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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46장, 애굽으로 내려가길 두려워말라

LNCK 2019. 4. 22. 15:30

◈창46장, 애굽으로 내려가길 두려워말라          2020.09.16.

우리는 앞서 45장을 통해서, "그 아들이 우리에게 새로운 삶으로 초청했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요셉이 애굽으로 가나안의 가족들을 모두 초청한 상황

진짜 살아 있는 삶, 

'그 아들'로 말미암아서 생명을 얻게 되고 
다시 살아난 생명을 가지고 사는 삶 뿐 아니라 

 

그 아들과 함께 동거하고, 또 동행하는 삶, 
그 아들과 함께 하는.. 정말 살아있는 삶으로 
그 아들이 형들을(우리를) 초청했다 라는 것을 우리는 살펴보았습니다. 

(*37:2절에 '야곱의 이야기는 이러하니라'라고 시작하면서, 야곱 자신보다는,  
야곱의 아들인 요셉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냥 요셉으로 막바로 설명하면 될 것을, 
'야곱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요셉을 '그 아들'로 성경은 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창37장 이후의 꼭 본문에 꼭 '그 아들'이란 표현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 하더라도, 
요셉은 '야곱의 아들'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예표로 보여주기 위함 입니다.

그의 아들 요셉이, 당시 온 세상을 구했듯이
장차 하나님의 아들이, 온 세상을 구할 것을, 예표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창46장에 보면, 야곱이 그 모든 소유를 가지고서 일어나서 
이제 그 아들과 함께 동행하고 동거 하기 위하여 
길을 떠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제 46장 부터 펼쳐지는 이야기는 
"그 아들과 동행하는 삶"과 관련된 것인데 

오늘 본문을 통해서,   
'그가 부르신 삶은, 우리로 어떤 삶을 살게 하는가?' 
'그 아들과 함께 동행하고 동거하는 삶에 있어서, 그 삶에 대한 특징들'을 
몇 가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1. 첫 번째,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먼저 우리는 
그 아들과 함께 사는 삶, 그가 부르신 새로운 삶은 
<세상 속에서 사는 삶이다> 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46:2~3절 '그 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야곱아 야곱아 하시는지라 야곱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통해서, 
이제 하나님의 백성 야곱과, 그 모든 사람들을 (고센으로) 부르시는데 

이제 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아들과 동행하고 동거하는 삶은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에서 그 삶이 이어집니까? 애굽입니다.

'애굽으로 내려가기로 두려워하지 말라' :3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금 애굽으로, 
즉 세상 속으로 부르고, 세상 속으로 보내고 계신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백성은, 애굽에서, 즉 세상 속에서 살게 되는 삶을 
그 아들과 함께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속에서의 삶'이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까? 

먼저는 세상은 우상이 가득한 곳입니다. 
하나님이 신으로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외에도 수많은 신들이 있다.. 라고 말하는, 
우상이 가득한 땅이 바로 애굽인 것입니다. 

그리고 또 그 땅은, 세상의 왕이 통치하는 땅입니다.
바로가 그 땅을 통치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아닌 우상들이 가득한 땅이기도 하고, 
세상에 우뚝 서 있는 왕이 통치하는 땅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 땅은,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다른 문화가 옳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그런 세상 속에서, 그 아들과 함께 거하는 삶으로, 
그곳으로 우리는 부름을 받았다 라는 것입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과 동행하고 동거하는 삶을 
우상이 가득하고 세상 왕이 통치하며 
전혀 다른 문화, 가치관적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 살아간다.. 라는 것이 

부름 받은 자들의 특징입니다.

4절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또 한 가지 우리가 기억해야 되는 것은 
그 세상 속에서 우리는 누구와 함께 있습니까?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4

37장부터 이어지는 '야곱의 족보' 속에, 
그 야곱의 이야기는, 그의 아들 요셉의 이야기였죠. 

39장에서,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셨다'는 말이 나온 이후에
처음으로, 46:4절에서 하나님이 '야곱과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다'란 말이 언급됩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야곱과 함께 해 주시겠다는 거죠.

그러니 우리가 그 아들과 동행하고 동행 동거 하는 삶의 특징을 살피는 중인데,
그것은 바로 "세상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 그 아들과 함께 하는 삶이다"
라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2. 두번째 그 아들과 함께 동행하고 동거하는 삶의 특징은
<나그네로 사는 삶>입니다.

4절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

하나님이 그들을 애굽으로, 즉 세상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가십니다. 그곳에는 그 아들도 있습니다. 

아들이 가나안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가나안에 있는 모든 자들이 아들에게로 가고, 애굽으로 가는데, 하나님과 함께 동행해서 가요. 

그런데 그 곳에서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하면,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지금 아직 애굽에 정착하지도 않았는데, 아직 애굽에 가지도 않았는데 *지금 브엘세바

하나님을 뭐라고 말씀 하시는가 하면,
'너 야곱 가족은 애굽으로 내려갈 것이다. 그러나 내가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오게 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 속에서 살되, 
거기가 종착역이 되거나, 
혹은 거기가 종착역이 되도록 하지 않겠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거하게 되는, 우리를 보내신 그 애굽을, 
우리의 종착역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제2의 고향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 땅에서, 즉 세상 속에서 
하나님과 그 아들과 함께 동행하며 살면서, 
또 한 가지 반드시 기억해야 될 것은, 거기서 나그네로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나그네로 산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땅에 결코 뿌리를 내리지 않는 삶을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땅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뿌리를 내리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 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이 땅에서 잘 되는 것, 뿌리를 깊이 박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흔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에요. 

오히려 더 흔들리는 삶이어야 하고, 
오히려 그 땅에 뿌리를 내리지 않는 삶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우리는 나그네로서의 삶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땅에 것들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 라고 말합니다. 

그 땅의 것을 소유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 뿌리를 내리지 말고, 이 땅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라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세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언제나 떠날 준비를 하면서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꼭 애굽에서 하늘나라로 바로 가는 것은 아니겠죠. 

우리는 이 땅에 거하면서, 하나님이 언제든지 이곳 저곳을 옮길 수도 있고, 
하늘나라로 옮길 수도 있겠죠. 

그러나 우리의 삶은 '나그네'이기 때문에 
어떤 곳에 있든지... 

목회자를만 그렇게 나그네로 사는 것이 아니에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 속에 있으면서도, 나그네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곳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 악착같이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오히려 하나님께서 언제든지 움직이게 하시면 
그 모든 것들을 다시 정리하고 움직일 수 있는.. 
언제나 떠날 준비가 되어진 삶을 살아야 한다.. 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보면요. 
베드로 사도나 대부분의 사도들이 편지를 보낼 때, 이런 구절들을 종종 말했습니다. 
"흩어진 나그네에게 편지하노니"  무슨 말입니까? 

 

우리 모두가 다, 언제나 어떤 곳으로, 
이 땅에 뿌리박지 않고, 이 땅의 것을 사랑하지 않으며, 
언제나 떠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거죠.

하나님께서 하늘로 부르시면 하나님께로 가지만 
하나님께서 이곳으로 보내시면 이곳으로, 저곳으로 보내시면 저곳으로 가는 
나그네 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이 땅에서 가장 오래 나그네로 살았던 사도인 사도요한은 
요일2:15~17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위 구절은, 이 땅에서 사도들 중에, 자기 의도는 아니었지만, 
가장 오래 나그네로 살았던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러니 나그네 삶은 결국 무엇입니까? 
이 땅의 것은 '지나간다'고 말합니다. 모든 게 지나가고 만다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 뿌리박지 말아라. 
그리고 이 땅의 것을 사랑하는 뿌리를 내리지 말아라. 

그리고 언제든지 하나님이 훅 하고 부시면 
지나가 버리고 마는 것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죠. 

▲3. 세 번째는 바로 <큰 민족을 이루는 삶>입니다. 

3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나님은 사실 계속해서 구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중에, 한 사람 아브라함을 구별하셨어요. 

그리고 그 아브라함 안에 자식이 태어났는데, 그 가운데서 또 구별하세요. 
자꾸 나누시면서 줄이셨어오. 
이스마엘을 버리시고, 이삭을 구별하셨어요.

이삭을 통해서 또 아들들이 났는데 에서와 야곱이죠. 
그런데 하나님은 또 에서를 배제하시고 야곱만 선택하시죠.
계속해서 줄이시고 또 줄이셨어요. 구별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드디어 야곱 때에 와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그 모든 아들의 이름이 오늘 여기 등장하고 있어요.  46:8~ 

그 모든 아들들에 이름이 떨어져나가지 않고 
모두 70이라는 의도적인 숫자, 완전한 수, 구원 받은 사람의 수에 
모두 다 집어 넣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니 이제 그는, 그의 모든 아들들을 하나님의 백성이라 칭하시고 
이제 그 아들을 통해서 번성하게 될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 목적이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세상 속에서 나그네로 살아가는 목적이 여기에 있는데 
우리가 이 땅에 있는 목적은, '너로 민족을 이루게 한다'는 거에요. 
이렇게 '사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민족이 목적인 거에요. 사람을 세우는 게 목적입니다. 
사람을 만드는 게 목적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백성들은, 애굽 땅을 차지하는 것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왜냐면 그들에게는 약속의 땅이 있어요.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죠. 우리도 새하늘 새땅이 있어요. 
이 세상의 땅을 우리가 차지하는 것과 별반 상관이 없어요. 

그리고 그 땅을, 이스라엘 화시키는 것도 별로 상관이 없어요. 
마치 하나님의 백성은, 애굽에 가면, 애굽을 차지해야 되는 것처럼 생각을 해요. 
그리고 애굽을 이스라엘화 시키는 것, 애굽을 개선시키고, 
애굽이 이스라엘화 되는 것이 마치 우리의 목적인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사람에게 목적이 있대요. 
'큰 민족'을 만드는데 목적이 있으십니다. 
사람을 만들되, '큰 민족'을 만드는 것, 이것이 목적입니다.

여기서 '큰 민족'이라는 것은, 숫자적 개념이 아닙니다.
'큰'의 히브리어는 '까돌'인데,  숫자와 관련 있는 단어가 아니고, 
'부유한, 존귀한' 이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풍성을 주시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을 만드는 게 목적이에요. 
'존귀하신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을 만드는 게 목적이에요. 

존귀하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 
존귀하신 그 하나님이 허락하신 기업으로 주신 그 나라를 소망하는 사람들, 
존귀하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드는 게 목적이다.. 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세상 속에 살면서, 나그네로 사는 이유는 
애굽 땅을 차지하거나, 애굽 땅을 이스라엘화 시키거나 
그 땅을 하나님의 땅으로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그 땅에서 내가, 존귀하신 하나님을 섬기고, 
내가 존귀하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가 존귀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바라보면서 
그 분을 소망하는 민족이 되어지는 것이고, 

나를 통하여 내게 붙여주신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선택하신 사람들을 
또 '큰 민족' 안에 포함시키는 것, 
그것이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방식이어야 하고, 
그 아들과 동행하고 동거하는 삶의 목적이기도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땅에 오신 목적도 마찬가지죠.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다가와서 
그분에게 무엇을 요구했습니까? 

로마를 밀어내기를 요구했어요. 
그래서 예전에 다윗 왕국의 영광의 회복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것과는 전혀 상관 없는 삶을 하셨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미워하고 배척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라고 하면서 어떻게 이스라엘에 관심이 없냐?' 
'어떻게 로마를 밀어내고 이 땅을 하나님의 땅으로 바꾸는 일에 전혀 관심이 없냐?' 
그렇게 그들은 예수를 미워했고, 배척했고,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했지요.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물었죠. 
눅17:20~21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바리새인들이 뭘 묻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합니까?' 하고 '때'를 묻고 있어요. 

근데 주님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나라 자체에 대한 대답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자기들이 알고 있다 라고 생각했지만 
개념 자체가 틀렸던 것이죠.

바리새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로마가 밀려나가고, 
그리고 옛 다윗의 영광이 회복되는 나라, 
이 현실의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에 관심이 있었어요. 

근데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로마의 압제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시고,
다윗의 나라를 세우는 것에 아무 관심이 없으신 거예요. 

그러면서 예수님은 무엇에 관심이 있다고 말합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다.' 
21절 보면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못 한다'

'왜냐면 내가 세우고자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사람 안에 세우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셔서 뭘 하셨습니까? 
계속 제자들을 세우시고 부르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하셨던 것은, 큰 민족을 이루시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이 땅 가운데서, 크고 존귀하시며, 영적으로 풍성하신 그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들을 불러서 세우셨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하나님을 소망하는 사람들로 큰 민족을 이루셨던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셨고, 
오늘 본문 창46장을 통해서도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과 그 아들과 함께 동행하는 나그네로 살아가요. 
우리가 이런 삶으로 부름 받은 이유는 
그 아들과 함께 큰 민족을 이루기 위함 입니다.

△후에 출애굽 할 때, 당시에 70명, 의도적으로 70이라는 숫자를 지금 맞추고 있는 것을 보고 있는데, 
여기 나오는 70명을 중심으로 해서, 여기서부터 시작해서 큰 민족을 이루게 됩니다.

큰 민족은 숫자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몇 명이 나옵니까? 
기록상으로는 60만명, 여자와 아이들까지 포함시키면 200만 명 정도 된다고 보죠.

근데 그 숫자가 크기 때문에 큰 민족을 이루었다고, 약속이 성취되었다고 말합니까?
아니죠. 

그 가운데 모든 사람들은 430년이 지나는 동안에도 누구를 섬기는 민족이었습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민족이었어요. 

430년이 지나는 동안에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민족, 하나님을 사랑하는 민족이었고, 
430년이 지나는 동안 끝까지 약속의 땅을 바라보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리고 그 가운데는 이스라엘 사람들만 있었습니까? 
아니요. 수많은 잡족들이 함께 나왔다 라고 말씀합니다. 출12:38

애굽 사람들도, 거기 출애굽 대열에 포함 되어 있었어요. 
애굽의 신을 버리고, 애굽의 땅을 버리고 하나님께 자기 자신을 드린 사람들이 
거기에 포함되었고 

애굽에서 영화를 누려 보겠다고, 다른 지역에서 왔던 많은 사람들, 
'잡족'이라고 표현되었던 많은 사람들도 또한 
60만 안에 포함되었던 것이죠.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지금 야곱이 초청받은 것과 같은 그 아들을 통해서 
우리 또한 새로운 삶으로 초청을 받았습니다. 
진짜 살아 있는 삶으로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 삶은 무엇입니까?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 분이 부르신 그 삶의 특징대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세상을 등진 삶을 살아요. 
그러면서 그것이 경건인 척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들은, 세상 속에서 살아가요. 그것을 자랑처럼 얘기합니다. 
그런데 세상 속에 있으면서,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고 
그 아들과 함께 하지 않으면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세상을 등진 것도, 하나님과 그 아들 없이 세상 속에 있는 것도, 
우리가 부름받은 부르심의 삶은 아닙니다. 

우리는 그 아들과 함께 세상 안에서,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삶 속에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뿌리를 내리기 위하여 
이 땅의 것들을 붙잡기 위하여, 이 땅에서 흔들리지 않기 위해 살아가지만 
그 세상 속에서 우리는 나그네로 살아가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죠.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은, 여기 이 땅 위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에,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그 사람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 목적인 것입니다. 
사람 안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큰 민족을 이루는 것이죠.
 
내가 큰 민족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하나님이 큰 민족을 이루시는 약속이 성취되는 삶,
그것이 우리가 부름받은 삶인 것입니다. 

그 아들이 부르신 살아 있는 삶 속에,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그 아들의 부르심에, 그 아들이 초청한 그 삶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