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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잘 좋아하는 법

LNCK 2019. 10. 10. 16:12

◈가장 잘 좋아하는 법         마7:12, 고전13:1~13       2019.09.29.설교녹취

 부제 : 믿음, 소망, 사랑의 의미 



   

고전13: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가장 잘 좋아하는 법 >이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합니다 <가장 절 좋아하는 법 >

 

고린도전서 13 장 을 사랑장 이라고 일컫습니다

그런데 이 고린도전서 13 장을 말씀하시기

바로 직전 12 장 마지막 절을 이렇게 표현되어 있어요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사모하라라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 중에

마태복음 7 장에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라고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는데 바로 그 내용이죠

구하는 것이고, 찾는 것이고, 두드리는 것입니다

 

근데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그렇게 구하고 찾고 두드림에 있어서

가장 좋은 길을 보이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사랑과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더 크게 더 근원적으로

고전 13 장의 내용, 주제를 파악하려면

'좋은 것을 구하는 방법'이 된다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구하는 방법에 대해서 얘기 하는데

"사랑"이 그 좋은 것을 구함에 있어

핵심적이라는 것입니다

 

 고전13장 사랑과 마7장 좋은 것의 연결

그래서 고전13 장은

'구하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두드리라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그다음에 마7:12 에 황금률이 나오지 않습니까

 

바로 7:7~12 절까지의 내용을

사도 바울 식으로 (고전13장에바꾸어서 표현한 것이다

이렇게 보입니다

 

그 마 7:7 이하를 보게 되면

결론은 7 절부터 12 절까지 내용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그러면 좋은 것으로 주시리라

그러니까 '좋은 것'을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입니다

 

그러면 좋은 것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게 뭐지요?

좋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좋은 것을 구합니다

"좋아함 속에" 좋은 것을 구하고

좋은 것을 찾고, 좋은 것을 두드림이 속해 있어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요지는 뭐냐면

좋은 것을 찾고 좋은 것을 두드려라고 말씀 하실

필요가 없는 거예요

모든 인간이 이미 다 '좋아하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요지는 뭐냐면

좋은 것을 찾고 좋은 것을 두드려라고 말씀 하실

필요가 없는 거예요 모든 인간이 이미 다

좋아하는 것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요지는 뭐냐면

좋은 것을 찾고 좋은 것을 두드려라고 말씀 하실

필요가 없는 거예요 모든 인간이 이미 다

좋아하는 것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고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예수님의 말씀은

이렇게 누구나 인간이라면 다 좋아하는 것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좋아하기를 하고 있는데

내가 가르쳐 주는 대로 좋아하기를 하라 는 얘기입니다

 

그러면 진짜 좋은 것을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만 정말 너희에게

진짜 좋은 것을 줄 수 있는 분이시다

 

이 내용을 고린도전서 13장 에서

사도 바울은 자기 방식으로

특히 고린도 교회의 문제와 연관지어서

고린도교회 교회 생활을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는 것을

염두에 두고 바꾸어 쓴 것입니다

 

그 당시 고린도 교회는 은사로 인해서

교회의 갈등이 굉장히 심하게 생겼던 모양입니다

내가 받은 방언의 은사가 진짜고

네가 한다는 예언의 은사를 가짜다

아니다 예언의 은사가 진짜고 방언은 더 하찮은 것이다

 

그리고 신앙생활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그리고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십자가를 생활화 하라 라는데 초점을 맞추지 않고

 

그리고 신앙생활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그리고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십자가를 생활화 하라 라는데 초점을 맞추지 않고

 

그래서 그 은사와 관계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마 7장에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그와 같은 취지의 말씀을 바울이 반복하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랑의 가치에 대해서 너무나도 유명하지요?

13'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믿음, 소망, 사랑!

옛적부터 인간이면 누구나

'좋아함'을 하면서 살아 갑니다

 

근데 좋아함 이라고 하는 것을

좋아함이 무엇이냐?

인간이면 누구나 다 하는 그 좋아함 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이냐 라는 것을

 

그러니까 가장 명확하게

인간이면 누구나 지금도 하고 있는 '좋아함' 

무엇인가를 정의를 내려 주신 것입니다

고전13장에서 사도바울이 !

 

그게 뭐에요?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겁니다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여러분 이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관계를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복음을 생활하는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그리고 이 믿음 소망 사랑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나타나는

오해나 그릇됨이 신앙에 치명적입니다

 

근데 이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라는 게 다 

'좋아함' 속에 포함되어 있는 믿음이고

'좋아함속에 포함되어 있는 소망이고

'좋아함' 속에 포함되어 있는 사랑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오디오 시스템에

스피커 하나의 3 천만 원을 들이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근데 어떤 사람은 이 스피커는 몇 만 원짜리 컴퓨터에

달려있는 스피커 만으로도 만족하고

마운틴 바이크에 정말 뭐 최고급 소재로 만들어진

마운틴 바이크를 구입하기 위해

몇 천 만원을 들이는 사람이 있어요

 

좋아하는 것이 각자 다르다는 것이고

주관적인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좋은 것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것이냐?

내가 구하고 찾고 두드리고 있는 것이 좋은 것인데

 

그 좋은 것은,

얻으면 손에 쥐면, 가지면

내게 만족이 주어지고 기쁨이 주어진다고

믿어지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이것이 좋은 것의 정의입니다

 

누구나 다 인간이면 '좋아함'

추구하면서 삽니다

 

좋다고 여겨지는 것들은 이미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에 대한 믿음이 생겨있습니다

 

'믿음'이 있기 때문에 뭣을 좋아합니다

왜 어떤 사람은 마운틴 바이크를 그렇게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똑같은 돈을 오디오 시스템 스피커를

사는데 그렇게 돈을 들입니까

 

어떤 사람은 명품백을 사는데 돈을

빚을 내서라도 돈을 들이는데

어떤 사람은 빚을 내서라도 왜 여행을 갑니까

내가 여행에 대해서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여행을 믿는다' 라고!

 

여행이 내게 기쁨을 준다, 만족을 준다고 믿습니다

그렇게 되면 나타나는 두 번째 단계가 있습니다

 

분명히 저것을 가지면, 저것을 이루면,

저것을 손에 넣으면

기쁘고 만족하리라고 믿어지게 되면

그 다음에는 그것을 소망 하게 됩니다

(믿음-소망-사랑)

 

뭣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기쁨과 만족을 될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갖고 싶어 하고 바라게 되고

뛰어서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서 노력하게 됩니다

 

이게 소망의 단계입니다

그러므로  '좋아함'속에 믿음이 있고

'좋아함' 속에서 소망이 들어 있습니다

 

누구나.. 신앙인에게만 믿음과 소망이 있는 게 아니라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뭔가 자기가 좋아하는 게 있고

그 좋아함 속에는 "믿음"이 들어있고

"소망"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면 "사랑"은 뭡니까?

사랑은 드디어 그렇게 믿어지는

그 좋아하는 것을 바라고 소망 하다가

드디어 갖게 되어서

 

그 좋은 것, 내게 좋은 것이라고 여겨지는 그것을

손에 쥐는 것이고, 좋은 것과 하나가 되는 것이고,

 

접촉과 연합과 하나됨 일어나는... 좋은 것과!

이게 바로 "사랑"입니다

 

그래서 믿음 소망 사랑은 전부

나의 좋아함 속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고전 12:31 '내가 너희에게 가장 좋은 길을 보이리라'

'가장 큰 은사를 사모하라'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 7:7

사모하라는 뜻이 마7:7과 똑같습니다

 

고전 12:31 '내가 너희에게 가장 좋은 길을 보이리라'

'가장 큰 은사를 사모하라'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 7:7

사모하라는 뜻이 마7:7과 똑같습니다

 

 

가장 좋은 것

좋은 길을 보이리라는 말씀은

좋은 것을 얻는 길을 보이리라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모든 일반인에게도 다 일어나고 있는 '좋아함'

마음의 작용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교회와 신앙에 치명적인 오해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이 일반적이라는 걸 알아야 됩니다

모든 사람은 믿음 소망 사랑 속에 살고 있다는 겁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러냐?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섬긴다'는 것은  재물을 좋아 한다는 것입니다

재물이 왜 내게 좋은 것으로 여겨집니까?

재물이 내게 만족과 기쁨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는 겁니까?

이미 재물을 좋아함 속에서

내가 마음으로 볼 수 있는 믿음이 다 지불이 돼 버린

것입니다 재물에게!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도

이제는 내 마음속에서 볼 수 있는 믿음이 지불될 (드려질)

여지가 남아 있지를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겸하여 섬길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렇게 얘기하십니다

처자나 부모나 형제나 자매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다

 

그러니까 처자나 부모나 형제나 자매를 좋아하게 되면..

왜 좋아합니까?

 

아내나 자식이 내게 기쁨과 만족을 될 거라고

믿기 때문에 아내와 자식을 좋아합니다

 

그러면 '내게 합당치 않다'

주님을 따라가는 거 뭐예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이고 하나님을 좋아하는 길입니다

 

근데 하나님을 좋아하기에는

처자를 좋아해 버렸기 때문에

 이미 처자에게로 '믿음'이 가 버렸어요

 

그러므로 예수님을 아무리 부르고 따라간다고 해봐야

실제로 하나님을 좋아할 수 있기 위해서

그 안에 들어 있어야 되는 믿음이 표현될 여지가 없습니다

이미 처자에게 가 버렸습니다 내 믿음이!

 

근데 우리가 그동안 어떻게 믿고 살았습니까?

실제로 좋아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형통을 좋아합니다

그 형통을 좋아함 속에는 믿음이 들어 있고

소망도 형통이 이루어질 날에 대한 바람(소망)이에요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의 형통을 좋아하면

형통이 내게 기쁨이 되고 만족이 된다는 믿음이

이미 지불되어버렸기 때문에

 

형통을 좋아하고 있는 중에 하나님 이름을 아무리 불러도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을 좋아해야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좋아한다는 게 뭡니까?

하나님만이, 하나님 그 자신이 내게 기쁨이 되고

만족이 된다고 믿어지는 게 (하나님을) 믿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 자신을 소망하는 게

진짜 기독교가 말하는 소망인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고

하나님을 내 마음이 가진 상태가 "사랑"의 상태입니다

 

여기 고린도 13 장에 '사랑'

바로 이렇게 '좋아함' 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지 못하면

정확하게 이해가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좋아함과 필요함을

혼동하고 사용을 했던 것 같아요

 

영어에서도 I need you

I like you, I love you가 구분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필요로 하는 것''좋아하는 것'의 차이는 뭡니까?

필요로 하는 것은 필요로 하는 부분만 채워지고 나면

그 다음에는 그것을 더 이상 거들떠 보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좋아하는 것'

필요로 하는 것 같아서 그것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것이 마음에 딱 남아 있는 상태!

마음이 그것을 바라게 되는 상태가 좋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필요로 했지, 사랑하지 않았다

 

한국교회가 새마을 운동과 함께 잘 살아보세 라는 모토로

달리기 시작한 거예요 모든 전국을 휩쓰는 부흥회의 마지

막 목표는 잘 살아 보는 겁니다 이 세상에서

 

일반인들은 새마을운동으로 잘 살아 보기로 한 것이고

기독교 교회 안에서는 부흥회와 신앙으로

잘 살아 보기를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서 하나님을 부르고 예수님을 불렀어요

그때 한참 전성기에 다닐 때 80 년대말 90 년대 초까지

1,200 만 까지라는 숫자가 경이롭게도

우리 귀에 들려왔어요

 

근데 이제 80 년대가 지나고 90 년대 접어들고

여러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11 위의 경제대국을 건설하면서

이제 개인소득이 일본을 육박하는 단계까지 이르면서

 

먹고 사는 것, 입고 사는 것은 전 세계 Top 입니다

제가 미국과 캐나다와 유럽을 경험한 바로는

먹고 입고 하는 것은 대한민국이 1 등입니다

미국 저리 가라 합니다

 

그렇게 되고 나니까 지금 뭐 어떤 소리가 들립니까?

1,200 만 이었다고 하는 기독교가 600만 얘기가 들리고

그나마도 주일 출석하는 사람은 250 만 얘기가 들립니다

 

그리고 교회는 그동안 어떤 신학이 교회를 장악했냐면

교회성장학 이라는 풀러신학교 에서 굴러 들어온

괴상한 신학사상이

대한민국 교회를 다 섭렵하고 정복했습니다

 

교회성장학을 몇 십 년 동안 외쳤는데

교회는 1,200 에서 600 만으로,

600만 에서 250 만명으로 줄어들었고

250만명 교회 출석조차도 허수 일수 있어요

 

그렇게 교회가 성장하기를 바래서 몸부림 쳤습니다만

반의 반토막도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겁니다

왜 그래요?

 

하나님을 '좋아함(사랑함)' 문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이,

하나님을 좋아함 속에 포함된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걸

잊었기  때문에

 

대신에 형통을 좋아하고 환경적 새마을을 좋아하고

잘 먹고 잘 사는 걸 좋아하면서도

(거기에 믿음 소망 사랑을 두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예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필요로 했다는 겁니다

필요로 한 이유가 뭐에요?

잘 먹고 잘 살려고!

 

새마을운동을 할 때 교회는 무엇을 외쳤어야 됩니까?

믿음 소망 사랑이

하나님을 좋아함 안에 있어야 된다...

 

새마을 운동, 잘 먹고 잘 사는 새마을이 좋아진다면

거기에 믿음이 지불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믿음을 되찾아와서

 

하나님만이 좋아하고 만족하고 기쁨 줄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라고 하고

하나님께만 믿음을 지불해야 되는 것인데

 

여전히 환경적 새마을운동

즉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좋아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 결과가

1200 만까지 갔다가 다 이렇게 줄어들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잘못된 것이라면 계속 부흥 하는 것은

병이 도지고 병이 더욱 확장되는 겁니다

 

그래서 (거품 빠짐이) 오히려 제대로 되어 가는 겁니다

그래서 필요로 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던

모든 사람들이 다 떨어져 나가고

하나님이 좋아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로부터

교회가 다시 시작 되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오히려 더 바른 과정을 겪고 있다고 봅니다

문제는 믿음 소망 사랑이

(하나님을) 좋아함 속에 있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되는 게 중요하다 겁니다

 

내가 뭔가를 좋아하면

이미 그 좋아함 속에는 믿음이 지불되고 있기 때문에

그 좋아하는 대상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니다

라는 것을 깨달아야 됩니다

 

믿음, 소망, 사랑은 은사(선물)입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믿음 소망 사랑을

이것을 성경에서 은사라고 말하는 이유가 뭐냐?

 

굳이 고전 13장에서 '은사'라고 말하는 이유는 뭐냐?

은사라는 게 뭐에요, 은사에 정의가 뭡니까?

은사 라는 것은 내 안에 없는 것이

밖으로 부터 주어진다는 의미입니다

 

내게 이미 있는 것을 발전시키는 것이 은사가 아니에요

내게 있는 것을 수정하고 개선하는 것이 은사가 아니에요

아예 내 속에는 없어요

근데 밖으로부터 주어지는 게 은사입니다

 

그런데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다 은사입니다

그 중에서 사랑이 제일이다

사랑이 제일이죠 당연히

좋아하고 있는 그것을 얻는 것이고

좋아하는 것과 하나가 되는 상태니까!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 에서 좋은 길,

가장 큰 은사를 사모하고 그것을 구하는 좋은 길이란 것은

대상을 하나님으로 정하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근데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좋은 분으로 믿게 되는 것은

돈이 좋은 거라고 믿게 되는 것과

내 아내와 내 자식의 형통이 좋은 것이라고 믿게되는 것과

는 다르게 인간 안에서 발생할 수 있는 믿음이 아닙니다

 

분명히 좋아함 속에 들어 있는 믿음인 건 맞지만

이 믿음 만큼은

대상이 하나님을 경우에는

(은사로) 주어지지 않으면 가질 수 없습니다

 

여기서는 '은사'를 통해서 말씀 하고 있지만

은사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예수님께서 마7 장에서 얘기하신 좋은 것에 관한 관점

으로 고린도전서에서 얘기하고 계십니다

 

최고의 은사가 뭡니까?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내게 주어졌을때가

최고의 은사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고전 13 장의 사랑은 뭘 말하는 거냐?

하나님 자신이 최고의 은사라는 얘기를 하는 것이죠

 

그리고 하나님 자신을 좋아함이 은사라는 거예요

아무나 하나님을 좋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에 의해서 은사로서 주어지지 않으면

하나님을 좋아 할 수 있는 마음을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좋아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구하라는 겁니다

하나님을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도록 구하라는 말입니다

좋아하는 것 자체가 구하는 것인데

구하기 전에 하나님을 구할 수 있도록 구하라는 겁니다

 

이게 최고의 은사를 향한 사모함이고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 소망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소용 없다!

 

여러분, 본문을 보면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소용없다

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 지라도 소용 없다

유익이 없다고 합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은사를 받고

어떤 기가 막힌 헌신을 해도

내 마음의 만족과 기쁨이 안 주어질 것이라는 겁니다

유익이 없다는 얘기가 고전13:3

 

생각해 보세요 내 몸을 불사르는 데 내어줄 정도로

이 자체가 사랑 아닙니까?

이런 사랑이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헌신과 충성과 그런 자기희생적

세상에서 말하는 의인이라고

세상에서 의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테레사 수녀 같은 그런 생애를 사는 게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을 좋아하지 않으면)

'내게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고전13:3 

사람들은 칭송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내게는 유익이 없다는 겁니다

 

왜요? 아무리 사랑과 봉사와 희생을 해도

내 마음에 기쁨과 만족은 안 생긴다는 겁니다

오직 하나님으로만 생긴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구하라(믿음 소망 사랑하라) 겁니다

 

그리고 '사랑은 오래 참고..' 하면서

엄청나게 여러가지 덕목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사랑의 본질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감기 걸리면 콧물이 나고 기침이 나고 열이 나지 않습니까

사랑에 걸렸을 때 사랑의 걸린 상태에서

다른 사람과 관계 할 때 나타나는 증상들입니다

 

그러므로 재물을 제일 좋아하면서도

교회 와서 하나님을 부르는 것은

이제 용납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건 재물을 믿는 것이지요

 

자식의 형통을 좋아하고

건강 장수를 좋아하고 명품백을 좋아하면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이제 교회에서 용납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미 거기에 믿음이 지불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아무리 불러도

그 하나님께는 지불될 믿음이 존재하지 않는 겁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의 말대로

하나님을 좋은 것 주시는 분으로 구할 수 있는 그 은사는

어떻게 구해야 되는 겁니까?

큰 은사를 구하는 방법이 뭐에요?

(자아이 죽음) 십자가를 붙잡는 겁니다

 

진짜 하나님을 좋아하고

다른 모든 것을 좋아하지 않기를 원한다면

십자가를 붙잡고

세상에서 자꾸 내게 좋은 것

내게 좋은 것이다 라고 어필해 들어오고

 

내 마음을 뚫고 들어오는 모든 좋은 것들,

세상에 있는 좋은 것들에 대해서

날마다 순간마다 죽는 것이

하나님. 좋은 것 되시는 분을 믿는, 소망하는, 사랑하는

은사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일하는 거예요

 

세상에서 좋게 믿어지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그 믿음을 따라가지 않고

그 믿음이 마귀의 속임수 인걸 알고

그걸 믿고 있는 내 자신이 삽자가에서 죽음을 반복하는

겁니다

 

그럼으로써 하나님만이 좋으심을 선언고백하는 것이고

진짜 하나님만이 좋은 분임을 믿어지고 소망하게 되고

사랑의 단계까지 갈 수 있는 은사의 삶을 살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생활화를 통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