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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기도가 필요하다 마7:7~11 출처
레너드 레이븐힐(Leonard Ravenhill)목사님의
기도에 대한 가슴을 치는 도전적인 글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기도회는 콩쥐처럼 천대와 구박을 받는다.
이 주님의 시녀(기도회)는 사랑받지 못하고 청혼이 들어오지도 않는다.
왜냐면 이 기도회란 시녀는 지식의 진주 목걸이도 없고,
철학의 비단옷도 입지 못하고,
심리학의 칠보족두리도 쓰지 않은 채 그저 수수한 차림새이기 때문이다.
이 시녀(기도회)는, 집에서 짠 성실과 겸손의 치마저고리를 입었기에
무릎 꿇기를 어려워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위대성은 그의 기도생활에서 나타난다.
기도하지 않는 목회자는 장난치는 사람이며,
기도하지 않는 성도는 방황하는 사람이다...
현대교회가 여러모로 궁핍하지만, 그 중 기도의 처소에서 가장 시들어져 있다.
우리 가운데 조직 전문가 organizer 는 많지만 애통하는 자 agonizer 는 드물고,
목사 pastor 들은 많지만 씨름하는 사람 wrestler 은 거의 없다
두려움 fear 은 많지만 눈물 tear 은 거의 없다
유행 fashion 은 많지만 열정 passion 은 거의 없다.
참견하고 비난하는 자 interferer 는 많으나 거룩한 부담감을 가지고 기도하는 자 intercessor 는 거의 없다.
글 쓰는 자 writer 는 많으나 선한 싸움을 싸우는 자 fighter 는 별로 없다.
이 기도의 처소에서 실패하면 어디에서나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 글을 접하면서 주님의 사역에 진지한 참여자가 아니라
재미로 하는 놀이꾼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여러분 또한 만약 진지한 기도가 없다면, 천국의 순례자가 아니라
갈 곳을 잃고 떠도는 방랑자에 지나지 않음을 기억하기 바란다.
기도는 성도의 삶에 가장 안전한 버팀목이고, 든든한 동반자다.
확신의 삶을 보장해주는 가장 확실한 장치다.
풍성한 삶으로 인도하는 지름길이고, 강력한 성도의 삶을 보장하는 비결이다.
사단의 진지를 흔들어 무너뜨리고, 사단의 세력을 결박하고,
사단의 공격을 무력화시키는 강력한 무기다.
이 기도는 남녀노소, 빈부귀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해야만 한다.
누구도 기도가 필요 없을 만큼 완전하고, 완벽하고, 만족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소중한 기도의 처소가 시들하다면 어떻게 될까?
개인도 공동체도 소망의 끈을 놓친 것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기도다.
흔히 기도를 ‘영혼의 호흡’이라고 한다. 기도를 ‘숨쉬기’에 비유한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호흡이 생명유지에 필수인 것처럼 기도가 중요하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쉽다는 뜻이다.
갓 태어난 아기도 할 수 있는 것이 숨쉬기다.
가르쳐주지도 않고 훈련하지 않아도 알아서 한다.
이와 같이 기도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것이다. 그렇다. 기도처럼 쉬운 것이 없다.
기도가 쉬운 것은 전문적인 지식이나 특별한 재능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어떤 조건이나 자격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돈이 드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기도는 누구나 할 수 있고, 아무 때나 할 수 있고, 어느 곳에서도 할 수 있다.
젊을 때도 할 수 있고, 늙어서도 할 수 있다. 어린아이도 할 수 있는 것이 기도다.
그런데 또한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 기도다.
누구나 할 수 있는데, 아무나 할 수가 없다. 이것이 기도의 비밀이다.
쉽고도 어려운 것이 기도란 뜻이다.
그래서 기도가 중요하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 기도를 실천한 사람이 드문 것이다.
이것이 누구나 열심히 기도할 것 같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는 이유다.
어느 분이 선교사들이 하루에 얼마나 기도를 하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11%가 넘은 선교사가, 소위 사역의 최전선이라 할 수 있는 선교현장에 있는 선교사가
하루 5분 정도 밖에 기도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물론 시간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기도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기도응답에 대한 확신이 없는 이유
그렇다면 기도는 누구나 할 수 있고, 또한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기도하지 않는 것일까? 다른 일들은 잘하면서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이
왜 그토록 어려운 것일까?
여기에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 하나가 확신의 문제다.
기도응답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확신의 삶 여섯 번째로 ‘기도응답의 확신’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려고 한다.
기도응답에 확신이 없는 이유는 분명하다. 응답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야고보서에 따르면 기도응답을 받지 못한 것은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1:6,7).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4:2b,3).
첫째는 믿음으로 기도하지 않고 의심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잘못된 목적을 위하여 기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셋째는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세 번째다.
기도하지 않으니까 응답을 받지 못한 것이고, 응답을 받지 못하니까 기도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악순환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도하지 않게 만든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이 기도에 대하여 스스로 실망한 나머지
기도해도 소용없다고 자기 합리화를 한다.
▲기도응답을 받으려면
기도는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 울림이 없는 북이 아니다.
사실 성경은 기도에 대해 말씀하면서 응답을 약속하지 않은 곳이 없다(렘33:3, 빌4:6,7, 약1:5 등).
본문만 해도 그렇다. ‘주실 것이요.’, ‘찾아낼 것이요.’, ‘열릴 것이니라.’
모두 직설법 미래형 수동태로 되어 있다. 이것은 장차 반드시 ‘주고, 찾고, 열리도록’
하시겠다는 주님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기도응답에 대한 확실한 보장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말씀하고 있다. 응답의 확실성을 강조한 것이다.
특히 부모와 자녀관계를 예로 들어서 응답의 확실성을 다시 강조하고 있다(9~11).
문제는 이와 같은 주님의 약속과 보장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다. 확신을 갖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기도를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응답받는 기도생활을 해서 기도의 용사가 될 수 있을까?
죠지 뮬러처럼 5만 번에 달하는 응답을 경험할 수 있을까?
물론 앞에서 소개한 응답받지 못한 이유를 뒤집어 생각하면 된다.
즉 믿음으로 기도하고, 나의 이기적인 뜻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에 합당한 것을 구하고,
열심히 기도하면 된다.
그렇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냥 열심히 기도하는 것이다.
본문은 이 점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우선 ①기도하라고 하면 될 것을 다른 단어(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를 사용하면서
3번이나 반복하고 있다. 이는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다음은 ②여기에 나온 세 동사가 모두 명령형이다.
기도는 하면 좋고 안해도 되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만 하는
주님의 명령임을 강조한 것이다.
그리고 ③무엇을 위해 기도하라는 기도의 목적어가 없다.
그냥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한다. 기도는 특정 대상을 위해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기도의 대상이라는 뜻이다.
무엇이든 무조건 기도하라는 것이다.
또한 ④‘구하다.’, ‘찾다.’. ‘두드리다.’는 일상적인 상황이 아니라
절박한 상황을 전제하고 있다.
여기서 구하라는 것은 마실 물이 없고 먹을 음식이 떨어져 죽을 지경에 놓인 사람이
물을 구하고 음식을 구하는 절박한 심정으로 구하라는 것이고,
찾으라는 것은 가장 아끼고 소중하게 여긴 것을 잃어버린 사람이
그것을 찾는 심정으로 찾으라는 것이다.
문을 두드리는 것 역시 죽이려고 쫓아오는 맹수나 적을 피해
닫힌 성문을 두드리는 사람의 심정으로 두드리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절박한 심정을 가지고 간절히 기도하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⑤이 세 동사가 모두 현재형이다. 현재형에는 진행으로 의미가 있다.
그러니 얻을 때까지, 찾을 때까지, 문이 열릴 때까지 계속해서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는 것이다.
응답받을 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계속해서 기도하라는 것이다.
▲간절함과 지속성
이상의 내용을 정리하면, 무엇을 위해 기도를 하던 기도는 절박한 심정으로 ‘간절히’,
그리고 응답을 받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라’(지속성)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간절함과 지속성은 기도의 중요한 자세이면서 동시에 믿음의 표현이다.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구하면 반드시 응답해주신다는 믿음이 있기에
절박한 심정으로 간절히 매달리게 되는 것이고,
응답을 받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구하게 되는 것이다.
울리지 않는 종은 종이 아니다. 부르지 않는 노래는 노래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삶으로 드러나지 않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다.
믿음은 간절함과 지속성으로 드러난다. 그러니 간절히 기도하고, 응답받을 때까지
계속 기도하는 것 자체가 믿음의 사람인 증거다.
이런 믿음의 사람에게 응답이 선물로 주어진다. 성경에서 야곱을 비롯하여 한나, 히스기야,
수로보니게 여인, 바디메오 등에게서 이와 같은 기도의 자세를 확인할 수가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포기하지 않고 간절히 기도하여 응답을 받았다는 점이다.
기도는 환도뼈가 부러질 만큼 간절히 매달리고, 응답받을 때까지 매달려야 하는
영적 씨름이다. 다음은 5만 번 이상 응답을 받았던 죠지 뮬러의 기도신학이다.
‘한 사람의 위대성은 그의 기도생활에서 나타난다!’ - 레너드 레이븐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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