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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6:17~18 ‘죄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었다’는 의미

LNCK 2020. 4. 27. 05:32

https://www.youtube.com/watch?v=652x9SpPCVw&list=PL9N2jyECqc1NWHmsU148hkMaJecTv4VME&index=4

죄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었다는 의미            롬6:17~18    김현회 목사 4출처

  *출처의 33분부터~끝까지 녹취                     

서론

 

문제는 나입니다.

내가 살아서, 내가 하나님 자리에 앉아서, 내가 선과 악을 판단하겠다..

내가 그것을 정하겠다.. 하는 태도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걸 버린 것입니다.

나는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당신이 아십니다.

하나님이 선이라고 하신 것은 선이라고 알고,

악이라고 하신 것은 악이라고 알겠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셔서 내 자아가 판단하는게 아니라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물론 성경말씀을 통해서도 가르쳐주십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이 성장해 가는 것은

이제 자아가 죽고, 갈수록 자아가 죽고

갈수록 더 이상 내 뜻, 내 의지가 없어집니다.

 

내가 뭘 내 생각대로, 내 꿈.. 이런 것 없어집니다.

 

요즘 모든 사람들의 종교는 자아 중심입니다.

꿈은 이루어진다!’ 2002 월드컵때 유행한 말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도 꿈과 비전을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누구의 꿈을 말합니까, 누구의 비전을 말합니까?

 

내가 꿈을 세우고, 내가 비전을 세우고 하나님이 도와주신다는 얘기입니까?

그런 것 아닙니다.

 

내 꿈을 꾸는 사람은 크리스천이 아닙니다.

내 비전을 갖고 있는 사람은 크리스천이 아닙니다.

 

예전에는 죄의 종, 이제는 의의 종

 

자아가 살아있는 것은, 하나님 뜻대로 살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것이 자아에 매여있는 사람의 모습,

죄의 종이었을 때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도덕을 기준으로 해서 누가 착하냐/못 착하냐

이걸 가지고 크리스천 임을 따지는 것이 아니고요

 

죄의 근본은 교만이고, 죄의 근본은 자아입니다.

누가 왕이냐, 누가 주인이냐.. 그 질문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기 전에는 우리가 어땠습니까?

죄의 종이었어요.

 

그런데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일이 뭐냐면, <회심>이라는 것입니다.

<회심>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한 번 살펴보죠.

 

6: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18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우리는 본래 죄의 종이었습니다.

아까 제가 죄의 종이란 말은, 자아에 사로잡혀 있는 모습이고,

겉으로 드러날 땐 도덕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좀 더 부연 설명을 하면

그렇다고 해서 그 모습이 하나님 보시기에 착한 면이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 시간에 전적 타락에서 제가 말씀드렸듯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우리가 선이라고 생각했던 것,

우리가 의라고 생각했던 것,

우리가 도덕적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우리의 모습이

마지막 날 심판대 앞에서 얼마나 근본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한 것이었는지 다 드러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인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선을 추구하는 자도 없고, 행하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습니다.

 

왜 하나님을 찾지 않죠?

자기가 주인이니까, 자기가 하나님이니까!

그게 죄의 종인데요,

 

교훈의 본

우리에게 전하여 준바 그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6:17

여기서 교훈의 본이라는 말은 무엇입니까?

 

교훈의 본이란 말은 복음입니다.

여기서 이란 단어는 pattern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말씀이 주어졌는데, 그 말씀이 pattern을 가지고 있어요.

 

이 말은, 그냥 아무 말이 아니고,

그 당시 복음의 내용으로 확정된 것이 있어요.

이것이 복음이다하는 식으로 사도들이 전했던 그 어떤 복음의 틀,

복음의 형태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고전15:3~4절 같은 경우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라고 말씀하면서 고전15:1

고전15:3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복음으로 선포합니다.

이런 식으로 복음의 형태 pattern 가 있었어요.

그래서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

즉 형태pattern 를 갖춘 그 복음을 듣고, 마음으로 순종하여

 

마음으로 순종하여’.. 이 말은, 마음 중심에서부터 믿었다는 말입니다.

아멘으로 받아들였다는 말입니다.

 

쉽게 얘기하면, 복음을 듣고 믿었다 라는 얘기입니다.

 

너희가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써 어떻게 되었다고요?

죄에게서(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6:18

 

드디어 죄에게서 해방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죄에서 해방되는 게 무엇이냐면, *6:18

이것이 회개입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

그것은 내가 죄로부터 벗어날 때에만 가능합니다.

 

죄가 나를 사로잡고 있습니다.

죄가 나를 사로잡고 있다는 말은, 내 근본에서부터

죄가 나의 시각에 영향을 끼치고 있어요.

 

그래서 죄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에서는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저 밑바닥 의식 어디에선가 양심을 찌르는 소리가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모두 아주 변명에 능하고, 자기 합리화에 능합니다.

우리는 self-justification에 아주 능합니다.

모든 것을 합리화 rationalize 하는데 뛰어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눈에 죄인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도 다 그랬습니다.

우리도 복음을 믿기 전에,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듭나기 전에는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 나는 완전하지 않다,

나는 그렇게 내가 선하다고 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또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다. 나는 이만하면 괜찮다,

이만하면 나는 양심적으로 살아왔다!’ 이게 대부분의 사람들의 대답입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자기가 죄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자기 실상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죄는 굉장히 기만적 deceptive 입니다.

그래서 죄가 가장 기만적인 것은, 자기 기만적(스스로 속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옆에서 볼 때는, 그 사람의 동기가 분명히 잘못된 것 같은데,

자기는 동기가 순수하다고 우기는 것입니다.

 

죄에게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죄의 종이기 때문에) *6:17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로부터 해방되면 *6:18

즉 죄에서 벗어나면 무엇을 보느냐면

그게 얼마나 죄였는지를 알게 됩니다.

 

▲여러분, 회개한다는 말, 죄를 깨닫고 돌이키죠,

회개한다는 말은, 죄를 하나님이 보시는 것과 같은 눈으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다른 사람을 용서하기가 어려운지 아세요?

물론 용서해야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데 왜 우리가 용서하기가 어려운가?

 

그것은 그 사람이 진심으로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그러는 면도 있습니다.

분명히 그 사람이 내게 잘못했어요. 분명히 그 사람이 불의를 행했어요.

그리고 나한테 와서 사과합니다.

 

그런데 그 사과가 정말 자기 중심에서부터 아파하면서

내가 보는 것과 똑같은 눈으로 그 죄를 보면서

진심으로 사과하면, ‘네가 나를 무지 욕해도 나는 할 말이 없다

네가 나를 원수로 여겨도 나는 할 말이 없다, 그건 100% 내 잘못이다

 

만약 이렇게 중심에서부터 찢어지는 마음으로 자기 죄를 회개하면

우리 마음이 녹게 됩니다.

그 사람이 미운 짓을 했다 하더라도 용서의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왜냐면 진심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고 부아를 더 치밀게 하는,

즉 진심이 결여된 사과와 회개도 있습니다.

자기가 잘못해 놓고도, 자기 잘못을 진심으로 깨닫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그저 처벌을 모면하기 위해서, 억지로 사과하는 경우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정말 우리가 회개할 때,

하나님은 회개하는 우리를 보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회개가 안 돼요.

자기 죄의 중대성을 보지 못 하니까요.

내가 죄에게 사로잡혀 있고, 죄의 종이 되어 있기 때문에

뭐 회개하라고 하니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하고 형식적으로 하지,

마음의 진심으로 회개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은혜가 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너무너무 구구절절 내가 죄인인 것을 알게 되었어요.

 

한 없이 한 없이 부끄럽고,

세상에 자기 혼자 벌거벗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 그 분 앞에 자기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적나라하게 보게 됩니다.

그렇게 하면서 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회개하게 됩니다. 이것은 은혜죠.

 

그래서 이 회개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총입니다.

회심은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서 일으키셔야만 회심할 수 있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복음을 듣고, 마음으로 순종해서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됩니다. 6:18

 

이제 죄에게서 해방 되는 것이.. 회개라면

의에게 종이 되는 것은.. 내 안에 성령님이 오셔서

내 본성 nature 이 바뀌어서 이제는 순종하고 싶다.. 주님의 뜻대로 살고 있다..

 

그래서 의의 종이 되었다는 것은 *6:18

의를 행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이 된 것입니다.

 

물론 제가 이제 계속 말씀드리는 것은

그게 전부는 아니다, 우리에게 여전히 옛 성품이 남아있고

 

우리의 이 죽을 몸이 부활하기까지는

우리 몸 안에 죄의 법이 역사하고 있고,

 

육신의 정욕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계속해서 유혹을 받고 그 죄의 파워를 느낍니다

그렇지만 본성은 바뀐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이 충만하면 그걸 느낍니다.

성령이 정말 충만하고, 주님으로 인해 기뻐하고 즐거워할 때

그땐 우리 마음이 순종이 기쁨이 됩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고 싶어집니다.

 

정말 주님을 위해서 내가, 주님께 순종하고 싶어요.

의를 행하고 싶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의의 종' = 회심

  그런데 교회에 회심 안 한 신자들이 많습니다!

 

, 여러분 이것은 실제 변화입니까, 아닙니까?

실제 변화입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은, 실제로 변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는데,

우리 내면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것을 중생이라 그럽니다.

그건 하나님의 성령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 내 내면에서 일어난 중생이

나의 삶의 경험에서 일어날 때, 그것을 회심이라고 합니다.

 

회심 conversion 은 내가 하는 겁니다. *삶의 변화의 열매

내가 회개하고, 내가 돌이켜서 믿는데

내가 회개할 수 있는 근본 이유는

하나님이 내 안에 중생을 일으키셔서, 나를 변화시키셨기 때문에

내가 비로소 알게 된 것입니다.

 

죽은 영이 살아나는 겁니다.

심령에 변화가 있습니다.

그럼 완전해지는가? 물론 아닙니다.

부활 때까지 우리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 믿고 나서, 뭘 느끼냐면

내 속에 있는 죄가 얼마나 강한지.. 그걸 느낍니다.

 

예전에는 내가 별로 죄 지었다는 생각을 안 했어요.

그러나 예수 믿고 나면, 어떤 일이 생기냐면

도대체 내가 너무나 죄인인 것입니다.

     

   예수 믿는 최초의 체험 때,

   어떤 사람들이 그런 극적인 체험을 고백합니다.

 

   예를 들어서, 온 몸이 막 굳어지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막 쏟아졌고

   방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회개했는데
   일생동안 내가 지은 죄가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고

   한참 몸부림치다 보니까 주변에 나 밖에 없고 동이 터오더라

 

   그렇게 밤새 회개한 것입니다. 이런 간증이 있습니다.

 

   그래서 밖을 나갔더니 세상이 새롭게 보이더라는 겁니다.

   꽃도 새롭고, 산도 새롭고, 공기도 새롭고,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지고

   이것은 굉장한 은혜의 체험입니다. 분명히 너무너무 엄청난 체험입니다.

 

▲그런데 그때 깨달은 죄에 대한 자각과

그가 계속 성령을 좇아 살면서 5, 10년 후에 깨닫는 죄의 자각은.. 다릅니다.

 

그때 내가 강력하게 회개했다.. 그것으로 끝나버리고

그 이후로 영적인 성장이 안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이건 진정한 회심이 아닙니다.

 

극적인 회심이 동반된 중생이든지, 반대로 조용한 중생이든지

참 중생은, 햇수가 갈수록 자기 죄가 계속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자일수록 회개 많이 하는 것 아십니까?

다른 종교의 성자들은, 갈수록 죄가 없어지는데,

기독교의 성자들은, 갈수록 죄가 많이 깨달아집니다.

 

물론 실제로 죄를 더 많이 짓게 된다.. 가 아니라

갈수록 주님의 마음을 더 알아가면서

과거에는 죄가 아니었던 일 하나하나까지도 죄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년에 뭐라고 고백하냐면

나는 죄인 중의 괴수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바울이 실제로 모든 사람보다 죄를 더 많이 지었다가 아니라

자기 속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죄성을 느끼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나는 어떤 죄인이 되었을는지 모른다.. 이 고백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 회심 conversion 은 진짜로 삶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제가 개인적으로 느끼는 문제는

교회 안에 회심하지 않은 사람이 굉장히 많다는 것입니다.

 

머리로 믿는 것이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다고 고백하면서, 남을 미워하면서도 양심에 가책이 없습니다.

거짓말도 슬금슬금 하는데, 스스로 문제시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과 얘기해 보면, 신학적으로 이론적으로 정답은 다 압니다.

교회 봉사를 열심히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회심의 증거는 아닙니다.

 

회심의 증거는 무엇인가요?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다!

이제는 내가 거룩한 삶을 살지 않으면,

주님 앞에 양심이 찔리고, 내 안에 성령께서 지적하시고 탄식하시는

그 아픔이 느껴지고..

 

그래서 늘 죄와 싸우는 것입니다.

죄와 싸우는 이 싸움을 그만둘 수 있습니까?

 

사탄쪽에서 싸움을 계속 걸어오는데

어떻게 이 싸움을 그만둡니까?

 

그래서 한 편으로는 구원받은 감격이 있고

한 편으로는 기뻐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다른 한 편으로는 탄식도 하게 되고...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너는 예수 믿는다면서 예수를 오래 믿는데도

왜 그렇게 (우울하게) 사느냐?’

 

물론 우리가 패배의식에 사로잡힌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승리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7~8장에서 우리가 배울 것입니다.)

 

그러나 죄에 대한 갈등, 죄와의 씨름, 죄로 인한 탄식은

부활 때까지 계속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히려 우리가 진정 거듭났다는 증거입니다.

 

  

여러분, 데이비드 브레이너드를 아시죠?

그분의 일기가 유명합니다.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일기>는 기독교 고전에 속합니다.

 

그는 아주 젊은 나이인 29세에 죽었습니다.

그는 예일대학을 나왔어요. 당시 예일대학은 전교생이 몇 십명 되는 조그만 신학교였습니다.

 

그가 예일대학을 다니다가 교수님께 대한 어떤 비판적인 말이

학교 당국에 들어가서, 그가 목사 안수를 못 받게 됩니다.

 

그는 북미 인디언 선교를 떠납니다.

가다가 폐렴에 걸려서 건강을 잃어서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의 집으로 돌아와서 요양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 요양 중에 에드워즈 목사님의 딸과 사랑하는 관계가 됩니다.

그런데 결국 이 분이 그 집에서 폐병 악화로 죽습니다.

 

그때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은, 자기 집에 기거하던

데이빗 브레이너드를 관찰하고

또 그의 일기를 편집해서 책으로 출간했습니다.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일기>

그러면서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여기 1st class saint가 있다.’

그런데 여러분이 그 책을 읽어보면, 너무나 이 분이 우울증에 걸린 것 같은 느낌이 들 것입니다.

그가 자기 성찰을 너무 깊이 한 나머지

항상 자기 속에 있는 죄로 인해서 괴로워하는 사람인 것을 보시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늘 보면

오늘도 나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했다든지

이런 얘기가 그 일기에 많이 적혀 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 같은 영적 거인의 눈에

그런 모습은 일급 성자의 모습으로 보였어요.

오늘날과 얼마나 다릅니까!

 

 

 

  

 

 

 

오늘날 예수 잘 믿는 사람은 입만 열면 할렐루야!’ 외치고,

문제도 하나도 없어 보이고,

예수 믿으니 만사형통이고, 복 받고, 늘 잘 되고..

 

그게 예수 잘 믿는 것 아닙니다!

그건 껍데기입니다.

 

그런 게 아니고, 예수님을 정말 사랑하려고 그러면

내 속에 있는 조, 내 속에 남아있는 이 자아와의 씨름이 없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자기 속에 그 옛 자아 때문에,

갈수록 갈수록 겸손해지는 것입니다.

갈수록 갈수록 깨어지고 낮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너무나 의에 주리고 목마르고

주님 뜻대로 살고 싶다.. 이런 실제 변화가

중생하고 성령님을 모신 사람은, 일어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여러분 자신에게는 이런 회심의 변화가 일어났습니까?

 

이것은 감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감정도 포함되겠지만, 꼭 눈물 콧물 많이 흘리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흘리면 좋지만 그게 절대적 증거는 아니라는 뜻,

절대적 증거는 지속적인 회개!)

 

아까 제가 마룻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는 표현을 썼는데.

구르면 좋지만, 그게 회심의 결정적 증거는 아닙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성령의 터치입니다.

내 마음속에 이런 실제 변화가 일어났습니까?

그래서 늘 회개하는 삶을 지속적으로 살고 있습니까?

      

그래서 예수 믿고 나서 현재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요?

그것은 우리가 이제 하나님께 종이 되었어요.

이제는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어요.

 

우리가 하나님의 종이 되어서

이제는 매일 매일의 삶에서 거룩함을 추구하고

조금씩 조금씩 ..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게 됩니다.

(하루아침에 확 성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설명을 한 후에 이제 바울이 그 중간에 권면합니다.

6: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6장 전반부 마지막 권면과 같습니다. *6:13

결국은 우리 지체를 의에게 병기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지금 그 말씀을 바울은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이 질문에 대해서 바울은 이렇게 답합니다.

우리는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된 자들이다.

이제는 더 이상 우리는 죄가 우리를 휘두르는, 그 죄의 세력에 사로잡혀 있지 않고,

우리는 회개했으며, 죄로부터 벗어났으며

이제는 순종하고 싶은, 하나님께 얽매인 의의 종이 되었는데

그게 가당치도 않은 얘기다, 그게 할 말이냐?

 

여러분, 예수님을 정말 믿은 사람은

죄를 짓는 게 불편해집니다.

그렇다고 해서 죄를 안 짓는다는 게 아니라 우리가 죄를 짓습니다.

알고도 죄를 짓고, 참 우리 속에 죄가 우리를 속여서

너무나 우리 속에 시기, 질투, 게으름, 교만, 자기자랑, 이런게 다 있습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우리는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부끄럽게 여기고 슬퍼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의를 사모합니다.

 

하루아침에 의인이 되는 것도 아니고, 하루아침에 죄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죄에서 벗어났고, 죄에서 벗어났지만

죄의 파워가 우리 안에 계속 역사하고 있고,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성령님과, 우리에게 주어진 새 본성new nature

의를 행하고자 하는 그런 마음으로 인해서,

우리는 조금씩 조금씩 변화되어가고

우리는 거룩함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난 사람들에게

계속 죄를 지으리요?’ 이런 질문을 하면, 그건 말도 되지 않는 소리입니다.

우리는 본성적으로 하나님 뜻대로 살고 싶어합니다.

연약해서 죄를 짓지만, 죄짓는 것을 좋아하는 게 아닙니다.

 

제가 아까 회심이 일어나야 된다고 했는데

회심은 감정의 문제도 아니고, 지식의 문제도 아닙니다.

 

지식을 갖고 있다고 회심한 것도 아니고

뭔가 눈물을 많이 흘렸고 가슴이 뭉클했다고 회심한 것도 아닙니다.

 

회심의 증거는 무엇인가요?

오늘 본문에 의거하면 이렇게 질문해 볼 수 있습니다.

 

1) ‘나는 죄를 미워하는가?’

나는 정말 죄를 미워하는가?’

내가 연약하여 넘어지고 그 죄를 짓긴 하지만

나는 정말 죄를 슬퍼하는가?’

나는 내 속에 있는 죄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즉 죄에 대한 자각입니다.

 

여러분, 죄에 대한 자각이 있습니까?

죄에 대한 애통이 있습니까?

죄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습니까?

 

아까 제가 이런 말씀을 드렸어요.

일단 진짜 기독교를 알고나서, 우리 믿을 건지/ 안 믿을 건지 얘기해 보자고요.

 

진짜 기독교는 죄와 싸우는 것입니다.

얼마나 오늘날 교회가 죄의 온상이 된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죄에 대해서 설교 안 하는 그런 교회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자아가 죄인데, 이제는 자아 숭배 하는 것이 신앙인 것처럼 되었어요.

늘 셀프 이미지를 말하고, 또는 심지어 셀프 러브를 말합니다.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 자신을 사랑해야 된다고 말합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은 나를 도와주시는 분, 그래서 내 꿈이 우선이고

하나님은 나의 핼퍼이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런 것은 진짜 기독교가 아닙니다.

 

이런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다면, 회심한 것이 아닙니다.

 

2) 그래서 두 번째 질문은, 나는 순종하고 싶어하는가?.. 입니다

나는 하나님 뜻대로 살고 싶은가?

 

나는 내 마음에서 가장 목마르고 갈급한 것이 거룩함인가?

나는 의를 사모하는가?

그것입니다.

 

회심은, 죄에게서 벗어나 의에게 종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이제는 죄의 종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변화가 내 안에 일어났는가?

 

그래서 롬6장에서 2가지를 말했습니다

1)첫번째는 세례입니다.

세례는 우리의 신분을 바꿉니다.

우리는 예수 믿는 순간, 예수님과 연합하고

그래서 옛사람이 죽었고, 이젠 새사람이 된 것이고

이 새사람은 죄로부터 자유로워진, 즉 죄로부터 죽은

더 이상 죄가 관계 없는 그런 신분이 된 것입니다.

 

2) 그다음에 두 번째는 회심입니다.

회심은 실제로 죄의 파워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에게 종이 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설명, 그리스도인은 죄에 거할 수 있느냐?

죄를 지을 수 있느냐?

그 대답은, 물론 거할 수도 있고, 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죄에 거하겠느냐? 죄를 지으리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럴 수 없느니라!’

 

왜요?

-우리는 예수님과 합하여 세례 받은 자이고

-우리는 회심한 자이기 때문에!

 

, 이제 이후로 롬7~8장 두 장이 남아있는데

아직 얘기가 다 끝난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으 삶은 무엇인가? 우리 안에 시작된 구원이란 어떤 것이고

이 구원은 지금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제가 바라기는, 여러분이 제 강의를 4강까지 들었는데

여기까지 두 가지 점에서 따라오셨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는, 이해입니다.

제가 여러분께 설명하는 내용들을 여러분이 이해했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는, 공감입니다.

, 내게도 맞어, 그런 일이 일어났었어! 그것이 지금 내 신앙의 속 내용이야!

나도 그것이 무슨 말인지 알겠어!’ 이렇기를 바랍니다.

만약에 우리가 같이 이해하고 있고, 같이 공감하고 있다면

이 뒤에 나오는 내용들은 정말 우리에게 도움 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에게 말씀을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회심에 대해서 가르쳐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 저희들이 우리에게 일어난 일, 이 회심의 경험을

정말 바로 이해할 수 있게 하여 주시고,

 

우리에게 일어난 그 회심을 좇아서

이제는 정말 죄에게서 벗어나, 의에게 종이 되어서 살아가는

우리들 되게 하여 주소서!

 

아직까지 예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이런 근본적은 마음의 변화를 체험하지 못한 우리 지체가 있다면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모든 사람이 그 마음이 진정으로 하나님께로 돌이켜

죄에게서 벗어나 하나님을 순종하고픈 그런 회심의 체험을 할 수 있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