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강풍 대피령 슥6:1-15 출처보기
여러분, 요즘 뉴스에서는 계속 대피령에 관한 뉴스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얼마 전 9월 초에는 허리케인 ‘아이린’이 미국의 동부, 특별히 뉴욕 지역을 강타했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린’이 도착하기 전에
오바마 대통령이 뉴욕시민들에게 강제대피령을 내립니다.
미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하는데, 25만 명이 대피를 하게 됩니다.
이런 대피령은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성령의 강풍’을 왜 대피합니까?
성령의 강품이 불면, 대피가 아니라, 나가서 맞이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성령의 역사에는 여러 가지 측면이 있어요.
물론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고,
보이지 않는 천국에 마음을 두게 하는 것 역시 성령의 역사입니다.
이건 성령의 바람을 타야 되는 것이에요.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성령을 통하여 내 삶의 주변에 나타나기 시작할 때,
우리는 빨리 그것을 대피하지 않으면 큰일 날 수 있습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본문 설명
본문의 말씀은 여덟 개의 환상을 스가랴가 보는 가운데
여덟 번째 마지막 환상이에요.
그 마지막 환상의 내용은
시온산과 감람산, ‘두 산’이라고 하는데 정관사가 붙어서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산을 말합니다.
그게 시온산과 감람산인데, 놋으로 된 산이라고 그래요.
히브리 사람들에게 있어서 ‘놋으로 된 산’이라는 것은
‘하늘의 문’을 말하거나
하나님의 통치자 되심의 위엄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 옛날 구리나 놋이 귀할 때의 얘기입니다.)
▲그래서 그 사이에서 병거 네 개가 나타납니다.
붉은 말들이 끄는 병거가 있고,
검은 색 말, 흰색 말, 얼룩얼룩한 말이 끄는 병거가 있습니다.
이 병거가 온 땅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 앞에서 있다가, 사방으로 달려 나갑니다.
건장한 말들이 끄는 이 네 개의 병거가 달려 나갑니다.
그런데 이 달려 나가는 제 개의 병거를 네 바람이라고 말합니다.
병거란 그 옛날에는, 군사력의 강대함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강력한 통치력의 상징이었습니다.
먼 지역까지 다 통치하려면 병거가 있어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러한 상징적인 것이
하나님 앞으로부터 사방으로 <바람처럼> 번져나간다는 겁니다.
지금 본문의 정황은, 성전을 재건하고 있습니다,
성전재건을 하게 되면 하나님이 임재하십니다.
성전에서, 그 임재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이 땅의 동서남북으로 사방으로, 하나님의 통치가 뻗어나가는 것을
병거로 표현하고 있고, 또한 네 바람이라고 얘기를 합니다.
▲히브리어로 ‘루아크’라는 말은, 바람이면서 동시에 뭡니까?
슥4:6절에서 본 것처럼 스룹바벨에게 맡긴 하나님의 대역사인 성전재건은
‘힘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도 되지 아니하며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써 되느니라’할 때,
그 ‘영’도 ‘루아크’ 바람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 사방으로 하나님으로부터 퍼져 나가는 네 바람, 네 병거는
하나님의 통치력을 말하는 것이고
이 땅에서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심판의 역사 때.. 대피해야
그런데 이상한 표현이 있다는 거예요.
8절에 보면, ‘그가 내게 외쳐 말하여 이르되 북쪽으로 나간 자들이
북쪽에서 내 영을 쉬게 하였느니라 하더라.’
도대체 '북쪽에서 하나님의 영이 쉰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내 영을 쉬게 하였다’의 히브리어 원뜻은
‘그것의 북쪽에 머물러서 영이 (쉬면서) 마음껏 활동하신다’는 것입니다.
영이 머물러서, 그 영의 역사가 마음껏 일어나게 되었다는 이야깁니다.
그럼 ‘북쪽에 머물러서’ 무슨 뜻입니까?
바로 9절과 10절에 이어 나옵니다.
바벨론에서 사로잡힌 자들이 돌아왔다는 얘기를 합니다.
스가랴 선지자자 활동할 때는 바벨론은 이미 없습니다. 페르시아 입니다.
그런데도 바벨론이라는 말이 계속 쓰이는 이유는
바벨론에 의해서 잡혀갔기 때문에, 그리고 그 바벨론이 성경에서는
북쪽의 세력으로 상징화 되어서 늘 얘기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북쪽에 머물면서, 내 영이 쉰다’는 것이 무슨 말일까요?
바벨론에 있는 선민들이 다 바벨론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영이 쉰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염려 없이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바벨론이라는 지역을 향한 당신의 계획대로
마음껏 역사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치 아군의 전투기가 폭격을 하지 전에
그 지역 내에 있는 모든 아군을 철수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바벨론에 역사하시려는 네 병거에 의해 상징화 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선민들이 빠져나와야.. 마음대로 역사하실 수가 있게 된다는 말입니다.
▲자, 여러분! 좀 더 깊이 한 번 얘기를 해 봅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소돔과 고모라에 살았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려는 하나님의 역사, 성령의 역사지요,
성령을 통해 이 땅을 다스리고 계시니까…
구원의 역사도 성령의 역사지만 심판의 역사도 성령의 역사 아니겠습니까?
그 멸망의 강풍이 불어올 때, 선택하신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을
그 가족과 함께 대피시키십니다.
그래야 마음 놓고 심판의 역사를 하실 수가 있으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때 대피하라고 명령하시고
대피를 시키시는 일이 꼭 이렇게 부정적인 의미에서
심판과 멸망과 저주의 역사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에요...)
◑축복의 역사 때도.. 대피해야
그런데 축복의 역사에서도 이 대피령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점을 놓치고 있는 겁니다.
다윗이 목동에서 왕으로 등극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왕의 자리에 세우려고 하는 대역사가
다윗의 삶 속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전에 십년동안이나 아무 죄도 없이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니게 합니다.
쫓겨 다닐 때마다 도저히 힘없고 빽 없고 무능력한 상태에서 쫓기고 있는 다윗을
하나님께서 위기의 때마다 건져내시면서
사무엘서에서는 ‘하나님의 손이 구원했다’고 얘기합니다.
계속해서 십년동안이나 사울에게 쫓기게 하시면서
다윗으로 하여금 내가 거할 처소는 황무지도 아니고,
하나님의 장중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십년동안 황무지와 사막을 전전하고 쫓겨 다니면서 몸에 익히게 한 것이 뭐냐 하면
바로 ‘하나님의 장중에 내가 있는 것이다,’ 하는 마음을 체질화 시킨 다음에
하나님께서 왕궁으로 보내서 왕의 자리에 앉히십니다.
▲왕의 자리에 앉았을 때 다윗에게 왕이라고 하는 것은
허리케인 ‘아이린’과 같은 태풍입니다.
미국의 역사상 대피령을 최초로 내릴 수밖에 없었을 만큼 강력한
허리케인 아이린과 같은 이 하나님의 왕위에 앉히겠다고 하는 섭리의 강풍이
다윗의 마음에 불어올 때
다윗의 마음은 이 강풍에 휩쓸려서 죽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성령의 강풍에 의해) 죽게 된 경우가 바로 사울왕의 예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시 시골에 살고 있던 사울을 왕의 자리에 앉히셨습니다.
그런데 사울의 마음은 왕이라고 하는 현장,
왕의 자리라고 하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현장에서
그 마음이 대피하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보내신 왕의 자리라는 하나님 역사의 대풍에 의해서
사울은 휩쓸려 가버리고 그 심령이 죽어버리고 말게 되는 것이에요.
▲자, 성령의 강풍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바로 오순절 역사입니다.
강한 바람 같은 것이 불고 소리가 나면서, 혀 같은 불들이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방언을 하게 되고, 겁에 질려 쩔쩔매고 문을 닫아두었던 자들이
문을 박차고 나가서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을 전하는데, 기적이 따라서 일어납니다.
초대교회에 성령의 강풍이 불었습니다.
이때 이미 사도들의 마음은
성령의 강풍이 부는 그 현장에서 완전히 빠져나온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빠져나왔습니까?
예수님께 마음을 다 드렸고,
그렇게 마음을 두고 쫓아가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절망했어요.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천하실 때에 제자들의 마음이 주님께 드려졌기 때문에,
주님께서 제자들의 마음을 데리고, 이 땅을 떠나서 천국으로 가버리신 거예요.
제자들의 마음상태는 완전히 이 땅에서 대피해서 하늘나라로 가버렸습니다.
◑적용
왜 주님께서 대피를 시키셨을까요?
왜 제자들의 마음을 끌고 하늘로 올라가버리셨을까요?
그래서 사도바울이 에베소서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신 바 되었다’고 말씁합니다.
대피시키신 겁니다, 주님께서.
왜? 선민의 마음을 주님의 십자가의 사건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자들의 마음을
왜 주님은 승천하시면서 다 갖고 가버리신 걸까요?
왜 천국으로 대피시키시는 겁니까?
이제 내 삶의 자리에 성령의 강풍이 허리케인 ‘아이린’처럼 불어올 것이기 때문에,
그 자리에 남아있으면 반드시 내가 죽습니다.
‘어, 이상하다? 성령의 강풍이 부는데 왜 내가 죽을까?’
자, 보세요, 여러분!
베드로가 성전미문의 앉은뱅이를 고칩니다.
이때 사람들이 놀라서 베드로와 요한을 붙들어다가
솔로몬행각에 놓고 그들을 경배하고 존경하려 합니다.
내가 기적을 일으켰어요, 앉은뱅이를 일으켰습니다,
성령의 강풍이 분 현장에 내 마음이 있어서 내가 일으킨 것으로
나 스스로가 만분의 일, 천만분의 일이라도 느끼기 시작하면
가랑비에 옷 젖는지 모른다고 점점 그것이 나의 공로가 되면서
성령의 강풍이 불면서 성령의 강풍에 휩쓸려서 내가 반드시 죽고 멸망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이 쉼을 얻으실 수가 없어요.
하나님의 영이 쉼을 얻는다는 게 무슨 뜻이라고요?
하나님의 영이 마음 놓고 머물면서 모든 걱정과 염려로부터 해방되어서
걱정을 쉬시고, 염려를 쉬신다는 얘기에요.
그리고 마음대로 역사하시는 것은
선민이 바벨론 땅에서 빠져나왔기 때문 아닙니까?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은사를 좋아하십니까? 조심하세요!
교회부흥을 성령의 역사를 통해 이루고 싶으십니까? 조심하세요!
교회부흥이라고 하는 성령의 강풍이 불게 될 때
그 교회부흥이라는 현장에 마음을 두고 교회부흥을 내 마음이 좋아하고 붙어있다가는
내가 반드시 멸망하게 되고 내가 반드시 교회가 부흥했기 때문에 멸절되게 됩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영이 교회에서 역사할래도 마음 놓고 역사할 수가 없어요,
쉼을 얻지 못하시는 겁니다.
▲왜 부흥을 좋아하십니까?
부흥, 교회라는 현장에서 빨리 대피하세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원한다면…
성령께서 목사님의 마음이 장로님들과 권사님들의 마음이 교회부흥을 원하고
교회에 붙어있기 때문에 성령이 역사를 못하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사업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사람에 따라서 계획하신 바가
돈벼락을 내리실 수도 있어요.
돈벼락 맞고 죽을까봐(타락할까봐) 돈벼락 안 주시는 겁니다.
돈벼락 내리셔도 죽지 않으려면 돈에서부터 마음이 대피하세요!
돈에서부터 마음이 긴급대피 해야 돈벼락을 내리셔도 여러분이 죽지 않으니까
아버지께서 마음껏 영의 역사를 허락하실 것 아닙니까?
참 아이러니 한 거예요. 그렇죠?
▲여러분, 주님의 십자가가 복음이에요,
그 복음의 또 한 측면은 긴급대피령입니다.
이 땅에서 내 삶에서 내 마음이 붙어있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가정에, 아내, 남편, 자식, 직장, 일, 건강, 그 어떤 것에 마음이 붙어있든지
바벨론으로 알고 바벨론 포로귀환처럼 빨리 빠져나오세요.
왜 빨리 빠져나와야 됩니까?
내 자식에게 내 마음이 붙어있으면 자식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강풍처럼 임하여 이루어져 나갈 때 내 마음이 함께 망해갑니다.
자식이 안되면 안된 대로..
잘되면 잘된 대로.. 마음이 함께 휩쓸려가는 것이에요.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심판과 멸망과 경책, 멸망이
주님 십자가가 있는데 우리에게 있겠습니까?
그러나 경책이 주어질 때라도, 아니면 긍정적인 측면에서
돈도 많이 벌고, 건강해지고 이러한 축복이라고 말하는 강풍이 불 때에도,
축복이라고 말하는 하나님의 섭리가 우리에게 나타날 때에도,
우리가 마음을 두고 있는 축복의 현장으로부터 마음이 대피하지 않으면
축복 때문에 망합니다.
축복이 축복이 아니라, 축복벼락이 되어서, 축복에 맞아 죽습니다.
축복에 맞아 죽지 않으려면 축복축복 하지 마시고 축복으로부터 대피하세요.
빨리 대피해야 됩니다.
▲바벨론에서 돌아와야 되고, 바벨론에서 빠져나와야 되지요.
바벨론이 대제국이라고 그 울타리 안에서 안주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이 땅의 그 무엇에도 마음이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식구가 없는 노처녀들이 강아지를 기릅니다.
강아지에게도 마음을 두지 마세요.
그 강아지 때문에 마음에 위로를 삼고 삽니다. 측은하지요.
어쨌든 마음을 둘 것이 있으면 안돼요.
그게 음악이라는 취미건 골프라는 취미건 바둑이라는 취미건
그 어떤 것에도 마음을 두지 말아야,
우리 마음이 대피해야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이 땅에 대해서 죽으라는 얘기요,
이 땅의 어떤 것에 대해서도 빨리 대피하라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성전재건에 연관된 마지막 환상의 내용이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