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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다음 단계를 준비하라 출4:18~31 2014.10.05.
서론
모세의 120년 생애는 각각 40년씩 3단계로 전개된 인생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의 첫 번째 40년, 1단계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 되어 애굽의 모든 학문을 익히는 시기였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모세오경을 기록하는 데 부족함이 없는 지성적인 훈련을 겸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2단계 40년은 여러모로 괴로운 훈련이었습니다.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는 영광도 빼앗기고 미디안 광야에서 장인 이드로의 양을 치는
일개 목자가 되었습니다.
모세가 스스로 생각하기를 “이대로 나는 망했구나!”라고 생각했겠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모세에게 있어서 두 번째 40년의 시간은 매우 중요한 시간이었습니다.
왜냐면 모세가 광야의 지리를 익히고, 방향감각을 기르고, 기후 변화를 잘 예측할 수 있어야
2백만 명이 넘는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르게 이끌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세는 자기 인생이 후퇴했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 입장에서는 결코 후퇴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의 모세의 인생 80년은 모두 훈련의 시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훈련이 빛을 발하게 된 클라이맥스가 모세의 인생 후반부 40년, 3단계였습니다.
모세는 후반부 40년 동안 하나님의 계시를 수납하는 ‘계시의 수납자’가 됩니다.
모세오경을 기록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예표하는 출애굽의 위대한 지도자가 됩니다.
이는 아주 복되고 영광스러운 단계였습니다. 비록 나이가 들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모세의 인생에 광명한 앞길을 열어주시니 훌륭한 삶의 단계를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의 삶이 어떠했든 앞으로 우리 삶의 단계는
더욱 복되고 더욱 영광스러운 빛이 비취는 단계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 출4장에는 모세의 마지막 40년, 더 나은 인생의 단계와 더 큰 도약을 위해
하나님께서 모세를 준비시키신 여러 가지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 인생이 앞으로 더 복되고 영광스러운 단계가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5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자신의 무능함을 생각지 말고,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생각하라
우리는 스스로 생각해 봐도 참으로 무능한 존재입니다.
사람의 능력은 있어도 별 것 아니고, 없어도 별 차이가 없습니다.
사람은 능력이 많으나 적으나 큰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내게 능력이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시는 분이 누구신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성도는 비록 무력해 보이고, 무능하다 생각될지라도
하나님이 전능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 앞길은 활짝 열릴 줄로 믿습니다.
이 모든 것은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후원자가 되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을 의존해서 사는 사람의 인생은 광명한 인생이 될 줄로 믿습니다.
출4:1절에 “모세가 대답하여 가로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모세의 합리적인 변명이었습니다. “제가 40년 전에 애굽 사람을 쳐 죽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가 되어보려고 했지만 아무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내 말을 듣지 않을 것이며, 나는 그럴만한 권위도, 능력도 없습니다.”
모세의 변명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입니다.
그러나 이 변명에 대해 하나님의 재치있는 대답은 “네 손에 든 것이 무엇이냐?”였습니다.
이에 모세가 “지팡이를 들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모세는 자기에게 필요한 능력과 권세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이미 모세에게 출애굽의 지도자가 될 만한 능력과 권세를 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바로 ‘지팡이와 모세의 손’입니다.
지팡이와 손이 무슨 능력이 되고 무슨 권세가 되는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하나님이 그 지팡이와 손을 쓰시면 권세가 되고 능력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그것으로 세 가지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첫째는 지팡이를 던지라는 것이었습니다. 지팡이를 던지자 뱀으로 변했습니다.
이어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뱀의 꼬리를 잡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모세는 이미 광야에서 많은 뱀을 경험해 봤기 때문에 뱀을 잡을 때는
절대로 꼬리를 잡는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순종해서 꼬리를 잡았더니 뱀이 다시 지팡이로 변했습니다.
당시 뱀은 바로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동물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상징하는 동물이 봉황이고,
중국의 황제를 상징하는 것이 용이듯이, 뱀은 애굽의 바로를 상징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바로의 권력이 세상 최고의 권력이라 할지라도
내가 네 뒤에 있으니 단숨에 제압할 수 있다”는 의미였습니다.
둘째는 손을 가슴 품에 넣었다가 빼어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집어넣었더니 손이 하얗게 변하여 심각한 문둥병이 발하게 되었지만,
말씀에 순종하여 다시 품에 넣었더니 깨끗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질병도 있을 것이고, 위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모든 것이 나의 지배를 받는 것이기에 걱정하지 말고 가라”는 의미였습니다.
셋째는 나일강의 하수를 취하여 육지에 부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랬더니 물이 피가 되었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나일강을 신으로 섬겼습니다. 그 곳에 ‘나일러스’라는 신이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일강물을 피로 변하게 만든 것은 “이 세상 신이라고 불리는 자들도 모두
하나님의 통제 아래 있는 존재들이고, 모세를 해칠 수 없는 자라”는 사실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 세 가지 기적을 보여주신 이유는
‘네가 어디를 가든지 이와 같은 일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능력이 있음을 알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모세에게 필요한 것은 더 이상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지팡이와 손만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지팡이를 던졌다가 잡으면 되고, 손도 넣었다 빼면 되고, 물은 부어버리면 됩니다.
모세는 이제부터 자기의 무능함에 주목하지 않고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주목하여
인생의 영광스러운 단계로 진입하게 되었습니다.
고후12:9절에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이 얼마나 약한 사람입니까? 그는 몸에 병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사람들은 바울을 보며 자기 병 하나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뭘 저렇게까지 설치느냐
고 빈정댔을지도 모릅니다.
거기다 바울은 언변이 어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고린도교회 사람들이
“설교도 시원찮은데 당신이 사도 맞느냐?”며 그를 멸시하였습니다.
바울은 스스로 약한 것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희한하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니
약할 때 더욱 큰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강한 척하고 강한 것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약한 것을 자랑하는 것이 내게 더욱 유익한 일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마틴 로이드 존스라는 설교자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를 20세기가 낳은 최고의 설교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로이드 존스를 부목사로 키운 담임목사가 있었는데,
그가 조지 캠벨 몰간 (G. Campbell Morgan) 이었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꽤 규모가 있는 교회의 담임목사로 청빙을 받았지만,
해당 교회 장로 12명이 캠벨 몰간의 설교를 듣고 점수를 매긴 후,
이 사람은 우리 교회에 합당하지 않은 무능한 사람이라고 해서 청빙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작은 교회에서 목회 사역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설교 능력이 계발되었고, 1904년 그의 나이 42세가 되었을 때,
젊은 시절 청빙을 받았던 교회보다 훨씬 규모가 큰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목회를 하게 되는
강해설교의 대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후임자로 로이드 존스를 세웠습니다.
로이드 존스도 훌륭한 설교자였지만, 캠벨 몰간 역시 탁월한 설교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캠벨 몰간도, 젊었을 때 교회의 청빙을 받았다가
무능하다는 이유로 떨어진 경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능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노력하면 은사를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노력해서 받는 것이 은사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은사(Gift)는 공짜로 받는 것입니다.
노력해서 받는 것은 임금입니다.
은사는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명을 주시고, 그 사명을 감당할 능력을 은혜로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사명을 주셨을 때는 이미 감당할 능력 또한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능력이 우리의 노력을 통해 계발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력도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노력은 하나님이 이미 주신 능력을 계발하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출애굽의 지도자가 될 모세에게 손과 지팡이를 주셨습니다.
그것이면 충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지팡이를 쓰시면 되는 것입니다.
모세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서 위대한 지도자로 쓰임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직업은 하나님이 주신 소명입니다. 장사를 하든지, 예술을 하든지,
정치를 하든지 우리의 직업은 모두 하나님이 주신 소명입니다.
그러니까 이 소명을 주셨을 때에는 그것을 잘 할 수 있도록
능력도 이미 주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 능력으로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내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하겠다고 하면 하나님이 주신 능력이 계발되어 성공한 삶을 살 수 있고,
다음 인생의 단계가 영광스러운 단계가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모두 무능합니다. 그러나 무능하다고 우리의 인생이 복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무능해도 얼마든지 복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2. 남들보다 잘하는 탁월함보다, 사명에 대한 충실함이 더욱 중요하다
남들보다 잘하는 탁월함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탁월함보다 충실함이 더욱 필요합니다.
출4:10절에 모세는 하나님께 또 다른 변명을 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모세는 출애굽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남보다 말을 잘하는 웅변의 능력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2백만 명을 대상으로 설득력 있게 말할 수 있는 웅변의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13절에 “모세가 가로되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드디어 화를 내셨습니다.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출 4:12).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 입에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의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출 4:15).
이처럼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인간의 탁월한 웅변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있는 그대로 충성스럽게 전달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목소리를 크게 할 것도 없고, 그저 네 입에 주는 말을 그대로 전하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대로만 하면 되는데 왜 그것을 자꾸 못한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탁월함이 부족할 수는 있지만, 충실함은 얼마든지 갖출 수 있는 것입니다.
고전4:2절에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탁월함이 아니라 충성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제가 신학교를 다니던 시절 영계(靈界)를 주름잡을 것처럼 목에 힘을 주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졸업하기만 하면 엄청나게 교회를 부흥시킬 수 있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말로는 대부분 좋지 않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탁월하고 능력이 있는 것보다
충성스럽고 성실하게 목회를 준비한 사람의 앞길을 열어주시는 분임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능력을 요구하시지 않고, 충성을 요구하셨습니다.
◑3. 인간관계를 바르게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야곱과 모세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라반의 두 명의 딸을 아내로 삼고 자식도 12명이나 낳았습니다.
그런데 외삼촌과 갈등이 생기자 처자식들을 데리고 야반도주하였습니다.
외삼촌이지만 장인이기도 한 라반에게 인사 한 마디 하지 않고 도망간 것입니다.
그러자 라반이 화가 나서 야곱을 혼내주려 쫓아갔는데,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선악 간에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꼼짝없이 야곱과 화해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야곱과 달랐습니다. 그는 장인 이드로에게 가서 작별인사를 하고 떠났습니다.
모세가 장인에게 가서 하나님이 나를 출애굽의 지도자로 부르셨으니
가겠다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애굽에 있는 내 백성들이 생존하였는지 보고 오겠습니다”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장인에게 모두 다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애굽에 있는 내 형제들에게 가보려고 한다고 인사를 했던 것입니다.
모세는 장인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떠나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모세에게 평안히 가라고 허락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의 인간관계도 바르게 정리되었습니다.
▲우리 인생의 앞길이 아름답게 열리려면 인간관계로 인해 막히는 것이 없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함께 일하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오랫동안 함께 일했지만,
아무런 인사 한 마디 없이 그냥 가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제가 그들을 미워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인간관계의 매듭을 바르게 정리하지 못하는 삶을 반복하게 될 것입니다.
연애하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고, 부부도 함께 살다가 사라지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 사람의 다음 인생의 단계가 절대로 광명한 단계가 될 수 없습니다.
모세는 바르게 인간관계를 정리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4. 작은 일도 소홀히 여기지 않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사람에게 작은 일과 큰 일이 주어졌을 때, 작은 일은 소홀히 여기면서
큰 일을 잘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작은 일을 잘 하는 사람이 큰 일도 잘하게 되어 있습니다.
모세가 장인 이드로와 작별하고 아내와 자녀들을 나귀에 태워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애굽으로 갔는데, 이상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출4:24절에 “여호와께서 길의 숙소에서 모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시는지라”
모세가 숙소에서 자고 있는데, 하나님이 모세를 죽이려고 하신 것입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애굽으로 가라고 하실 때는 언제고, 중간에 죽이려고 하시는 것입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모세를 죽이려고 했을 때 모세의 아내 십보라가
그 즉시 원인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리고 차돌을 취해 날카롭게 갈아 아들의 양피를 베어
모세의 발 앞에 던지며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모세가 아내인 십보라에게 계속해서 할례행할 것을 요구했지만,
굳이 피를 흘려야 할 이유를 알지 못했던 십보라가
이제야 할례를 행한 후에 고백한 말입니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는 이렇게 작은 일 하나라도
반드시 순종할 것을 원하시는 분이심을 깨달았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창17:10~11절에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모두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할례를 받아야만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언약의 표징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이 조상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의 표징을 소홀히 여겼던 것입니다.
아내 십보라의 주장에 설득을 당한 셈입니다.
그러니 아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할례행할 것을 강하게 밀어붙이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문제를 크게 보시고 모세의 목숨을 취하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모세의 하나님 여호와는 작은 일에도
절대적인 순종을 요구하시는 분임을 철저히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공군들이 조종하는 비행기는 한 대가 수백억을 호가합니다.
그런데 그 중 폭격기 같은 것은 수천억이 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비행기가 떨어지면 조종사도 죽고 비행기도 박살나서 못 쓰게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보통 나사 하나를 제대로 정비하지 못해서 그런 일들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모두 작은 일 하나를 소홀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작은 일에 충성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마25:21절에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작은 일에 충성을 해야 그 다음 단계에 많은 것을 맡게 되는 복된 단계가 이어지는 것입니다.
지금 맡고 있는 직분이 어떤 것이든지 작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도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더욱 큰 일도 맡기시고 큰 복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5.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 있게 전진하는 담대한 자세가 필요하다
“80세가 된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내가 바로를 어떻게 대할 수 있을까?”라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바로를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가지고 담대히 나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출4:23절에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놓아서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놓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모세에게 어려운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출 4:23).
바로에게 가서 내 메시지를 전하는데 “네 장자를 죽이겠다”는 메시지였습니다.
여러분, 당시 바로는 애굽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최고의 권력을 가진 자였습니다.
그 앞에 가서 “나의 하나님이 너의 맏아들을 죽일 것이라”고 말하면
모세가 살아남을 수 있었겠습니까?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잘못하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바로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이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두려움이 없이 용기 있게 나아갑니다. 80세가 된 노인이 ‘네 맏아들이 죽을 것이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를 배척할 것을 두려워하지도 않았습니다.
출4:31절에 “백성이 믿으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보시고 그 고난을 감찰하셨다
함을 듣고 머리 숙여 경배하였더라”
모세는 백성들의 배척도 두려워하지 않은 것입니다.
모세가 이렇게 훈련을 잘 받아 인생의 마지막 40년을 참으로 복된 인생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결론
지금까지 우리 인생이 어떤 삶이었든지 간에 앞으로는 우리의 생애가 더 복된 단계로 나아갈 줄 믿습니다.
성도의 인생은 광명한 해가 돋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삿 5:31).
광명한 해가 솟아 오르는데 어떻게 어두워질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의 인생의 단계가 점점 좋아지려면 “아이고! 나는 왜 이렇게 무능한가?”,
“아이고! 나는 왜 권위가 없는가?”, “아이고! 나는 못하겠다!”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새로운 인생을 개척해 나가기가 두렵다고만 할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고 용기를 가지고 나아가면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단계를 영광스러운 단계로 열어주실 줄로 믿습니다.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 앞으로 내가 맞이하게 될 인생의 단계는
광명한 해가 돋는 것 같다고 선포해야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소망을 가지고 용기 있게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