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장 이 땅의 교회를 향한 경고 계3:22 스크랩
존 라일『거룩』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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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3:22).
이 구절은 계시록 2장과 3장에서 일곱 번이나 반복된다.
이 일곱 편의 서신이 교훈하는 핵심 진리는 지금 우리가 사는 종말의 때를 위한 것이다.
1. 주 예수께서 일곱 편의 모든 서신을 통해서 교리와 실천과 경고와 약속을 하고 계신다.
거짓 교인들에게 있는 불경건하고 일관성 없는 행실과 거짓 교훈을 지적하고
신랄하게 책망하시는 것을 보게 된다.
때로는 교회의 믿음과 인내와 수고와 견인을 칭찬하시고,
이러한 은혜를 드높이시는 것을 본다.
회개하고 돌이켜 첫사랑을 회복할 것과 그리스도를 향한 새로운 열심을 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서신도 교회 정치나 의식을 언급하지 않는다.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하는 바울의 고별인사에도 성례나 교회 정치에 대한 언급은 한 마디도 없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회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거룩한 삶이다.
외적으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먼저 “거듭나야” 하고,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 있어야 하고, 성령이 이루신 “새 창조”가 마음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예수께서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각각 편지를 주실 때 바로 이런 것을 생각하셨다.
신앙은 전적으로 나와 그리스도 사이의 개인적인 일이다.
내가 속한 교회 공동체가 어찌 되었든지, 그것 때문에 내가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인격적인 믿음, 하나님과 나 사이의 인격적인 관계,
그리고 내 마음과 성령 사이의 친밀한 교제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성경적이다.
이것만이 하나님이 복 주시는 유일한 가르침의 체계이다.
회개와 믿음과 회심과 성령의 사역을 목사의 중대한 설교 주제로 삼는 교회만큼
부흥하는 교회도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2 모든 서신들마다 주 예수께서 “내가 네 행위를 안다”고 말씀하신다.
주 예수께서 어떤 교회에는 “내가 네 수고와 인내”를 안다고 하시고,
다른 교회에게는 “네 환난과 궁핍”을 안다고 하시며,
또 다른 교회에게는 “네 사랑과 섬김과 믿음”을 안다고 하신다.
주목할 말씀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이다.
“네 신앙고백과 네 바람과 네 결심과 네 소원”을 아는 것이 아니라, “네 행위”를 안다고 하신다.
신앙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에게는 행위는 너무나 중요하다.
물론 행위로 영혼이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행위는 의롭게 하지도 못한다.
죄를 없이할 수도 없다. 행위 덕분에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행위가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런 생각을 조심하라. 그는 정말 끔찍하게 속고 있는 것이다.
율법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만 의롭게 되는 교리를 위해 기꺼이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행위는 신앙의 증거라는 사실이다.
여러분이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 부른다면, 일상의 삶의 방식과 행실에서 그 사실이 드러나야 한다.
아브라함과 라합의 믿음은 행위로 입증되었다.
행실로는 하나님을 부인하고 있으면서 말로만 하나님을 안다고 고백하는 것은 아무 소용없다(딛1:16).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라.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눅6:44).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잠15:3).
아무리 은밀하고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여러분의 모든 행실을 예수께서 다 보고 계신다.
1) 주 예수께서는 회심하지 않고 믿지 않는 모든 영혼의 행위를 아시며,
언젠가 그들을 징벌하실 것이다. 흰 보좌가 서고 책들이 펼쳐지면,
그 책에 기록된 대로 악인은 “자기 행위를 따라” 심판을 받을 것이다(계20:12-13).
2) 주 예수께서는 자기 백성의 행위를 알고 계시고, 무게를 달아 보신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 보시느니라”(삼상2:3).
그분은 모든 신자가 한 행동의 동기와 원인을 아신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 한 것이 얼마나 되는지, 사람의 칭송을 위해 한 것은 또 얼마나 되는지 다 알고 계신다.
3) 주 예수께서는 자기 백성의 모든 행실을 아시고, 상을 베푸실 것이다.
그분의 이름으로 행한 말 한마디, 행실 하나도 간과하지 않으신다.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고전3:8).
예수님은 그분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순수한 동기에서 행한 일들 속에서 아름다움을 간파하신다.
그분의 눈은 가장 미미한 성령의 열매에서도 탁월함을 간파해 낸다.
여러분이 행한 모든 일의 찌꺼기에서도 황금가루를 골라내신다.
쭉정이 더미에서도 알곡을 가려내신다. 여러분이 흘린 모든 눈물은
그분의 눈물 병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다른 사람을 향한 선행의 노력이 아무리 미미해도 그분의 책에 빠짐없이 다 기록되어 있다.
그분의 이름으로 건넨 보잘 것 없는 냉수 한 잔에 대해서도 상을 받을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하찮게 본다 해도, 여러분의 사랑의 수고와 역사를 그분은 결코 잊지 않는다.
3 모든 서신이 끝까지 이긴 자에게 주어지는 주 예수의 약속을 담고 있다.
“이기는 그에게”, 오직 “이기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약속이다. 이 점을 주목해야 한다.
신앙을 고백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군사이다.
그리스도인은 세례를 받음으로 죄와 세상과 마귀를 대적하는 그리스도의 전쟁에 필연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싸우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서약을 저버리는 것이다. 자신의 영적 의무를 거부하는 것이다.
신앙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이 바라기만 하면 무기는 얼마든지 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엡6:13-17).
신앙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에게는 가장 탁월한 리더가 있는데, 그분은 구원의 대장 예수이다.
그분을 통해 그리스도인은 최고의 보급품인 생명의 양식과 생명수를 공급받아 넉넉히 싸워 간다.
이러한 그리스도인에게는 가장 훌륭한 보상인 영원한 영광이 주어진다.
여러분의 영혼이 깨닫기를 바라는 것은, 참된 신자는 단순히 군사일 뿐 아니라 승리하는 군사라는 사실이다.
죄와 세상과 마귀를 대적하여 싸우겠다고 고백할 뿐 아니라 실제로 싸워 이긴다.
이것이야말로 참된 그리스도인에게서 나타나는 분명한 표지이다.
오직 참된 그리스도인만이 용사의 길을 간다.
오직 참된 그리스도인만이 자기 영혼의 원수와 담대히 마주하고 싸워 이긴다.
승리는 여러분이 구원받는 신앙을 가졌다는 사실을 확증해주는 유일한 증거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하고 세상을 더 사랑하는 것과 싸워 이기고 있는가?
여러분 마음의 정욕과 기질과 욕구를 이기고 있는가? 마귀를 대적하여 물리치고 있는가?
죄와 마귀와 세상을 이기든지, 아니면 그것에게 종노릇 하든지 둘 중 하나이다.
어중간한 길은 있을 수 없다. 이기든지 지든지 둘 중 하나이다.
신자의 싸움은 너무나 힘든 싸움이다. 영생을 얻고자 한다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인내로 어려움을 이겨야 한다.
천국에 이르고자 한다면, 날마다 싸우기로 결심해야 한다.
사람들이 고난해 낸 천국을 가는 지름길이 있을 수 있지만,
선한 옛길인 초대교회의 기독교는 십자가의 길, 투쟁의 길이었다.
신자는 죄와 세상과 마귀를 대적하고 물리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
이것이 바로 저 옛날 성도가 걸어갔던 길이다.
그들의 이름이 하늘의 별과 같이 밝게 빛나고 있다.
1) 모세는 이집트에서 죄악의 즐거움을 누리기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기뻐했다.
이것이 이기는 것이다. 그는 쾌락에 대한 사랑을 이겼다.
2) 미가 예언자는 자신이 진리를 말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서도
아합 왕 앞에서 듣기 좋은 말하기를 거부했다. 이것이 이기는 것이다. 그는 편한 길 가기를 거절했다.
3) 기도를 계속하면 사자 굴에 던져질 것을 알면서도 다니엘은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다.
이것이 이기는 것이다. 그는 사망의 두려움을 이겼다.
4) 주님의 부름을 받는 마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즉시 세관을 떠나 주님을 따라갔다.
이것이 이기는 것이다. “그는 돈에 대한 사랑을 이겼다.
5) 공의회 앞에 선 베드로와 요한은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담대하게 말했다(행4:20). 이것이 이기는 것이다. 그들은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을 이겼다.
6) 바리새인 사울은 전도유망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신이 핍박하던 바로 그 예수를 전파했다.
이것이 이기는 것이다. 그는 사람에게 칭찬받고자 하는 마음을 이겼다.
구원받기를 바란다면, 이들이 했던 것처럼 해야 한다.
이들을 하나같이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면서도 이 모든 일에서 싸워 이겼다.
그들 역시 여러분이 겪는 모든 시험을 지났고, 결국 승리했다.
그들은 싸웠다. 발버둥쳤다. 분투했다. 여러분도 이와 같이 해야 한다.
이들이 승리한 비밀은 무엇인가? 그들의 믿음이다. 이들은 예수님을 믿었고,
그 믿음은 더욱 강해졌다. 모든 싸움을 통해 이들을 예수님을 바라보았고,
예수님은 한 번도 그들을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았다.
“우리 형제들이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계12:11).
이제 여러분의 차례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고 이기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결심하라.
신앙을 고백하는 많은 그리스도인을 바라보는 제 마음이 참 두렵다.
그들은 도무지 싸우지도 않고 이기지도 못한다.
그리스도의 편에 서서 공격하기는커녕 그리스도의 원수와 타협한다.
죄와 싸우지도 않는다. 경고하건대. 이렇게 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이 아니고 천국에 이를 길도 아니다.
정기적으로 복음을 듣는 많은 사람을 바라보는 제 마음은 참 두렵다.
복음의 교리에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여러분이, 오히려 그 능력에 있어서 죽은 자같이 될까 봐 두렵다.
그리스도의 편에 서서 실제로 싸우는 일은 완전히 제쳐 둔 채, 자신의 연약함과 타락에 대한
모호한 하소연만 주절거리며 그리스도에 대한 감상적인 표현에 젖어 있을까 두렵다.
형제 자매들이여, 여러분이 선 자리에서 빛을 바라보라. 싸울 담력을 가지라. 주님이 곧 오신다.
밤이 거의 지났다. 그분의 팔, 그분의 은혜, 그분의 성령이 여러분을 붙들어 줄 것이다.
용기를 내라. 낙담하지 말라. 한두 번 싸움에서 지면 또 어떤가?
그렇다고 모든 전쟁에 지지는 않는다. 때로 힘에 겨워 지치면 또 어떤가?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곱 번 넘어지면 또 어떤가?
완전히 쓰러지지는 않을 것이다. 마귀를 대적하라.
여러분에게서 멀리 달아날 것이다. 용감하게 세상에서 나오라.
세상은 여러분을 놓아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여러분은 넉넉히 이기는 자로 발견될 것이다.
여러분은 “이긴다.”
적용)
1) 오직 세상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에게 경고한다. 지금 여러분이 하는 일을 잘 살펴보라.
자신은 알지 못하지만, 지금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원수이다.
여러분은 아랑곳하지 않겠지만, 모든 것이 다 기록되어 있다. 두려움으로 떨며 돌이키라.
2) 형식주의자와 자긍하는 사람에게 경고한다. 미혹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중생의 증거, 새로운 마음의 증거, 성령의 역사가 있는가? 두려움으로 떨며 돌이키라.
3) 모든 부주의하고 경박한 교인에게 경고한다.
자기 영혼을 소홀히 여겨 지옥에 가지 않도록 하라.
마귀나 천국이나 지옥 같은 것은 전혀 없는 것처럼,
미소 띤 얼굴로 항상 신사답게 또는 요조숙녀같이 점잖게 행동한다.
깨어나 영원한 실재를 똑바로 보라. 두려움으로 떨며 돌이키라.
4) 구원받기를 바라는 모든 이에게 경고한다. 세상의 신앙 기준으로 만족하지 말라.
이 일곱 편의 서신을 통해 예수께서 칭찬하시는 것은, 세상이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 책망하시는 것을 세상은 도무지 위험하게 보지 않는다.
세상의 기독교로 만족하지 말라. 두려움으로 떨며 돌이키라.
5) 주 예수를 믿는 모든 신자에게 경고한다. 작은 신앙으로 만족하지 말라.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가장 봐주기 힘든 것은 작은 은혜, 작은 회개, 작은 믿음,
작은 지식, 작은 사랑, 작은 거룩으로 만족하는 사람이다.
내적 평화를 더 누리기를 바란다면, 작은 신앙으로 만족하지 말라.
오히려 해마다 더 큰 진보를 나타내기를 힘써야 한다.
은혜에 더 자라가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더 자라가고,
자기를 아는 일과 겸손에 더 자라가고, 하늘에 속한 마음과 영성이 더 자라가고,
우리 주님의 형상에 더 자라가야 한다.
에베소 교회처럼 처음 사랑에서 떠나지 않도록 조심하자.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미지근한 신앙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자.
두아디라 교회처럼 거짓된 교리에 휘둘리지 않도록 조심하자.
사데 교회처럼 죽은 자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자.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되도록 힘쓰자.
이미 가진 것을 힘써 지키고, 더욱더 풍성히 얻도록 힘쓰자.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힘쓰자. 우리의 고유한 특징은 고상한 학문과 문학적 지식에 능하고,
세상을 잘 알고, 즐거움을 누리고, 사업에 능한 것과 같은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데 있다(딤후6:11).
하나님의 일이 우리의 가장 우선적인 일이고,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삶의 제일 되는 목적임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자.
이렇게 살아가는 한, 우리는 모두 행복할 것이다.
이렇게 살아가는 한, 우리는 모두 세상을 이롭게 할 것이다.
이렇게 살아가는 한, 우리는 모두 세상에 선한 증거를 남기게 될 것이다.
이렇게 살아가는 한, 교회들에게 하시는 성령의 말씀이 결코 헛된 것으로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