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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밤 출12:29~36 2001.07.15.
유월절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보호와 출애굽이 시작되는 날이지만
애굽은 멸하는 자에 의하여 심판을 당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밤을 42절에서는 "여호와의 밤"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 날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봅시다.
12:42 ‘이 밤은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심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앞에 지킬 것이니
이는 여호와의 밤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대대로 지킬 것이니라’
12:29절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왕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
밤중에, 밤은 사람이 무엇을 할수 없는 시간입니다.
오늘날은 전깃불로 밤을 밝히니 밤에도 대낮처럼 일하게 되지만
옛날에는 밤이면 아무것도 할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쟁도 밤에는 쉬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찌 해볼수 없는 밤중에 멸하는 자가 찾아왔습니다.
23절에 보시면 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실 때 멸하는 자를 보내시는 것입니다.
멸하는 자는 하나님의 천사로서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하는 천사입니다.
이러한 멸하는 자가 애굽을 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멸하는 자가 어디는 넘어갑니까? 어린 양의 피가 발린 집은 넘어갑니다.
그러나 어린 양의 피가 없는 집은 바로왕의 아들로부터 감옥에 갇힌 죄수의 아들까지,
11:5절에 의하면 맷돌뒤에 앉은 여종의 장자까지와 짐승의 처음 난 것까지 다 진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밤중에 애굽 전역에 통곡이 터져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장자의 죽음앞에서 왕이거나 죄수이거나 여종이거나 아무른 차별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앞에서 왕이라고 봐주고, 죄수라고 봐주고, 가난한 여종이라고 봐주는 것이 없습니다.
어린 양의 피가 없으면 진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어떠한 신분과 지위를 가진다 할지라도
어린 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덧입지 못하였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노벨평화상을 받았던지, 다른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버렸다고 할지라도,
한번도 남에게 해꼬지 한적이 없이 착하게 살았다고 할지라도
어린 양의 피가 없으면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어떠한 선행이라도 하나님의 진노를 막아낼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어린양의 피 아래 있으면 그 사람이 왕이거나 죄수이거나 종이거나 상관없이
의롭다 함을 받는 것입니다.
아무런 차별이 역시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월절 밤에 일어난 것입니다.
▲여기서 ‘멸하는 자’에 대하여 한곳을 더 살펴보고자 합니다.
사무엘하 24:15-16절입니다.
"이에 여호와께서 그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 온역을 이스라엘에게 내리시니
단부터 브엘세바까지 백성의 죽은 자가 칠만인이라
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 손을 들어 멸하려 하더니 여호와께서 이 재앙 내림을 뉘우치사
백성을 멸하는 천사에게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 때에
여호와의 사자가 아라우나의 타작마당곁에 섰더라"
이 말씀을 보시면 멸하는 천사가 이스라엘백성을 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다윗이 인구조사를 한 것입니다. 이것이 왜 그리 큰 죄가 되는 것입니까?
다윗이 어린 양의 피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군대를 의지한 것입니다.
이것이 심판인 것입니다. 이러한 정신상태가 바로 애굽의 정신이라는 것입니다.
열왕기하 19장에서는 앗수르의 군대 18만 오천명이 여호와의 사자에 의하여
전부 시체가 되어 버립니다. 이것은 히스기야 왕때에 앗수르가 쳐들어 와서는
아주 교만하였습니다. 자기들이 하나님의 도구로 이스라엘을 공격하게 되었는데
자기들의 힘이 강해서 그렇게 된줄알고 교만하여 큰소리 치다가
자고 일어나 보니 18만 5천명이 시체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왕만 겨우 살아 돌아가서, 자기 신에게 엎드렸을 때 자기 아들들에 의하여 죽임을 당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멸하는 자는 이스라엘과 이방이라는 민족적인 특성을 따라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하나님의 언약안에 있는가로 구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착각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나는 교회 다니고 있으니,
그래도 내가 몇 년을 예배당에 나오면서 그동안 내가 한 것이 얼마인데 하면서
자기의 의를 내세우거나 자기의 공력이 자랑이 된다면.. 역시 심판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바르지 않아도 된다는 교만하고 건방진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찍 죽임당하신 어린양의 보혈의 능력이 얼마나 엄청나고 대단한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12:30절입니다. ‘그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고 애굽에
큰 부르짖음이 있었으니 이는 그 나라에 죽임을 당하지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음이었더라’
장자가 죽고 나자 바로왕이 항복을 합니다. 무조건 항복입니다.
그동안 그렇게 버텨왔던 고집들이 장자의 죽음앞에서 다 허물어 지는 것입니다.
이제 너희가 원하는대로 다하라 주를 섬겨라 그리고 나를 위하여 축복하여 달라고 합니다.
드디어 왕이 항복합니다. 그리고 33절에서는 백성들도 항복합니다. 어서 나가라고 합니다.
그들의 금과 은과 패물들을 내어주면서 어서 나가라고 합니다.
이미 예언된 말씀대로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창세기 15:13-14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찌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이 말씀 그대로 성취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약속을 성취하는 핵심이 어린 양의 피라는 것입니다.
도대체 어린 양의 피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요한 계시록을 한번 봅니다.
계시록 5:12-14절입니다."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찌어다"
하나님의 인을 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 일찍 죽임당하신 어린 양이라는 것입니다.
이분이 이제 모든 역사를 주장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찬양과 존귀를 받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출애굽의 구조가 오늘날의 구원을 그대로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이 밤이라는 것입니다.
캄캄함 어두움에 빛을 주시는 것입니다.
창세기 1:1-3절에 보시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을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흑암과 혼동의 세계에 빛이 있으라고 하시니 빛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창조의 역사처럼, 구원의 역사도 없는데서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어두움에서 빛을 주시는 것입니다. 종에서 자유함을 주시는 것입니다.
어느 누가 감히 바로왕의 권세를 깨뜨리고 나올수가 있었겠습니까?
오직 하나님의 언약으로 인하여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나오는 밤에 절정, 핵심이 어린 양의 피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린 양의 피를 믿는 것이 죽은자가 살아난 것이 됩니다.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는 날도 밤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얍복강가에서 밤새도록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도 겨루는 야곱인 것입니다. 이러한 야곱을 치시는 것입니다.
그 사건이 밤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때로부터 야곱은 평생 절둑거리며 살아야 했습니다.
이것이 야곱이 이스라엘로 바뀌는 여호와의 밤이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노예에서 하나님의 군대로 창조되는 것은
여호와의 밤에 어린양의 피로 인하여 여호와의 군대가 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2:41절에서 "여호와의 군대"가 나왔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동안은 애굽의 노예 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군대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군대란 무기를 잘 갖추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어린 양의 피아래 있어야 하나님의 군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교회가 하나님의 군대라고도 할수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군대로서의 무기로는 무엇이겠습니까?
사도행전 20:28절에서 하나님이 자기피로 값주고 사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의 피로 값을 주고 사신 것이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무기란 다름아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이 무기가
되는 것이고, 구원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사망의 그늘에 앉아서 참 빛을 모르고 앉아 있는 우리에게
주님께서 자기 피로 값을 주고 사심으로 살려내신 것입니다.
이러한 살림을 받은자는 어떤 삶이 나타나는 것입니까?
유월절을 지키고 누룩없는 무교절을 일주일간 지킵니다.
이것은 구원받은 성도가 어린 양의 능력을 무시하는 온갖 세상의 누룩들을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을 준비하면서 누룩없는 떡을 가지고 나옵니다.
출애굽기 12:34절을 봅니다. "백성이 발교 되지 못한 반죽 담은 그릇을 옷에 싸서
어깨에 메니라" 유월절 다음날 무교절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때부터 여행에 나서는 것입니다. 가나안을 향한 순례의 길에 나서는 것입니다.
무엇이 일어나야만 되는 것입니까? 여호와의 밤에 하나님의 심판을
어린 양의 피로서 대속함을 받고 난 자들은 무교병을 들고서 여행길에 나서는 것입니다.
이것은 얼마나 무미건조하고 단조로운 삶이었겠습니까?
그러나 여호와의 밤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 길이 결코
무미건조하거나 딱딱한 빵을 먹는 것과 같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러한 삶을 견디지 못하였습니다. 원망과 불평이 나왔습니다.
▲오늘 성도의 삶의 모습이 어떻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일주일간 일하고서 일요일 하루는 마음껏 즐기는데
예수 믿는 사람은 일요일도 아침부터 밤까지 온통 예배당에 모여서 무슨 재미가 있는가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여호와의 밤을 기억하는 사람은
이것이 지루한 것이 아니라 긴장되는 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밤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12:42절 "이 밤은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심을 인하여 여호와 앞에서 지킬 것이니
이는 여호와의 밤이라 (유월절)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지킬 것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망한 이유는, 이 여호와의 밤을 잊어 버린 사실에 있습니다.
여호와의 밤을, 유월절을 지킨다고 하여도, 그 어린 양의 피의 정신을 잊어 버렸을때는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군대, 하나님의 백성이 되지 못한 것입니다.
이제 오늘 우리는 어떤 날입니까? 날과 달과 절기를 지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우리의 죄를 사하신 주님의 보혈의 능력을 잊어버리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1:1-11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우리가 열매가 없는 이유는 주님의 보혈의 능력을 잊어버리고 도외시 하고서
나의 힘과 의지와 결단과 결심으로 일하려고 하니 억지 열매, 육체의 열매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소경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깨끗케하심을 잊어 버렸기 때문에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더욱 우리를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주시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주의 날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 날은 주님의 재림의 날입니다.
이 날이 어떤 사람에게는 캄캄함의 날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자들에게는 영광의 날이 될 것입니다.
구약의 사람들의 여호와의 날을 그렇게 기다려 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날이 오히려 심판의 날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우리가 더욱 정신을 차리고 주님의 그 재림의 날이 영광의 날이 되기를 사모하며 기다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와의 밤을 기억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