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 살아야 모임도 산다 막3:1~19 2020.04.12. 출처
오늘은 부활절로 지키는 너무 소중한 주일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은 마가복음 3장 1절부터 19절 까지 말씀으로 같이 봅니다
비교적 본문의 내용이 깁니다
세 단락이 포함 되어 있는 부분을 전체를 오늘 본문으로 삼습니다
▲막3:1~19절의 본문에 대해 설명을 드리면
1) 막3:1~6 첫 단락에서는 안식일 날 회당에 예수님이 들어가셔서
그 손 마른 병에 걸린 손에 생기가 없어진 거예요
손이 마른 병에 걸린 사람을 고치시며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다' 라는 말씀을 주시는 본문입니다
2) 막3:7~12 두번째 본문은 유대나라 전국 각지에서 갈릴리 변방에 계시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 몰려드는 그런 광경입니다
그런 중에 귀신이 예수님의 정체성을 폭로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정체성을 공공연하게 외칠 때에 예수님이 그 귀신을 꾸짖으십니다
3) 막3:13~19 마지막에는 열두 제자를 부르시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정한 본문을 중심으로 <개인이 살아야 모임도 산다> 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합니다
개인이 살면 모임도 삽니다!
이사야서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성회로 모이는 그 선민들의 모임을 역겨워 하시는
그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사1:12
오늘 부활절 아닙니까? 부활절이 절기입니다
그런데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것이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너희가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사1:13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내가 싫어하노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 하였느니라' :14
오늘이 부활절인데 코로나19로 인해서
예배와 모임을 자제해달라고 하는 정부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부활절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서 모이는 예배당도 있을 겁니다
그 예배당 모임을 하나님께서 싫어하셔서 무거운 짐으로 여기시고
곤비하게.. 하나님이 그 일 때문에 아주 피곤하게 여기시는 그런 모임이라니요!
왜냐면 이사야가 말씀하기를 '너희가 정한 절기를 싫어하노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하셨는데 :14
이 말씀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으신지,
한번 우리 각자가 스스로 물어볼 수 있게 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절기, 정한 절기, 오늘 부활절 같은 날,
신자들은 모여서 절기를 지킵니다 또 부활절 행사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무거운 짐이 되지 않을 자신이 있으십니까?
코로나19 사태로 인해서 모임을 자제해야 되는 이런 상황에
또 기억나는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10:25절을 보면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무슨 뜻입니까?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을 기억하면서 더욱더 모이기에 힘쓰라!' 이런 얘기입니다
여러분 모여야 됩니까/ 모이지 말아야 됩니까?
왜 우리가 이런 진퇴양난의 곤란한 처지에 빠져버리게 되었습니까?
이유가 뭡니까? 그것을 오늘 한번 살펴 보면 좋겠습니다
도대체 왜 우리가 이런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되었는지?
성도의 모임이라는 것처럼 아름다운 것이 세상에 어딨겠습니까?
그러나 인류 역사상 가장 인간적, 세상적 입장에서 아름다운 모임이
여러분 뭔지 아십니까? 그건 바벨탑의 모임이었습니다!
그 바벨탑의 모임이 가장 아름다운 모임이었지만
하나님께는 가장 적대적인 인간들의 모임이었다는 것을 우리가 압니다
모임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어떤 모임이냐가 중요한 것이고
그리고 어떤 모임이냐를 결정하는 것은
그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각 사람의 상태인 것입니다
▲복음과 한 사람의 관계!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아들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의 삼위일체 되심을 통째로 투자한 사건이
바로 복음입니다
누구에게 투자한 겁니까? 어느 단체에게? 어느 나라에게?
선민이라는 공동체에게?
아니요 이게 우리 착각입니다!
선민 이라는 공동체에 삼위일체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통째로 투자하신 것이 아니라,
선민이라는 공동체 안에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천지의 창조주 하나님께서 아들과 성령과 일체 되심 가운데 당신 자신을 통째로 투자하신 것입니다
우리 지구 인구 75억 명이 밤에 뜬 보름달을 동시에 바라볼 때
(과학적으로는 75억 명이 동시에 바라볼 수 없겠습니다만 그렇다고 가정할 때)
75억 명이 동시에 달을 바라본다고, 75 억 명 중 한 사람 개개인이
달을 75억분의 일만 바라보는 게 아닙니다
75억명이 아니라 100억명이 달을 바라보더라도
100억명에 속한 한 사람, 한 사람은
달을 전체적으로 통째로 자기의 달로 바라보고
자기 마음에 품을 수가 있게 됩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복음 사건은 삼위일체 하나님, 무한한 우주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그 하나님께서
아들, 성령, 삼위일체 되심을 통째로 한 사람에게 투자하신 사건이
바로 복음 사건입니다
그래서 이 복음 사건의 취지를 따라서
한 사람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통째로 자기의 하나님으로
단독으로 통째로 완전히 가지고 있느냐를 확인하여 살펴보면
그래서 한 사람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통째로 갖는 일이
한 사람에게서 제대로 이루어지면
그런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모임은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삼위일체 하나님이 통째로 투자 되어서
그 하나님과 연합한 사람이 되면,
그런 사람들이 하나하나 함께 모인 곳이
이 지구에 있는 단 하나의 예수님의 교회를 이루고
그 사람들이 나라별로, 지역별로 작은 모임들로 모이는 것이
그 지역에서, 그 상황에서는 전체 교회를 대표할 수 있는 주님의 교회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개인을 살리면.. 개인을 살린다는 게 뭡니까?
진정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서 회심하고 삶이 변화되는 것을 뜻합니다
이렇게 한 개인이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의 삼위일체 되심에 참여하여 연합하면,
이 일이 전격적으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일어나면
이런 성도들이 다 함께 모이면, 그 예배와 모임이 저절로 살아난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에요
서울대학교 비유를 들어 보면, 한 학년이 4천 명 정도 된다면,
4개 학년이 있으니까 매일매일 적어도 1만 5천 명의 서울대학생들이 캠퍼스에 모이게 됩니다
재학생들이 다 모이면 각 학과 별로 나누어 지지요
각 학과에서도 학년 별로 나누어집니다
또 활동하는 동아리 별로 나누어져서 모임을 갖게 됩니다
그 상황을 머릿속에 연상을 한번 해 보세요
이게 전체 교회의 모습과 똑같다는 거예요
그래서 1만5천 명이 매일같이 모여든 그 서울대 캠퍼스 안에 광경이
이 지구상의 전체 교회라는 겁니다
근데 그렇게 모이면, 과별로, 학년별로, 과목별로, 그리고 동아리별로
그 외에 다른 이유로 각각 헤쳐 모여서 모임을 갖게 됩니다
다 서울 대학생들의 모임이 되는 겁니다
근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모임은
모임을 위해서 애를 쓰거나, 모임을 위한 특별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임이 저절로 성립이 되는 거예요 어떻게 저절로 성립이 됩니까?
1만5천명 중에 단 한 사람도 예외없이 죽기를 각오하고 공부를 해서
서울대 시험 기준을 통과함으로써 각자가 다 '서울대학생 한 사람'이 된 겁니다
각각의 한 사람이 자기 나름대로 죽기를 각오하고 공부해서
서울대 시험에 통과해서 서울대학생이 되었을 때
1만5천명 이라는 거대한 서울대학생 모임이 형성되고 성립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 모임 안에서 각자가 서울대생이 되기 위해 죽도록 공부한 한 사람 한 사람이
과별로, 학년 별로, 과목별로, 동아리별로 모이면서
소그룹 모임(예를 들면 지역교회)들을 이루어 갑니다
똑같은 걸 교회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교회라는 모임이 지역교회 별로 잘 모이고
지역별로 교회 이름을 사용해도 될 정도로 제대로 된 교회가 되려면
한 사람 한 사람이 성도의 기준을 통과하면 되는 겁니다 (참 신자가 되면 됩니다)
모임을 위해서 별도로 대단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삼위일체 하나님이 투자 되었으므로
그 투자된 삼위일체 하나님의 투자를 받아들여서, 신자가 삼위일체 하나님과 연합되면
그런 개개인이 모인 작은 그룹들의 교회들,
지역 별 지역교회, 나라 별 교회, 이런 교회들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교회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교회' 라는 이름으로 예배당 조직을 만들어 놓고는
우리는 '몇 명이냐?'에 관심이 있습니다
누가 진정으로 삼위일체 하나님과 연합을 이룬, 진정 거듭난 신자가 되었느냐.. 에는 관심이 별로 없고,
다른 말로 '아직 누가 하나님과 진정한 연합을 이루지 못하고 있느냐?'에는 별로 관심 없고
'몇 명이 모였느냐?'에 이제 관심이 있습니다
이런 모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뭐라고 얘기 하십니까?
'피곤하다 피곤하다!'
'부활절? 부활절이라는 절기를 정해 놓고 헌금하고 모여서 행사하는 것, 내가 견디기가 힘들다!'
하시는 것입니다 *사1장
예를 들어 지역주민들의 편의를 위해서
서울대학교가 운동장을 개방하고 도서관을 개방했다고 칩시다
개방이 지나치다 보니까 이제 서울대 운동장을 주민들이 다 쓰게 돼어버린 거예요
서울대생이 아닌 사람들이!
지금 예배당 조직이라는 게 그런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성도의 기준을 통과하지 않은 사람들이
'교회' 라는 이름의 모임을 찬탈해 버린 것입니다
그 점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지금의 난국(코로나19)을 허락하신 것이라 보는 것입니다
서울대학생이 아닌 지역 주민들이 서울대 운동장을 다 차지해 버렸습니다
그런 식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교회' 라는 이름으로, 교인 아닌 사람, 성도 아닌 자들이 다 들어와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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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렇게 세 단락의 본문을 한꺼번에 묶어서 우리가 생각하려는 이유는
단락별로 세 개의 모임을 우리들 앞에 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 첫 번째는 안식일에 회당 모임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 회당에 모인 사람들 중에서 손이 마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누가복음에는 '오른 손이 마른 사람'
마가복음에는 그냥 '손이 마른 사람'
그리고 안식일이고, 회당에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였습니다
2) 두번째 모임은 예수님께서 온갖 질병을 고치시는 치유의 기적을 행하시고
귀신들을 쫓아내는 일을 하신 것이 갈릴리 변방입니다
예루살렘을 기준으로 보면 팔레스틴 북동부의 변방이었습니다
근데 이 변방에서 행하신 예수님의 소문이
유대나라 온 땅에 미쳤을 뿐만 아니라
요단 동편 이방 이라든지, 두로와 시돈 같은 지중해 지역가지 소문이 나서
사방에서 갈릴리로, 예수님께 모여들었습니다
이게 두 번째 모임입니다
이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였습니다
3) 그리고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시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게 세 번째 모임입니다
이 세 모임이 우리들에게
'모임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두 번째 모임을 중심으로 살펴보자면 막3:7~12
그 두 번째 모임 때 전국에서
그리고 유대나라 경계 바깥의 이방 지역의 사람들까지도 다 몰려들어서
예수님이 서 있을 곳이 없어서 배를 띄워 놓고 사람들을 만나야 되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요즘으로 말하면 정말 목회 성장의 정점을 향해 지금 치닫고 있는 상황입니다
양적 성장을 향해, 숫적 부흥을 향해 지금 정점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근데 이렇게 가고 있는 상황을 예수님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계셨는가요?
이 모임을, 성장학적 측면에서 볼 때, 정점을 치닫고 있는 이 성장의 폭발적인 상황에 대해서
예수님은 어떤 생각을 갖고 계셨는지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공공연하게 외쳐대고 드러내는 귀신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꾸짖었습니다 경계 하십니다 말하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이것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예수님의 마음은 뭡니까?
숫적 성장의 폭발적인 증가 상황에 대해서 예수님은 어떤 마음을 갖고 계셨을까요?
하나님의 아들이고 그리스도이심을 귀신이 말하려고 하는 것을 못 하게 하십니다
예수 이름을 듣고 모인 거예요
예수님께서 큰 일을 행하신 다는 걸 듣고 모였습니다
이 모임에 대해서 예수님은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당신이 이 모임에 대해 그리스도 메시아 구세주 이심을 거부 하십니다
그게 귀신들에게 당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하게 하신 이유입니다
예수님이 당신이 그리스도 이심을 원치 않는 모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본문 앞에 회당의 모임도 결국은 막3:1~6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완전히 멸절 시키심으로써
주후70년에 로마 디도 장군을 통해서
이 세상에서 유대 나라라는 것을 싹 지워 버렸습니다
1차대전 이후로 시오니즘 운동이 일어나면서
다시 팔레스틴 땅에 이스라엘 건국이 일어나기까지
2천년동안 지구상에서 없애버렸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전세계에 흩어져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회당을 지어놓고 모입니다만
그 회당이
적어도 예수님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모임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들이 믿는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 인지 이제는 모를 지경입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 여호와 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모임을
지금 그들은 아직도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회당에서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버려진 모임입니다
두 개의 버려진 모임이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위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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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 두 개 버려진 모임의 특징이 뭡니까?
마음이 세상과 밀착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밀착되어야 될 마음이 세상과 밀착되어 있습니다
근데 세상에 밀착되어 살다 보니까 세상에서 해결해야 될 문제들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해결 해야 될 문제들,
예를 들어 자식과 밀착되어 있으면, 자식의 문제가 일어나면 마음에는 근심이 전달됩니다
그래서 근심 가운데 생각하고 감정을 느끼고 의지를 작동해서 말과 행동을 하며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살고 있습니다
이런 세계에 예수님의 이름을 소문을 듣고 몰려들었다는 것은
그런 마음으로 세상과 밀착되어 살고 있는 세계로
예수님을 스카우트 하겠다는 겁니다 예수님을 영입하겠다는 것이죠
예수님을 낚아서 자기들의 세계로 끌어내리겠다는 겁니다
▲반면에 올바른 진짜 참 성도의 모임은
12제자를 부르신 사건에서 나타납니다 3) 막3:13~19
이 12제자의 모임이 성립하게 된 가장 근본적인 어떤 동력이 뭡니까?
예수님의 부르심 입니다
'교회'라는 말이 헬라어로 에클레시아 인데, '밖으로 불러모으다' 라는 뜻입니다
에크 : out of 클레오 : call
어디서 무엇을 밖으로 불러 모았다는 것입니까?
모든 세상의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
세상과 밀착된 상태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 상태로부터 한 사람의 마음을 불러 내십니다
또 한 사람의 마음을 불러 내십니다
그렇게 해서 12 번 불러 내셔서 12제자를 세우신 것입니다
12제자가 제자 공동체 안으로 모이게 된 이유는
서울대생들이 각자가 개별적으로 서울대 시험 기준을 통과함으로써 서울대생이 된 것과 마찬가지로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님과 일대일의 만남을 통해서
12명의 제자들로 구성된 것입니다
12명 제자들이 서로 모여서 예수님을 스카우트해서
우리의 리더가 되어 주세요! 한 것이 아닙니다
근데 왜 그들을 불러내었습니까?
세상에 밀착되어 살던 그 사람들의 마음을 불러 내었습니다
여전히 그들의 몸은 세상에 남아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예수님께서 당신에게로 불러 내셨습니다
그렇게 불러내신 이유가 뭡니까?
예수님과 함께 하게 하려고,
예수님과 함께 한다는 것이 어느 정도로 함께한다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무덤에 묻히십니다 부활 하십니다
승천하시고 보좌 우편까지 가서 머무십니다
이 예수님의 과정을 날마다 뒤풀이 하면서
예수님과 함께 하도록 불러낸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이루어집니까?
세상과 밀착된 상태로부터 마음이 세상을 빠져나와서
세상을 등지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로 가서
삼위일체 되심에 참여하게 되는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게 바로 제자들의 모임이고 교회의 모습입니다
12명 이라는 뜻은, 성도 전체를 뜻합니다 *12지파니까
12지파를 염두에 두신 예수님께서
이제 내가 불러내서 나와 함께 함으로써
십자가로 부터 승천 우편까지 이런 여정을 날마다 반복하면서
나와 함께함으로써 삼위일체에 참여하여 진정한 연합을 이룬 개인,
그 개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예수님께서 찾으시고 불러 내셨던 것입니다
......................................................................
▲그러므로 예수님과 한 사람이 만나서 예수님을 따라가고
예수님과 함께 함으로써
그 연합을 이루는 일을
한 사람에게 일어나도록 하는 것!
이게 바로 전도라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은 '함께 있게 하시고 전도하게 하시고'
그리고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을 주시고'
'전도하게 하신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먼저 전도를 하시지 않습니까
세상에 마음이 밀착되어 살고 있던 사람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낚시질을 해서
하나님과 밀착된 마음으로 사는 세계로 끌어올리셨습니다
이 사람들은 또 어떤 사람입니까?
또 마찬가지로 세상과 밀착된 마음으로 사는 사람들을
예수님의 이름, 십자가로 낚아 올려서
하나님과 밀착된 상태로 사는 세계로 끌어 올리는 것입니다 이게 전도입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건 어떻게 됩니까?
막 별난 이상한 발악을 하는 귀신이 든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는 일이 아니더라도
일상적으로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귀신을 쫓아냅니다
어떻게 귀신을 쫓아냅니까? 간단합니다
하나님 말고도 이 세상에 기쁨거리가 많다는 귀신의 속임수를 깨우쳐 주는 겁니다
그가 봤던 안 봤던, 믿든 안 믿든
당신의 마음은 하나님 말고는 채워질 수도 없고, 기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입니다
왜냐면 귀신의 속임수가 여기서부터 시작된 것이니까요
그래서 세상과 밀착된 상태로는 결코 어떤 행복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계속해서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 사람 속에 있는 귀신과 내가 싸우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과 함께 함으로써
삼위일체 되심에 연합하도록 불러내신 사람들!
그래서 이 부르심에 제대로 응답하도록 한 사람에게 집중하면
그 사람이 연합을 이룬 후에는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연합을 이루도록 한 사람에게 집중하고
그러면 또 다른 사람에게 집중하고
이렇게 해서 한 사람 한 사람씩 전도해 나가는 겁니다
베드로가 설교를 할 때 오순절날 3천명 회개했는데
우리는 그 3천 명을 무리로, 단체로 자꾸 생각합니다
한 사람이 삼위일체에 참여하여 연합을 이루는 일이
3천 횟수가 개개인적으로 일어났다는 것이지,
3천명이 집단 회심했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사실은 복음과 관계에 있어서는 한 사람 밖에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자꾸 한 사람씩 반복되어 나가는 것이 전도입니다
▲그럼 어떻게 이런 성도가 되느냐/ 안 되느냐를 우리가 판가름할 수 있습니까?
본문의 처음 단락으로 돌아가서,
안식일에 선한 일을 행하는 것으로
성도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선한 일을 행한다는 게 뭡니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만이 선한 분이시다'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예수님 당신도 선하시지요
근데 당신이 선하시다는 얘기를 안 하면 거짓말을 하시는 겁니다
근데 왜 하나님만 선하시다고 하는 것일까요?
선함은 이거야말로 나에게서 나오는 열매가 아니라
무엇인가에 내가 연합했을 때 나타나는 열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선한 일을 행하심에는
예수님 안에서 부터 나온 행동을 하시므로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연합되어 있고, 밀착되어 있는 상태에서 행동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게서 선한 열매가 나타날 수 있기 위해
내가 밀착 해야 될 대상을 얘기할 때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다는 거예요
근데 나는 세상과 밀착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하는 행동들이, 선한 행동이 나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밀착되어 있을 때라야만
내가 하는 행동이 선한행동이 될 수 있습니다
안식일과 연관지어, 손 마름과 연관지어 볼 때
여러분, 연상되는 반대 개념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시냇가에 심은 나무!
복 있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아서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시냇가에 심겼으니까 그 뿌리는 물을 빨아들임이 끊임이 없습니다
그래서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본문에 '손이 말랐다'는 얘기는
마가가 볼 때
하나님과 밀착되지 않은 한 사람의 마음이
이 몸과 삶에 대해 어떤 결과를 나타내는 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밀착되어 있으면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인 거예요
하나님으로부터 계속 생명이 흘러나옵니다
하나님의 생각이 흘러나옵니다 하나님의 감정이 흘러나옵니다
하나님의 뜻이 흘러나옵니다 그래서 그것을 입으로 행동으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손이 말랐다는 것은
사실은 사람이 삶을 살 때 움직이는 행동에 가장 많은 부분이 손으로 움직이는 거잖아요
손을 대고, 손으로 일을 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손이란 것은 열매를 맺는 나무에 가지와도 같습니다
그런데 그게 말라버렸어요
어떤 게 참 과실입니까?
하나님과 밀착되어 있음으로 선함이 열매 맺혀지는 이런 상태,
이게 참 과실입니다
그렇지 않고 이 세상에 밀착되어 있어요
그러면 하나님으로부터 흘러 나오는 것과 비교해 볼 때
선한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왜냐면 밀착되어 선한 열매가 나타날 수 있는 유일한 밀착 대상은 하나님 밖에 없어요
내 행동과, 내 말과, 내 감정, 생각과 의지가 선하려면은
하나님과 밀착되어 있어야 되는데
내가 돈에 밀착이 되어 있다 그러면
돈과 밀착되어 있는 상태에서 생각이 돌아가고
돈이라는 것이 내 생각 속에 넣어주는 내용이 있잖아요
내 감정에 넣어주는 내용이 있고, 내 의지에 넣어주는 내용, 말과 행동을 하게 합니다
다 돈과 밀착되어 있게 됩니다
어떤 행동을 해도 그 상태에서 행하는 것은 다 악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기준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지금 내가 하나님과 밀착되어 있는 상태에서 생각하고, 감정을 느끼고,
의지하며, 말하고 행동하고 있는가? 하나님과 연합하고 있는가?
내 마음이 이 세상에 대해서
세상과 마음이 밀착한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르게
그래서 구별된 성도죠
이 세상으로 부터는 아무것도 만족 거리와 기쁨 꺼리를 찾지 않는 상태가 되는 것,
삼위일체 하나님과 연합함으로써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처럼
사랑의 교감으로써, 기쁨으로서 그 연합이 확인되는 사람!
그 상태 참여하기 때문에
세상을 향해서는 기쁘기를 원하지 않고 만족하기로 원하지 않습니다
이미 기쁘고 만족하기 때문입니다
그 상태에서만 하나님의 선하심이 흘러 들어와서
내 육체를 통해 내 지정의 언행을 통해 선한 열매가 맺혀지고
이것이 바로 성도입니다
▲한 사람이 이렇게 되는 상태를 위해
마치 서울대생이 서울대 합격 기준을 통과하는 것처럼
성도의 기준을 통과해야 되는데,
그게 믿음을 통해 은혜로 됩니다
은혜를 된다는 말은,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봄을 놓치지 말고
내 공로를 버리고, 주님을 붙듦으로써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라고 우리 성도를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 나라로 불러 내셨습니다
십자가, 부활, 승천까지 언제나 마음이 이 상태에서만 계속 유지되라는 것입니다
내마음이 세상 것에 밀착되는 것 같으면
얼른 다시 십자가에서 출발하고
그래서 내가 세상에 대해 죽고, 밀착 하려고 하는 세상에 대해 죽고
다시 태어나서는 하나님만이 내 안에 들어오지 오시옵소서, 하나님과 밀착하고 싶습니다 해가지고
승천하고 보좌 우편까지 감으로써 드디어 연합하고,
그런 상태에서 마음이 만족하게 되면
하나님으로부터 흘러 나오는 것을 통해 이 세상에서 선한 열매를 맺어가라!
한 사람이 이렇게 살아나면
예배당에서의 모임은 저절로 되는 겁니다
지금 모임이 어렵다고 해서, 모임에 신경 쓰인다고 해서
그 모임에 집착을 하고, 그 모임에 미련을 갖고
그 모임에 너무 과도하게 아쉬워할 필요가 없어요
좀 호흡을 길게하고 조금만 심호흡을 하고
내 눈앞에 보이는 한 사람, 이 한 사람이 자기 삶에서 선을 행할 정도로 성도가 되었느냐?
선을 행할 정도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나님과 연합이 이루어져야 됩니다
오직 하나님과 연합할 때만 선의 열매가 맺히니까
하나님과 연합을 시켜야 됩니다
어떻게 연합 됩니까?
죽자고 서울대생들이 공부 하듯이
그렇게 예수님을 자기 마음에서 한 시도 놓치지 말라는 겁니다
그 예수님 바라봄을 놓치지 않으면,
'나는 예수님과 함께 죽은 자고 예수님과 함께 무덤에 묻힌 자다 그리고 함께 부활한 자다!'
그런 사람은 세상과 밀착될래야 될 수가 없습니다
이 사실만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으면
삼위일체 하나님과 연합에 참여하고
자기 마음이 기쁘고 만족한 가운데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들어오는 선한 열매를 맺어 가는 성도가 될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살다가 보면
어느덧 다른 성도가 눈에 들어 올 것이고
그런 성도 두세 사람 이상이 모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함께 신앙을 고백하고 함께 신앙을 나눌 때
그 자리에 예수님이 함께 하실 수 있는 진정한 교회의 모임이 될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렇지 못한 한 개인을 살려낼 것입니다
그러면 모임은 저절로 살아나게 되어 있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십자가 생활화로 내가 성도가 되고
이웃이 성도가 되도록 돕는 중에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모임들이
전 세계 예수님의 교회 안에 곳곳에서 일어날 수 있는 시대가
하루 빨리 오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