있는 서점에

친구와 함께 책을 사러 갔죠.

 

그런데 사려는 책이 2 권밖에 없었습니다.

2 권이 있었고, 저와 친구 2이었죠.

그래서 처음 책을 집어 들고

들떠서 책을 살펴보았는데

페이지 한 장이 조금 찢어져 있었습니다.

 

저는 얼른 그 책을 친구 것과 바꿨죠,

그 책을 친구에게 주고

저는 다른 책을 꺼냈습니다.

계산대에 가서 책을 사고

집으로 갑니다.

 

그때 제가 느낀 감정은 마치

제가 한 사람을 살인한 것 같았습니다.

살인을 한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저는 기도를 하고

친구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나 할 말이 있어"

"무슨 일인데? 전화로 말해"

"아냐 전화로는 안되고 얼굴 좀 보자"

 

그리고 저는 그에게 가서

눈물로 용서를 구합니다.

왜요, 제가 경건해서요?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을 지키니까요.

전 다른 신자들을 보고 놀랄 때가 많습니다.

"폴 목사님,

저희 교회에 와서 설교해주세요.

저희는 부흥을 원합니다."

 

그런데 정작 그 사람들은 집회에 오기 전에

그리고 집회 후에 집에 와서

텔레비젼 앞에 앉아서

그 모든 더러운 것들을 시청하는 거죠!

 

그리고 그 사람들은

그게 죄가 되는지도 알지 못하죠.

여러분은 죄에 민감하십니까?

죄를 짓고 그 죄를 고백하십니까?

 

여러분께 질문하겠습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 중에서

아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최근에 제가 아는 분 중에서

정말 악한 죄를 지을 때

발각되신 분이 있었습니다.

 

어떤 분은 "아니 어떻게 그런 분이

죄에 떨어질 수 있죠?"라고 말했죠.

 

그래서 저는 말했죠,

그분은 죄에 떨어진 게 아닙니다.

누구도 죄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분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미끄러지듯 죄에 빠진 것입니다.

 

여러분께 묻습니다.

여러분 중 일부는 기독교인이실텐데

이 경고를 들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죄에 미끄러져 들어가십니까?

한 달 전에는 생각조차 못한 일들을

조금씩 조금씩 저지르다가

지금은 더욱 큰 죄를

저지르고 계신 것은 아닌지요?

 

조금씩 조금씩...

그리고 다음에 어떻게 될까요?

여러분은 계속 똑같은 죄를 짓죠.

이것은 여러분이 불신자라는 증거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여러분을 막으신다면

이것은 여러분이 구원받은 증거입니다.

"아니 폴 목사님,

목사님은 저를 모르시잖아요?"

 

저는 여러분에 대해 알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압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됩니다.

 

여러분은 죄에 민감하십니까?

제가 성경 구절을 잠시 읽어드리겠습니다.

잘 들어보십시오.

 

이 구절은 성경 전체를 통틀어

제겐 정말 복된 구절 중 하나입니다.

.........

이 태도가 여러분이 갖고 계신

태도인지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태도를 취한 적이 있으신지요,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여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사66:2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떠십니까?

아니면 말씀에서

빠져나갈 구멍을 찾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죄에 대해 변명을 하시나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을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하기 때문에

현재 하나님의 말씀을 피하고 계십니까?

 

 

사람들이 항상 저에게 와서 말합니다.

"폴 형제님.

저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러면 저는 요한일서

18절을 펴고 말하죠,

"그러면 형제님은

죄와 새로운 관계를 맺으셨나요?

 

왜냐하면 형제님이 죄에 대해

새로운 관계를 갖지 않았다면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죄에 민감하십니까?

 

▲3. 이제 세번째 시험은

요한일서 23절에 나옵니다.

 

"우리가 그의 계명을 (계속)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자 들어보십시오.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이 구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여러분 미국이 어떤지 아십니까?

제가 페루에 있을 때 스코틀랜드 사람과

이야기 한 적이 있는데

그분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미국의 신학은 너비가 5000km 정도지만

깊이는 고작 1cm 정도 이군요"

 

저는 그분의 말에 동의합니다.

우리가 가진 복음은 정말 우습습니다.

우리의 전도 방식은 이단과 가깝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분을 아는지 아시나요?

여러분이 이 도시의 목사님들을 찾아가서

이렇게 물어보십시오,

 

"저는 제가 구원을 받았는지

확신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많은 목사님들은 이렇게 물을 겁니다.

"언젠가 당신의 삶에서

예수님이 당신의 마음으로 오시도록

기도하신 적이 있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그렇다고 하면

목사님들은 진심이었느냐고 묻겠죠.

여기서 여러분이 그런 것 같다고 하면

목사님들은 이렇게 말할 겁니다.

 

"당신은 이미 구원받았기 때문에

사탄이 당신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을 하는 목사님들에게는

성경적인 배경지식이 전혀 없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것을 읽어보십시오.

당신이 구원받은 사실을 어떻게 압니까?

어떻게요?

 

요한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우리 마음이 그렇다고 해서요?

목사님들이 그렇게 말해서요?

아니면 우리가 그냥 그렇게 느끼니까요?

 

요한은 말합니다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그리고 "지키면"이라는 말은 현재형입니다.

많은 다른 구절들의 시제와 같이

이 구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요한의 말은 우리가 계속해서

계명을 지키고 있다면

우리가 지속적으로 그분의 계명을 지키면

우리는 그분을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말하고 있는 것이죠,

만약 우리가 반대로 한다면

우리는 그분을 모르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여기서 잠시

한 가지 살펴보고 싶군요.

 

그분의 계명을 지킨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죄가 전혀 없다는 삶을 산다는 말인가요?

아닙니다. 이것은 삶의 방식을 말합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삶을

하루 24시간 촬영해서

영화로 만들면

우리는 우리의 삶을 볼 수 있겠죠.

 

하나님의 계명을 알고자 하는 욕구

계명에 순종하고자 하는 욕구

순종하며 승리하며 자라나는 모습

순종을 못할 때는 회개하는 모습

 

우리가 이러한 삶의 방식을 볼 수 있을까요?

만약 당신이 "저는 종종

계명을 지키곤 했습니다"라고 하면

요한의 말을 다시 보십시오.

 

"만약 우리가 계속해서 지키면"  요일2:3

지속적인 것이 필요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 일을 마치실 것이다." 빌1:6 

 

그리고 그 일(여러분의 구원 사역)이 마치지 않는다면

그건 그분이 하신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거듭나지도 않은 것입니다, 시작도 안 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알려는 욕구와

그 계명을 순종하려는 욕구를

발견할 수 있습니까?

 

또 어떤 분이 저에게 와서 이렇게 묻더군요.

"폴 형제님, 저는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었습니다."

 

저는 말하죠,

"당신은 죄와 새로운 관계를 맺으셨나요?

죄와 새로운 관계를 맺지 않았다면

당신은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은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분의 계명과도

새로이 관계를 맺으셨나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과

새로운 관계를 맺으셨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과

새로운 관계를 맺지 않았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 그러면 요일2:4절을 봅시다.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만약 여러분이 어떤 집회에 갔는데

그 집회는 자신들이 영성이

굉장히 높다고 여기고

자신들의 영성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집회라고 합시다.

 

그 모임이 시작되고

설교자가 설교를 하고

찬송을 부르겠죠.

 

그리고 어떤 사람이 벌떡 일어나 소리칩니다.

"할렐루야, 주님은 나의 구원자이십니다.

"할렐루야! 저는 구원을 알아요!"

이것이 요한이 말하는 정확한 요점입니다.

 

어떤 사람이 집회 중에 벌떡 일어나서

"저는 그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계명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그럼 문맥에서 다시 보십시다.

요한은 사랑의 사도입니다.

바울은 위대한 지성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요한은 위대한 사랑으로 잘 알려져 있죠,

 

그 겸손하고 상한 심령을 가진 사도가

평결을 내리고 있는 것이죠.

당신이 거짓말쟁이이다.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4. 자 그러면 계속해서 다른 시험을 살펴봅시다.

 

요한일서 26절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그리스도인은 예수님 처럼 행해야 한다.

"폴 목사님,

너무 앞서가신 것 같은데요?

어느 누가 예수님 처럼 행할 수 있습니까?"

 

제가 의미하는 바를 설명하기 위해

예화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아직 어릴 때

제 아버지는 덩치가 큰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똑똑하셨죠.

 

그래서 다른 어린 친구들 처럼

저도 아버지를 닮고 싶었습니다.

북부 지방에서 우리는 소들을 방목하고

말들도 키웠습니다.

 

그리고 눈도 많이 왔죠.

그러면 새벽 5시에

제 아버지가 제 방으로 오셔서

그땐 아직 어릴 때였는데

", 일어나거라

악한 자들에겐 안식이 없단다"

그리고 눈을 헤치며 가야 하죠.

 

여기서 제가 항상 기억하는 것은

저희 아버지는 굉장히 성큼성큼 걸으셨는데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셨죠.

저는 아버지처럼 걷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리를 크게 벌리면서

아버지가 남긴 발자국에 발을 딛으려 했죠.

저는 걸음걸이를 아주 크게 했습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저는 제가 원래 걸을 때보다

훨씬 더 노력해야 했는데

그 모습이 우스꽝스럽지 않았겠습니까?

 

그리고 제가 넘어지는 모습도

상상이 되겠죠,

하지만 여러분이 이런 장면을 보신다면

제가 정말 원하는 것이

제 아버지처럼 걷는 거라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아이를 보면서도

그 아이가 아버지를

닮고 싶어한다는 걸 알 수 있죠.

 

설령 그 아이가 그 아버지의 모습을

흉내조차 못 낸다고 해도 말이죠.

질문 하나 하죠.

 

여러분이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처럼 행하기를 갈망하십니까?

예수님처럼 되길 원하십니까?

그것이 여러분이 가장 원하는 것입니까?

 

여러분은 그분의 발자국을

따라서 나아가십니까?

 

여기 남성분들

그리고 여성분들,들어보십시오.

여러분에게 이러한 욕구가 없다면

두려워 떠시기 바랍니다.

    


예전에 한 기자가 제게 와서 묻더군요

제가 왜 항상 사람들에게

두려워 하라고 말하냐고요.

 

저는 그 기자에게 사람들이

그래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것은 시험입니다.

중요한 시험이라고요.

 

제가 여러분들의 삶을 살펴본다면

여러분의 모든 행동을 녹화한다면

여러분이 중생한 그 날 부터

여러분이 예수님 처럼 행하고자 하는 욕구을

발견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이 다른 사람들과 같이

행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겠습니까?

여러분은 이 세상 처럼 행하십니까?

 

세상 사람들 처럼 행하고

세상 사람들 처럼 말하고

세상 사람들과 친숙하십니까?

 

여러분은 자신을 세상과 동일시 하십니까?

아니면 예수님을 따르십니까?

 

저는 여러분이 오늘 밤에

다시 헌신을 다짐하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여러분이 정말

구원을 받았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5. 그럼 다음으로 넘어갑시다.

다음 시험으로 가죠.

요한일서 29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10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11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여기서 '형제'는 가난한 사람을

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 건 맞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인종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근데 저는 항상 이 말이

어리석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오직

하나의 인종만 있기 때문이죠,

바로 '인간'이라는 종입니다.

 

우리는 모든 인종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문화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요한이 말하는 요점은 다릅니다.

 

요한이 '형제'라고 말하면

그것은 그리스도인을 칭합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실제 생활에서

다른 신자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다른 신자들과

교제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불신자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내가 옥에 갇혔을 때에

너희가 돌보지 않았고

내가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않았다."  마25:43

 

감옥 선교를 하시는 분들은

이 구절을 들면서

모두가 감옥을 방문해야 한다고 합니다.

네 맞습니다.

 

그렇지만 이 구절이

말하는 바는 그게 아닙니다.

그 감옥에 신자가 없다는 가정하에 말이죠.

이 구절이 의미하는 것을

 

저는 제가 페루에서 생활할 때

그리고 다른 가난한 나라에서

확실하게 알았습니다.

 

여러분 가난한 나라에서는

제 말을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이 감옥에 갔다고 가정할 때

밖에 있는 누군가 여러분에게

먹을 것을 갖다주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굶주려 죽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감옥에서 배식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굶어 죽을 것입니다.

 

자 그러면 누군가가 감옥에 갔다고 합시다.

사도 시대에 크리스천이라는 이유로

살인이나 절도는 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감옥에 갔습니다.

감옥에서 빠져나올 수도 없겠죠.

 

그러면 그 사람은 죽을 겁니다.

굶주려서 죽을 것입니다.

아무도 음식을 갖다주지 않는다면 말이죠.

 

그렇다면 여기에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당시 권력층)

누군가 음식을 갖고온다면

그 사람도 기독교인이라는 걸 알 수 있겠죠.

 

그래서 음식을 갖고오는 사람 역시

감옥에 갇힐 위험에 처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말하고자 하는 바 입니다.

 

형제 사랑이 너무 커서

여러분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그리스도 안의 형제 자매를 사랑하는 겁니다.

 

여러분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이야기 하고, 예배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과 교제하십니까?

 

아니면 여러분은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들을

더 친근하게 여깁니까?

 

여러분이 누구인지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타자 Y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