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카테고리 없음

왜 자유하지 못할까?

LNCK 2020. 6. 13. 12:50

 

◈왜 자유하지 못할까요?                갈5:1~15, 마11:29             19.11.24.

이주연 목사 설교녹취

 

오늘 말씀의 제목은 "왜 자유하지 못할까?" 라는 질문인데
이것은 대단히 도전적인 질문이기도하고 또 아주 근본적인 질문이죠

그리스도인들은 자유인이고, 자유케 된 존재인데
과연 우리가 정말 자유한가? 이 점을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사도께서 계속해서 우리 성도들 향하여 하신 말씀은 갈5:1절 이하의 말씀인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셨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계속 아주 강력하게 선포하는 그 선포의 내용이고
또 여러 가지 많은 가르침과 선포를 하시면서도 그 뒤에 깔려 있는 (근본적인) 메시지입니다

<정말 우리가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었는가?>
이것을 묻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이것에 대해서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보면
우리는 영적인 면에서나, 인격적인 면에서
또 일상의 삶을 잘 살아 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있는데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나는 누구인가?' 에 대한 대답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정체성' 이라고 말하지요 '나는 누구인가?'

거기에 대한 분명한 대답을 가져야 되는데
성도들은 나는 누구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되겠는가요?

 

바울 사도가 말씀하신 것은 '너희들은 종이 아니라 자유인이다
그리스도로 인하여 자유케 되었다'
이런 정체성을 가지고 살라는 말이지요!


그래서 바울사도의 당시의 선포나 아니면 소신을 볼 때에
그런 '자유인'이라고 하는 것을 선포할 때
그것을 듣던 사람들은 '우리가 왜 종이냐? 이미 우리는 1천 5백년 전에 출애굽을 함으로써

모세와 더불어 우리는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데서 우리는 자유케 되었다! 그것을 모르느냐?'

 

그리고 또한 당시에 로마에 의해서 유대인들이 식민통치를 받았지만
이들은 종으로서 살아가지는 않았어요
식민통치 받았지만, 자율적으로 자치할 수 있도록 그런 권한을 위임받았습니다

 

그래서 전쟁 포로와 같은 노예생활을 하지 않고 식민통치를 받았지만
이들은 자유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죠

 

그러니까 바울사도께서 '너희들은 자유로워야 되는데 너희들은 그렇지 못하다'
이렇게 얘기할 때 '우리가 무슨 종이냐? 우리가 노예냐?' 이렇게 응수를 했던 것이죠

 

<그러나 바울 사도의 눈으로 볼 때, 당시에 많은 사람들은 다 종으로 보인 거지요>
종노릇 하고 있다고 본 것이죠
영적인 눈으로 봤을 때, 죄의 종노릇 하고 있다, 율법의 종노릇 하고 있다,

즉 죄책감으로부터 자유케 되어 살고 있지 않다,
너희들은 완전히 해방되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 얘기를 계속 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2천 년이 지난 오늘, 우리 자신들을 향해서 생각해 볼 때
여러분들은 정말 자유케 되신 분들입니까?

영적으로 보게 되면 오늘 이 시대는 2,000년 전 보다도 더 자유롭지 못한 시대가 아닐까요?
더 종된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 하는 생각이 들어요

 

자유로 인하여(자유가 무한 보장된 시대로 인하여),

자유를 박탈 당한 인간들이 된 것이 아니냐? 이거예요
자유로 인하여, 우리는 방종과 자기 욕망의 노예가 되어서
외형적으로는 우리가 자유케 되었지만
진정으로 우리가 자유인이냐? 하는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과거에 정말 악랄한 노예제도가 있었던 시대가 있었죠
바로 신대륙에서 노예제도가 있었는데 얼마나 악랄했습니까?
정말 짐승 취급하고, 노예 사냥을 해서 인간을 노예로 팔고,

영화를 보게 되면, 노예를 팔고 사는 자리에서 노예에게 막 채찍질을 합니다

 

그 채찍을 맞고도 끄떡하지 않으면 이렇게 건강하니까 비싼 값으로 파는 거죠

입을 벌려서 이가 많이 빠져 있는지 아닌지.. 그걸 가지고 나이나 건강 상태를 보고 노예를 팔았어요
정말 노예제도가 이게 200년 전만 하더라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죠

 

그러나 믿음의 사람, 정말 주님의 말씀과 은혜로 구원 받은 아브라함 링컨이
이와 같은 것을 전쟁까지 치르면서도 노예들을 해방시켰습니다

 

그리고 헌법에까지 반영을 시켜서 지금부터 156년 전에 이들을 완전히 해방시킨 것입니다

그 이후에 현대 헌법에서 보게 되면, 어느 헌법에서도 노예제도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적으로 보게 되면, 법적으로 우리가 노예가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는 이전보다 더 심각한 노예의 상태가 아닌가? .. 하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노예라고 하는 것은 뭔가요? 종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영적으로 보게 되면, 내 마음과 내 몸을 다 뺏긴 상태를 말하는 거예요

내 마음과 내 몸을,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죠

 

여러분은, 자기 몸과 마음을, 여러분 마음대로 제어할 수 있으십니까?

우리는 욕망의 이미 노예가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필요로 하는 모든 자유를 다 법적으로도 허락했어요

 

심지어는 하나님의 법에 가장 창조적인 창조의 세계에서 근본이 되는 남자와 여자의 성별 구분,

또 남자와 여자가 서로 만나서 가정을 이루는 것 조차도
그들 개인의 욕망에 따라서 남녀의 구분도 이제는 사라져 버리는..
이렇게까지 인간의 욕망을 모든 것으로 자유롭게 해 주고
그 욕망에 종노릇 하고 있는 것이죠 우리 사회가 이렇게 자유롭게 됐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가 진정으로 우리를 자유케하는 자유인가 한번 생각해 보는 거지요

생각해 보니까 이 세상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유로 인하여 자유를 박탈 당하고
그 자유를 어디에 쓰는 거냐 하면
내 육신의 만족, 이생의 자랑, 정말 육신의 정욕을 위하여 쓰고 있습니다
안목의 정욕을 위하여 그 자유를 쓰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유를 위해 부름 받았는데
자유를 위하여 우리 자신을 바치고 내 마음을 바치고 내 삶을 바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자유케 되었는데, 그 이후에는 또 다른 정욕에 종노릇 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종노릇, 물질에 종 노릇, 어두운 영에 종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제가 어느 직장 신우회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이렇게 말씀을 나누는데
거기가서 보니까 사람들이 달라 보이더라고요
거기 있는 분들은 이사들, 아주 굉장히 잘 나가는 직책들인데
연봉이 1억 아래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그런 회사인데 아침에 가 보니까 다들 긴장되어 있고 여유가 없어 보였어요
다들 인간적으로 메말라 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때 제가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도전을 한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평생 쓰고도 남는 것이 있는 여러분들은
왜 이렇게 근심 걱정 속에서 긴장하며 하루를 시작하며
이렇게 살아가야만 되는 겁니까?

 

당신들도 크리스천으로서 주님의 부름을 받아서
아침에 예배 드리고 주의 종(직장인)으로서 살아가야 되는 것인데
당신은 누구의 멍에를 메고 지금 살아가는 것입니까?

주님이 주신 멍에냐, 세상의 멍에입니까, 내 자신의 욕망의 멍에입니까?
이생의 자랑을 위하여 내 자신이 그 힘든 멍에를 메고 살아가는 것입니까?'


우리는 진정 자유인인가? 하는 것을 물어야 됩니다
또한 더 심각한 것은, 사도 바울이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말하는 것의 첫 번째는
율법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것이었어요

 

'율법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것은 뭐죠?
율법은 우리가 말하자면.. 무엇이 죄고 무엇이 죄가 아닌가를
분명하게 인류에게 가르쳐 준 최고의, 최초의 말씀이죠

그래서 율법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래야 무엇이 죄고 아닌지가 분명해지는 겁니다

 

그런데 율법이라고 하는 것은, 죄에 대하여 진단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맙니다

우리가 암에 걸립니다
요즘엔 MRI 나 기타 암을 진단하는 기술을 보면 엄청나게 뛰어납니다
그래서 0.1MM 되도 그 암 세포를 찾아냅니다 엄청난 기술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찾아내지만, 치료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완치를 아직 못 시킵니다 이게 율법입니다

 

율법은, 내게 죄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려주지만
그러나 완전하게 우리를, 죄 사함을 받고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하고
우리를 해방시키지는 못하는 겁니다'

 

그 부분을 예수께서 오셔서, 예수의 보혈로, 예수의 사랑으로
그분의 대속적 죽음을 통해서 산 제사를 그렇게 십자가에서 드림으로 인하여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자유케 된 것이죠 (변화 받은 사람이 된 것이죠)

 

우리는 그 가운데에서 죄책감을 다 씻고, 죄를 벗어나서, 그의 멍에를 메고 살라는 거죠
사랑의 멍에, 기쁨의 멍에, 하늘의 멍에, 자유의 멍에, 구원 받은 그 멍에,
그 멍에를 메고 살라는 거지요  마11:29

그 멍에는 메면 멜수록 기쁨이 오는 거예요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내게로 오라 내 멍에는 가볍고 쉬운 것이다' 마11:29

그러면 우리가 그 예수님의 멍에를 메면.. 내 인생에 일이 줄어드느냐?
그런 거 아니에요 어떤 면에서 일이 더 많아질 수도 있어요

 

그러나 내가 주님을 의지하면서
주님께서 주신 그 사랑의 멍에, 구원의 멍에, 은혜의 멍에를 메게 되면
이전과 다르게 많은 일을 하는데
할수록 힘이 생깁니다

 

저는 우리 무료급식에 봉사하는 몇몇 분들을 보면서 그걸 느낍니다
보면서 제가 은혜를 받고 제가 도움을 받아요

봉사자들이 그렇게 열심히 와서 애를 쓰는데 생글생글 웃으면서 봉사하십니다

 

은혜의 멍에를 메고,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서 자유케 된 사람은
힘든 일을 할 수록 더 싱글 싱글 웃게 되는 거예요 더 기쁜 평안이 오는 거예요

여러분들 스스로 생각해보세요

 

내가 봉사한다면서 주님이 주신 멍에를 메고 내가 일을 하는데
내 마음이 계속 무겁다고 하면
육신은 무거울 지라도 내 마음은 밝아지지 않는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고 있는 것이냐, 아니면 종의 멍에를 메고 있는 것인가?

 

내가 지금 이 봉사를
종의 멍에를 메고 하고 있는 것이냐, 내 자신의 육신의 멍에를 메고 있는가를
스스로 물으셔야 돼요

 

또한 내가 이렇게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고 주의 일을 한다고 생각하고
은혜롭게 내가 지금 봉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이들이 나를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는 것이
그렇게 내게 어려움이 된다면, 스스로 물으셔야 됩니다

 

'지금 내가 주의 멍에를 메고 있는 것이냐?
내가 육신의, 내 자신의 멍에를 메고 있는 것인가?'

 

주님이 주신 멍에를 메는 사람은
내 육신은 피곤해도 기쁨이 있어요, 자유함이 있어요,
한마디로 구원의 은혜입니다

 

주의 멍에를 메고 우리가 나갈 때는
그 고난이 오히려 은혜가 되는 것을 경험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돌이켜서 내 자신이 주의 멍에를 멨다고 생각하고

주의 몸된 교회를 섬긴다고 하는데

 

그런 자유와 평강과 기쁨이 없다고 한다면
'아 내가 무엇을 생각했느냐?'
교인들이나 목사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 앞에서 주님과 나와의 관계로 생각하셔야 되는 거예요

 

이것은 우리 성도들이나 제가 무관심 해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일차적으로 자기의 영적인 면을 살펴 보아야 한다는 것이에요

우리는 자유와 기쁨과 평강과 은혜를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어요
그것을 위하여 우리는 죄로부터 자유케 되고 해방된 사람들이에요

 

그것을 우리는 헌신을 통해서, 남을 돕는 일을 통해서, 섬김을 통해서 충만함을 얻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렇게 되지 않을 경우에는
'아 나의 멍에는 누구의 멍에인가?'

정녕 내 마음속에서도 주의 멍에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봉사와 헌신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그땐 정말 우리는 안식(중단하고 쉼) 해야 돼요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어요
누가 누구를 정죄할 필요도 없는 거예요
판단하는 게 아니라, 격려 해야 되고 위해서 기도해야 되는 거예요

 

그건 목회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정말 목회자의 영광을 위하여 자기 자신의 어떤 영달을 위하여 목회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주의 종으로서 주의 멍에를 메고 내가 하는데
영과 육과 모든 것이 다 너무 피곤하다고 한다면,

 

또 때로는 내가 영적으로 너무나 기쁘고 감사한데
내 육신이 너무 무겁다고 한다면 그때는 안식해야 되는 거예요

우리가 정말 주의 멍에를 메고 나갈 때는
할수록 할수록 자유롭게 되는 거예요

 

고난이 오면 올수록 더 기쁨이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 고난이 은혜로운 것이구나!' 이것을 알게 되는 것이죠


그 다음에 우리는 정말 내 자신을 성찰하면서 뭘 생각해야 되나?
내 멍에가 종의 멍에인가,
종의 멍에란 것은 율법의 멍에이고,
또 하나는 바울의 표현대로 하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의 멍에 입니다

 

그것은 현대 용어로 하면 쾌락주의의 멍에입니다
이생의 자랑의 멍에를 메고 있을 수 있는 겁니다

물질의 멍에, 물질을 많이 가져야 이 세상에서 자랑스럽게 산다고 하는 멍에,
그건 세상에 빠져 있는 거에요 물질의 멍에를 메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갈수록 우리를 힘들게 만들고, 또 우리의 삶의 길을 좁게 만들고
또 우리로하여금 교만하게 만들고
결국 그것으로 실패하게 만들어요

 

이러한 자기 육적인 그 멍에를 메고 살게 되면
사람들이 알콜중독에 빠지고, 성중독에 빠지고
돈과 물질의 중독에 빠지고.. 그것으로 인하여 헤어나오기 힘든 인생을 사는 거지요
진정한 자유가 없어요

 

그건 아주 쉽게는 술 먹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알아요
그 술 먹을 때는 그 사람들이 평안함을 얻는 것 같아요
근데 깨어나게 되면 그때부터 고통 가운데 있어요

 

원본의 23:27~24:34 생략

 

내 육신도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거예요
인간이라는 것은!

괘락을 추구하는 마음, 육신을 추구하는 마음
이생의 자랑, 안목의 정욕.. 이것이 우리가 그렇게 마음대로 해결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이에요

진지하게 생각해야 되고, 심각하게 생각해야 되고, 그러나 소망을 가져야 돼요

 

성령을 받고, 내가 죽고 예수께서 내 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이것이, 내 자신에게 떠나버리게 됩니다

 

저는 골초인 사람이 새벽기도 나와서 어느 날 은혜를 받고
기도하고 딱 담배를 그날부터 끊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정말 간절히 자기의 모든 것을 토해내면서 회개하고
난 더 이상 이 더러운 것을 먹고 살지 않게 하소서 기도했는데
근데 그 날 길거리에 가는데
이 골초였던 분이, 누가 담배를 피고 자기 곁을 지나가는데
그 순간 구역질이 난 것입니다 그 담배 냄새를 맡고서요

 

그런 거예요 은혜 아래 있으면!
내가 무엇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주가 들어오시고
성령께서 나와 함께 할 때는, 내 의지로 할 수 없는 내 자신,
노예의지로 살아가던 내가

그리스도께서 내 삶에 주인이 되는 거예요

성령이 주인이 되주시고 예수께서 나의 인격의 주인이 되어주시는 거예요

 

이것이 그래서 우리가 면벽하면서 수양하는 그 (불교의) 수양과는 다른 거예요

단순하게 우리가 나의 정신분석을 하고
심리적으로 치료하는 것과 다른 거예요

 

인격적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인격적으로 임하셔서
내 마음을 바꿔주시고, 내 영에 그 깊은 곳에 찾아오셔서
내 마음과 내 육신을 바꿔 주십니다

이것을 우리가 소망 해야 돼요

 

세상의 어떤 정신분석이라든지 어떤 치료방법을 우리가 전면 부정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 너머에 있는 이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의 세계를
우리가 추구하고 알고 믿고 나아가야 돼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이기는 것은
정말 이것은 사탄의 손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 개인의 의지로 넘어설 수 없는 강력한 어둠의 세력의 힘이에요

 

이미 우리가 태어나서 인류가 만들어져서
아담과 하와가 인간으로서 살기 시작했을 때
그때부터 이들을 유혹한 것이 사탄이에요
어둠의 영이 그때부터 같이 있었던 거예요
이 싸움에서 이겨야 되는 면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은혜 아래서
우리들이 주의 종의 멍에를 메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우리는 더 열심을 내면 낼 수록
더 큰 힘과 은혜가 임합니다

 

헌신하면 할수록, 나를 근거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 안에서 하면 할수록 더 능력이 임해요

그 능력이 임할 때 우리는 더 강력한 힘으로
우리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서 벗어나는 (자유하는) 은혜를 입어요

 

그러나 내가 그것을 내 혼자 일대일로 싸우려고 하면
내 자신과 싸우다가 지쳐요
내 자신과 싸우다 포기해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는 겁니다

 

27:38~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