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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정제도의 문제점 삼상8:10-22 (곽선희 목사 새벽강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하나님 앞에 왕을 세워 달라고 부르짖고 있다.
지금까지는 왕은 없었다. 모세가 이스라엘을 다스렸지만 그는 왕이 아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그는 하나의 섬기는 자였다.
또 사사들이 백성을 다스렸지만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있을 때 그들을 재판하는 사람이요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는 사람일뿐이다. 결코 그들은 왕이 아니었다.
그리고 온 백성은 하나님이 친히 왕이 되신다.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서 그들은 모두가 자유할 수 있었다.
백성들이 왕울 구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 이방 나라가 쳐들어오는 것이다.
소위 요즘 말로 하면 안보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 안보의 문제는 하나님이 해결하시는 것이다.
뭐, 자기들이 해결할 길이 없다. 더구나 이는 적은 민족이다.
그런고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백성이라는 것을 확증해 주심으로
이방 나라들은 감히 쳐들어오지 못한다.
하나님이 방어해 주신 것이다. 이 안보 문제는 이렇게 해결이 된다.
또 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성실히 살면 모두가 평안하다.
그리고 또 백성과 백성 사이에 혹 좋지 않은 사람이 있어서 문제에 부딪치게 되면
사사가 나타나서 재판을 해준다.
누가 옳고 그르다는 것을. 그리고 그들에게 부가 있고 자유가 있다.
뭐, 아무 걱정할 것 없다. 하나님만 잘 섬기면 여러 풍조에 대해서도 이길 것이고
질병도 막아 주실 것이다. 이 이상 더 좋은 게 없다.
이게 가장 이상적인 제도가 무정부제도 (또는 ‘작은 정부’) 라 하지 않던가?
법이 너무 많고 억압하는 자가 많으면 아주 어렵다.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자율적으로 하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지금은 세상이 많이 달라졌지만, 30년 전의 때의 이야기다.
그때는 덴마크나 스웨덴 이런 곳에 살게 되면
평소에 교도소나 경찰서에 언제나 흰 깃발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흰 깃발을 높이 달았다.
이건 죄수가 없다는 뜻이다. 감옥은 있는데 죄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큰 도시에도 순경이 없다. 순경이 몇 사람 있기는 있는데
그냥 사무실에 앉아 있고 나와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자, 이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모두가 하나님 앞에 정직히 행하고 바르게 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왕을 세워야 될 이유가 없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바로 통하고 그 중간에 어떤 계층이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인데,
이 사람들이 지금 왕을 세우겠다고 그런다.
그런데 오늘 여기 성경에서는 지금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다.
‘이것은 너희들이 선택하라. 하되 선택에 대한 값은 지불해야 된다’는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지 자기들이 선택한데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
자, 왕을 주십시오 했으면 이제 왕이 세워질 때에
그에 따라서 되어지는 후속 조치, 그것 간단한 게 아니거든요.
왕을 세우면 이런 이런 일들이 뒤따라온다. 이걸 너희가 감당하겠느냐.
그러자 백성들은 그러하겠습니다 했다.
여기서 생각해야 된다. 그러면 이게 지금 알고 하는 이야기인가?
왕을 세우고 나면 그 다음에 어떻게 된다는 것을 다 알고 하는 이야기인가?
▲오늘 본문에 보니까 분명히 자세하게 말하고 있다. 본문을 보세요.
왕이 있으면 자기가 왕 되기 위해서 시종자가 필요해요.
주변에 남자 여자들, 경비대가 필요하다. 친위대가 필요하다.
또 음식 만드는 자가 필요하다.
그래서 너희들의 아들들을 잡아다가 병거를 만들 것이고, 군사를 삼을 것이고
또 너희들의 딸들을 데려다가 음식 만들라고 할 것이고,
그리고 이것 만들면 음식 재료가 있어야지요.
그러기에 너희들이 추수한 곡식의 10분의 1일을 세금으로 빼앗아갈 것이요
그리고 양도 십분의 일을 가져갈 것이고 또 주변에 충성된 신하들을 많이 두고
그들도 귀족으로 만들어서 왕이 함께 화려한 생활을 할 것이다.
그러면 너희들은 완전히 그 왕의 종이 될 것이다. 왕 하나 높이고 섬기기 위해서
너희들은 그 앞에서 굴복하는 자, 섬기는 자가 될 것이다. 종이 될 것이다. 이렇게 말해준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대답을 보니까 '그래도 좋습니다. 왕을 주세요' 라고 나왔다. 왜 이런가?
왜 이런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되느냐? 그것을 다시 성경은 가르쳐 준다.
너희가 왕을 삼으면 이러 이러한 일이 있을 것이다 하고 말한다. 그것을 믿지 않는 것이다.
여기에 중요한 문제가 있어요. 사람들은 자기가 경험하기 전에는 지식이 성립되지 않는다.
들었지요. 그러나 몰라요. 경험하기 전에는 몰라요. 그걸 알아야 된다.
▲지금 북녘 땅에 있는 우리 동포들에게 가서 남한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남한은 이렇고 저렇고. 그러나 그걸 믿지 않아요. 들었지요. 그러나 보지는 않았어요.
자기가 직접 본 일이 없고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반신반의한다. 봐야 믿지 안 믿어요.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사무엘이 말하는, 이 왕을 세우면 그 제도가 이러하다,
그 결과가 이렇게 된다는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
믿지 않으면 부득불 당할 수밖에 없다.
이 지식이 알려질 때까지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걸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된다.
그리고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왜 사람들이 이렇게 왕을 세우겠다 하는가 하면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함께 있을 때 모세가 잠깐 시내 산에 올라가서
하나님께로부터 계시를 받고 있을 때, 그 사이를 못 참아서
금송아지를 만들었을 때와 같은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하시는 방법이 대해서 불만이 있어요. 하나님은 보이지 않잖아요.
왕은 눈앞에 보이지 않는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나를 다스리신다.
내게 은혜 주시고 나를 지켜 주신다. 이게 영 믿어지지가 않아요.
자, 하나님이 울타리를 쳐주셨다. 그러니 이제 안심하고 여기서 농사해라.
이제 평안하게 살아라. 그런데 그걸 믿지를 않아요.
차라리 왕이 있고 군대가 있고 병거가 있고 큰 군대가 있고 거기에 성을 쌓아 놓고
막아 놓아야 가시적으로 야, 우리가 보호되고 있구나 믿어요.
확실하고 뭐가 좀 되는 것 같은데, 눈에 보이지를 않으니까 안 믿는 것이다.
여러분, 오늘도 깊이 생각해야 된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어느 쪽이 큰가?
어느 쪽을 더 믿을 수 있는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없고 저금통장은 믿는다.
그래서 저금통장 붙들고 있는 것이다. 돈을 쥐고 있지 않으면 그냥 죽는 줄 알아요.
그러나 그게 아니다. 그거 있어도 죽어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 항상 나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 이분으로 우리는 만족해야 되는데
이걸 만족하지 못하고 내 눈앞에 있는 사람, 물질, 정치, 돈, 이런 것, 이것만 믿으려고 그런다.
영 못 믿으면 스위스 은행까지도 가잖아요. 어쨌든 이런 모든 것은 불신앙이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 그리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역사,
그의 보호하심, 그의 축복을 믿고 안심해야 된다. 보이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래야 되는데 저들은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대하여 불만을 품고
보이는 왕을 찾고 있다.
▲또 한 가지는 인간적인 추리가 이같이 만드는 것이다.
사무엘이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이 사무엘과 함께 하세요. 그러니까 그건 분명히 믿어요.
사무엘이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무사하다. 무슨 문제만 있으면 사무엘에게 가면 되고
그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해결되고 그러면 안심이다.
그러나 이제 사무엘이 늙었어요. 여기에 불만이 있는 것이다.
그러면 사무엘이 늙었으면 아들들이라도 사사가 되면 되는데, 그들은 방탕해요.
여기서 문제가 된다. 후임에 대한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하나님이 세우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무엘을 세웠으면 그 다음은 누구든지 필요한 대로
하나님이 그 다음 사람을 세우실 것이다. 그건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믿는 것은 하나님이시다. 그런고로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그 다음 그 다음 하나님이 알아서 다 세우실 것이다.
그런데 지금 세워 주신 것은 믿고 그 다음은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무엘이 늙었다는 것, 무슨 상관이 있는가? 사무엘이 죽었다. 그것이 무슨 상관이 있어요.
하나님이 안 죽으셨으면 되지.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인간적 추리가
이같이 왕을 세우고자 하는 그런 의견을 가지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세 번째로 생각할 것은 오늘 본문에 보면 뭐라고 하는가 하니
"열방과 같이" 라고 하는데, 이 말이 중요하다.
다른 이방 민족들을 보니 그들에게는 왕이 있고 군사를 거느리고
위대하게 걸어 다니고 많은 시위들이 있고, 아마 이게 화려했던가 보다.
우리도 저렇게 했으면 좋겠다. 이거 겉으로 나타나는 화려함만 보았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노예생활 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해야 한다는 것을 몰라요. 그게 문제라는 것이다.
가끔 그런 경우에 이런 말을 듣는다. 미국의 우리 교포들에게 부흥회를 인도하러 갈 때가 있는데
그때 교인들이 찾아와서 조용히 이야기하는 말 가운데 그런 말이 참 많다.
어떤 때 한번 자기 부인과 같이 친척을 방문해서 미국으로 왔어요. 와서 보니까
그곳에 살던 때보다 집도 좋고 자동차도 좋고 주말에는 놀로 간다고 다 또 어디 가고,
이걸 보고 '와, 좋다. 우리도 여기와 살자.' 그리고 그냥 다 팔아 가지고 왔대요.
와 놓고 보니까 그게 아니더래요. 집은 25년 동안 무는 거고,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직장에 나가서 일을 하고. 아주 죽을 지경이란다.
그리고 보험을 들어 놓고 그걸 물어야 되고. 그러니까 두 사람이 그냥 얼굴이 노래 가지고
고생을 했다. 자, 이젠 되돌아 올 수도 없고 이거 큰일 났단 말이다.
그래도 결국 되돌아오는 사람이 많지 않는가? 뭐, 1년에 4000명이나 된단다.
갈 때 무슨 마음으로 가는가? 그러기 때문에 가서 삼 년을 지내 봐야 생활이 어떻다는 것을 알아요.
그런데 잠깐 가서 친척집 방문하면서 돌아보고 오면 좋은 것만 보고 오거든요.
지금은 우리가 이렇게 좀 잘 사니까 낫지만, 60년대 후반과 7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상당한 차이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얼마 동안 가서 좋은 것만 보니까 눈은 휘둥그래졌다.
참 좋다 했어요. 그러나 그런 엄청난 삶 밑에는 값비싼 값이 지불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그걸 몰랐어요.
자유, 이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르고 있는가?
그 만한 생활을 하려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해야 하겠는가?
미국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길이 막히지 않는 시간에 여행을 출발하려고
새벽 4시에 나갔는데, 그런데 그때 벌써 고속도로가 꽉 찼더란다.
그 엄청난 나라의 국민들이 아직 그렇게 부지런하다.
그런데 아직 우리 나라는 멀었어요. 아침 7시만 나가 보세요. 길이 뻥 뚫려 있다.
아직 덜 부지런하다. 제대로 살려면 이에서 더 부지런해야 한다. 엄청난 값을 지불해야 한다.
너희가 왕을 선택했다고 하자. 왕을 선택해서 이런 고통이 주어질 때
마지막에 부르짖을 것이다. '이거 못살겠습니다. 왕 때문에 못살겠습니다.
왕에게 착취당하기 때문에 못살겠습니다. 억압 때문에 못살겠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부르짖게 되면 그 부르짖음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안 들어주신다는 것이다. 오늘 본문 18절에 안 들어주신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에 대한 것은 믿어야 한다.
말씀하시는 대로 믿어야 한다. 믿음으로 아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해 본 일이 없어요.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리고 오늘 주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우리는 만족해야 한다.
항상 만족하고 감사하자. 여기에 원망이나 불평이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