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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노년기와 사망 창25:1~11 2013.10.20
서론
아브라함은 향년 175세로 사망했습니다.
자신의 아내 사라가 죽은 후 38년, 아들 이삭이 결혼한 후 35년을 더 살았습니다.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발육하리로다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왕하리로다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여” (시 92:12~14).
아브라함은 늙어서도 자식들을 많이 낳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참으로 복된 노년기를 보냈습니다.
◑1. 아브라함은 후처를 취하였다
아브라함은 노년기에 후처를 취했습니다. 38년을 홀로 살려니까 결혼을 또 하게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후처를 취하였으니 그 이름은 그두라라” (창 25:1).
‘그두라’라는 이름의 의미는 ‘향수’입니다.
그두라는 아브라함의 여종 가운데 하나였는데, 향수를 뿌리고 다녔나 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그두라를 취하여 아내로 삼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두라를 아내로 볼 것이냐 아니면 첩으로 볼 것이냐는 문제가 있습니다.
아내는 영어로 ‘wife’이고 첩은 영어로 ‘concubine’인데
창25:1절에 나오는 후처는 ‘wife’입니다.
사라가 죽은 이후에 재혼했으니까 첩은 아닌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역대상 1장 32절에 나오는 첩은 ‘concubine’입니다.
또 창25:6절에 ‘자기 서자들에게도’가 ‘the sons of his concubines’로 나옵니다.
언약의 후손인 이삭을 낳은 사라와 구별하기 위해서, 그두라를 첩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래서 그두라의 자녀들은 적자의 반열에 들지 못하고, 서자의 반열에 들게 되었습니다.
그두라는 여섯 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훗날 앗수르와 아람 민족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늙은 나이에 후처를 취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인간적인 이유입니다.
이삭은 리브가와 결혼한 후에 아브라함을 떠나서 살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하나님이 그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고
이삭은 브엘라해로이 근처에 거하였더라” (창 25:11).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있었고 이삭과 리브가는 브엘라해로이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브엘라해로이는 하나님이 하갈에게 나타나셔서 감찰하신 우물이 있는 곳입니다.
아브라함은 홀로 남게 되었습니다.
지난주에 시니어 대학에서 약 200분의 어르신들이 소풍을 갔다 오셨는데,
제가 어르신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러니까 어르신들이 배고픈 것이나 질병이 아니라 ‘고독감’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하루 종일 대화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노년기에는 대화할 상대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노년기가 될수록 사람이 많은 곳에 가야 됩니다.
아브라함이 노년기에 장가를 든 이유는 고독감을 이기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둘째, 인간적인 이유뿐만이 아니라 영적인 이유도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99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창 17:4).
많은 나라들의 아비가 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만의 아비가 아닙니다.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 나리라” (창 17:6).
아브라함을 통해서 여러 나라가 세워질 것이라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유대인뿐만이 아니라, 이방인의 나라들도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자기 서자들에게도 재물을 주어 자기 생전에 그들로 자기 아들 이삭을 떠나
동방 곧 동국으로 가게 하였더라” (창 25:6).
당시 풍습에 따르면 서자들에게는 재산을 나눠줄 필요가 없었습니다.
서자들은 재산을 받을 권리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사후에 이삭을 대항해서 유산 싸움이 일어날 것을 우려하여
유산을 서자들에게 미리 나눠준 것입니다.
재산이 많으신 분들은 돌아가시기 전에 자식들에게 미리 유산을 나눠주어서
싸움이 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아브라함은 서자들을 가나안 땅의 동쪽 아라비아 일대 지역에 살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사려 깊은 부성애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두라의 몸에서 6명의 아들을 낳고
본문에 손자가 7명, 증손자 3명 모두 합해서 16명의 이름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 이름을 우리가 다 외울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눈에 익은 이름들이 있습니다.
“수아를 낳았고” (창 25:2).
욥기 2장 11절을 보면 욥의 세 친구 가운데 수아 사람 빌닷이 나옵니다.
수아는 빌닷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욕산과 스바와 드단을 낳았으며” (창 25:3).
열왕기상 10장 1절에 보면 솔로몬의 지혜를 듣고 찾아온 사람이 스바 여왕이었습니다.
창25:2절에 나오는 미디안은 성경에 자주 등장합니다.
창37:28절에 요셉이 17살의 나이로 형들에게 학대를 당하고 구덩이에 빠져 죽게 되었을 때
나타나서 은 이십 개에 요셉을 산 사람이 미디안 사람 상고들이었습니다.
또 출2:16절을 보게 되면 미디안의 제사장이던 이드로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에게 일곱 딸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인 십보라는 모세의 아내가 됩니다.
그러니까 그두라의 몸에서 난 아들들은 주로 이스라엘 민족을 괴롭히는 이방 국가들을 건설했지만
이스라엘이 위기 가운데 있을 때 결정적인 도움을 주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노년기 혼인을 통해서도
아름다운 섭리를 이루어 나가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아무것도 우연한 일이 없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사라가 죽은 후에도 그렇게 자식을 낳을 수가 있었습니까?
아브라함이 100세에 이삭을 낳은 것도 기적이라고 했는데
그 후에 장가들어 어떻게 여섯이나 낳을 수 있었는지는 의문입니다.
아마도 이삭을 낳을 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회춘시켜주신 것이 아닌가 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하나님은 능히 나이가 많은 가운데서도 자녀를 낳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시라고 믿습니다.
아브라함은 장가를 들어 여섯 명의 자녀를 낳았고, 그 자녀들이 다 나라를 이루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인간적인 필요가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언약을 이루는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2. 하나님은 175세로 장수했다
“아브라함의 향년이 일백칠십오 세라 그가 수가 높고 나이 많아 기운이 진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창 25:7~8).
향년이라는 말은 그가 누린 생애의 날들이란 의미입니다.
그가 누린 생애의 날들이 175년인데 그것이 빨리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을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의 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니 소망 없이 보내는구나” (욥 7:6).
베틀의 북은 영어로 ‘weaver's shuttle’인데 셔틀버스처럼
베를 짤 때 같은 곳을 왕복하는 것이 베틀의 북입니다.
그런데 얼마나 빨리 왕복하는지 사람의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정도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이처럼 신속하게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수가 높고 나이 많아 기운이 지나는 시간은 우리에게도 신속하게 다가옵니다.
이 사실 앞에서 우리는 무슨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한 살이라도 젊은 시절에 참된 신앙을 가져야 됩니다.
전도서를 기록한 솔로몬은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솔로몬이 누리지 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이 내린 결론은 무엇입니까?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전 12:1).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전 12:13).
인간의 삶에 중요한 영역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람들이 모이면 정치, 경제, 돈, 문화 등 여러 가지 중요한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결국 남는 것은 참된 종교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참된 종교만 남고 나머지는 다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정치인으로 유명한 김종필 씨는 ‘정치가 허업’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일인자는 못해봤지만 계속해서 2인자의 자리를 차지했던 분이었는데
아무리 열심히 정치를 해봐도 남는 것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돈을 많이 벌었다 해도 돈을 가지고 갈 수 있습니까? 결국은 놓고 가야 됩니다.
결국 인간의 삶에 남는 것은 참된 종교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탄을 따르는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행복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행복해집니다.
그러다가 완전한 행복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젊은 나이의 사람들은 신앙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됩니다.
신앙을 타협하거나 무관심해서는 안 됩니다.
젊을 때에 너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하루를 충실하게 살아야 됩니다.
하루라는 시간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고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능력도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네 문빗장은 철과 놋이 될 것이니 네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 (신 33:25).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오늘이라는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킬링 타임’이란 말이 있습니다. 너무 심심해서 시간을 헛되이 보낸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킬링 타임’이라는 단어 자체도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하루라는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리스도인은 심심할 수 없습니다.
혼자 있으면 성경 읽고 기도하면 됩니다. 하루 동안 성경을 읽으면 엄청나게 많이 읽을 수 있습니다.
아주 빨리 읽으면 성경의 절반도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법과대학을 다녔는데 학부 1학년 때 사법고시를 보게 되었습니다.
공부를 하려면 책을 사야 되는데 돈이 없는 것입니다.
아버지도 돈이 없으신 것 같아서 돈 달라고도 못하고 시간이 흘러
시험이 일주일 남게 되었습니다.
일주일을 남겨두고 겨우 책을 사게 되어서 공부를 하는데
그때 깨달은 것이 하루에 정말 많은 양의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루 동안 헌법을 다 읽고 문제집까지 다 풀 수 있었습니다.
물론 시험에는 떨어졌지만 하루만 더 있었다면
붙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을 지금도 합니다. 이처럼 하루라는 시간이 참으로 귀중합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마 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걱정하느라고 오늘이라는 귀한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마시고
그날 걱정할 것 있으면 그날 하시고 그날 할 일 있으면 그날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이라는 시간을 성실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 자신을 조용히 점검해 볼 필요도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잘 모릅니다.
왜 자기가 사람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미움을 받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자기 자신은 의롭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점검해 볼 필요도 있고
하나님과 조용히 교제를 나눌 필요도 있고
자신의 삶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공부해야 될 필요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실해야 됩니다. 매일 성실하게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복을 주시느냐? 성실한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젊은 시절부터 참된 종교를 사랑하고 따르며 짧은 시간이라도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야 됩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생애에서 배우는 교훈인 것입니다.
◑3. 아브라함은 노년기에도 생생한 신앙을 유지하며 살았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젊을 때는 기도에 힘쓰고 성경도 많이 읽고 교회 봉사도 많이 합니다.
하지만 중년기를 지나 노년기에 이르면 첫사랑을 버리고, 영적인 생동감을 잃어버립니다.
크리스천들도 노년기에 이르러 영적인 생활에 실패하고
비난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경우를 적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젊을 때는 영적으로 대단했던 분들이 노년기에 가서 비난받고 실패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중년기든 노년기든 나이에 상관없이
더욱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기도하며 말씀 읽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삶을 계속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성도들도 교제하는 삶을 살아야 됩니다.
나는 저런 사람들과는 수준이 다르다며 어울리지 않고 혼자 있으면 자기만 손해입니다.
70세가 넘어가면 잘생긴 사람이나 못생긴 사람이나 비슷해지고
80세가 넘어가면 공부한 사람이나 안 한 사람이나 비슷해집니다.
그리고 90세가 넘어가면 산 사람이나 돌아가신 사람이나 비슷해진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80세가 넘어서 무슨 수준 차이가 있습니까?
수준이 맞지 않는다고 해서 어울리지 않으면 결국 자기만 외로워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늙은 나이에도 하나님과 가까이 동행하며 살았습니다.
삶을 마칠 때까지도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유지하고 살다가 영원세계로 들어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노년기에도 신앙이 뒤로 물러가는 실족 (backsliding)이 없었습니다.
끝까지 믿음의 조상으로 살았습니다.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거쳐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 (잠 4:18~19).
악인들은 어두운 가운데 살다가 완전한 어둠으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어 의인된 사람들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인생이 밝아지다가
죽으면 완전한 광명으로 들어가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점점 빛이 나고 죽으면 광명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노년기라고 해서 기죽을 것이 없습니다.
인생이라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제대할 때가 되었는데 뭐가 괴롭습니까?
행복한 일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처럼 우리도 노년기에 영적인 열정과 생동감을 유지하다가
영광에 들어가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4. 아브라함도 결국 죽어 장사되었다
아브라함도 결국 175년의 복된 삶을 살다가 죽어 장사되었습니다.
죽음이란 간단합니다. 육신에서 영혼이 떠나면 죽는 것입니다.
영혼이 떠나면 육신은 금방 썩어서 흙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 영혼이 천국을 가본 적이 없는데 천국 가는 길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우리 성도들은 그 영혼을 천사가 받들어 천국으로 인도해갑니다.
천사의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가 우리 영혼을 받들어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문태열 집사님이 병원에 계셨는데 천사가 둘이 왔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태열 집사님이 ‘세상에서 할 일이 많으니 아직 데려가지 마시라’고 그랬더니
한 천사가 하나님께 물어보겠다며 갔다 오더니 그냥 떠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곳에서 함께 예배드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도는 죽으면 그 영혼을 천사가 이끌어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아브라함도 육신에서 영혼이 떠나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그리워하던 아내 사라도 만나고
하나님의 백성들과 천국에서 다시 만나 영원한 기쁨 가운데 교제했을 것입니다.
신자의 죽음과 불신자의 죽음은 다른 점이 있습니다.
불신자들은 죽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불신자들 중에 간혹 죽을 때 몸부림치며 괴로워하는 이유는
육신이 영혼을 뺏기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육신에서 떠나게 되면 영원한 어둠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영혼이 육신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내놓으라고 하시면 꼼짝없이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불신자들에게는 하나님이 영혼을 내놓으라고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눅 12:20).
사람이 죽어가는 순간을 제일 많이 보는 사람은 목사들일 것입니다.
여러 사람을 보게 되는데 신자들은 비록 질병이 있어 고통을 받았더라도
죽는 순간에는 얼마나 행복하고 평안한 얼굴을 하는지 모릅니다.
왜냐면 천사들이 와서 그 영혼을 받들어 천국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이 영혼을 달라시면
“아버지, 내 영혼을 부탁하나이다.”라고 하면서 기꺼이 영혼을 아버지께 드리고
평안히 죽음을 맞이하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눅 23:46).
성도는 영혼을 기꺼이 아버지의 손에 의탁합니다.
그러므로 죽음도 평안과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양수리 수양관에서 일하던 김순옥 집사님이 계시는데
젊은 나이에 질병에 걸려 소천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병상 중에서도 항상 밝고 기뻐하며 감사가 넘쳤습니다.
결국 그분은 돌아가셨지만, 죽는 순간에도 기쁨과 감사를 잃지 않았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돋는 햇볕처럼 광명에 이르다가 완전한 광명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 인생은 돋는 햇볕인 것입니다.
하지만 악인의 인생은 어두운 곳에서 헤매다가 완전한 어둠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은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사람이 하나님과 싸워서 이길 수 있습니까?
힘도 없으면서 이기지도 못할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그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를 마므레 앞 헷 족속 소할의 아들
에브론의 밭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 하였으니 이것은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서 산 밭이라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니라” (창 25:9~10).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가 죽었을 때 헷 족속에게서 은 400세겔을 주고 땅을 샀습니다.
그 땅이 바로 마므레 동산입니다. 거기에 막벨라 굴이 있었는데 사라가 거기에 장사되었고
아브라함도 함께 장사된 것입니다.
그런데 장례를 치를 때 이삭과 이스마엘이 함께 장례를 치렀다고 나옵니다.
이삭과 이스마엘은 평소에 만나지 않았습니다.
형제지만 배다른 형제였기 때문에 교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장례식 때문에 만나게 된 것입니다.
부모의 장례는 다툼과 갈등이 있는 자녀들에게 화목을 이룰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인생은 가족들끼리 다투고 싸우며 살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입니다.
가족들끼리 다투지 마시기 바랍니다.
결론
아브라함은 인생의 마지막까지 유종의 미를 거두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젊은 시절부터 참된 신앙에 헌신하시고
노년기가 되어도 신앙에 생동감을 유지하시다가 유종의 미를 거두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점점 광명에 이르다가 완전한 광명에 들어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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