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능, 이성, 성령에 이끌리는 삶 유다서1:10 09.05.31. 설교일부녹취
유1:10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는도다
또 그들은 이성 없는 짐승 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여러분, 길에서 운전을 하고 가다보면
내 앞에 가는 차가, 자기 차선을 지나서 갓길로 넘나들 때가 있다.
대단히 위태하게 보인다. 뒤에서 따라가는 사람마저 불안하게 만든다.
그 이유는 약 2가지다. 음주운전이거나, 졸음운전이다. 그래서 제정신이 아니다.
여러분, 음주운전이나 졸음운전을 말씀드리려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내가 <내 인생의 운전>을 그렇게 갈 지之자로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타락한 본능이나, 부패한 이성에 의해 조종 받을 때인데...
세상에 모든 사람이 자기 본능이나 이성에 예속되어, 그것의 조종을 받고 살아가는데,
문제는 그 본능이나 이성이 ‘죄로 인해 타락한 본능과 이성’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 인생이 S자로 위태롭게 운전해서 달려간다는 것이다.
◑1. 본능에 의해 지배받고 사는 사람
본능에 붙잡혀서, 본능이 이끄는 대로, 본능적으로 사는 사람이 있다.
▲동물들은, 본능에 지배 받아 살아간다.
본능은 모든 동물들이 가진 동물적 속성이다.
개가 강아지를 낳으면, 강아지가 눈도 아직 못 뜬 것이
꾸물꾸물 기어서 정확하게 엄마 개의 젖을 빤다. 정말 신통하다.
연어는 한국의 개울에서 부화하면,
태평양을 지나서 미주 연안까지 가서 산다.
그러다가 죽을 때가 되면, 다시 태평양을 건너서, 자기가 태어난 개울로 다시 찾아온다.
정말 무서운 ‘회귀본능’이다.
▲사람도 동물적 속성을 공유하고 있으므로, 사람에게도 본능이 있다.
원래 사람의 본능은.. 동물처럼..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죄로 타락한 다음에.. 사람의 본능도 타락했다.
그래서 사람의 본능 속에 <욕심, 정욕> 이런 것들이 가득하게 되었다.
따라서 사람이 본능에 예속되어, 본능에 이끌리는 삶을 살면.. <속물>이 된다.
죄 짓고, 쾌락을 찾아가게 되어있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는 본능에 예속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2. 이성 주도적인 사람
이성에 붙들려, 이성의 조종에 의해 살아가는 사람이다.
▲이성은 짐승에게는 없는, 사람에게만 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이다.
‘이것은 옳다. 그래서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
‘저것은 옳지 않다. 그래서 그렇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판단하는 능력이 바로 이성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성이 자기 주인>이 되어서 살아간다.
그런데 인간은 죄로 타락한 존재가 된 이후에, 이성에도 그 죄의 영향이 미쳤다.
원래는 이성이 바르게 판단할 수 있었는데,
아담의 원죄이후, 인간의 이성도 변질되게 되었다.
명예욕, 체면, 욕심 등이 이성에 달라붙어서, 이성의 배후에 숨겨있게 되었다.
▲그래서 자기 딴에는,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바르게 말한다는 그 말 한 마디 속에도
교묘하게 그 배후에 교만이 숨겨져 있을 수 있다.
이성으로 판단해서, 구제한다고 내어놓는 돈 배후에도
자기 체면이 숨겨져 있을 수 있다.
‘이성적 행동’이라고 하지만, 실제는 ‘명예욕’이 되고,
표면은 ‘이성적 행동’이지만, 실제로는 ‘교만적 행동’이나 ‘자존심적 행동’이 된다.
그러므로 나의 지식, 나의 이성.. 믿을 것이 못 된다.
그래서 ‘이성 주도적인 삶’.. 결코 온전한 삶이 아니다.
◑3. 성령에 이끌리는 삶
그래서 성도는 ‘본능에 이끌리는 삶’도 아니요,
‘이성에 이끌리는 삶’도 아니요
‘성령에 이끌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성령에 이끌리는 삶’을 살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성에 이끌리는 삶’을 살게 되고
그래서 ‘자기는 옳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옳은 것이 아닌 것이다.
더 나아가 본능에 이끌려서
여러 가지 욕심과 죄에 빠지는 삶을 살게 된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