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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두멍의 영적의미

LNCK 2019. 12. 30. 07:23

https://blog.naver.com/karamos/222140018130

 

물두멍의 영적의미          출30:17~21              2015-07-19

 

※물두멍의 물은, 성도의 성화를 의미합니다.

 

서론

 

성막은 일반적으로 ‘성막 본체’(Tabernacle Proper)만을 가리킬 때 사용하고,

‘성막 뜰을 포함한 전체’를 가리킬 때 사용되기도 합니다.

 

성막 본체는 성소와 지성소로 구분되고,

성막 울타리 내부에는 번제단과 물두멍이 있습니다.

 

성막 동쪽 문으로 들어오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번제단입니다.

놋으로 만들어 ‘놋단’이라고도 하는데,

이 번제단을 지나면 성막 본체 사이에 ‘물두멍’(Laver)이 보입니다.

물두멍은 성도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영적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성막 뜰에 있는 번제단과 물두멍 사이에는 여러 면에서 차이점이 있죠.

 

1) 재료 면에서 번제단은 싯딤 나무를 사용하여 놋으로 입혔지만,

물두멍은 나무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놋으로만 만들어졌습니다.

 

2) 모양도 다릅니다.

번제단은 가로 세로 각각 5규빗, 높이가 3규빗으로 정사각형 모양인 반면,

물두멍은 일종의 세숫대야와 같기 때문에, 둥근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성경에 물두멍이 둥근 모양이라고 직접적으로 계시해 주고 있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씻는 대야(물두멍의 목적)가 네모난 모양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3) 그리고 번제단에 관해서는 그 규격이나 높이나 모양이 정확하게 계시되어 있지만,

물두멍에는 그런 계시의 내용이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4) 운반방법도 번제단의 경우 대단히 복잡합니다.

번제단은 양편에 고리가 두 개씩 있어서 채로 꿰어 고핫 자손들이 어깨로 메어 운반하죠.

운반할 때도 법칙이 있었는데, 먼저 재를 버린 후 자색 보자기로 싸서

그 위에 번제단의 보조기구들을 올려놓아야 합니다.

그 후 보조기구 위에 해달의 가죽으로 덮어서 운반하도록 했죠. 민4:13~15

 

그러나 물두멍의 운반방법에 관해서는 전혀 계시된 내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대게 채가 없는 경우는 마차에 실어서 운반하였습니다.

 

5) 내용물의 차이도 있습니다.

번제단 속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불이 있었지만,

물두멍 속에는 깨끗한 물이 들어 있었습니다.

 

6) 접근할 수 있는 자의 자격에 관한 차이도 있습니다.

번제단에는 제사장뿐만 아니라 제물을 드리고자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누구라도 접근할 수 있는 성물이었습니다.

 

그러나 물두멍은 오직 제사장만 접근할 수 있었고, 제사장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번제단과 물두멍에는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점이 존재합니다.

 

▲모세 성막에는 물두멍이 한 개 뿐이었지만

솔로몬이 지은 성전에는 물두멍이 열 개나 있었습니다.

 

성막과 성전의 물두멍을 구분해야 합니다.

성막에서는 ‘물두멍’(물대야)이라 그랬고, 크기도 상대적으로 작았죠.

성전에서는 ‘바다’(물저장고)라 그랬고, 크기도 꽤 컸습니다.

 

왕상7장에는 성전에 ‘큰 바다’(Molten Sea)가 있었다고 합니다.

‘Molten’은 ‘녹이다’는 뜻의 ‘Melt’의 과거분사인데,

큰 놋을 녹여서 만든 바다와 같은 것이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성물이 얼마나 큰 것이었으면 ‘바다’(Sea)라고 했겠습니까?

이 ‘큰 바다’는 66톤의 물을 담을 수 있는 어마어마한 용량을 자랑하던 성물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양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Sea’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이 물 저수조(놋 바다)에 담겨있는 물의 양은 ‘2천밧’(왕상7:26)이었습니다.

오늘날의 석유 드럼으로 255드럼입니다. 주1)

 

성전 마당의 큰 ‘바다’ 옆에는 작은 물두멍 10개를 만들어 두었습니다.

이 물두멍 1개의 용량은 900 리터였습니다. *왕상7:38, 40밧

 

거의 1톤에 가까운 물을 저장했고, 10개면 10톤이죠. *50드럼

이것이 솔로몬 성전의 물두멍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 성막의 물두멍에는 이런 용량에 대한 제한이나 계시의 내용이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늘은 모세 성막의 물두멍을 살펴보며 영적인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물두멍의 재료와 구조가 어떠한가?

 

하나님은 물두멍을 놋으로 만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물두멍을 받칠 받침도 놋으로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물두멍 자체와 받침이 분리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받침이 필요한 이유는 물두멍은 둥근 모양이고, 바닥이 둥글기 때문이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각형의 받침 위에 올려놓아야 물두멍을 고정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물두멍과 받침을 전부 놋으로 만들라고 말씀하셨는데, 놋의 출처는 어디일까요?

본문에는 이 놋을 어디서 구할 수 있었는지 밝혀주고 있지 않지만,

출38:8절에 보면 브살렐이라는 사람이 물두멍을 만들 때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거울로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옛날에는 지금처럼 유리에 칠을 해서 얼굴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놋을 반질반질하게 깨끗이 닦아 비춰보았습니다.

이 여인들에게 놋거울은 몸단장을 위한 대단히 중요한 도구였을 것입니다.

 

애굽에서부터 쓰던 것이었고, 애굽에서 나올 때에 하나님이 애굽 사람들에게

귀중품을 요구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어준 진귀한 물건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출애굽의 바쁜 와중에도 놋거울을 몸에 지니고 나올 정도였다면

그것이 얼마나 여인들에게 소중한 물건인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가 여인들의 마음에 역사하니까 이 놋거울을 기꺼이 헌물하였습니다.

그래서 물두멍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놋이 모이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회막 문 앞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은 겉 사람을 단장하는 일보다도

속 사람을 단장하려는 신앙적인 의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벧전3:3~4절에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내가 머리도 손질하지 않고 매일 월남 몸배바지만 입고 다닌다고 생각해 보세요.

신랑에게 사랑받기 어렵습니다. 여인의 외모단장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외모단장이 중요한 것 이상으로 내모(내면)단장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아내가 가정 살림을 지혜롭게 잘 꾸려나가고, 남편을 잘 내조하고 자식들을 잘 돌보고

어떻게 하면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을지를 연구하는 것들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면을 단장하듯 부단히 노력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내면을 잘 단장하고 인격도 신앙으로 잘 단장해야

하나님께 복을 받게 된다고 말한 것입니다.

 

놋거울을 헌물한 여인들은 아마 하나님의 큰 복을 받았을 것이라 믿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에 헌신하는 여인들의 노고는 교회의 큰 자원이 됩니다.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전도회가 교회의 큰일을 도맡아 하기도 하지만,

교회는 여전도회원들의 수고와 노고가 없이는 제대로 운영될 수가 없습니다.

여전도회가 하는 봉사가 엄청나게 많기 때문입니다.

 

▲저는 1986~1991년까지 미국에서 목회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있는 한인교회들은 대부분 외국 사람하고 결혼한 한인들이 주축이 되어있죠.

이런 분들의 헌신을 통해서 교회가 부흥되더라는 것입니다.

 

한국 여인들이 미국 사람들과 결혼해서 예배당 건축에도 헌신하고,

목회자들 사례도 줄 수 있도록 많이 헌신합니다.

그러니까 이 여인들의 헌신이 교회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물두멍은 회막 문 앞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헌신으로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물두멍의 크기나 담을 수 있는 물의 양, 운반 방법에 대한 계시의 내용은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아더 핑크는 이런 계시의 침묵에도 영적인 의미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물의 양에 대한 제한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혜가 무한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마18:21~22절에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70번씩 7번은 490번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한의 용서를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우리를 얼마나 한없이 용서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혜는 제한이 없습니다.

 

또 운반하는 법칙으로 번제단처럼 천이나 보자기를 덮을 것을 정해 놓으시지 않은 것 역시

정결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제한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시공간을 초월해서 하나님 말씀의 은혜는 열려있는 것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이러한 아더 핑크의 설명은 대단히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2. 물두멍의 위치가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물두멍은 번제단과 성막 본체의 중간지점에 있었습니다.

제사장은 번제단에서 제사를 드리기 전에, 물두멍의 물로 손과 발을 씻어야 했습니다.

 

출30:18~21 ‘너는 물두멍을 놋으로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만들어 씻게 하되

그것을 회막과 제단 사이에 두고 그 속에 물을 담으라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그 두멍에서 수족을 씻되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이요

제단에 가까이 가서 그 직분을 행하여 여호와 앞에 화제를 사를 때에도 그리 할지니라

이와 같이 그들이 그 수족을 씻어 죽기를 면할지니

이는 그와 그의 자손이 대대로 영원히 지킬 규례니라’

 

▲제가 1991년도에 중국 선교를 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는 중국이 문호를 개방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단히 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홍콩에서 북쪽으로 80시간을 기차를 타고 올라가는데,

삼일 내내 컵라면을 먹었더니 몸에 병이 날 정도였습니다.

 

겨우 북경에 도착하게 되어 하루를 호텔에 숙박하게 되었는데, 얼마나 좋던지요.

호텔에 사우나 시설이 있어서 내려갔더니만 할아버지 한 분이 온 몸에 잔뜩 비누칠을 하고

탕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제가 거기를 어떻게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당시만 해도 중국의 목욕문화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보여주는 단편적인 예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무튼 물두멍은 제사장이 물을 떠서 손과 발을 씻는데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성소에 들어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했습니다.

번제물을 만지게 되면 손에 피가 묻고, 성막은 바닥이 맨땅이기 때문에

신발을 신지 않고 일하는 제사장들은 먼지가 많이 묻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성소에 들어가서 일을 할 때는 반드시 손발을 닦아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피 묻은 손을 그대로 가지고 떡을 만지면, 그 떡을 어떻게 먹을 수 있겠습니까?

또 피 묻은 손으로 순금등대의 기름을 갈아 넣다 보면 기름이 오염되지 않겠습니까?

또 피 묻은 손으로 분향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제사장의 손과 발을 씻는 일이 너무도 중요하기에

성소에 들어가 일하기 전 물두멍의 물로 손과 발을 깨끗하게 씻으라고 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물두멍이 번제단과 성소 사이에 있다고 하는 사실에서 발견할 수 있는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 의미에 관해서는 거의 모든 성경 해석자들의 해석이 일치하고 있습니다.

 

번제단을 거쳐서 물두멍을 지나서 성소에 들어가야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먼저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고,

물두멍에서 자신의 죄를 씻은 후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번제단은 죄인이라면 누구라도 접근할 수 잇는 곳입니다.

그래서 번제단은 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믿어서 중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왜 믿어야 합니까?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죄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가는 반드시 지옥에 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죄 용서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죄는 어떻게 용서받을 수 있을까요? 자기 스스로 노력하면 용서받을 수 있을까요?

어림도 없습니다. 죄 용서함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어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 후에야 죄에 대한 책임이 면제되는 것입니다. 번제단은 기본구원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번제단을 거친 사람들은 기본구원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지옥에 갈 수 없는 자들입니다. 천국에 들어갈 견고한 보장을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칭함을 받는 것은

일평생 단 한 번 있는 일이지, 거듭되는 일이 아닙니다. 반복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본구원을 받고 천국이 확실히 약속된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죄악 된 세상을 사는 동안에는 죄로 인해 손과 발이 더러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가 하나님을 바로 섬기기 위해서는 매일 손과 발의 더러움을 씻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성소에 들어가서 하는 일은 떡상의 떡을 갈아 넣고 떡을 먹는 일입니다.

이것이 말씀을 먹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 일을 어떻게 피 묻은 손으로 할 수 있겠습니까?

 

분향단에서 분향하는 것은 기도하는 일인데 손과 발에 죄악이 가득해서

어찌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이사야 선지자는 일찍이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순금등대의 기름을 갈아 넣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복음전파를 의미하는데, 피 묻은 손과 발로 어떻게 이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성도는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해 매일매일 자신을 깨끗이 하는

성화의 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기본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 천국 갈 자격을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본구원은 천국이냐 지옥이냐를 결정합니다.

그리고 기본구원의 터 위에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가듯이

계속 구원을 이뤄나가는 것은

매일매일 물두멍에서 손과 발을 씻고 하나님을 섬기는

성화를 통해서 이뤄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걸까요? 우리 손과 발이 깨끗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말씀을 듣고 읽어도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올 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왜 전도의 열정이 생기지 않을까요? 우리 영혼이 깨끗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일들은 물두멍을 거치지 않고

성소에 들어가려 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윗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시편 139:23~24절입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내가 하나님을 기쁘시지 못한 것이 있다면 먼저 깨달아

그 죄를 씻을 수 있게 해 주시도록 간구해야 합니다.

 

또 시편 24편 3~5절에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이처럼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청결해야 여호와께 복을 받게 된다는

바로 이 진리가 물두멍의 위치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인 것입니다.

 

◑3. 물두멍의 물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성경에서 물은 여러 가지 영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1) 첫째, 창세기 2장 10절에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물이 근원이 되어서 강이 생겼습니다. 이것이 인류의 4대강입니다.

 

그런데 에덴동산이 근원지가 되어 흐르는 물은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약한 자, 죄인, 범죄자, 간음한 자 할 것 없이 모두에게 주어집니다.

이러한 은혜를 ‘일반 은혜’(Common Grace)라고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일반 은혜는 햇빛과 비를 선인과 악인을 가리지 않고 주시듯 베푸시는 은혜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도 먹고 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2) 둘째, 노아 홍수의 물은 심판의 물이었습니다.

창7:22절에 “육지에 있어 코로 생물의 기식을 호흡하는 것은 다 죽었더라”

 

사람들이 죄악이 관영하고 의를 행하는 사람이 노아와 그의 가족밖에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노아의 가족 여덟 사람을 제외하고 육지에 있는 호흡하는 모든 것들을

모조리 죽이셨습니다. 물이 심판의 도구가 된 것입니다.

 

3) 셋째, 출17장 6절에 “내가 거기서 호렙 산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팡이를 들고 반석을 치라고 하셨는데, 순종해서 반석을 쳤더니

큰 바위에서 물이 솟아 나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갈하고 생명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물은 생기 회복의 상징입니다.

 

사사기 15:14~20절에는 삼손이 나귀 턱뼈로 블레셋 군사 일 천명을 쳐 죽인 사건에 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삼손은 그 사건이 일어난 곳을 ‘턱뼈가 죽였다’는 의미의 ‘라맛 레히’라고 명명하였습니다.

 

그런데 일 천명의 사람을 죽이고 나니 삼손이 갈증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삼손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우묵한 곳을 터뜨려 샘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부르짖는 자가 마실 수 있는 샘’이라는 뜻의 ‘엔학고레’라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좋은 의미라는 생각이 듭니다.

 

4) 넷째, 침례의 물은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와 합하여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속에 들어가는 것은 옛 사람이 죽는 것이고, 물에서 올라오는 것은 새 사람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새 생명을 받은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래서 침례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물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씻는 것입니다.

 

5) 다섯째, 엡5:26절에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함을 입고 거룩하게 된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라고

하셨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의 물로 깨끗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인 물로 씻음 받는 것에도 두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온 몸을 씻는 것이고, 둘째는 발만 씻는 것입니다.

 

요13:10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은 두 가지 씻음을 분명하게 구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너는 나와 아무 관계가 없다고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목욕을 시켜 주십사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사람들, 번제단을 거친 사람들은 이미 온 몸을 씻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이미 구원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온 몸을 깨끗케 하셨습니까?

 

그러나 목욕을 해도 발이 더러워질 수 있습니다. 발은 매일 씻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목욕하는 것은 평생 한 번만 하면 되는 것이고, 발은 매일 씻어야 되는 것입니다.

 

제사장들도 위임식을 할 때는 모세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온 몸을 깨끗하게 씻겨주었습니다.

출29:4절에 “너는 아론과 그 아들들을 회막문으로 데려다가 물로 씻기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한 번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의 모든 죄책을 씻으시고

기본구원을 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기본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단독사역입니다.

 

▲그러나 제사장은 매일 성소에 들어가기 전 스스로 손과 발을 깨끗이 씻어야 합니다.

이는 모세가 씻겨주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 스스로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울삼아 자신을 살피고

죄가 있으면 자백하고 마음을 깨끗하게 하여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성화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성도가 협력해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행하는 일입니다. 성화는 하나님과 성도의 협력사역입니다.

 

번제단은 피, 물두멍은 물을 의미하기 때문에

기본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받지만

성화 과정은 물로 받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7절에 성도가 일상적인 죄를 지었을 때, 우리 죄를 자백하면

예수 그리스도의피가 깨끗케 하신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우리는 죄가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거울로 삼고 잘 돌아봐야 합니다.

그리고 죄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죄를 자백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죄를 씻어 우리의 마음이 정결케 되고,

깨끗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히10:19~2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우리는 이제 천국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내 죄를 위해 피를 흘려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천국을 갈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천국이 기다리고 있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렇게 천국에 들어갈 사람은 악을 버리고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히 10:22).

 

우리 모든 성도들이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늘 정결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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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바다’

왕상7:23~26절에는 놋 바다가 나옵니다. 물 저수조(물 대야)로 부를 수 있는 ‘놋 바다’는

지름이 5미터, 높이 약 2.5미터에 달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둘레는 장정 8명 이상이 둘러쌀 정도로 큰 약 15미터 정도(왕상7:23)였습니다.

 

이 물 대야(놋 바다)는 제사에 사용할 물을 담아두는 그릇이었습니다.

이 그릇에 담겨 있는 물의 용도는, 제사장들이 자기 몸을 씻는 용도로 사용했습니다.

 

이 물 저수조(놋 바다)에 담겨있는 물의 양은 ‘2천밧’(왕상7:26)이었습니다.

최대 3천밧(대하4:5)으로 적고 있습니다. 1천 밧은 얼마만큼의 용량일까요?

1밧은 22.7리터입니다. 그렇다면 45,400리터(최대68,100리터)의 물이 담겨있었던 것입니다. 45톤(최대 68톤)이나 되는 물, 엄청난 양입니다.​ 석유통 드럼으로 255 드럼입니다.

 

그래서 이 많은 양의 물을 보고 ‘바다 Sea’로 불렀던 것입니다.

그 옛날 성경에서 바다로 번역되곤 하는 단어는 ‘많은 물’이라는 뜻으로도 사용했습니다.

놋으로 만든 물 저수조에 바다같이 많은 물이 담겨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