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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와 아마샤 암7:10-17 2011.07.24.
서론
TV 연속극을 보면 항상 좋은 역할을 맡은 배우와 반대로 악한 역할을 맡은 배우가 나옵니다.
왜 선한 역할과 악한 역할로 나뉘어 있느냐? 선한 역할만 있으면 재미가 없습니다.
악한 역할이 있어서 선한 역할의 배우를 괴롭혀야 재미도 있고 이야기가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재미만을 위한 것은 아니고 인간 사회의 현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간 사회는 어느 영역이나 선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악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 역사에서도 위대한 설교자들이 있으면, 항상 그에 대적하는 설교자들도 있었습니다.
같은 설교자이고 함께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대적하는 것입니다.
왜냐면 서로의 신학이 다르고 하나님 말씀에 대한 태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와 바울만 봐도 유대인과 랍비들이 항상 대적했습니다.
또 어거스틴이 말씀을 가르칠 때는 펠라기우스라는 사람이 대적했고,
루터가 종교개혁을 할 때는 가톨릭 학자인 존 에크(Gohn Eck)라는 사람이 대적했고,
칼빈이 종교개혁을 할 때는 세르비터스(Servetus)라는 사람이 삼위일체 교리를 비판하면서 대적했습니다.
또 스펄전이 영국 런던에서 큰 목회를 감당할 때 침례교 목사였던
존 클리포드(John Clifford)라는 사람이 스펄전을 총회에서 몰아냈습니다.
좋은 사람이 있으면 꼭 반대자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약시대뿐만이 아니라 구약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훌륭한 하나님의 종들이 있으면 그에 대적하는 거짓 선지자가 반드시 나타납니다.
엘리야가 활동할 때 바알 선지자 450명, 아세라 선지자 400명, 도합 850명이 대적했습니다.
하지만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그들과 영적인 대결하여 승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냈습니다.
또 예레미야가 예언할 때 거짓 선지자 하나냐가 대적하였고
아모스 선지자에게도 벧엘의 제사장이었던 아마샤가 악역을 자청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하나님으로부터 환상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여도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 안일하게 반응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비하지도 않았고, 순종하지도 않았으며 듣지도 않았습니다.
백성뿐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지도자들도 동일한 태도로 반응했습니다.
벧엘의 제사장이었던 아마샤는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들이 어떻게 반응했는가를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여로보암 1세가 금송아지 두 개를 만들어서 하나는 단에 두고 하나는 벧엘에 두었는데
아마샤는 당시 벧엘의 제사장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께서 임명한 사람이 아니라 왕이 임명한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레위 사람이 아닌 보통 백성이었습니다.
“보통 백성으로 산당의 제사장을 삼되 누구든지 자원하면 그 사람으로
산당의 제사장을 삼았으므로 이 일이 여로보암 집에 죄가 되어” (왕상 13:33-34)
아마샤는 인간이 만든 거짓 종교의 인간이 임명한 거짓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는 직업적인 종교인이었고 하나님의 종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님을 알지도 못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종이 되었을까요?
떡을 먹기 위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종이 된 것입니다.
◑1. 아마샤는 아모스가 증거한 메시지에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첫째, 아마샤는 아모스가 증거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생각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아본 경험도 없고 하나님께서 계시를 주신다는 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모스가 증거하는 것도 계시받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거짓된 선지자들은 성경을 읽어도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감 받은 말씀으로 생각하지 않고
사람들이 문서를 조각조각 붙여서 만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살전 2:13)
성경을 하나님께 기원을 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만
그 능력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목사인 제가 말을 할 때도
어떤 분은 목사님의 생각은 그렇다더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제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증거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면 그것이 여러분에게 축복이 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아마샤는 하나님의 말씀을 유익한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위험하고 파괴적인 말씀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아모스가 왕을 모반하나니 그 모든 말을 이 땅이 견딜 수 없나이다” (암 7:10)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협박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을 있지도 않은 지옥을 만들어서 협박하고
돈을 뜯어내는 사기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오늘날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성경을 위험하고 파괴적인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샤도 아모스가 나라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모스가 이스라엘을 위험에 빠뜨린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죄와 우상숭배가 그 나라를 위험에 빠뜨렸고 아모스 선지자는
위험에 빠진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한 것뿐입니다.
목사가 사람을 지옥에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는 자기의 죄를 용서받지 못하면
죽은 후에 심판을 받고 영원한 지옥 불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위험하고 파괴적인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백성이며 학자라고 자청하는 사람들 중에
성경을 위험하고 파괴적인 말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신학자들이 성경을 오류가 가득한 인간의 말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박사학위 논문을 쓸 때 성경 어디에 오류가 있는지를 찾아냅니다.
이런 신학자들이 많아지면 결국 그 나라의 교회가 무너지고
하나님의 심판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아마샤는 하나님의 말씀을 정치적, 현세적, 일시적인 안목으로만 평가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치적인 유익과 경제적인 유익이 있는가의 관점으로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진리성과 영원성이 있는지 그 말씀의 기원이 하나님께 있는지에 대한 것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다가 직장에서 쫓겨나도 따르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다가 1억 원을 손해 보더라도 따르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직장 혹은 돈과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손해 보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시기 바랍니다.
아마샤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면 직장에서 쫓겨나니까
아모스에게 ‘여기서 예언하지 말고 네 고향 유다 땅으로 가서 예언하라’고 했습니다. *드고아
하나님의 말씀은 현세적이고 일시적인 유익의 관점으로 봐서는 안 되고
영혼과 내세라는 관점에서 봐야 합니다.
▲넷째, 아마샤는 아모스가 증거한 말씀을 오해하고 왜곡했습니다.
“내가 일어나 칼로 여로보암의 집을 치리라” (암 7:9)
아마샤는 아모스가 예언한 이 말씀을 가지고 아모스가 여로보암 2세를 죽일 것이라고 오해했습니다.
집을 치는 것과 사람을 죽이는 것은 똑같은 것이 아닙니다.
‘여로보암의 집을 치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정치와 종교를 심판하시겠다는 것이지
여로보암 2세를 칼로 죽이겠다는 말씀이 아닌 것입니다.
오늘날도 수많은 신학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하고 왜곡합니다.
저는 루터와 칼빈을 좋아합니다. 우리 침례교의 뿌리도 루터와 칼빈에게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칼빈이 가르친 개신교 사상은 잘못되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셔야 구원받는다면 전도와 선교는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냐고 비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알기에는 어떤 칼빈주의자들도 전도나 선교를 안 해도 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모두 오해하고 왜곡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아마샤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듣고 그것을 오해하고 왜곡하였으며
그것 때문에 자신의 지위를 빼앗길까 걱정하여 하나님의 말씀은 위험한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묻고자 하는 것은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대하시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대하느냐는 것은 인간의 영혼과 구원이 걸린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믿으시고 존경하는 아모스의 영적 후손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아마샤는 아모스라는 선지자 자신에 대해서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첫째, 아마샤는 아모스가 선지자가 된 동기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아모스가 직업이 없어서 먹고 살려고 선지자가 됐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아마샤가 또 아모스에게 이르되 선견자야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서나
떡을 먹으며 거기서나 예언하고 다시는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
이는 왕의 성소요 왕의 궁임이니라” (암 7:12-13)
아마샤는 벧엘을 자신이 밥 먹고 사는 구역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아모스가 와서 예언하니까 남의 밥그릇을 빼앗으려 한다고 생각하여
벧엘이 아닌 유다 땅으로 가서 떡을 먹으며 예언하라고 한 것입니다.
아마샤가 일하는 동기는 돈과 떡을 얻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그러니까 아모스도 그런 줄 알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모스는 돈과 떡을 위해서 일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위해서 일했던 것입니다.
▲둘째, 아마샤는 아모스가 받은 사명을 이해하질 못했습니다.
아모스가 받은 사명은 북왕국 이스라엘에 가서 예언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종은 가고 싶은 곳에 가는 것도 아니고,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하는 것도 아닙니다.
요나라고 하는 선지자는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가기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니느웨의 반대편인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가는데 풍랑이 불어왔습니다.
풍랑이 불어온 원인이 요나인 것을 알고 배에 탄 사람들은 요나를 바다에 던졌습니다.
그러자 바다에 있던 큰 물고기가 요나를 삼켰는데
요나가 다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소화액을 막아주셨습니다.
소화불량에 걸린 물고기는 요나를 토해냈는데 토한 땅이 바로 니느웨였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요나가 가기 싫어도 하나님께서 보내시면 가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도 하나님께서 심판의 메시지만 계속 하라고 하시니까 안 하려고 입을 다물었는데
심중에 답답함을 견딜 수 없어 결국 심판의 메시지를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렘20:9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도시목회를 하고 싶다고 도심에 오는 것이 아니고
시골목회를 하고 싶다고 시골에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곳에 가는 것입니다.
도시목회를 하는 사람에게는 그에 맞는 능력과 은사를 주시고
시골목회를 하는 사람에게는 그에 맞는 능력과 은사를 주시는 것입니다.
아모스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았는데 아마샤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사명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3. 아모스는 아마샤에게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첫째, 자신이 선지자로 일하게 된 동기를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아모스가 아마샤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요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배양하는 자로서” (암 7:14)
과거에는 목자요 뽕나무를 배양하는 자였는데 지금은 선지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내가 직업이 없어서나 떡이 없어서 선지자가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집안에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없었고 목사가 뭐하는 건지도 몰랐고
목사가 될 계획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28세가 되던 해에 예수님을 믿고 기도하는데
목사가 되라는 소명을 주셔서 이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제 동기들은 다 사법고시 합격하고 있을 때 저는 신학교를 다녔습니다.
1970년에는 사법고시에 합격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1980년부터 합격자 수가 늘어나면서 줄만 서면 합격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제 동기들은 합격해서 지금은 제가 바라볼 수도 없는 높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 학원강사를 하면서 신학교를 다니고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제게 어쩌다 그렇게 됐느냐며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더 시간이 지나서 보니까
그 사람들이나 저나 밥 먹는거 똑같고 타고 다니는 것도 비슷합니다.
하나님만 부지런히 따라가니까 떡도 따라오고 돈도 따라오게 된 것입니다.
아모스는 자신이 선지자가 된 동기를 직업이 없어서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둘째, 내가 벧엘에 가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할 때 그것이 권위를 갖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소명을 주셔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아모스는 자신이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아버지의 직업이 선지자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선지자의 제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선지자에게 배워서 학습에 의해 선지자가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무당 중에서도 공부해서 무당이 된 사람은 별 볼일이 없습니다.
무당도 산에 들어가서 귀신을 받아 나온 사람이 점도 잘 보고
시퍼런 칼날 위를 걸어도 다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도 신학교에서 공부해서 목사가 된 사람은 참된 목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 하나님께서 가라고 해서 신학교에 가야 참된 목사인 것입니다.
아모스는 자신이 가진 권위가 하나님의 소명에서 나온 것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셋째, 아모스는 자신의 사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설교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사람이 방해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제 너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 (암 7:16) 얼마나 권위 있는 말씀입니까?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방해한다고 해서 그 말씀이 변경되거나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네가 엄중한 벌을 받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아내는 성읍 중에서 창기가 될 것이요
네 자녀들은 칼에 엎드러지며 네 땅은 줄 띄워 나누일 것이며
너는 더러운 땅에서 죽을 것이요
이스라엘은 정녕 사로잡혀 그 본토에서 떠나리라 하셨느니라” (암 7:17)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고 방해하는 자는 개인적인 파멸, 가정적인 파멸,
사업적인 파멸, 국가적인 파멸을 겪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공격하며 반역하는 것은 매우 두려운 일입니다.
제가 신학교를 다닐 때 지금 신학교 총장이신 도한호 총장님이 강의를 하시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자기가 다니던 교회에 한 부인이 예수님을 믿었는데
그 남편이 예수님을 안 믿고 성격도 고약했다고 합니다.
부인이 교회를 갈 때마다 성경책을 가지고 다니는 것을 보고
성경책 종이가 부드럽고 좋으니까 그것을 화장실에서 용변 볼 때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일주일 만에 병들어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른 것은 몰라도 성경을 함부로 대하는 것에 대해서는 굉장히 진노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반역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어서 다 이루었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 (사 66:2)
권고한다는 말을 NIV에서는 “esteem”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존중하다, 존경하다, 높이 평가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존경해야 하나님으로부터 존경을 받습니다.
양복을 잘 입고 출세하고 잘 먹는다고 하나님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비하고 떠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존경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기원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에게 영생과 구원을 주십니다.
돈이나 직업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묻고자 하는 질문은 한가지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태도는 어떻습니까?
오늘날 대한민국은 하나님 말씀을 대하는 태도가 아주 나빠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대하는 태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아마샤의 길을 가지 말고 아모스의 길을 따라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