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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를 길러낸 아버지들

LNCK 2019. 12. 29. 14:14

명사를 길러낸 아버지들                  골3:21                출처

 

 

3:21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마거릿 대처의 아버지 - 원칙준수를 가르쳐 주다.

 

고질적인 파업사태와 경제난 등 이른바 영국병을 치료한 철의 여걸

 

마거릿 대처 전 영국총리. 그녀의 아버지 앨퍼렛 로버츠는 집안이 워낙

 

가난해서 13살 때 중학교를 중퇴해야 했다.

 

교사가 꿈이었던 그는 여러 직업을 전전한 끝에 동네 구멍가게 점원으로

 

취직, 4년 동안 부지런히 저축한 돈으로 자기 가게를 차렸다.

 

 

독실한 감리교 신자였던 아버지는 탁월한 설교솜씨 덕분에

 

이웃 교회에서 서로 모셔가기에 바빴다.

 

중학교도 마치지 못한 학력이었지만 지적인 무게가 실린 내용들을 쉽게

 

풀어나갔기 때문에 교인들 사이에 인기가 높았다.

 

 

어머니 역시 독실한 신자여서, 일요일이면 4살 위 언니 등, 네 식구가

 

교회에서 온종일 살다시피 했다.

 

마거릿은 오전 11시 본 예배가 시작되기 전에 주일학교에 나가야 했다.

 

오후에도 주일학교가 있었고, 12살 때부터는 유치반 학급에서 피아노

 

반주까지 맡아야 했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저녁예배도 온 가족이 참석해야 했다.

 

 

어린 마거릿은 이것이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틈만 생기면 빠져 나갈 구실을 찾다가 어느 날 저녁 마침내 입을 열었다.

 

친구들이 산책을 가자는데 같이 가고 싶어요.”

 

 

아버지의 대답은 단호했다.

 

무슨 일이든 다른 사람이 한다는 이유만으로 같이 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의 한 마디는 마거릿에게 족쇄였다.

 

댄스를 배우고 싶어도, 영화관에 가고 싶어도,

 

아버지의 말 한 마디에 단념해야 했다.

 

한번 원칙을 정했다 하면 그야말로 요지부동이었다.

 

 

2년 전 회고록 집필 직후 워싱턴을 방문한 대처는

 

내셔널프레스클럽 오찬연설에서

 

아버지의 가르침이 나의 정치 생애를 이끌어왔다.”고 털어놓았다.

 

 

그러고 보면 세계적인 지도자를 길러낸 보통 아버지들의 공통점은

 

자녀들에게 올바르게 살라는 분명한 원칙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아버지 - 꿈을 심어주다

 

 

인디애나 존스시리즈를 비롯해서 ET」 「쥬라기 공원등 수많은

 

히트영화를 전세계에 뿌려 할리우드의 황금기를 가져온 영화감독 스필버그.

 

그의 영화인생은 아버지 아놀드와 함께 시작됐다.

 

아놀드는 7살 때부터 공상 과학소설을 즐겨 읽고

 

10살 때 벌써 라디오를 조립할 정도로 과학적 재능이 풍부했다.

 

 

하지만 집안이 가난해 대학진학 기회를 놓치고

 

1930년대 초에 외사촌 형이 경영하던 백화점에서 부지배인으로 일했다.

 

외사촌 형은 어느 날 갓 나온 8mm 영화 카메라를 샀다가

 

까다로운 사용법에 질린 나머지 아놀드에게 줘버렸다.

 

아놀드(스필버그 감독의 아버지)는 이 카메라로 집안 대소사를 찍었다.

 

 

19572월 어느 날 밤, 아놀드는 곤히 잠든 10살짜리 맏아들 스티븐을

 

깨우더니 보온병과 담요를 주섬주섬 챙겨 차에 싣고 교외로 달렸다.

 

 

반시간쯤 지나 사방이 탁 트인 사막에 이르렀는데

 

수 백 명의 군중이 도로변에 담요를 깔고 누워서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버지가 가리키는 하늘 저쪽에서는 수많은 별똥별이 소나기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그날 밤 아버지로부터 들은 혜성 이야기는 과학에 대한 스티븐의

 

흥미를 자극해 훗날 공상과학 소재를 즐겨 다루는 밑거름이 됐다.

 

 

가족여행을 떠날 때마다 스티븐은 모든 장면을 아버지 카메라에 담기 바빴다.

 

집에서 출발할 때도 다른 식구들이 차에 다 타고 떠나는 장면을 담기 위해

 

집 앞 도로에 엎드려 초점을 맞추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버지는 그럴 때마다 조수 노릇을 마다하지 않았다.

 

아들이 초등학교 때 제작한 극영화에 동네 개구쟁이들과 함께 조연으로 출연

 

했는가 하면 스티븐이 중학교 때에는 항공기 등 영화 소도구를 빌리는 교섭

 

까지 도와주었다.

 

한마디로, 아들에게 영롱한 꿈을 심어주고 프로의 세계로 이끈 아버지였다.

 

 

 

제럴드 포드의 친아버지 - 최소한 양심을 지키다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사임한 리처드 닉슨으로부터 대통령직을 승계한

 

제럴드 포드. 그의 이름은 의붓아버지의 것을 그대로 딴 것이다.

 

의붓아버지는 제럴드를 친자식들과 꼭 같이 사랑했다.

 

 

그는 운동이 인격을 길러준다고 늘 강조하는 한편, 날마다 숙제 검사도

 

잊지 않았다. 덕택에 고등학교 때 축구선수로 이름을 떨치던 제럴드의 성적은

 

2학년 말에 전교 10위권에 진입하게 됐다.

 

 

방과 후나 방학 때는 꼭 아르바이트를 하라는 것이 계부의 가르침이었다.

 

어느 날 점심 때 제럴드는 학교 앞 햄버거 가게에서 계산대를 지키고 있었다.

 

한 중년 남자가 아무 말 없이 15분가량 지켜보다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내가 네 친아버지 레슬리 킹이다.”

 

 

친아버지는 법원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월 25달러 75센트의 양육비도 부치지

 

않고 15년 가까이 깜깜 무소식이었던 터였다.

 

그는 고급 승용차에 아들을 태우고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사주곤 20달러

 

지폐 한 장을 내밀었다. 그리곤 바로 떠나버렸다. 그것이 끝이었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온 제럴드는 부모님에게 생부를 만난 이야기를 했다.

 

계부는 넉넉하지 못한 살림 때문에 제럴드를 제대로 도와주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자기 방으로 돌아온 제럴드는 아들의 장래에 전혀 관심도 보이지 않고

 

사라진 생부의 몰인정한 태도가 야속해 엉엉 울고 말았다.

 

 

제럴드는 미시간대학을 장학생으로 졸업한 다음

 

예일대학 축구코치로 들어가 장학금으로 법과대학을 마쳤다.

 

고향으로 돌아와 변호사로 활약하던 중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해군장교로 입대한 그는 최전선에 나가기 위해 모든 연줄을 동원해 로비

 

활동을 펼친 끝에 마침내 뜻을 이루었다.

 

제대 후 하원의원에 출마하면서 정계에 진출, 상원의원을 거쳐 부통령과

 

대통령직을 모두 승계 받는 진기록을 세웠다.

 

 

세상에서 성공했으나 하나님 나라에서 인정 못 받을 수도 있음.

 

그러나 세상에서 성공한 것도 무시하지 말고 겸손히 존경할 필요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