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카테고리 없음

방언 설교 4편 모음

LNCK 2019. 11. 12. 15:01

방언 설교 4편 모음            롬8:26~27, 고전14:2           설교 4편 중에 발췌  *방언 모음

 

*Audio only (아래 녹취록)



1. 방언으로 부흥한다 하지만.. 박영선 목사     *위 Audio의 0:00~4:00

 

우리는 사실 한국교회가 부흥기를 겪었던 지난 30년 동안에

그 부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하나님이 우리 한국교회에 허락했던 것이

구원의 확신과 그리고 방언이었습니다

 

방언은 사실 중지되었다고 믿었던 긴 교회사를 뛰어넘어서

초대교회에 있었고

중간 2천년 교회사 속에서는 두드러진 기억이 없다가

20세기에 들어서 방언이 굉장히 두드러진 교회 안의 성령 임재의 특징이 되었습니다

 

20세기를 교회사적으로 정리할 때

20세기에 교회사에 가장 큰 사건과 증거가, 특징이 뭐냐면

<성령은사 운동>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한국교회의 경험으로는

지난 30년이 한국교회사적으로 어떤 시대였나 그러면

부흥시대였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보면

부흥 중에서도 특히 오순절 성령파의 약진이라는 말로

20세기를 결론지었습니다

 

그 성령운동이 21세기에도 교회의 신앙운동을 주도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부흥이 20세기와 21세기에

남미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크게

아프리카에서 동일하게 크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20세기에 일어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국교회에서 30년을 본 게 다 있지만

전 세계적인 안목에서는

남미와 아프리카에서 일어난 성령운동과 기독교부흥운동에 대하여

교회사가들이 주목하고 있고

기억해야 될 사건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일하심으로

아주 단 시간에

어떤 개인과 교회를

확신과 자신 God 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설명으로 해서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킬 방법은 없습니다 (어렵습니다)

감동은 그보다 훨씬 극적인 것입니다

 

하나의 긴 시간에 걸쳐서 경험해야 할 것을,

시간을 압축해서

어느 한 장소에서 일이 터질 때

우리는 감동합니다 잊을 수 없는 사건이 됩니다

 

하나님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오시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

이것이 성령운동입니다

 

방언도 그 중에 하나입니다

예언도 있고, 신유의 은사도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감사한 일로 받아야 하고

또 사모해야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요구하는 것과 같이 사모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일하심,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알리심,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향하여

우리를 각성시키고, 분발시키는 것이지,

그것 자체가 내용이 아닙니다

 

단 시간에 감동으로 받았기 때문에

내용은 없어지고

체험이라는 사건만 남게 되는 것을

조심해야 되는 것입니다

 

 

2. 방언은 자기의 덕을 세운다           *동영상의 4:00~10:30

 

바울이 네 가지를 강조합니다

 

1) 방언을 포함해서 모든 은사는, 그리고 직분은

한 성령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한 성령님이 각양 각색의 은사를 주신 것이다

 

2) 때문에 거기에는

따라서 높고 낮음, 우월하고 열등한 개념이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이 두 번째 가르침입니다

 

3) 은사를 준 목적은

공동체와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서

하나님이 은사를 주신 것이다

이걸 쭈욱 설명했습니다

 

4) 은사라는 것은

그래서 사랑이라는 방법으로

유익이 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이 석장(고전12~14)에 걸쳐서 강조를 하는 것입니다

 

, 4가지입니다

사도바울이 그런 고린도교회의 혼란과 무질서를

익히 듣고 알아서 4가지 지침을 성경에 기록한 것입니다

 

1) 은사나 직분은 한 성령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2) 따라서 각양 각색의 은사나 지위는 높고 낮음이나 우열의 개념이 있을 수 없다

 

3) 은사의 주된 목적은 섬기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하나님의 필요에 따라서 주시는 것이다

 

4) 은사라는 것은, 그래서 사랑의 방식으로만 설명되어지고

나눠져야 되고, 쓰여져야 된다

 

이 네 가지 지침을 말한 것이

사실상 12, 13, 14, 석장에 걸친 중요한 가르침의 골자입니다

 

방언도 이 맥락에서 이해하지 않으면 큰 혼란이 일어납니다

이런 쪽 사람들이 많은데,

신앙의 척도는 아니나 신앙성장에 도움이 된다

 

그러니까 신앙회복과 무기력함에 빠져 있을 때

그 상태에서 성장을 하고 회복을 하는데

방언의 은사 같은 것이

그 사람이 회복, 성장으로 들어가는데

어떤 전환점이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 성령의 은사를 경험하면서

신앙의 젊은 세계로 들어가는 계기나 동기나 전환점이 될 수 있어요

 

그게 원리화 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은혜를 받으려면 전부 방언을 받아야 된다

그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그런 방언의 은사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삶을 변화시키는 동기나 계기는 충분히 될 수 있습니다

 

알아야 될 또 하나는,

그러면 방언을 해서 뭐가 유익이 되느냐?

이게 오늘 여러분들이 제일 궁금해하는 대목입니다

 

여러분, 방언하면 유익이 될까요, 안 될까요?

(신앙에) 유익이 됩니다

 

그러면, 방언 안 받은 사람은 유익이 안 되는 것인가요?

그건 아닙니다

 

방언 안 받은 사람은

다른 (은사)쪽으로도 얼마든지 더 큰 유익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고전14:4절을 보세요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거기에 보면, ‘방언을 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자기 신앙을 건축하듯이 세우고)’

 

자 이 말씀을 조금 더 정확하게 이해를 하십시다

우리 한글 성경을 보면,

방언을 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그랬으니까

이것은 자기 덕(신앙의 건축)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구나..’

이런 이해를 일차적으로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원문을 들여다 보면 이 말이 이렇게 되어 있네요

오이코도메오’ *덕을 세운다

이 말은 원어로 집을 짓는다, 건축한다는 뜻입니다

 

참고로 오이코스입니다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운다는 말은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 (신앙의, 믿음의) 집을 세운다는 말입니다

그럼 교회에서 은 뭡니까?

고전3:16너희가 성령이 거하시는 전()인줄 알지 못하느냐?’

 

종합하면,

방언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뭐냐면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방언을 절대 자신과 하나님과만 개인적으로 말해야지

공개적으로 공중에서 통역 없이 하는 모든 방언 기도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갈 개연성이 굉장히 많습니다

(*개연성 : 현재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앞으로 일어날 가능성)

 

 

3. 하나님과 수준 차이가 있으니까 방언으로 기도! 10:32~20:45

 

8:26~27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통역을 주시는 경우는

꼭 예배 때 방언이 터져 나올 때

하나님께서 그게 모든 회중들에게 무슨 뜻인지 가르치시기 위해서

통역을 주시는 거죠

 

그렇지 않은 경우는

혼자서 기도하거나 또 통성기도할 때 방언을 하게 됩니다

 

성경에 방언보다 예언을 더 하기를 힘쓰라

방언에 대해 좀 거부감을 가진 분들이

성경을 읽다가, 성경에 방언보다는 예언이 더 낫다고 했다,

‘1만 마디 방언보다 5마디라도 예언하기를 힘쓰라라고 가르친 내용을 보고

방언은 성경에서도 별로 중요하게 여긴 게 아니구나하고

흔히 생각하는데,

그런 뜻이 아니고,

 

공중예배를 드릴 때, 방언을 하는 것은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예배 질서에 안 맞는 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니까요

 

그러니까 공중예배를 드릴 때, 통역하는 은사가 있어서 누가 통역해주지 않는다면

차라리 예언을 하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받아서

우리가 다 알아듣는 말로 말을 하게 되는 예언을 하지,

 

무슨 말인지 모르는 방언은 혼자 기도할 때 하라.. 그런 뜻이지

방언 자체가 가치가 적다는 말은 아닙니다

 

예배 질서에 대해 말씀하실 때,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왜 기도를 해야 되나?’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방언에 대해서 아직 마음이 안 열린 분 중에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왜 기도를 하나?’

 

기도 시간이 그래도 짧은데

하나님 앞에 내가 구해야 될 것들을 또박또박

하나님께 구하고

그렇게 기도를 하는 것이 차라리 낫지!

 

자기도 무슨 기도를 하는지 알지 못하는 기도를 왜 하나?’

물론 실제로 방언기도를 해 보신 분들은

내가 알아 듣지 못하는 말로 기도를 하지만,

내 마음에 기도해야 될 문제가

하나님 앞에 다 기도한 것 같은 시원함이 생기는

참 놀라운 경험을 합니다

 

내가 알아듣는 말로, 내 말로 하나님 앞에 또박또박

가족을 위해 기도하고,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나라 위해 기도하고,

하고도 영 마음에 시원함이 없는..

뭔가 기도할 게 많은데 다 못한 것 같은..

그런 마음인데

 

그런데 방언으로 기도하면

그냥 속이 뻥 뚫린 것 같은

하나님과 내가 깊은 기도를 다 하고 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

참 신기한 노릇입니다

 

사람의 논리로는 잘 설명이 안 되는 일인데,

이게 왜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기도를 하는지에 대해서

답답해 하시는 분,

꼭 그렇게 (방언으로) 기도해야 하는 분들에게 말씀드리려고 것입니다

 

▲1.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엄청난 수준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성령께서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이렇게 기도하게 하시나?

 

우리가 알아듣는 말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기도는 하나님과 또 하나의 대화죠

 

근데 하나님께 우리가 어떤 문제를 가지고 구할 때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지식의 차원과 경륜의 차원과

우리가 너무 차이가 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어떤 문제를 가지고 대화 자체를 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전혀 넌센스죠

 

여러분, 3~4살 되는 아이하고 여러분하고 대화가 정상적으로 됩니까?

이번 대선이 어떻게 될까,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통일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니?

우리 교회를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무슨 대화의 수준이 전혀 안 맞는 거죠

어른과 어린아이가 대화 수준이 전혀 안 맞습니다

 

그러니까 그냥 친밀한 표현 정도는 할 수 있어요

너무 이쁘다, 사랑스럽다, 뭐 먹고 싶냐?’이런 정도 쯤의 표현만 가능하지

어떤 문제를 진지하게 의논할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더욱 말할 것 없습니다

 

본문에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했어요

이게 우리 수준이에요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기도를 하지만

 

아 내가 알아듣는 말로, 내가 기도하는 게 훨씬 낫지한다면,

그런데 실제로는 영적인 눈이 안 떠져서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조금이라도 그가 바라보고 나면,

주여, 저는 아무 것도 말할 것이 없습니다

욥도 그랬지요

 

자기가 아무 것도 모르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동안 하나님께 불평하고,

하나님 왜 내가 이렇게 이해 안 되는 고난을 당해야 합니까?’

실제로 알아듣게 말을 할게 뭐가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뭘 안다고?

하나님 앞에서 할 말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 크시고 영화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솔직히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어요?

 

가정문제, 자녀문제, 사실은 내가 진짜 뭘 알고서 기도를 하는 것입니까?

 

여러분, 왜 방언으로 기도하게 하시나요?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는자인 것이지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엄청난 경륜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무 것도 모르는 우리들을 도우시기 위해서

성령으로 인하여 우리 기도를 도우시는 게 방언인 것입니다

 

▲2.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우리 가운데 계시는 성령의 심정입니다

오늘 여기 계신 모든 이들, 저를 비롯해서 모든 이들 가운데 계시는 성령님은

아마 그 안타까움이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너는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사니?

너 어떻게 하려고 이렇게 하는 거니?

너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 것인데 어째 이렇게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니?’

 

아마 성령님은 말할 수 없는 탄식이 있을 겁니다

 

그래서 방언으로 기도해 보면, 그렇게 애통하고 안타깝고

무슨 내용인지 모르지만 마음이 막 저려오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정치가 이러니 저러니 말을 하다가도

방언으로 기도를 하다보면 정치가를 위해서 통곡하고 기도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께서 그렇게 그런 심정으로 우리 가운데 계신다고 하시지 않았어요?

그래서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시느니라

 

여러분, 어떻게 기도해야 될지 모를 때가 실제로 있지요

이거 어떻게 기도해야 될지 모르겠다

방언으로 기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래서 우리에게 방언으로 기도하게 하십니다

내가 어떻게 기도해야 할 지를 모르니까!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엄청난 수준 차이가 있지만

하나님과 친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그게 방언인 것입니다 엄청난 축복이지요


어떻게 감히 우리가 제정신으로, 온전한 생각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서 뭘 이야기를 할 수 있겠어요?


▲3. 또 하나,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지 못하는 언어로  

기도하게 하시나?


방언 기도는 비밀의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고전14:2절에 보면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그러니까 '비밀을 말한다'고 하셨어요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수준 차이가 너무 나니까

우리가 어떤 말로 기도하기에는 너무 안 맞아요

그러니까 성령께서 영의 기도(방언)으로 우리 심정을 하나님 앞에 쏟아놓게 하시는 것은

또 알겠는데


그게 왜 '비밀'인가요? 여기에 영적 싸움의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께 기도할 때, 성도들의 기도를 도우실 때

왜 '비밀(방언)로' 기도하게 하시나요?


사탄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게 방해하는 존재가 사탄이죠

우리 개인에게도, 교회에도, 

또 이번에 전도집회를 위해서도 여러분, 담임목사인 저를 위해서 기도할 때도

또 어떤 사람을 위해서 중보할 때도

사탄이 반드시 그 일을 방해하려고 하는 역사가 있습니다


여러분, 방언을 받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방언 받기를 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마음이

'주님 그 분을 향한 갈망'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방언만 받기를 원하는 경우는

건강한 영적인 욕구가 아니에요


여러분이 주님 그 분을 알기를 원하는

그 예수님에게 철저히 복종하는 삶을 이제는 살아야 되겠다 하는 마음이

너무너무 간절하면, 그러면 방언은 금방 열려집니다 (*예외도 있겠지만)


성령께서 여러분의 주인 되시는 것으로 인하여 나오는 기도가

방언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4. 잘못된 방언           20:45~27:23 끝 


이상한 소리 내고, 들어보면 이상하고 섬뜻한 느낌이 드는 방언은

잘못된 방언일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