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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심연 – 불순종의 결과 욘1:1~3 출처
The Belly of Hell - The Consequences of Disobedience
데이빗 윌커슨 May 6, 2002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선가를 주고 배에 올랐더라"(요나 1:1-3)
우리는 요나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도망하려 했던 사람입니다.
주님께서는 요나에게 니느웨 성으로 가서 심판을 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니느웨에 경고를 하기는커녕 요나는 도망을 쳤습니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께서도 확인해 주신 바 있습니다.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마12:40)
이 말은 요나의 이야기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만큼이나 확실한 사건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요나는 왜 도망을 쳤을까요? 왜 그는 하나님께서 명확이 계시해주신 말씀을 따르기를 거부했을까요?
우리가 알기로 그는 분명 경건한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은 주님과 친밀한 교제를 하는 자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여 주십니다.
주님은 자신의 종들을 아무렇게나 선택하시지도 않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서 무언가 특별한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그가 가진 달란트, 예를 들면 목소리가 아주 크거나
성령의 음성을 듣는 민감한 귀를 가졌기 때문에 그를 선택하셨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요나가 이스라엘에서 예언을 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당시 많은 선지자들 가운데 한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요나는 분명 은사를 갖춘 하나님께 선택된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과 관련해서 요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으로부터 도망하였습니다.
그는 실제로 하나님의 임재를 떠나 주님과의 교제를 끊어버렸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무엇 때문에 그런 대담한 불순종을 저질렀을까요?
요나가 심판을 선포하라고 부르심을 받은 때로부터 그가 도망하기로 결정한
사이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여러 주에 걸쳐 일어난 일일수도 혹은 여러 달이 걸렸는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예루살렘에서 욥바까지의 거리는 약 56km나 됩니다.
요나가 걸어갔다면 자기가 맡은 사명에 관해 곰곰히 생각할 시간은 충분히 있었을 것입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요나가 발걸음을 내딛을 때 마다 성령의 음성을 분명히 들었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하늘의 사냥개’과도 같아서 우리를 사역가운데로 부르실 때면
우리가 사역으로부터 벗어날 때 그냥 내버려두시지 않습니다.
요나가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들었을 것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아담의 본을 기억하라. 요나! 그가 불순종한데 따른 결과를 생각해 보아라.
모세도 생각해 보아라. 온유하고 거룩한 성품을 가진 모세는 하나님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였었다.
하지만 단 한번의 불순종으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그를 책망하셔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던 기도의 사람, 다윗도 생각해 보거라.
불순종으로 인해 그가 겪어야만 했던 그 끔직한 고난을 기억하거라.
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도망칠 수 없다. 돌아가라. 요나!"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운명이 요나의 순종 여부에 달려있었습니다.
그러나 니느웨로 가기는 커녕 요나는 결국 불순종의 길을 택했습니다.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선가를 주고 배에 올랐더라"(요나 1:3)
저는 요나가 하나님께 대한 의로운 두려움,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었기 때문에 순종하지 않았다고 믿습니다.
어떻게 그런 기도의 사람이 자신이 받은 사명을 떠나 불순종가운데 빠질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편협한, 부분적인 지식에서 시작됩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에 관한 엄청난 계시를 받았었습니다.
요나는 다음과 같이 증언합니다.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요나 4:2)
그가 받은 계시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실 때 주셨던,
모세가 받은 계시와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요나는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때문에 자신이 도망했노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요나 4:2)
그의 행동은 다음과 같이 그의 주장을 항변하는 것입니다.
"주님, 당신은 회개하는 자들을 너무도 쉽게 용서하십니다.
주께서 심판을 선포하실 때마다 주님은 자비하심이 넘치십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심판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심판을 예언하자마자 그 백성들은 회개할 것이고
그러면 당신은 당신의 긍휼하심과 자비하심을 그들에게 쏟아부으실 것입니다."
요나의 항변에 어떤 오류가 있는지 보이십니까?
그는 하나님의 성품을 아주 부분적으로만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이 죄에 대해 너무 관대하다고 주님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요나가 언급한 모든 성품을 가지고 계십니다.
오래 참으시며, 용서하기를 기뻐하시며 넘치는 은혜를 쏟아주기를 언제나 기대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을 계시하여 주신 것으로 인해 저는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은 제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진리중의 진리였습니다.
저는 이러한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긍휼하심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설교하는 것이 무척이나 좋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또한 하나님의 거룩하고 의로운 성품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로마서 1:18)
요나는 분명 하나님의 이러한 성품도 알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그는 이러한 사실을 무시하게 되었습니까?
저는 요나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다고 믿습니다.
여러분이 만약 하나님을 단지 자비하신 분으로만 생각한다면
주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기가 쉬워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내리는 경고를 가볍게 여기신다고 믿을 것이며
따라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대로 행하시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 요나가 불순종한 원인이라고 믿습니다.
진실한 하나님의 종이라면 누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이해해야 합니다.
여기서 제가 말하는 두려움이란 복종하도록 조종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불러 일으키는 두려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말하는 두려움은 하나님의 말씀에 나타난 바와 같은 거룩한 영적인 두려움, 경외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찌어다"(잠언 3:7)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잠언 23:17).
우리는 그런 경외함을 부지런히 갈구해야 합니다.
동시에 하나님을 경외함이 우리 안에 성령에 의해 각인되어야 합니다.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인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잠언 2:4-5)
하나님을 경외함은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똑같이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잠언 14:26)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라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잠언 14:27)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모든 자에게는 끔직한 결과가 뒤따르게 됩니다.
요나의 불순종은 세가지 면에서 이러한 사실을 확인해 줍니다.
◑1. 사방에서 무질서와 혼란, 혼동을 겪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대풍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 폭풍이 대작하여
배가 거의 깨어지게 된지라 사공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을 바다에 던지니라"(요나 1:4-5)
때때로 경건한 사람들조차도 삶 속에서 무질서와 혼돈을 겪습니다.
갑자기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상황가운데 주님의 자녀들을 오래 두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구원하시며 그들의 삶을 기쁨과 평화가 있는 하나님의 질서가운데로 회복시키십니다.
혹 그렇지 않다면 견뎌낼 수 있는 은혜를 더 공급하여 주십니다.
하지만 불순종 가운데 거하는 종은 거듭되는 위기를 계속해서 맞이하게 됩니다.
요나의 죄가 일으킨 혼돈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엄청난 폭풍이 휘몰아 쳤습니다.
바다는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선원들과 승객들은 미친 듯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짐을 배 밖으로 내던졌습니다.
그들은 절망가운데 자신들이 생계수단으로 사용하는 물건들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것을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만약 근처에 또 다른 배가 있었다면 그들 역시 생명을 위협을 느끼며 똑같이 행동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고집스럽게 저항한 한 사람으로 인해서
얼마나 큰 혼돈이 야기되고 있습니까! 불순종이란 무엇입니까?
불순종이란 하나님의 명확한, 계시된 말씀에 반대되는 길을 걷는 것입니다.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모든 명령도 이러한 말씀에 포함됩니다.
다음과 같은 음행과 간음에 관한 말씀을 생각해 보십시오.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에베소서 5:5)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히브리서 13:4)
음행이란 단어의 히브리 어원은 포르노로서 우리가 요즘 많이 언급하는
포르노그라피라는 단어가 여기에서 나왔습니다.
저는 현재 인터넷에 이십만 개가 넘는 음란 사이트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믿음까지 저버리고 마약이나 알코올, 섹스를 탐닉합니다.
어디로부터 이러한 혼동이 오는 것입니까?
사단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호의 벽을 내리셨기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폭풍을 일으키셔서 종들을 깨우시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요나에게 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여호와께서 대풍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 폭풍이 대작하여"(요나 1:4).
◑2. 끈질긴 불순종은 영적으로 잠들게 하며 영적 무관심을 유발합니다.
요나는 자신이 일으킨 혼돈과 고통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폭풍이 이는 내내 그는 자고 있었습니다.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요나 1:5)
그의 영적인 상태가 어떠한지 아시겠습니까?
그는 자기 자신의 불순종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의 죄는 폭풍을 유발시켰고 그는 폭풍을 멈추게 할 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는 영적 무감각 상태로 빠져들었습니다.
그는 죄로 인한 나태함에 굴복하였습니다.
교회 안에서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이혼율을 생각해 보십시오.
강단에 서는 자들이나 예배당에 앉아있는 자들이나 모두에게서 일어나고 있는 음란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에서 증가하는 부도덕에 무감각해져 가고 있습니다.
케이블 TV 방송국들은 쓰레기보다 못한 것들을 더 많이 쏟아내기 위해 경쟁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도덕적 경계선을 무한대로 확장하는 데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 더불어 유혹에 넘어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냐구요?
바로 교회 안에 만연한 “은혜뿐인” 메시지의 결과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한 메시지는 하나님의 성품을 부분적으로 드러낼 따름입니다.
오늘날의 설교자들은 하나님에 대한 거룩한 두려움의 원리를 무시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영적 무감각 가운데로 유도합니다.
◑3. 우리의 불순종으로 인해 하나님은 약하고
무기력한 존재로 비춰집니다.
"선장이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니라
그들이 서로 이르되 자 우리가 제비를 뽑아 이 재앙이 누구로 인하여 우리에게 임하였나 알자 하고
곧 제비를 뽑으니 제비가 요나에게 당한지라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청컨대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고하라
네 생업이 무엇이며 어디서 왔으며 고국이 어디며 어느 민족에 속하였느냐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 하고
자기가 여호와의 낯을 피함인 줄을 그들에게 고하였으므로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행하였느냐 하니라"(요나 1:6-10).
요나의 불순종은 하나님이 보복을 하고 계시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마치 요나의 하나님을 훼방하면 그분은 누구든지 끝까지 좇아가서 앙갚음을 하고야 마는
그런 분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다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완전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요나에게 화가 나신 것일까요?
이 사건은 패역한 종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복수일까요?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너는 실패작이다. 요나! 네게 기회가 있었건만
스스로 자격을 포기했구나. 이제 너는 심판을 받고있다"고 말하고 계신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화가 나시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실망하셨을지는 몰라도 그와 완전히 끝장을 보신 것은 아닙니다.
추호도 그럴 리가 없습니다.
요나의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자비와 은혜의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폭풍을 일으키셨습니다.
하지만 폭풍을 일으키신 것은 요나를 그분에게로 다시 데려오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주님은 사실상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나는 자연을 뒤집어서라도 나의 불순종하는 종을 돌이키게 하겠다.
요나, 네가 내게서 도망을 갈 수 있을지는 몰라도 나는 너를 포기하지 않겠다.
나는 아직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불렀고 선택하였다.
너는 여전히 이 일을 감당할 나의 사람이다."
선장이 요나를 깨워야만 했다는 사실에 주목하십시오.
엄청난 위험에 직면해서도 하나님의 사자는 아무것도 인식하고 있지 못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증거하려 했었지만 선원들은 그를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요나가 불순종하여 "여호와의 낯을 피해 도망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요나 1:10).
요나의 죄는 요나의 상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불순종가운데 거하는 모든 종들은 세상에서 신뢰를 받지 못하게 됩니다.
세상은 그러한 종들에게 영적 권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요나가 선원들에게 자신을 배 밖으로 던지라고 강력히 요청할 때도 그들은 요나를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에 돌리고자 하다가…"(요나 1:13)
그들의 행동은 "왜 우리가 당신의 말을 들어야 하지?
우리가 우리의 신들에게 부르짖는 동안에도 당신은 자고 있었쟎아.
우리는 이 상황에서 우리 손으로 빠져나가야해"라고 이야기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요나는 완전히 무력했습니다.
폭풍에서 살아남는다해도 니느웨에서 심판을 선포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배의 선원들조차 그의 말을 존중하지 않는데 그 땅의 백성들이 그의 말을 듣겠습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삼일 삼야를 물고기 배에 있으니라"(요나 1:17)
▲요나는 자신이 겪은 시련을 “지옥”으로 묘사했습니다.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요나 2:2).
주께서 요나를 그토록 낮추신 이유가 무엇이었겠습니까?
그는 생지옥 같은 물고기 뱃속에 있었습니다.
어두움 가운데 불안에 떨며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 있어야 했습니다.
왜 자비로운 하나님께서 주의 종에게 이러한 일을 겪게 하셨을까요?
저는 요나의 이야기가 하나님께서 어떻게 불순종하는 종들을 다루시는지
보여주고 있다고 믿습니다.
요나는 이 생지옥에서 삼일 밤낮을 지냈습니다.
그러나 삼일 내내 그는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폭풍은 그로 하여금 무릎을 꿇도록 하지 못했습니다.
고래 배속에서의 죽음과의 사투도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삼일 밤낮이 지난 후에야 우리는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요나 2:1)
라는 구절을 읽게 됩니다.
왜 요나는 더 일찍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분명 그가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다고" 확신했기 때문일 것입니다(요나 2:4).
그는 하나님께서 니느웨 성을 향해 자비가 넘치시는 분으로 묘사했습니다.
하지만 똑 같은 긍휼을 자기 자신에게 베푸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죽었다.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는 지경이지.
하나님께서 내게 등을 돌리셨어. 하나님께서 내가 행한 일로 인해 나를 미워하셔."
이러한 생각보다 더 잘못된 생각은 세상에 없습니다.
성경에서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라고 이야기할 때
예비했다는 단어는 "싸다, 감다(enrolled)"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대한 고래를 선택하셔서 그 피조물에 긴급한 임무를 맡기셨습니다.
그래서 요나가 배 밖으로 던져졌을 때 그 물고기는 요나를 삼킬 준비를 하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여전히 일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단은 요나를 속이는데 성공했습니다. 지옥을 사단 외에 누가 지배하겠습니까?
요나는 외쳤습니다. "무릇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요나 2:8)
이 구절의 히브리어를 그대로 번역해보면 "속이는 거짓말을 옹호하는 자들은
자기 자신이 긍휼을 입을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박탈한다"가 됩니다.
이것이 바로 요나에게 일어났던 일입니다.
그는 사단의 거짓에 속아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는 소망을 스스로에게서 박탈해버렸습니다.
삼일 밤낮동안 그는 끔찍한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사단은 그에게 "너는 실패했어. 이제 네 목숨은 끝장이야.
네 불순종으로 인해 하나님께로 돌아설 수 있는 많은 자들의 목숨이 희생됐지.
이제 하나님도 너를 구원하실 수 없어.
네가 살아남는다 해도 영원히 후회할 일만 남을거야"라고 속삭였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하나님께서 요나를 더 빨리 니느웨로 옮기고 계시는 중이었습니다.
곧 선지자 요나는 다시 햇빛아래에서 걸어다닐 것입니다.
그는 택함받은 사자로서 대로에서 담대히 설교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생지옥 같은 고래 뱃속을 경험케 하신 의도가 무엇이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어떻게 당신의 불순종한 종들에게 거룩하고 순전한 것으로부터의
완전한 고립을 경험하도록 허락하시는지를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잠시 동안 요나는 죽음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기도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얼굴을 숨기셨으며
선지자 요나에게 의지할 대상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요나에게 생지옥은 해초가 자신을 휘감아 휩쓸어 간다거나 뱃속에서 이리저리
부딪치는 여러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애로부터 그 손을 놓으셨다는 느낌이
그로 하여금 지옥에 있는 것과 같이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불순종가운데 있는 요나를 시험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순종할꺼야?"라고 요구하시는게 아닙니다.
주님은 "이런 끔직한 지옥에서 누구의 말을 믿겠느냐?
요나! 내 말이냐 아니면 사단의 말이냐?"라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마침내 우리는 "그때 요나가 그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라는 구절을 읽게 됩니다. (요나 2:1)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삽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요나 2:7)
요나는 다시 하나님의 사랑의 품으로 안겼습니다. 그리고는 증거했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요나 2:2)
여러 해에 걸쳐 저는 많은 요나와 같은 사람들을 만나보았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엄청난 죄 가운데 빠진 하나님의 택함 받은 종들을 섬겼었습니다.
그 중 일부는 결국 사단의 허황된 거짓말에 자신을 내어주고 말았습니다.
어떤 이들은 길을 잃고 헤매다 죄 가운데 죽었습니다.
하지만 일부는 그들의 지옥의 심연에서 회개하였고 회복되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목사로서, 교사로서, 전도자로서, 평신도로서
강력하게 사용하고 계십니다. 회복된 성도들의 경우 그들 모두는 예외 없이
자신을 기도에 바쳐 주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요나는 동시에 불순종한 교회의 상징입니다.
극도로 사악한 시대에 하나님은 그 사회에 임할 심판을 경고하도록 교회를 부르십니다.
하나님의 영은 우리 모두에게 명령하고 계십니다. "일어나서 너의 가족들에게,
네가 사는 도시와 나라에 경고하라. 나는 너희들의 악함을 참을 만큼 참았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15년 전 저를 뉴욕시에 보내신 이유입니다.
우리의 사역은 남아있는 경건한 성도들을 일으키고
다가올 심판을 이 세대와 세상에 경고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미국의 악함은 니느웨를 능가합니다.
니느웨의 사람들은 음란물이나 인터넷, 지저분한 TV 등의 유혹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진리를 일깨워 줄 복음이 전해져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성경도, 교회도, 기독교 매체들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미국은 그러한 축복으로 넘쳐 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급속히 죄악으로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냐구요? 답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종들이 잠들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낯을 피하고
경건한 두려움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요나의 시대에 다시스로 가는 배는 풍요를 상징합니다.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국부를 증가시키고자 이러한 다시스 함대를 창설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배들을 부수셨습니다.
오늘날 요나와 같이 많은 성도들은 미국이라는 풍요의 배를 타고 잠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주님은 이 나라에 폭풍을 일으키셔서
미국이라는 배를 흔들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이 정부와 경제의 상징물들이
화염에 휩싸였던 9월 11일에 생생하게 목도하였습니다.
미국은 지금도 두려움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심지어 우상숭배자들도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국회의원들은 회기를 중단하고 의사당 앞에 기도하러 모였었습니다.
(겨우 몇분 전에 그들 중 많은 자들이 낙태를 옹호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공공장소에서 사용치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는데 말입니다.)
후에 저는 회교도들과 힌두교도들이 가지는
거대한 기도 집회를 다룬 기사를 받아보았습니다.
지금은 분명 기도하는 하나님의 종들이 분별력을 가지고 일어나
심판을 경고해야 할 때입니다.
요나의 배에 탔던 선원들처럼 수많은 세속에 물든 자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물어오고 있습니다.
"왜 이런 폭풍이 일고 있는 거죠? 이런 일이 일어나는데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 계신 거죠?"
그러나 너무나 슬프게도 교회는 세상에서조차 신용을 잃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TV에 나와서 돈만 구걸하는 설교자들이 기독교에 관해 아는 전부입니다.
그들은 기독교가 풍요의 선상에서 잠자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한 마디가 세상에 전해질 때는 종종 타협한 목자들이 외치는 소리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겪고 있는 이 폭풍과 관계없습니다. 이것은 사탄의 역사입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우리 나라를 심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런 설교자들은 성경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허락 없이 세상에 일어나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사실 소돔을 멸망시킨 건 사탄이 아니었습니다.
사탄은 불과 유황을 하늘로부터 내려오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주께서 의로운 심판을 악한 소돔에 내리셨던 것입니다.
노아의 시대에 홍수를 내린 것도 사탄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하늘을 여시고 끔찍한 홍수를 보내셨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주님의 교회를 깨워 기도하게 하시는 특별한 방법이 있으십니다.
바로 지금 우리는 그 폭풍을 보고 있습니다. 이제 곧 미국은 고래 뱃속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거대한 물고기를 풍요의 배 밑
흉흉한 물 가운데 준비해 놓고 계십니다.
911같은 이러한 폭풍이 낳은 열매는 무엇입니까? 제 생각에는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니느웨와 같은 회개의 징후를 전혀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리어 5개 주는 동성애 부부가 아이를 입양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캘리포니아 주의 한 학교는 학생들이 알라에 대해 배우기 위해서는
회교도 복장을 갖추고 코란을 들고 학교에 다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아직도 학교에서 금지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저는 많은 성도들이 이런 메시지를 듣기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든 구명보트를 타고 고래뱃속과 같은 고통의 생지옥을 피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게 낫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실상 고래 뱃속은 하나님의 긍휼의 궁극적 현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분의 선하심으로써 회개로 이끄시고자 애쓰셨습니다.
그분은 미국에 축복을 쏟아부어주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풍요 속에 배불러 하나님을 더 멀리 떠났습니다.
지금 주님께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는 이러한 어두운 지옥을 통하지 않고
너희들을 구원할 방법을 찾지 못하겠다. 아마 경제적 붕괴의 뱃속에서는 깨어 일어나겠지.
아마 두려움과 혼돈의 때를 맞이하면 맡겨진 사명가운데로 돌아오게 되겠지."
하나님은 미국을 멸망시키시려는게 아닙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미국을 구원하시려 하신다고 믿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교회를 원래의 사명가운데로 돌아가게 하시려고 애쓰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열망하시는 것은 이러한 고래 뱃속을 경험함으로써 각 가정이 주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사역자들이 자신들의 죄악과 어리석은 설교를 그치고 교회가 되살아 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남은 자들이 성경적 가치를 가지고 나타나
세상으로 들어가 진정한 권위를 가지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폭풍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를 이루신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시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폭풍은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 뿐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함을 명확히 이해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불순종 가운데 거하셨다면 이제 주께 달려가십시오. 속히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영혼을 주님께 쏟으십시오.
주님께서 고래 뱃속에 여러분을 오래 두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회복시키기를 갈망하시는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