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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중에 짓기 전에 하신일 렘1:4-10 2008년 예레미야, 애가
서론
예레미야 선지자는 유다가 멸망할 시기의 예언자로서 바벨론이 쳐들어오면 항복하라는 예언을 하자
유다인들이 매국노라며 괴롭혀 고통을 많이 당한 눈물의 선지자(weeping prophet)였습니다.
그가 소명을 받은 것은 이사야 선지자보다 약 100년 뒤입니다.
렘1:1절에 ‘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사장 중 힐기야의 아들 예레미야의 말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예레미야의 고향인 아나돗은 예루살렘에서 북동쪽으로 불과 5km 떨어진 곳으로
예루살렘 성전의 성벽이 다 보일 정도로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예레미야의 아버지는 제사장 힐기야 입니다. 당시 제사장은 세습제였으므로
예레미야는 저절로 제사장이 될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부르시자 제사장직을 버리고 선지자가 된 것입니다.
오늘날의 사역자들도 이와 같은 소명감이 있어야 어려운 때에도 사명을 이행해 갈 수 있습니다.
또한 무슨 직업이든지 소명감이 있어야 어려움을 이겨나갈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다의 국가 운명이 기울어 멸망할 수밖에 없는 시기에 소명을 받았습니다.
1:2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의 다스린지 13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고’
요시야의 아버지인 아몬은 매우 악하고 무능한 왕으로 스물두 살에 왕이 되어
2년 간 통치하다 스물네 살에 신하들에게 맞아 죽었습니다.
그리고 요시야의 할아버지인 므낫세도 유다 역사상 가장 사악한 왕이었습니다.
반면 므낫세의 아버지인 히스기야는 매우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이처럼 유다 왕들의 순서가 히스기야, 므낫세, 아몬, 요시야로 내려오는데
아버지가 훌륭해도 못난 자식이 나올 수 있고
아버지가 부족해도 똑똑한 자식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는 유전이 아닙니다.
요시야 왕의 할아버지인 므낫세는 바알, 아세라, 일월성신, 몰록을 숭배하고
아이들을 불로 태워 죽이며 점치고 사술을 행하였을 뿐만 아니라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렸습니다.
그의 모든 악은 열왕기하 21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므낫세는 이런 극악무도함에도 불구하고 55년간 통치하며 장수했습니다.
그러므로 장수한다고 꼭 훌륭한 왕이 아니고 장수한다고 다 복 받은 인생이 아닙니다.
▲요시야는 자신의 아버지나 할아버지와는 달리 선한 왕으로 8세에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유다 역사 중에 마지막으로 종교개혁을 일으킨 인물로
왕이 되어 31년을 치리하고 39세의 젊은 나이에 애굽 왕 느고와 싸우다가 전사하였습니다.
그가 21세 되던 해인 요시야 왕 13년에 예레미야가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성전은 항상 잘 수리되고 깨끗해야 되는데
요시야 왕이 26세 때 예레미야는 낡은 성전을 수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요시야 왕은 성전을 수리하던 중 발견된 율법책을 읽고 가슴을 치며
‘우리가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겨 이렇게 망하게 되었구나’라며 한탄했습니다.
그래서 옷을 찢고 회개하며 유다의 종교개혁을 일으켰습니다.
선한 왕인 요시야 왕 이후의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아긴, 시드기야 등은
있으나 마나한 왕들이었습니다. 예레미야 1장 3절에 ‘요시야의 아들 유다 왕 여호야김
시대부터 요시야의 아들 유다 왕 시드기야의 제 십 일년 말까지 임하니라
이 해 오월에 예루살렘이 사로잡히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시드기야 왕이 치리한지 11년 5월, BC 587년에 유다왕국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완전히 멸망당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이 어려운 시기에 40년 내지 50년간 예언활동을 했습니다.
사람의 평균 수명을 70년으로 보면 예레미야가 소명을 받은
이때는 약 19세가량 되었을 것입니다.
BC 627년에 이 어린 사람에게 엄청난 소명이 임합니다.
1:10절에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로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겠다’고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는데
19세짜리가 받은 소명 치고는 범위가 너무 넓습니다. 또한 동사가 너무 강합니다.
‘너로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예레미야보고 우상숭배를 무너뜨리고 여호와를 섬기는 참된 신앙과 덕을 심으라는
소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것도 유다 한 나라뿐만이 아니라 열방, 만국을 상대하는
열방의 선지자(prophet of the nations)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저는 설교 한 편을 준비해도 우리 성도들에게만 국한하여 준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설교 한편을 위하여 많은 공부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설교 한편은 우리 성도들 뿐만 아니라 열방, 만국에서 설교자들이 들을 것이고
또 책으로 남아 우리 후손들도 볼 것이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강남중앙침례교회에서 사역을 하지만
우리의 사역은 열방, 만국을 위한 사역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마어마하게 큰 사명을 19세에 받은 예레미야는 1:6절에서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I am only a child)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반응합니다.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는 예레미야의 반응을 영어로 표현하면
'I will not speak'가 아니라 ‘I can not speak'입니다.
“내가 19세에 불과한데 열방 만국을 향하여 무슨 말을 해야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옵니까?
나는 그럴 능력이 없나이다. 하나님 내가 순종하려고 해도 순종할 능력이 없나이다.”라고
반응을 보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소명을 주실 때에 자신의 무능과 죄성을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에 “아버지 잘 보셨습니다.
내가 아니면 누구를 뽑겠나이까?”라는 사람은 매우 부족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내 힘으로 안 됩니다. 나는 부족합니다.나는 무능합니다.”라고 고백하는 사람,
자기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사람을 들어 쓰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출4:13절에서 모세는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라고 고백했고,
사6:5절에서 이사야 선지자도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눅5:8절에서 베드로도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는 그런 걸 모르고 부르시는 게 아닙니다.
다시 말해 나의 입술이 부정하고, 내가 아이이며, 죄인이다’라는 걸 모르고 부르시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렘1:7절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찌니라’
하나님이 나이어린 예레미야에게 ‘너는 가며 너는 말할찌니라’며 단호하고 당당한 언어로
명령하셨던 이유는, 그를 보내시기 위해서 철저하게 준비하셨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가 미처 자의식을 가지기 이전부터,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기 전부터,
더 나아가 창세전부터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라는 사람을
열방의 선지자로 쓰기 위해서 준비하셨습니다.
1:4~5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여기에 ‘지었다, 알았다, 구별하였다, 세웠다.’는 4개의 동사가 나옵니다.
동사의 순서상으로는 ‘지었다’가 먼저 나오지만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구별하였고 세웠도다.’라고 했기 때문에
시간 순서상으로는 뒤에 있는 세 동사가 먼저 나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짓기 전에, 세 가지 행동을 완료하셨다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은 우리를 짓기 전에 우리를 아셨다.
예레미야의 육신에 단 한 개의 세포도 형성되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미리 아셨습니다.
‘아셨다’는 뜻의 히브리어 동사 ‘야다’는 단지 지적인 지식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레미야가 언제 태어나며 언제 죽는 걸 알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아담이 하와를 알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았다’
혹은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처럼
‘알았다’고 하는 말은 체험적으로 사랑의 관계를 맺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알았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영원 전부터 깊이 사랑하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짓기 전에 깊이 사랑하셨다는 진리는 예레미야에게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고 부르심을 받아 회개하고 예수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에게는
모두 다 해당되는 것입니다.
롬8:29~30절에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미리 아심은 미리 예정하심으로 이어지고 또한 그들을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다 하심으로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고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은 역으로 추적하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고 하나님의 예정하심을 입은 사람이며
하나님이 미리 아신 사람들, 미리 깊이 사랑하신 사람들이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내가 하나님께 무슨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가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우리가 어떤 행동도 하기 전에 이미 깊이 사랑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자격이 있어서 사랑받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하고 싶어서 사랑하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헌신하기 전,
영원 전에 하나님이 먼저 우리에게 헌신하셨다는 말입니다.
야구에서 공중에 붕 떠서 날라 오는 볼을 ‘플라이(fly) 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수비수가 이 플라이 볼을 잡으려다 공에 이마를 맞을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눈, 공, 태양이 일직선상에 놓여 태양의 광채가 너무 눈부셔서 공이 안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영원 전, 창세전에, 태어나기도 전부터 깊이 사랑하시고 선택하셨다는 진리는
어려워서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은혜와 영광이 너무나 커서 믿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믿으시고 그 은혜에 평생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청년 예레미야는 소명을 받고 “하나님 저는 할 수 없습니다.”라고 항변하지만
하나님은 “내가 너의 육체를 형성하기도 전부터 사랑했고 네게 헌신했으며
너를 준비했고 내가 이뤄왔는데 왜 못한다 하느냐?
내가 하도록 했으니까 너는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볼 때 무능하고 연약합니다. 그러나 거기에 초점을 맞추지 마시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영원 전부터의 준비와 하나님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어
자신을 보게 되시기 바랍니다.
‘뿌리’라는 유명한 소설을 쓴 알렉스 헤일리(Alex Haley)의 사무실에는
거북이가 높은 담에 올라간 그림이 걸려 있습니다.
사람들이 왜 저런 이상한 그림을 걸어놓느냐고 묻자
그는 “나는 거북이 같은 존재인데 저렇게 높은 담장위에 올라갔다.
저것은 내 능력으로 올라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올라간 것임을
내가 언제나 기억하기 위해서 저 그림을 걸어두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뭔가를 할 수 있으면 그건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의 결과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은 우리를 짓기 전에 우리를 구별해 놓으셨다.
구별해 놓으셨다는 말을 영어로는 ‘set apart’나 ‘sanctified’ 혹은 ‘consecrated’를 씁니다. ‘
거룩하게 만드셨다, 성화를 시키셨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도덕적, 윤리적으로 깨끗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2차적인 의미입니다.
1차적이고 근본적인 의미는 ‘하나님께 쓰임 받도록 구별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윤리적으로 거룩해지고 착해지는 성화의 시작은
예수 믿은 후부터 시작되는 것이지만
근본적이고 1차적인 의미의 거룩, 성화는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이루어진 것입니다.
▲구별되었다는 것은 히브리어의 완료태입니다. 다시 말해 다 끝나고 완료된 일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일에 헌신할까, 말까 고민하지 마시고 헌신하십시오.
왜냐하면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는 영원 전부터 이미 하나님의 일을 위해
따로 구별된 사람들이므로 다른 일을 통해서는 행복도, 승리도, 기쁨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하라고 맡기신 일을 할 때
기쁨과 행복, 그리고 승리가 있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은 우리를 짓기 전에 우리를 세워주셨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세워주신 직업이 있습니다. 세워주셨다는 말을 영어로는 ‘appointed’
또는 ‘ordained'를 씁니다. ‘직업을 임명해 주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 선지자를 열방의 선지자로 직업을 임명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선지자가 아니고 목사가 아니며 선교사가 아닙니다.
우리 인간 사회에는 다양한 종류의 직업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칼빈(Calvin)은 예수 믿는 성도들의 직업은 하나님이 부르신 것이고,
하나님이 임명해 주신 것이라는 ‘직업소명설’을 가르쳤습니다.
직업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임명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무슨 일을 하며 살 것인가’하고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직업이 있으므로 기도하며 찾으시고 이루어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자녀에게 어떤 사람이 되라고 강요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자녀의 직업이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는 아이는 가수를, TV 보며 연기를 따라하는 아이는 배우를,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이는 화가를, 말씀을 가까이하고
설교하기를 좋아하는 아이는 목사를 시키십시오.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그 아이에게 그런 직업을 임명해 놓으셨기 때문에
그것이 어려서부터 나타나는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흥미와 재능을 보이는 일이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직업입니다.
소명이 없는 일을 하면 실패하고 열매가 없습니다.
그러나 소명대로 부르심을 받은 일을 하면 그 분야에서 뛰어나고 성공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인생의 좌절감은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소명을 거부할 때 오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목사로, 선지자로, 선교사로, 군인으로, 선생님으로, 교수님으로, 판사로,
사업가로 하나님이 다 정해놓으신 직업이 있습니다.
▲시편 139:15~16절에서 다윗이 ‘내가 은밀한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기우지 못하였나이다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를 하나님이 임명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주의 책에 기록까지 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그 기록된 것을 발견하고 이루면 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고백도 동일합니다. 갈1:15절에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바울이 어머니 태에 있을 때부터
사도로 택정하고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는 교수, 정치가, 혹은 목사가 되어서 살라고 택정하고 부르신 것입니다.
결론
우리 성도들은 결코 우연히 이 세상에 태어난 존재가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예레미야서 1장의 교훈입니다.
20세기 유명한 실존철학자들은 인간을 가리켜 던져진 존재(Geworfenheit)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돌맹이처럼 그냥 던져졌다는 옳지 않은 말입니다.
우리는 우연히 태어난 존재도 아니고 무의미하게 태어난 존재도 아니며
목적 없는 존재도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별하시고 우리를 쓰시고자 어떤 직업을 주어 임명하시고
이 세상에 태어나 그 일을 하라고 명하신 존재들입니다.
우리가 모태에서 낙태되지 않고 태어난 것은 하나님이 정한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무 의미도 없는 불신자들에 관해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직업에 대한 뚜렷한 목적의식 없이 연봉만 따집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하나님이 이 땅에 보내신 계획과 목적이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를 짓기도 전에 계획하시고 기록하신 삶의 목적과 직업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이것을 아는 방법은 매일 기도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께 물어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루에 15분 이상 기도하고 10분 이상 성경을 읽으십시오.
매일 기도하고 성경 읽으며 하나님과 동행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한 걸음씩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인생 여정을 세세히 파노라마처럼 보여주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건 매우 드문 경우이고 일반적인 하나님의 인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매일 기도하고 성경 읽으며 하나님과 동행하다 보면
하나님이 우리 방향도 바꿔주시고 삶을 인도해 주시며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 나가십니다.
히브리어 동사에는 완료태와 미완료태가 있습니다.
완료태는 이미 끝났다는 것이고, 미완료태는 지금도 진행중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본 4가지 동사 중에 뒤의 3가지 동사는 완료태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를 ‘알았고, 구별하였고, 세웠노라’는 완료태입니다.
다시 말해 이미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고, 이미 하나님은 우리를 구별하셨으며,
이미 하나님은 우리를 임명해 주셨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앞에 있는 동사 너를 ‘지었고’는 미완료태로
하나님이 지금도 계속해서 지어 나가고 계시다는 걸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육신은 지으셨지만 우리의 영혼은 지금도 계속해서
예수님 형상을 닮은 존재로 지어나가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지으시는 손길이 날마다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이 말씀이 저의 인생관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이 말씀이 큰 영향으로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영원 전부터 사랑하셨고,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일에 쓰시려고 구별해 두셨으며,
여러분을 하나님 일에 쓰시려고 직업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이것을 발견하고 이루는 인생은 행복하고 성공이 있으며
만족이 있고 하나님 나라에 가서도 큰 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인생은 실패하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성공한 인생, 하나님의 정하신 목적을 이루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