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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의 교훈 히11:40, 6:4~8, 10:28~29
데이빗 파슨
<Unlocking 히브리서 P1, P2>에서 발췌
히11:40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구약의 히11장에 나타난 믿음의 영웅들이 '우리가 자기들을 따라잡기를 기다리는데,
그래야 그들이 믿던 것을 보게 된다'는 뜻인데요 아주 놀랍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이 저와 여러분 지금 기다리고 있습니다 노아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릴레이 경주에 마지막 주자를 기다리듯이...
구약과 신약의 성도들이 다 한 팀이라는 것이죠
우리가 구약의 선조들을 따라잡을 때, 즉 그들처럼 열심히 경주를 달릴 때
그들 선조들이 믿었던 것, 즉 <구속사의 완성>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릴레이에서 마지막 주자가 실패하면 그 팀은 이길 수가 없습니다
앞에서 주자(조상들)가 아무리 잘 달렸다 하더라도
마지막 주자(우리)도 끝까지 잘 달리고 완주를 해야 그 팀이 승리할 수 있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뜻입니다 11:40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세대에서 경주자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12:1절에, "이러으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증인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마치 스타디움에 관중석을 꽉 메운 관중들 처럼 지금 우리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격려가 되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부담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지켜봄을 생각하면서 부끄러운 경주 자가 되지 않도록 애써야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여러분의 시선을 아브라함, 노아, 모세, 기드온, 혹은 삼손에게 두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 눈을 고정해야 합니다
히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관중은 잊어버리십시오 주님이 결승점에 서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 믿음의 창시자이고 동시에 완성자가 되십니다
히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했는데요
영어성경에 보면 Jesus the author and finisher of our faith!
여기서 author (믿음의 주요) 라는 말은 '창시자', finisher (온전케 하시는 이) 는 '완성자'가 되십니다
그래서 우리 믿음의 여정의 시작도 도와주시고 author,
끝도 도와 주시는, 즉 마칠 때까지 끝까지 잘 마치도록 도와 주시는 분 finisher 은
예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관중이 아니라 그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
저자는 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12:4절에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히브리서는 로마에 있는 로마교회 교인들에게 그중에서 특히 이방인이 아니라
유대인 기독교인들에게 보내진 편지 입니다 *책 제목이 '히브리서'
그런데 신약에, 로마에 있는 교인들에게 보내진 편지가 또 있는데 <로마서> 입니다
그런대로 로마서에는 '핍박' 같은 얘기를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말은 아직 핍박을 받지 않을 시기에 쓰여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서는 12: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지금 로마에 있는 신자들이 뭔가 핍박을 받고 있는데 피흘리기 까지는 대항하지 않았다..
아직 순교는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당시 로마교회가 극심한 핍박을 받고 있음을 암시하는 구절이 11장에 나오는데요
히11: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13:3 그래서 "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
그래서 히브리서의 저작 연대를 로마서 보다는 조금 지나서.. 핍박을 교회가 한창 받고 있는 시절,
즉 네로 황제의 집권 중기라고 보는데요
또 히10장 등지에 보면 히브리서에서 구약의 제사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히10:11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이런 구절들을 볼 때 히브리서가 쓰일 당시에 성전이 예루살렘에 아직 건재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전은 AD 70년 경에 불타 없어졌죠
그래서 히브리서의 저작 연대는 네로황제의 집권 중기인 AD65년 경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이 서신이 로마교회 보내졌다고 추측하는 이유는
13:24 "이탈리아에서 온 자들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이 구절로 추론할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온 자들과 히브리서 수신자가) 서로 아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는 거지요
그런데 당시 이탈리아의 로마교회는 절반이 이방인 신자였고 절반이 유대인 신자들이었습니다
이 서신은 그 중에서도 이방인이 아니라 유대인 신자들에게 보내진 것인데요
13:7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
초대교회를 이끌었던 1세대 지도자들이 이제 천국에 가셨다는 그 얘기입니다
'그래서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고 한 것이죠
그런데 왜 이 서신이 이방인 신자들이 아니라 유대인 신자들에게 쓰여졌다고 보는가 하면
핍박이 일어날 때 유대인들은 도망갈 수 있었지만 이방인들은 도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 유대인 신자들은 어떻게 핍박을 피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유대인 회당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 기독교 신앙은 불법 이었는데 하지만 (전통적인) 유대교는 합법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방인 신자들은 유대인 회당에 갈 수가 없었는데,
유대인 신자들은 회당으로 즉 구약으로 되돌아갈 수 있었고,
거기서 자기와 자기 가족은 (네로의) 핍박을 면할 수 있었던 거죠
그들 배교자들은 아마 이렇게 변명했을 것입니다 '나는 동일한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내가 예배하는 분은 여전히 하나님이시고, 여전히 예수님의 아버지이십니다!'
하지만 그들(배교자)은 반드시 한가지 대가를 지불해야 유대 회당으로 피난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유대 회당에서 반드시 "공개적으로" 예수님을 부인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딜레마에 빠졌던 것이며,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이 서신서를 써서
그들에게 "구약으로 돌아가면 안 된다, 옛언약으로 돌아가면 안 된다,
믿음을 배도하면 안 된다!" 라고 반복적으로 히브리서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설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전체의 가장 큰 주제는 "믿음에서 떠내려가지 말라" 히2:1
"네가 받은 구원을 무시하지 말라, 등한시 하지 말라!" 히2:3
'옛 유대교 종교로 다시 돌아 가지 말라 왜냐하면 그것은 단지 그리스도를 떠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즉 구원을 잃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배교는 아주 심각한 일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
히브리서 서두에서 끝까지 계속 이 말씀이 나옵니다
바꾸어 말해서 '믿음을 붙들어라 믿음에 머물러라 꾸준히 끝까지 믿어라!'는 말씀이
계속 끝까지 나오는데요 이것이 바로 히브리서의 가장 큰 주제인 것입니다
▲그럼 지금 히6장을 보겠습니다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히6:4~6
이 구절은 기독교계에서 아주 해석의 이견이 많은, 논쟁이 많은 구절입니다
예정론을 신봉하고 한번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견인의 은혜에 의해서죽을 때까지
그 구원이 훼손되지 않는다, 잃어버려지지 않는다.. 라고 믿는 사람들에게서
6:4절 '한번 빛을 받고 타락한 사람은 다시 돌이킬수없다'는 말씀은
그들의 신학과 배치(반대)가 되는거죠
그래서 6:4의 이런 사람들은 '아예 예수를 믿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렇게 주장합니다
진실로 믿은 사람은 절대 타락할 수가 없다는 거죠
그런데 이 구절을 자세히 읽어보면 '성령에 참여한바가 되었다'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본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불신자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가 믿은 이후에 타락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저 파슨은 히브리서의 가치를 아주 높게 평가합니다
왜냐면 성경에 <신자가 믿은 이후에 믿음에서 타락할 수 있다>고 직접적으로 대놓고
지적하는 그러한 성경이 (66권 중에)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6절에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라고 했습니다
물론 한번 타락하고 두번째 또 배교하고... 그래도 돌이키면 됩니다만
근데 여기서 '타락한다, 배교한다' 라는 말은
그저 입술로 '예수님을 내가 안 믿겠다 앞으로 나는 신앙생활 안 하겠다!' 라는
그런 신앙의 절교와 더불어 (뿐만 아니라)
신자로서 큰 죄에 빠진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아주 큰 죄에 빠져서 회개하지 않고, 계속 그 죄를 짓는 것은..
그 사람이 입으로 배교의 말은 안 해도 삶으로 배교라는 것이죠
그런 사람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번 구원 영원 구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파슨 박사의 주장입니다
어떤 지점까지는 돌이킬 수 있으나,
어떤 지점이 지나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그런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6:6 다시 회개케 할 수 없나니'
그러니 그 지점에 이르기 전에 타락한 자들은 회개하면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할 수 있지만,
그 지점을 지나고 넘어 버리면 타락한 죄들을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할 수 없다는 것이므로
지옥 갈 수 있다는 것이므로..
우리는 히브리서의 경고를 아주 무섭게 엄중하게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6:7~8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믿음을 <입술>로 고백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걸 포함해서 자기 <삶>으로
'합당한 채소를 내지 못하고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6:8
우리가 신앙을 배교 한다는 것을, 내 <생각>으로 하나님 믿지 않는 것,
내 <입술>로 예수님을 안 믿는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우리는 <삶으로> 신앙을 버리고 배교 할 수 있고 그것이 어느 지점을 지나면,
그런 일을 계속 반복해서 하고 회개치 않을 경우..
'그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드러내놓고 욕되게 함으로써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할 수 없고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나는 이러한 경고를 귀담아 들을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6:4~8
그래서 히브리서 6장은 한번 받은 구원을 잃을 수 있느냐/없느냐를 시중에 많이 논쟁을 하는데,
그것이 아니고 '한번 받은 구원은 잃어버릴 수 있다' 는 것을 전제하고 있고요
이 구절을 자세히 읽어보면, '일단 구원을 잃게 되면 다시 찾을 수 있나 없나?'를 ...
히브리서는 다시 찾을 수 없다 라고 결론을 내린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멸망을 경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넘어진 자 떠내려가는 자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자들에게
반드시 심각하게 경고해야 합니다 아직 기회가 있을 때, 회개하고 돌이킬 기회가 있을 때요
왜냐면 그들은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6:6
이런 경고를 6장 뿐만 아니라 히브리서는 계속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2:1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2:3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4:1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10:26~27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히10:28~29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은 이후로도 실족하고 넘어져서 범죄할 때가 있지만
즉시 회개하고 돌이키고 다시 돌아와야 되는데 그것(신앙)을 계속 입술로는 시인하나
자기 행위로는 부인하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들은
결국에는 '한 번 구원, 영원 구원'이 아니라 구원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것이
히브리서 전체 제일 중요한 메시지라는 것입니다
그 경고가 나오는 히 2, 4, 6, 10장을 살펴보았는데요 그 외에도 더 나옵니다
그렇다고 자기가 매일 아침마다 일어나서 구원받았는지 아닌지 걱정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왜냐면 신약성경의 구원의 보증이 나와 있는데 그것은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매일 주님과 동행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이런 사람들은 자기 구원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거죠
따라서 신약에서 구원의 확신은 20년 전에 자기가 한 번 결신한 것에 근거하지 않고,
자기의 현재 예수님과 관계에 근거합니다
다시 말해서 현재 내가 예수님을 안 믿고 있다면 즉 예수님과 친밀한 교제 가운데 있지 않다면,
그건 내가 언제 과거에 예수를 믿고 결신하고 세례 받았는지 모르지만
결국은 예수 안 믿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구원 못 받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조심해서 균형을 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특히 마태복음과 히브리서를 보십시오
두 권 모두 크리스천들에게 (구원 탈락의) 엄중한 경고를 언급했습니다
마7장에 '너희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지 못 한다'고 그랬고
25장에 '양과 염소의 비유' 에서도 염소 편에 속한 자들은 바깥 어두운 데 간다고 했고
마22장에서 왕의 아들의 혼인 잔치에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결국에는 초청은 받았으나
천국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
런데 누가복음 이나 다른 성경에는 이런 게 (신자의 구원 탈락 가능성) 좀 약해요
왜냐면 마태복음 이나 히브리서는 <믿는 신자들을 대상>으로 쓰여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었지만 중간에서 배도하거나 실족하거나 탈락하면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 라고 권고하는 것이고
다른 성경들은 <불신자들에게 이방인들에게> 편지 하고 가르치는 내용이니까,
그들에게는 주로 "믿어라, 믿으면 구원받는다" 라는 내용을 주로 말하게 되어 있죠
▲제 기억에, 한번은 빌리 그레이엄이 TV에서 인터뷰를 했습니다
사회자가 전에는 물어본 적이 없는 질문을 목사님께 했습니다
사회자가 묻기를 ‘당신이 천국에 가시면 첫번째로 드는 생각이 무엇이겠습니까?’
목사님은 번개처럼 대답하기를 ‘휴!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아이고 내가 드디어 천국에 왔구나!' 라는 안도의 한숨이라는 것이지요 (탈락하지 않았구나!)
그분은 참 겸손한 분이셨습니다 '내가 드디어 해냈다(완주했다)!' 며 안도의 한숨을 쉬겠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감이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지금 (천국)여정을 가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천로역정>의 끝에 보면, 이 책은 '크리스천'이
죄악의 도성에서 천국 도성으로 향하는 여행을 그린 책인데,
여정의 마지막에 그들은 요단강에 이르렀고, 어둡고 깊은 '사망의 강'앞에 도달했을 때
크리스천(주인공)과 그의 동행들은 이 강을 보게 되고, 마음속으로 아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크리스천의 동행자가 말하기를 ‘나는 이 강을 건너지 않을거야! 반드시 다른 길이 있을거야’
그래서 그는 왼쪽 길로 가 버렸습니다 그때 번연은 이렇게 책에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꿈속에 보았는데, 천국 문 코앞에도 지옥으로 통하는 길이 있었다’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사람들은 천국문 코앞에 와서도 지옥으로, 샛길로 빠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의 메시지 죠 신자가 타락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비슷하게 요한계시록에도 '이기는자는 (그저 생각으로 믿는 자가 아님)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리라'
당시 엄청난 핍박이 있었지만 그 모든 압박과 시련과 유혹을 이기고 극복해야
그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저 한번 믿어서 구원 받는 게 아니라요
그저 한번 믿는 것은 구원을, 그 여정을 시작하고 출발 하는 거죠
그러나 도착을 해야 (안식에 들어가야 4:11) 구원의 완성을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요15:5~6
'사람이 내 안의 거하지 아니하면' 즉 예수님 안에 거해야 되는데
다른 말로 예수님과 매일 동행하고 친밀히 교제하고 주님께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그런 삶을 살지 아니하면 열매도 못 맺고 나중에는 불에 던져져 불살라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구절을 묵상할 때 '열매를 못 맺는다(인생 실패한다)'는 것에 초점을 두는데,
그게 아니라 '불에 던져 결국 살라진다, 즉 천국에 못 들어가고 지옥불에 들어가게 된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예수를 믿느냐/ 안 믿는냐?' 그걸 중요하게 생각하는데요
믿느냐/안 믿느냐의 여부! 물론 그것도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의 여정에서 출발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구원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있다고 했습니다
과거에 내가 예수 믿고 구원 여정을 출발했다면,
현재는 날마다 예수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과 동행하고 예수님과 교제하며
성경 읽고 기도하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매일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삶의 증거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그것이 바로 "배교"로 이어질 수 있고, 배교란 믿음을 배신하는 거죠
그 배교가 회개하지 않고 계속 몇 년 동안 지속된다면 결국에는 바깥에 불살라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메시지는 히브리서에 만 나오는 것이 아니고
성경 전반적으로 두루두루 나오는데
히브리서에서 그 점이 아주 명확히 더 많이 강조되고 있다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시대적 정황으로 당시 로마교회에 있던 유대인들이, 네로황제의 핍박을 받으면서
과거 유대교로 다시 되돌아 가고자 하는 유혹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이 내용이 여러분께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혹시 어떤 사람은 아주 듣기 싫어할 수도 있는데
(한 번 구원 영원 구원이 아니라서) 이것은 아주 중요한 성경의 주제입니다
▲저는 제가 칼빈주의자이고 또한 알미니안이기를 바라며,
제 자신이 이 두 입장 모두이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이 제 설교 3개월동안 듣더니 제게 묻기를 ‘당신은 칼빈주의자 입니까
아니면 알미니안 입니까?’
제가 말하기를 ‘당신이 제 설교를 3개월 들었으니 이미 아실 것입니다’
그는 말하기를 ‘제가 어리둥절한데, 어떤 때는 당신이 칼빈주의자 같고,
하지만 바로 다음 주일에는 당신이 알미니안주의를 설교하시네요!'
‘예정론’과 ‘자유의지’의 갈등은 낡아빠진 주제입니다 (둘 다 보면 됩니다 둘 다 성경에 나와요)
제 파슨이 말하기를 ‘저는 양쪽 다 입니다’
그가 말하기를 ‘그건 불가능합니다’
제가 ‘이성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제가 이성적으로 양쪽 입장을 융합할 수 없지만
저는 이 양쪽 입장이 모두 맞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양쪽 모두 신약성경에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한번 구원받은 사람은 영원 구원 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천국 가는 그 길까지
안전하게 보호하시라고 믿습니다 칼빈주의 입장이죠
그렇지만 나 자신도 하나님의 그 보호하심 안에서
스스로 자신을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신앙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죠 알미니안 입장입니다
우리는 천국에 안전하게 도착할 때까지 내 믿음을.. 안전하게 주님이 인도하시고 지켜주시지만..
나 자신도 그런 주님의 인도를 받아서 내 믿음을 꼭 붙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 '굳게 붙들어라 붙잡으라'는 말이 여러번 반복해서 나오는데요
3:6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3: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6:19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닻 anchor 이 뭡니까? 배가 어느 곳에 가면 무거운 쇠줄을 밑으로 내려 딱 배가 정박해서
움직이지 않게 하는 거죠
10: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하나님은 우리를 천국에 이르도록 안전하게 지켜 주시고 인도하십니다 이게 칼빈주의죠
성도의 견인! '견인'이란 말은 견디고 인내한다는 뜻입니다
성도가 천국 갈 때까지 자기 신앙을 견디고 인내해야 하며
그렇게 하도록 주님이 나를 도와주시고 지켜 주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해 주시고
승리하도록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가운데서 성도 자신도 그 신앙을 꼭 붙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알미니안 입장인데요
우리는 어떤 신학적 입장에 너무 치우쳐서 극단적이 되면 안 되고,
그래서 성경까지 비틀어서 해석하면 안 되고 한번 믿은 이후에도 신자가 배교하고 타락할 수 있어서
돌이킬 수 없게 될 수도 있다는 6:6 이 성경의 경고를,
특히 히브리서의 경고를 우리는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그래서 꼭 신앙과 하나님과 믿음의 도리를 "붙들어야" 6:19, 10:23 되겠습니다
이것이 히브리서에 가장 중요한 주제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