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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적인가 영적인가? / 잭 푸닌

LNCK 2019. 9. 27. 18:39

 

 

www.youtube.com/watch?v=uVyH-523nJY

www.youtube.com/watch?v=mDMvksQczNw

 

www.youtube.com/watch?v=jXGwUxmWQB4&t=103s

 

혼적인가 영적인가?                살전5:23               출처

Soulish or Spiritual? 잭 푸닌

 

우리는 지금까지 우유를 충분히 마셨습니다

여러분 씹을 준비가 되셨죠? 

제목은 혼적인가 영적인가?”입니다

    

혼적 soulish이라는 말은 많은 기독교인들이 아마 들어보지 못했을 겁니다.

 

우리는 육적 carnal 혹은 영적 spiritual이란 말은 들어봤어요.

우리는 항상 생각했어요. 그 육적/영적 두 영역 밖에 없다고요.

 

아닙니다 세 영역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세 영역이 있음을 이해하지 못하면

참 영적인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는 모르게 됩니다.

      

모르면 이렇게 될 수 있어요.

우리는 주일 아침에는 주님과 아주 함께하심을 느낍니다.

그렇지만 월요일 화요일에는 신앙이 식어버립니다.

왜냐면 우리가 영 안에서 계속 영적으로 사는 것을

아직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살전 5:23절을 보겠습니다

이 구절에 사람은 세 영역이 있음을 말씀합니다.

사람에게는 영, , 육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삼위일체로 계십니다.

세 위격이 한 하나님으로 계십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두 영역만 생각합니다.

-눈에 보이는 육신과

-눈에 보이지 않는 혼.

 

그러나 영도 있는데, 영은 혼보다는 더 깊은 영역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영, 혼 육이 완전히 흠 없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보존되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살전5:23

 

이것이 우리가 첫째로 살펴보아야 할 내용인데요

자기 육체의 욕망에 의해 지배되는 사람은

육적인 사람인데요

 

성령에 의해 자기 삶이 지배되는 사람은

영적인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둘(영적, 육적) 사이에,

자기 혼(, , 의의 자아)에 의해 지배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혼이란 자기 인간적 인격인데요

그 혼에 지배되는 사람은 혼적 soulish’이며

그는 영적인 사람은 아닙니다.

 

*프뉴마티코스 영적인 사람, 프뉴마 spirit

 

*프시키코스 혼적인 사람, 프시케 soul    고전2:14,  


*사르키코스 육적인 사람, 사륵스 flesh

 

고전3: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 프뉴마티코스 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사르키코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고전2:14, 육에 속한 사람 프쉬키코스 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고전15:46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약3: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육신에 속한 것이요/새번역

 

   요1:19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

    

여기서 우리가 미혹당할 수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자기 혼에 지배되어 살아갑니다. *혼적인 사람

그러면서 자기가 영적으로 착각합니다. *육적이 아니라서

 

이것을 제가 자세히 설명하고자 하는데요.

말씀드렸듯이 이것은 단단한 고기와 같고

그렇지만 우리는 그걸 씹을 준비가 되었다고 봅니다.

 

제가 그걸 갈아서 드릴 테니

여러분이 씹기 쉬우실 것입니다.

 

히브리서에서 성령이 말씀하시는 한 가지는

5:12에 고기를 먹었어야 하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랬으면 지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그러나 너희가 여전히 우유를 마시고 있다

그것은 아버지께 실망을 안겨주었다

 

모든 아버지는 다 그렇게 실망하겠죠.

자기 자녀가 10살인데 여전히 우유만 마시고 있고

고기를 씹지 못하면요.

 

여러분은 거듭난 후 2년 이상되었다면

성경을 말씀하길 우리는 우유를 마시지 말고

고기를 먹어야 한다

우유를 마시는 수준을 넘어가야 한다.

 

슬라이드로 다음 구절을 보겠습니다.

4:12 ‘하나님의 말씀은 혼의 영역, 영의 영역까지

꿰뚫는다’ (심령과 관절을 찔러 쪼갠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혼과 영 사이로 지나갑니다.

그래서 우리 영을 통과합니다.  *개역에 '찔러 쪼갠다'

 

이 구절은 여러분이 이미 읽으셨을 것입니다.

히브리서에 나와 있으니까요.

그러나 아마도 여러분은 이 구절을 깊이 생각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이 구절을 깊이 묵상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은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비극인데

사람들은 어려운 구절을 만나면

(묵상 안 하고) 건너 뛰어버리고 다음 구절로 갑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가 받아야 하는

영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거기 머물러 묵상해야죠.

 

때때로 제가 성경을 읽을 때

제가 어느 한 구절에서 꽉 막히게 됩니다.

빨간신호등처럼 제가 거기서 멈추게 되는데요.

 

제가 다음 날 일어났는데도

여전히 그 구절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성경을 이해하지는 방식입니다.

제가 말합니다. ‘나는 하나님이 그 의미를 보여주실 때까지

그 구절을 건너뛰지 않을 거야

 

여러분이 진실로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존중한다면

여러분은 성경이 말씀하는 모든 구절의 뜻을 알기 원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혼과 영을 찔러 쪼갠다4:12

는 말씀은 무슨 뜻인가요? *개역에는 심령으로 번역

 

만약 여러분이 10년 믿은 신자라면

누가 여러분께 와서 그 구절을 질문한다면

여러분은 답을 말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께 이 구절을 설명드릴 텐데요

잠시 다른 구절로 가보겠습니다.

 

1:14 이 구절은 예수님께 대해 말씀하는데,

제가 가진 NASB 성경에서 정확한 번역은

말씀이 육신이 되사 우리 가운데 거하시니’”

이 말씀은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셨다는 말입니다.

 

성령께서 그 단어를 사용하신 것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셨다

 

그 말은 우리에게 구약의 성막을 기억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출애굽기를 보시면 하나님은 10~15장을 할애하셔서

장막에 대해 설명하십니다.

 

그러고는 신약에도 그 장막이 언급되는데

히브리서 9장이죠.

 

애석하게도 히9장은 많은 크리스천들에게 관심이 없는 곳입니다.

 

우리는 고기를 씹기를 원치 않아요.

그것이 우리가 성장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설명하려 하는데요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셨습니다.’ 1:14

그 분은 영적인 사람의 완전한 예가 되십니다.

 

그 분은 십자가에 죽기 위해서만 오시지 않으셨어요.

주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은 사람이 어떻게 살기 원하시나

보여주기 위해서 오셨어요.

 

하나님은 여러분과 제가 어떻게 살기를 원하십니까?

주님은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만 아니에요.

 

말씀하시길 내가 천국에 갈 때

내가 아버지께 기도해서 아버지께서

오순절에 성령을 보내실 것이다.

그래서 성령님은, 우리가 예수님이 사신 것처럼 살게 하실 것이다.’

(도우실 것이다)

 

요일2:6 ‘누구든지 자기가 크리스천이라고 말한다면

(이 구절을 풀어서 쓰면 이런 뜻입니다)

그는 이제 예수님이 사셨던 것처럼 살아야 한다

 

그러면 대부분 크리스천들은 그건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네 성령의 역할이 없으면 그건 불가능 한게 맞습니다.

 

제가 먼저 이것을 설명할게요.

모든 거듭난 크리스천은 성령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께 성령이 안 계시면, 그건 거듭난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이 사실을 확신하지 못하면

8:9절을 봅시다. 기억해야 할 매우 중요한 구절입니다.

그래서 이후로 절대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8:9b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의 가지지 못한 사람은

그분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너무도 명확한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란 성령을 가리킵니다.

 

만약 여러분이 성령을 갖지 못했다면

여러분은 그분께 속하지 않은 것이요,

아직 회심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가졌다는 것이

꼭 성령으로 충만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대부분 신자들은 성령으로 충만하진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설명하려고 하는 것은

(성령은 내주해 계시지만 성령충만 하지 못한)

우리가 어떻게 성령으로 지배되어 살 것인가 입니다.

 

계속 설명하면, 예수님은 성막이 되십니다.

(다음 자막 보여주세요)

‘성막의 교훈입니다. 이것을 설명드리겠습니다.

 

구약 성막으로부터 얻는 교훈은,

이것을 우리가 씹고, 이해하기 원하는데요.

 

성막의 그림을 보십시오.

여기 장막이 이렇게 생겼습니다.

 

말씀드렸듯이 사람에게는 세 영역이 있습니다.

, , 육입니다.

 

하나님이 성막을 만드셨을 때

이것은 결국 예수님을 예표하는데

그렇다면 우리 인간의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죠.

 

하나님은 성막을 세 부분으로 만드셨어요.

눈에 보이는 한 영역 - 마당

눈에 안 보이는 두 영역 - 성소와 지성소

 

사람도 눈에 보이는 한 영역이 있고, 그건 우리 육체죠.

그리고 사람은 눈에 안 보이는 두 영역이 있는데

혼과 영입니다.

 

성막도 그런 식으로 만들어졌어요.

 

그 당시 사람들은 이런 것을 다 이해하진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이해하죠.

왜냐면 우리는 성령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 안 보이는 두 영역은 성소와 지성소입니다.

이 성소의 세 영역은, 사람의 육, , 영과 상응됩니다.

 

이 성막의 중간에는 구분(휘장)이 있었는데

그게 성소와 지성소를 구별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이 성막을 우리 사람에 적용해서 이해하게 됩니다.

재차 설명하지만 바깥 마당은 눈에 보이는 영역이죠.

    

하나님은 성막 마당에 거하지 않으십니다

장막 안 성소에도 거하지 않으시고

오직 지성소에만 거하십니다

 

여러분이 구약을 읽으시면 이해하실 겁니다

지성소안에 법궤가 있고

시은좌 mercy seat 는 지성소에 있는데

그 시은좌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곳이며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하나님의 불과 구름이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성막의 마당에서가 아니라

지성소에 임하시며

거기엔 구약에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어요

왜냐면 거기엔 휘장이 있었어요

 

 

성막에는 먼저 성막 마당이 있죠 

이것은 구원의 그림입니다

그곳으로 여러분이 들어가서

제단에서 제사를 드리는 곳이 있고

그 놋제단(번제단)은 갈보리를 상징하고

거기 물두멍라고 불리는 큰 물저장고가 있는데 세례를 상징하죠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저 제단과 물저장고까지 가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내 죄가 용서받는 것으로 족하다!’

갈보리와 물세례로 나는 구원 받았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그것보다 더 많은 계획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은 우리 구주시다 라는 첫 단계(번제단)을

통과해서 더 나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성령으로 세례주는 자로 불리기를 원하십니다 (물두멍, 바다)

세례의 뜻은 잠김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성령가운데 잠기게 하십니다

 

이것이 주님이 우리를 (번제단, 물두멍을 지나)

더 나아가게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곳은 섬기는 곳인데

성소이죠

 

마당은 누구든지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제사드리는 사람은 짐승을 데리고 누구든지 마당에 들어오죠

 

그러나 성소는 리더 격인 제사장들만 들어갑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죠

 

이것(성소의 봉사)내는 구원받았어, 용서 받았어

나는 천국길에 들어섰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입니다

성소는 성령으로 세례 받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을 섬기기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에 대한 호칭이 하나 더 있습니다

제가 보여드릴 텐데

6:20절 여기 나오는 호칭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는 앞서서 달려가신 분으로서, forerunner for us

우리를 위하여 거기에 들어가셔서

 

직전 구절을 보시면

6:19 ‘그분은 휘장 안으로 들어가는 앞서 달리는 자이십니다

 

그분은 앞서 달리는 자로서 어디로 들어가셨나요?

휘장안으로!

 

휘장이란 아주 두꺼운 커튼입니다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있죠

 

사람은 육체, , 영으로 되어 있는데요

예수님은 우리가 휘장을 통과해 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성소와 지성소는 사람의 혼과 영에 상응하는데요

 

 

아까 말했던 구절 기억하시죠?

하나님의 말씀은 혼과 영을 찔러쪼갠다4:12

 

그럼 혼과 영 사이를 구분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성막에서는) 휘장이죠

휘장 때문에 아무도 하나님의 임재속으로 들어갈 수 없음을 상징합니다

 

9장에 말씀하기를 그 휘장은 하나님 존전앞으로 가는 길인데

아직 열리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구약에선 아무도 하나님의 존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어요

누가 나아가려 했다가는 죽었습니다

왜냐면 거기에 두꺼운 휘장이 있었는데요

 

하나님은 말씀하시길

거기에 뭔가 있어서 그것이 너희가 내 존전 앞으로 오는 것을 막았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걸 깨닫고

그걸 통과한다면

즉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혼과 영을 찔러쪼개면

우리는 하나님의 존전 앞에서 일주일 내내 24시간 지낼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 구절을 이해한다면요

 

▲제가 설명드리려고 하는데

이것이 제가 하는 지금 이 설교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입니다

 

휘장을 통과해 들어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휘장이 찢어졌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님께서 하셨을 때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이것은 그저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게 된 것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맞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지성소에서 언제나 머물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들어왔다 나갔다 들어왔다 나갔다 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존전 앞에서 나아가 항상 거기서 살 게 되있어요

 

우리는 성막 마당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구약)

즉 갈보리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신약)

 

우리는 물세례로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구약)

즉 우리는 성령의 세례로 감사드립니다 (신약)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 구세주로 아는 것을 감사드리지만

그것 말고도 여러분은 그분을 성령으로 세례주시는 분으로,

성령으로 충만케 해주시는 분으로 압니다

 

그건 놀라운 일이죠

그러나 저는 여러분이

주님을 앞서 달리신 자 fore-runner’로 알기를 원합니다 *6:20

 

구세주-세례주시는 분-앞서 달리가신 분입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앞서 달려가신 분으로 아십니까?

성령세례를 설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 일로 하나님께 찬양드립니다.

 

그렇게 설교하는 그들이 예수님을 앞서 달려가신 분으로는

모르고 있습니다.

 

저도 과거에 수 십 년동안 앞서 달려가신 분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래서 제가 거듭난 후, 전심사역자로 안수받은 후 16년동안

패배하고 패배하고 패배하는 삶을 거듭했습니다.

 

저는 제 생각의 영역에서 패배했습니다.

저는 제 내면적 생활에서 실패했습니다.

저는 설교했지만 그건 제 삶에 24시간 일주일 내내

진실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위선자임을 깨달았죠 (설교한 대로 못 사니까)

저는 그런 내가 매우 싫증났고 저는 사역을 그만 두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기도했죠 주님 저는 위선자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다시 찾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저를 성령으로 다시 충만케 해 주셨어요

 

그리고 하나님은 내 눈을 열어서

예수님을 나의 앞서 달려가신 분으로 보게 되었어요

그건 제 삶을 번화시켰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경험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저는 여러분도 삶이 변화되리라 믿어요

저는 여러분보다 나은 것이 없습니다

저는 은혜로 구원받은 죄인입니다 여러분처럼요

그러나 예수님 저를 위해 이 길로 인도하셨어요

 

10:20절을 보시곘습니다

화면에 나옵니다

예수님이 (휘장사이로) 길을 여셨다

정말 사랑스런 구절입니다

여러분 이 구절을 묵상해 보셨나요?

 

예수께서는 휘장을 뚫고 우리에게
새로운 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휘장은 곧 그의 육체입니다10:20

 

저는 그의 육체자기 의지 self-will’라고 말하고 싶어요

왜 제가 그의 육체그의 의지 self-will’라고 말합니까?

 

육신 flesh’는 여러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신약성경에 고기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했고요

그러나 우리 육신(육체)은 그런 말이 아니죠

신체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어요

 

신약성경이 육신이라고 말할 때는

5:17절을 보십시오

이 구절에서 성령을 말하면서

육신의 소원은 성령에 거스르고

성령의 소원은 육신에 거스른다고 말씀합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성령이 내 육체를 거스른다는 뜻입니까? 아닙니다

 

우리 육체는 성령의 전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성령이 우리 육체를 거스르겠습니까?

 

그럼 우리 육체가 성령을 거스릅니까?

아닙니다

 

육신(flesh)이라는 것은 그저 육체 이상의 어떤 것입니다.

이것은 나의 자기 의지 self-will’ 입니다.

 

모든 아기들은 이 자기 의지(육신)’를 갖고 태어납니다.

강퍅한 자기 의지입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성소의 휘장에 상응한다고 봅니다.

이것이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존전앞으로 가는 것을 막습니다

사람의 자기 의지’(또는 자아)입니다.

 

이제 생기는 질문은

예수님은 자기 의지를 갖고 세상에 오셨습니까?’

 

우리에게는 생각 mind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혼의 영역에 속하죠

 

우리에게는 감정 emotion 도 있습니다

그것도 우리 혼의 영역에 속하죠

soul 이란 우리의 인격으로서의 존재입니다

어떤 사람은 내향적이라서 부끄럼 잘 타고 나서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외향적입니다 활기차고 남의 등을 철썩 때리며

안녕!’하고 인사하는 유형이죠

그렇지만 어떤 사람은 반대로 부끄럼 잘 타고 나서지 않습니다

 

사람은 감정도 다릅니다

인격적 성향도 다릅니다

그러나 의지적 측면에서 보면

사람이 내향적이든지 외향적이든지 모두 강퍅한 자기 의지를 가졌습니다

우리 모두는 태어날 때부터 그렇습니다

보세요 어린 아기들도 다 그렇습니다

 

그 자기 의지가 깨어질 때까지

성령께서 그걸 깨뜨리시디록 우리가 허락할 때까지

우리는 휘장을 통과해서 나아갈 수 없고

성령으로 살 수 없습니다

 

이게 우리으 생각이나 감정을 무시하라는 뜻입니까?

전혀 아닙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들입니다

 

우리는 육체도 무시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육체를 건강하고 알맞게 유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생각도 있고 감정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거기 자아에 머무른다면

여러분은 결코 성령안에서의 삶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결코 성령안에서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 가로막은 휘장이 자기 의지(self-will 자아)’라는 것입니다

그럼 예수님은 이걸 갖고 태어나셨을까요?

 

겟세마네로 가 봅시다

예수님이 거기서 자기 의지가 있으셨습니까?

있었죠

그런데 그것이 아버지의 뜻에 상반되는 것이었나요?

생각해 보세요

 

아버지는 그분이 잔을 마시기를 원하셨나요?

Yes

 

예수님은 처음부터 그 잔을 마시기 원하셨나요?

No

 

예수님은 정직하셨어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것은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그건 죄가 아니에요

 

하나님, 저는 잔을 마시고 싶지 않습니다

이건 죄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나중에 제가 마시겠습니다

이것은 자기 의지였습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에서 하신 것입니다

 

분명하게 살펴봅시다

처음에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과 다른 자기 뜻을 가지셨습니다

그것 자체로는 죄가 아닙니다

 

만약 예수님이 자기 뜻이 없었다면

그건 그분이 (인성을 가진) 사람이 아니란 뜻입니다

우리와 같은 분이 아니셨던거죠

우리와 같이 시험을 받지도 않으셨고요

 

그럼 우리의 본이 되실 수 없을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자기를 따르라고 말씀하실 수 없었을 겁니다

 

저는 그분께 나는 당신을 따를 수 없어요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자기 의지가 없었다면요

예수님이 거부할 수 있는 자기 의지가 없었다면요

 

6:38절을 봅시다

이 구절을 제가 예수님의 한 줄 자서전이라 부르는데요

 

왜 예수님께서 천국에서 세상에 내려오셨습니까?

그분의 직접 말씀을 들어봅시다

   

그것은, 내가 내 뜻을 행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려고 왔기 때문이다

 

만약 예수님의 뜻이

자기를 보내신 분의 뜻과 같다면

예 예수님이 그걸 거부하겠습니까

 

만약 제 어린 아들의 뜻이 제 뜻과 같다면

그는 그걸 거부하거나/말거나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왈가왈부 하는 것은 그의 뜻이 아버지의 뜻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라

(이런 말 거론 자체가 예수님은 자기 뜻이 있었죠)

 

예수님이 천국에 계실 때는

이런 말을 하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천국에서 예수님은 나는 내 뜻을 행하겠다

왜냐면 그건 아버지의 뜻과 똑같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하나이시거든요

 

그러나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이것은 그분의 겸손인데요

그분이 우리와 같이 되신 것은 우리의 본이 되기 위함입니다

 

여러분이 이 사실을 깨달을 때

그분을 더 사랑하게 될 겁니다

 

예수님이 자기 의지를 가지셨어요

거부하실 수 있는 의지,

그런데 그분은 그것을 쓰는 것을 목숨을 버리시기까지 거부하셨어요

 

..................... 지금까지 P1  원본의 00:00 ~ 20:00 까지 ........................

                       P2  아래는 원본 동영상의 21:00 ~ 35:00 

  

 

 

자기 의지를 꺾는 것은 고통스럽습니다

어린아이들보고 자기 의지를 꺾으라 해 보세요,

그들이 고통스러워합니다

여러분과 저도 그건 고통스럽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위해 우리 뜻을 꺾는 것요!

 

이것이 영성(가장 높은 지성소의 단계)의 비결입니다

우리 생각이나 감정에 잘못 된 게 없습니다

 

예수님도 생각mind 을 사용하셨어요

제 말은, 여려분이 예수님이 선포하신 것을 성경에서 읽을 때

그분이 가르치신 것들은 매우 선명해서

심지어 어린아이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명확했어요

 

그럼에도 그분의 말씀 속에는

아주 깊은 의미가 담겨 있었지요

우리가 그 의미를 깨달으려면 수 년이 걸릴 정도로요

 

예수님은 생각 mind (혼의 영역)을 사용하셨어요

감정도 사용하셨고요 그래서 느끼셨고 우셨고

가난한 자들에 대해 동정심을 느끼셨어요

아이들이 하나님을 찬양할 때는 흥분하기도 하셨고요

      

우리도 우리 생각과 감정을 사용합니다
우리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합니다

 

저는 지난 50년간 성경을 연구했어요

그때 저는 제 생각(사고력, 지성, mind)을 항상 사용하죠

 

그래서 여러분은 성경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고도 영적이지 않을 수 있어요

그 가장 큰 예가 마귀입니다

 

세상에서 마귀보다 성경을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피조물 중에서요

 

여러분은 성경 지식으로 그를 이길 수 없어요

마귀는 성경암송대회에 나가면 우승할 것입니다

왜냐면 그는 모든 구절을 알아요

그는 예수님께도 성경구절을 인용했습니다

감히 그런 일을 상상이나 하겠습니까!

 

그는 구약에서 적합한 구절을 집어내서

예수님을 시험했어요

그는 성경을 아주 잘 압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알기 때문에

자기가 영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누구보다 성경을 더 많이 안다고 해서

스스로 교만하지 마십시오

 

그건 미친 짓입니다

그건 (지적교만은) 여러분이 성경을 모른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여러분 생각에

만약 성경이 여러분을 교만하게 만든다면..

원래 성경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듭니다

 

감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감정 자체는 잘못된 게 없어요 (가치 중립)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할 때 감정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제가 거듭났을 때

저는 기독교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어요

그때 저는 19세였고, 교회에 조인했어요

 

그 교회사람들은 생각하기를, 교회에서 가장 바른 방식은

장례식에 앉아있는 것처럼 있는 것이었어요

조용하고, 심각하고, 엄격한 모습으로요

그건 꽤 죽은 교회였어요

 

그 당시에 제가 계시록19:6절을 읽었는데

깨달음을 받았습니다

천국에서는 우렁찬 천둥 같은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했다

 

제가 혼잣말로 ! 내가 천국에 간다면 문화충격을 느끼겠는데,

지상에서 내가, 천국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배우지 못한다면!’

    

이와 같이 저는 우리 감정의 표현을 좋게 봅니다

예배 때 손뼉도 치고, 목소리도 높이는 것을 좋게 봅니다


 제가 다른 사람을 무안하게 하지 않는다면 여러분과 춤도 추겠어요

저는 그런 사람의 감정을 믿습니다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잘못이 없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제 성경 지식이,

찬양 때 제 (일시적) 감정적 흥분이

저를 영적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회중 : 아멘!

그것은 참된 영성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사고 mind, 감정 emotion 을 넘어서 *혼적인 영역들

휘장을 통과해서 가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휘장을 통과해서 가신 앞서 달리신 자이였어요

나도 그렇게 통과해야 합니다

 

우리 사고 mind와 감정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제가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 말은 성령님이 우리 사고와 감정을 다스리시도록

내가 허락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제가 말씀드리는데

우리는 자기 의지 self-will 에 대해서

No 라고 말해야 합니다

 

다른 말로, 내가 성경을 연구한 후에

내가 주일날 주님을 흥분되게 찬양한 후에

집으로 돌아가서 이제 주중에 직장에서

거기서 내가 내 뜻을 행하려 하는 시험을 받을 때마다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성령님, 지금 제게 은혜를 주십시오

그 시험에 No 할 수 있도록!’

 

누가 내게 화를 낼 때

내 의지는 말합니다 그에게 같은 방식으로 반응하라

네 배우자가 네게 말하는 방식과 똑같이 네가 반응하라

 

그때 (자기 의지에게) No 라고 하십시오

아십니까? 성령님은 여러분을 영구히 인내하도록 만드실 수 있습니다

잔소리하는 아내에 대해서요, 여러분 믿으십니까?

 

당신의 하나님은 듣기만 하고 무능력한 하나님이십니까?

잔소리하는 아내를 계속 참으라고만 하고

그렇게 여러분을 도와줄 수 없는 하나님이십니까?

남편도 그런 어려운 사람이 있긴 마찬가지죠

    

(잔소리하는 남편이나 아내를 이길 때

억지로 꾹 참고 이기는 게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내 변화된 심령으로 넉넉히 이깁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우상을 섬기고 있는 셈입니다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라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부으십니다

그래서 어떤 유혹도 극복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우십니다

 

운전할 때 마구 화를 내는 어떤 사람을 만날 때

성령님께서 여러분이 참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모든 사람들이 교통규칙을 어길 때

여러분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손가락질을 받을 때

성령님은 그런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도록 여러분을 도와주십니다

 

여러분은 그 일을 자기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자기 뜻(의지)을 부인하시고 기도하십시오

주님, 제가 여기서 (극복 못하면) 죽겠습니다

 

이 시험이 또 다른 (내 자아가) 죽을 기회입니다

이것이 바로 휘장을 통과해서 나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은 진심으로

하나님의 임재속에 거하기를 정말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자기 자아의 휘장을 뚫고 통과하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지금부터 하나님의 임재속에 거하는 것의 유익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휘장을 통과해서 지성소로 가시면..

 

제게 큰 도움을 주었던 구절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6:11절을 찾으시겠습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참 은혜스런 구절입니다

주의 임재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제가 하나님의 임재가운데 있는지 스스로 테스트하는데

그건 바로 지금 내게 충만한 기쁨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주님의 임재 속에 있는 것입니다

 

일주일 내내 하루 24시간 중에 언제든지

만약 내가 충만한 기쁨을 잃어버렸다면

나는 스스로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지금 하나님의 지성소에 있지 않아!’

 

나는 하나님의 임재속에 있지 않아!’

그 이유는 내가 지성소에서 빠져나온 것인데

왜냐면 내가 어떤 상황에서

내 뜻을 거부하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뜻을 주장했습니다

나는 그 상황에서,

예수님이 가신 자기부인의 길을 가길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뒤돌아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그렇게 자주 풀이 죽는 이유입니다

우울하고 기쁨이 없었습니다

제가 거듭나고도 수년 동안 그렇게 살았어요

 

저는 자주 용기를 잃었고 우울했으며

침울했고 화를 냈습니다.. 여러분도 말해 보세요

소위 저는 평균적인 크리스천 average Xn 이었습니다

 

거듭나서 천국 길에 들어섰지만

주중에는 패배하는 삶을 살았어요

그러다가 주일 아침에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손뼉을 쳤습니다

 

제가 기도했어요

주님 저는 이렇게 사는 것이 싫고 실증납니다

저는 위선자입니다

주일날에는 이렇다가 주중에서 다른 모습입니다

저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살지 않으셨어요

그분은 계속적으로 영적이셨어요

왜냐면 그분은 결코 자기 뜻대로 행하지 않으셨거든요

 

주님은 항상 휘장 가운데로 가셨고

그래서 우리에게 앞서 달리시는 자가 되셨습니다

*한자로 선구자 先驅者

 

이것이 제가 설명해 드리려는 것입니다

그곳(휘장 통과 후 임재)이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입니다

 

여기 또 다른 은혜스런 구절이 있는데 요4:24절입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자에게 말씀하셨죠

죄송합니다 요4:23절부터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이것이 지성소에서 예배하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들은 구약시절엔 그렇게 할 수 없었어요

그들은 하나님을 오직 몸으로 예배했습니다

손뼉치고, 소리 높이고, 노래하고, 손을 들어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하며 예배했습니다

 

구약 때 그들은 자기 혼으로 예배했습니다

그들의 사고와 감정으로 고조되면서!

 

그러나 영으로 예배함

이게 뭡니까?

 

앞 구절을 봅니다

4:23 ‘때가 오나니예수님이 말씀하셨죠

그때는 오순절 날을 가리킵니다

 

때가 오나니 지금 이때라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느니라’ 4;23

이것이 오순절 이후 우리가 가지는 특권입니다

이제 우리는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를 계속 예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때가 오나니 아직 아니라 아직은 휘장이 찢어지지 않았어요

너희는 아직 지성소엔 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가 오고 있다

 

그 휘장이 찢어졌을 때, 성령이 부어졌을 때

사람들은 하나님을 영으로 예배할 수 있게 되었어요

 

우리가 예배할 때

우리의 사고mind를 통해서 예배함으로 하나님께 찬양드립니다

우리의 감정을 통해서 예배함으로 하나님께 찬양드립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께 촉구합니다

이런 자기 부인의 삶을 살아서 (휘장 가운데로 들어가십시오)

 

우리가 기도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아까 그 찬양을 불렀는데요

 

(기도란) ‘당신의 뜻이 내 삶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천국에서 천사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행합니까?

아십니까 천사들은 결코 자신의 뜻을 행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아버지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하나님 당신은 제가 무엇을 하길 원하십니까?’

 

이것이 예수님이 사신 방식입니다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했을 때

돌을 떡으로 만드실 수 있었습니다 그럴 능력이 있으셨어요

자기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서요

 

그렇지만 뭐라고 하셨습니까?

나는 아직 하나님의 뜻을 듣지 못했다

그러므로 나는 돌을 떡으로 만들지 않겠다

사람은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무슨 뜻입니까?

나는 돌을 떡으로 만들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아직 듣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렇게 할 능력이 있지만

나는 그 능력을 사용하지 않겠다

 

얼마나 놀라운 복종입니까!

이것이 참된 영성입니다

내가 듣겠다 (하나님 뜻을) 듣겠다

나는 내 뜻을 행하지 않겠다

좋은 일이라 하더라도!’

 

예를 들면, 마르다는 부엌에서 여러 좋은 일들을 하고 있었어요

그렇지만 예수님이 그렇게 하라고 명하신 일이 아니었어요

 

그녀가 마리아에 대해 불평하려고 왔을 때

예수님은 말씀하셨어요

너는 너무 많은 일로 걱정하고 있다

나는 그 모든 일을 원하지 않는다

 

마리아로부터 교훈을 배우십시오

그녀가 뭐하고 있었는지 아시죠?

그녀는 듣고 있었습니다

먼저 주님께 듣고서 그 다음에 주님이 하라고 명하신 일을 하는 겁니다

 

고전4:2절을 리빙바이블은 이렇게 풀어서 은혜스럽게 잘 번역했습니다

종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은

그 주인이 자기에게 하라고 한 그 일을 하는 것이다

*개역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이것이 바로 충성된 faithful’의 의미입니다

이것이 바로 휘장을 지나서 (임재 속에)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예배worship는 그저 감정적 고조가 아닙니다

참된 예배는 그것을 넘어서, 그저 절하는 것을 넘어서

신약성경과 구약성경에 수 백 번 나옵니다

 

제가 여러분께 권장합니다

컨코던스(성구사전)를 가지고 예배 worship’란 단어를 (성경에 모두 다) 찾아보세요

저는 그런 식으로 성경을 연구합니다

 

컨코던스로 신구약 성경을 모두 찾아보면서 제가 발견한 것은

예배 worship’란 하나님 앞에 절하며 주권을 인정하는 것인데

만약 여러분이 그것을 한다면

사람들은 우상에게도 (똑같이) 그렇게 예배합니다

오늘날에는 돈에게 그렇게 예배하죠

 

돈 앞에 엎드려 절하며

나는 당신이 뭘 시키시든지 그대로 하겠습니다합니다

돈이 그들의 우상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예배하고 아버지를 예배하는 것은

엎드려 절하며 말하기를

주님 당신은 제게 모든 것입니다

 

이에 관해 제가 발견한 가장 명확한 구절은 시73:25절입니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이것이 제가 발견한 것입니다

참 예배는 시73:25에 의하면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제가 천국에 가면

나는 거기 있는 맨션이나 황금 길과 다른 모든 것에 동요되지 않을 것입니다

거기엔 주님 당신이 계십니다!

당신이 모든 것이십니다!

 

제가 천국에 올라갔을 때에도

거기서 나는 내 눈물이 닦여진 것에 신경쓰지 않겠어요

나는 주님과 함께 있는 것에만 관심가지겠어요

 

그리고 여기 이 세상에서 나의 소원이 무엇입니까?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제게 필요한 것이 많이 있지만

저는 오직 당신만 원합니다

 

내가 오직 하나님만 원할 때

주님은 나의 필요한 모든 것을 돌보십니다

제가 말씀드립니다

 

당신은 살다보면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참 예배자로 살기로 추구하십시오

주님,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이 땅에서는 다른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주님 말고는!’

 

그러면 여러분은 발견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모든 것을 당신에게 더하신다고요!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집, 아내, 남편, 직장 등

그가 필요한 모든 것을 다 공급하실 것입니다

당신이 그의 나라를 먼저 구할 때! (설교의 흐름상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휘장을 지나서, 즉 자아를 꺾고 하나님 뜻에 순종하여 그 나라를 구할 때)

 

이제 다른 장면을 보겠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림인데, 두 집의 예를 교훈으로 드셨습니다

두 집으로부터 얻는 교훈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산상수훈 끝에 말씀하신 두 집을 기억하십니다

7:24절을 제가 펴서 보겠습니다

 

누구든지 내 말을 듣고서

오늘날 이것은 우리가 성경을 읽거나 교회에 오는 것을 의미하죠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니까요

 

그대로 행하는 자는

이것이 중요합니다

다른 말로, 그는 그저 이해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았어요

말씀을 듣고 잠시 흥분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어요

 

그는 말씀을 듣고 마음이 뜨거웠고 그 다음에 뭘 했습니까?

그는 주님의 뜻대로 행했습니다

 

주님 저는 내 뜻대로 행하지 않겠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행하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말씀은 산상설교의 맨 마지막에 하신 말씀이죠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은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

 

내가 그 말씀을 이해합니다

아마 그 말씀에 마음이 뜨겁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내가 행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니

주님, 저는 제 원수를 사랑하기를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를 사랑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요!’

 

그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이죠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 말씀을 읽고는

내가 그래야지하지만

26절에 보니까 그는 내 말을 듣고도 행하지 않으면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이니라

 

그래서 모래 위에 건축하는 자는

성경을 읽기는 하지만

교회를 정기적으로 다니기는 하지만

그저 말씀을 듣는 것으로 끝내버립니다

말씀을 이해하기도 할 것입니다

마음이 잠시 뜨거워지기도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말씀을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7:21절을 보겠습니다

이 구절은 말씀하기를, 매우 중요한 구절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여기 다시 행하는이 나옵니다

 

이 구절을 자세히 보십시오

이 사람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주여!’ 이 말은 그의 생각은 올발랐다는 것입니다

 

주여, 주여!’ 이 말은 그가 (감정적으로) 고조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감정적으로도 뜨거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의 뜻대로 행치 않았습니다

그는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사실을 믿습니까?

 

///////// 이상 P2 원본 동영상의 20~35분까지 번역 ////////

 

이하 P3 에서 계속 원본 (동영상의 35~ 끝인 49분까지)

   

혼적인가 영적인가? P3

Soulish or Spiritual?

잭 푸닌

 

이제 눅6:48절을 보겠습니다

이 남자는 어디에다 땅을 파고 집을 건축했나요?

 

평소에 저는 반석 위에 건축한 사람, 모래 위에 건축한 사람이

서로 떨어진 장소에서 자기 집을 지은 줄로 알았어요

그게 아니었어요

 

6:48절은 말씀하기를

지혜로운 사람은 <깊이> 팠고

이 말은 모래를 통과해서 기초를 반석 위에 놓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은 집을 서로 인접하게 지었습니다

화면에 위에는 모래, 아래는 반석그림이 나옵니다

 

여러분 모래(위에 세운 집)가 뭔지 아세요?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생각과 감정으로만 믿고

여러분의 의지(will )를 복종시키지 않으면

여전히 모래 위에 짓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흔들리는 이유입니다

그것이 바로 작은 시련이 닥쳐도

우리가 믿음을 잃어버리고 우울해지고 불평하고

웅얼거리고 하는 모든 이유입니다

우리가 모래 위에 지어진 거에요!

 

그저 말씀을 이해 mind 하기는 합니다

또 말씀으로 잠시 감정 emotion이 고조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의지 will를, 하나님 뜻에 복종시키지 않습니다

그렇게 수년을 허비합니다

 

그저 잠시 흥분하고 emotion

그저 성경만 공부하고는 mind

성경이 말씀하는 바를 결코 행하지 않아요, 행하지  않습니다!  will

성경이 말씀하는 바에 결코 우리 의지를 복종시키지 않습니다

 

우리는 부모 말을 절대 안 듣는 강퍅한 아이와 같아요

그 마지막 결과는 흔들리는 것입니다

 

이제 다음 장면을 보겠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이 지은 집입니다

폭풍우가 내리칠 때

그의 집은 생각과 감정 위에 세워졌으므로

 

즉 성경지식 위에 세웠고

말씀으로 잠깐 은혜를 받았지만

주일날 찬양하며 잠시 은혜를 받았지만

그는 결코 자기 의지를 복종시키지 않았고

결코 자기 의지를 부인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매일 시험을 받을 때는 그 끝에 결과는

또는 시련이 닥칠 때는

집이 무너집니다

여러분 이제 이 비유를 이해하시겠나요?

 

다음 그림을 보시겠습니다

반석 위에 집을 세운 사람입니다

 

모래 위에 지은 사람과 같은 지역입니다

그러나 그는 고생을 하고 수고와 돈을 써서

깊이 팠습니다

바위를 폭파시키고 더 깊이 내려가서 (모래 층 아래) 그 반석 위에

기초를 두었어요

 

이것은 자기 의지를 거부했다는 말입니다

제가 말씀드리지만 자기 생각과 감정으로 사는 것은 쉽습니다

그저 표면적으로 모래를 조금 파고 짓는 것은 쉽습니다

 

반석을 쪼개는 것은 힘이 듭니다

비용도 들고요

이것은 제자도 discipline-ship 를 뜻합니다

 

저는 복음전도자가 아닙니다

그건 제가 그리스도의 몸에서 부름 받은 분야가 아니에요

 

저는 놀라운 사명을 감당하는 수 천의 복음전도자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들은 전도해서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데려오죠

 

그러나 하나님은 저를 제자를 만들도록부르셨습니다

복음전도자에 의해 전도 받아 회심한 사람들을

제가 제자로 만들죠

 

제가 제자도에 관한 성경구절을 찾습니다

거기에 보면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집을 짓기 전에 비용을 계산해 보라14:28~30

집을 짓기 전에 먼저 앉아서 비용을 계산해 보라

 

모래 위에 짓는 것은 비용이 쌉니다

깊이 내려가서 자기 뜻을 매일 부인하고

반석 위에 세우는 것은 비용이 비쌉니다

 

그래서 복음전도자는

앞으로 나와서 그리스도를 영접하세요! (라며 쉽게 말합니다)

저는 찰스 피니로부터 해서 빌리 그레이엄까지

사람들을 강단 앞으로 초청해서 많은 사람들이 믿게 된 일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건 놀라운 일이죠 그렇게 초청으로 전도하는 모든 분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제 부르심은 제자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저는 사람들을 앞으로 나오라고 초청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앉아서 비용을 계산하세요!’ 라고 합니다

 

며칠 동안 비용 계산 후에 제게 와서 말해주세요

당신이 그리스도를 따르기를 진정 원하는지 아닌지!

감정적으로 흥분만 하지 말고

~ 내가 믿겠어요하지 말고요!

 

저는 전도를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강단 앞으로 나오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으로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들은 이제 성막 마당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들은 이제 성령으로 충만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배우고 제자가 되어져야 합니다

휘장 가운데로 들어가고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제자도를 의미합니다

그다음에 그들의 삶은 안정적이 됩니다

 

...............

 

제가 믿기에, 이것은 기독교계에 큰 비극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설교를 듣습니다

 

그런데 왜 여러분이 간음 혹은 동성애에 빠진 일부 설교자들의 설교를 듣습니까?

가난한 사람의 십일조를 속여 빼앗아

비싼 자동차나 비행기를 사는 일부 설교자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습니까?

이들은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습니까?

 

너무 많은 멍청한 신자들이 앉아서

이들에게 헌금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이들 신자들 역시 혼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영적인 신자들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들은 분변하지 못합니다

자기 설교자가 영적인지 아니면 혼적인지!

 

그 설교자는 혼적이지만 말을 유창하게 합니다

그는 사람들을 확신시키는 능력이 있어요

그는 마치 정치가가 현란한 말로 사람들을 감동시키듯이

그와 같이 신자들을 김동시킵니다

그러나 그는 영적인 설교자가 아닙니다

 

그는 여러분을 영적인 삶으로 인도할 수 없어요

왜냐면 그는 스스로 자기 부인의 길을 결코 간 본 적이 없거든요

 

그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를 숭배하게 합니다

여러분을 인도해서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지 않고요

 

................

 

우리는 계시록에서 읽습니다

사도요한이 엎드려 천사에게 경배했습니다

 

그런데 천사라는 헬라어는

메신저(소식 전달자)’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그와 같이 읽어봅니다  삭

 

그는 메신저 천사를 엎드려 경배했어요

그러나 천사는 그를 일으켜 세우고는

나를 경배하지 마세요 하나님을 경배하십시오

그가 참 설교자입니다

그는 결코 자기를 경배하게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는 결코 신자들을 자기에게 붙어있게 하지 않습니다

그는 항상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신자들은 몰라서 설교자를 숭상하고 경배할 수 있어요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들을 멀리 합니다

 

저는 많은 신자들이 제게 붙으려 했지만

그들을 멀리했습니다

저는 죄송하다며 그들을 멀리 했지요

 

심지어 저는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그리스도를 먼저 의지할 때까지

저는 당신을 보기를 원치 않습니다

 

왜냐면 당신이 나를 의지하면

당신은 안정적이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은 모래 위에 지은 사람처럼 될 것입니다

 

마지막 화면을 보겠습니다

십자가의 길입니다

이것이 제가 정말 이르기 원하는 곳입니다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나요

우리가 어떻게 그분을 뒤따를 수 있습니까?

 

9:23절에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나는 여러분이 모두 예수님을 따르기를 원한다고 봅니다

 

9:23절에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그런 사람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이것은 그저 (예수님을) 이해하는 정도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잠시 흥분하는 정도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 감정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정도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이것은 자기 의지에 No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이것은 죽는 것을 의미하죠

 

여기 내 의지가 있습니다 수평으로 놓인 막대기,

하나님의 뜻(의지)’는 수직적인 막대기!

그것이 엇나가는 것이 cross 곳이 십자가cross입니다

거기서 내가 내 뜻에 대해 죽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죠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님과 같습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이것이 그분을 따른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평생이 그와 같으셨습니다

그분이 어린아이 였을 때

예수님은 요셉과 마리아에게 순종하셔야 했습니다

그들은 불완전했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했지만 부모는 불완전했어요

여러분은 당신이 아는 것의 10%만 아는 사장 밑에서 일해본 적이 있습니까?

혹은 불완전하고 부패한 사장 밑에서요

그게 쉬었습니까?

 

상상해 보세요 예수님은 어리지만 모든 면에 완전합니다

그런데 아빠와 엄마가 말다투는 것을 봅니다

그런다고 부모를 존경하지 않았을까요?

 

여러분은 요셉과 마리아가 말다툼 했다고 믿습니까?

크리스천 남편과 아내도 말다툼하지요?

그렇다면 요셉과 마리아는요?

네 성자 요셉과 성녀 마리아도 말다툼했을 겁니다

 

예수님이 그 장면을 보셨습니다

그렇지만 부모를 멸시하지는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성(영적인 삶)입니다

 

그분은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자기 의지를 거부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기 위해서요!

 

사람들은 그분께 침을 뱉었어요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사람들은 그분을 바알세불로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언제나 자기 의지를 부인하셨습니다

그분은 자기를 따르는 예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십자가를 지고

 

9:23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매일 십자가를 지고

 

우리는 그리스도를 우리 구세주로 한 번 영접합니다

세례로 한 번 받는 것입니다

 

9:23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여러분은 자기를 부인하셔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원하신다면!

 

이것이 바로 참된 영성(=영적인 삶)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혼적인 삶이 무엇인지 조금이라도 이해하셨기 바랍니다

자기 생각이나 감정으로 사는 삶말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삶도 이해하셨죠

 

예배란, 혼적인 영역을 넘어가는 것입니다

혼적인 영역, 즉 사고력과 감정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것들로부터 매일 예배하는 삶으로 가야 됩니다

이것은 언제나 말로만이 아닙니다

 

최고 높은 예배의 형태는

때때로 깊은 고요속에 빠집니다

 

지성소 가운데 사는 것은

나의 하나님, 당신은 어찌 그리 놀라우신지요!

당신의 장엄함은 너무나 환합니다!

예수님의 아버지여 모든 이들을 사랑하시는 분

휴거는 어떻게 일어나겠습니까?

당신의 보좌 앞에 엎으릴지어다!

주님만을 응시할지어다!’

 

이런 지성소의 경배를 이해하시겠나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존전 앞에서 지루해하지 않나요?

왜 그런가요?

왜냐면 여러분은 너무 많이 혼적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16;11

 

이런 사람은 인터넷 포르노의 즐거움을 원치 않을 것입니다

지성에안에서 살 때에요!

 

이것이 승리의 길입니다

여러분이 아버지의 식탁에서 음식을 먹는다면

탕자처럼 돼지들이 먹는 것을 원치 않을 것입니다

 

돼지 음식을 먹지 마!’ 라고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대신에아버지의 식탁으로 와서 먹으세요!’

여러분 자신을 부인하시고 하나님의 존전앞에서 사십시오!’

 

예수 믿기 시작할 때 성령으로 충만해 지는 것이 있습니다

아마도 여러분 중에 일부는 그렇게 충만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기에 대해

제가 발견한 것을 말씀드릴게요

 

여러분이 십자가의 길을 걸어갈 때

이것은 매일 자신을 부인하는 길입니다  삭

 

여러분 우리가 처음에 그리스도께 나올 때는

우리의 용량이 작은 잔과 같습니다

성경은 구원의 잔을 말씀합니다

 

우리는 주여 나를 채우소서하고

주님은 그 잔을 채우십니다

 

그러나 내가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면서

그 잔은 확장되어서 양동이처럼 커집니다

그는 다시 주여 나를 채우소서합니다  *성령충만

 

내가 계속적으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면

양동이는 이제 큰 목욕 욕조처럼 커집니다

하나님이 나를 다시 채우십니다  *성령충만

 

내가 계속해서 십자가의 길을 가면

그 목욕 욕조는 이제 연못처럼 커집니다

하나님이 다시 나를 채우십니다  *성령충만

 

그러면 그 연못은 이제 강이 됩니다

결국 많은 강이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성경말씀이 성취됩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셔 마셔라

 

그 깊은 속에서부터

자기 혼으로부터가 아닙니다

7:37~38절입니다

그 (깊은 지성소) 속에서부터자기 영으로부터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이것이 우리 각자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는 이 단계까지 도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속 가장 깊은 곳까지 임하셔서

그래서 우리가 주위 수 천 사람들에게 복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여러분을 이런 높은 단계로 초대하기 원합니다

혼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단계입니다

즉 성령안에서의 (임재, 지성소의) 삶입니다

 

아마 여러분은 제가 말씀드린 것을 이해 못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혼과 영에 대해서 더 알기 원하시면

이 책을 읽으십시오

<예수님처럼 살기 Living As Jesus Lived>입니다

*‘잭 푸닌 설교모음에 있음

 

대부분 사람들은 예수님처럼 살기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그 책을 읽기를 권합니다

www.cfcindia.com에도 있습니다 무료입니다

많은 다른 책과 설교도 있습니다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귀있는 자들은 들으십시오

 

여기서 오늘 아침에도 들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내 자녀들아 너희가 있는 곳에서 더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라

그 낮은 수준에서 살지 말거라

돼지가 먹는 것을 먹으면서 세월을 허비하지 말아라

와서 내 식탁에 앉아라

여러분은 그 비용을 계산해보고나서 이렇게 대답하시겠나요?’

네 주님, 제가 기꺼이 원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 전에

제게 남은 몇 년의 삶 동안

제가 살기 원하는 삶입니다

         

지금 조용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임재 속에 앉아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주님께 응답하십시오

 

이 아침에 하나님께서 여러분께 말씀하시는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하십시오

 

주님, 저는 그 분야에서 주님께 복종하기 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 다음 복종할 일, 또 다음 일을 계속 보여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당신이 걸어갈 길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아주 영광스러운 삶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여러분께 아주 중대한 결정을 내리라고 초청하십니다

지금이 당신에게 아주 중대한 결정을 내릴 순간입니다

주님 제가 비용을 계산했습니다

그리고 이 길이 내가 가기 원하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