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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받았도다’의 신약적 해석

LNCK 2020. 9. 23. 14:52

 

www.youtube.com/watch?v=dy2h9daWwYw

www.youtube.com/watch?v=hZNFYW-U0EA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받았도다’          벧전2:21~24,  사53:5

의 신약적 해석

     

 잭 푸닌

   

또 다른 구절을 보겠습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이사야 53:5절 말씀인데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사53:5

 

여기서 ‘고침을 받았다’는 말은 2가지 의미가 있어요

-영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고

-육신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죠

 

그렇다면 둘 중에 어떤 의미입니까?

(영적 치료 입니다)

 

왜냐면 성경이 ‘영적 치료, 내적 치료’를 문자적으로

강조해서 말씀하지 않기 때문인데

여러분이 의문이 생길 때는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53:5절을 인용한 신약성경이 있습니까?

벧전2:24에서 인용하고 있죠

 

2:21 이하부터 보면

예수님의 예를 본받아 그 발걸음을 따르라고 합니다

 

여기서 여러분은 문맥상 주제를 보셔야 합니다

‘그 분의 발걸음을 따라라 그 분은 죄가 없으시니라 :21

입술에는 거짓말이 없으시고’ :22

 

여기서 ‘육체적 질병이 없는 그 분을 따르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병에 안 걸린 육신을 가진 그 분을 따라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건 불가능합니다

 

대신에 ‘죄를 짓지 않으신 그 분의 발걸음을 따라라’고 하십니다

‘자기 입으로 거짓말을 하지 않으신 분을 따라라’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23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않으신 분을 따라라’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는 분을 따라라’

 

이어서 :24에서 말씀하시길

‘그 몸으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여기서 <질병>이 아닙니다

 

‘우리 <죄>를 짊어지셨으니

그래서 우리가 <죄>에 대해서 죽고’

<질병>이 아닙니다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사53:5의 성취입니다

 

이 벧전2:24절이 제 주장의 결정적 근거입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이유는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즉 영혼의 치유, 죄의 치유를 의미합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이 구절 역시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즉 영적 치유를 의미하는 구절이죠

 

저는 그렇게 봅니다

왜냐면 앞서 22절부터 24절까지 문맥을 쭈욱 보면

거기서 ‘육신의 질병의 치유’를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모두 ‘영혼의 질병, 죄의 치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약으로 구약을 해석하면

이사야 53:5절 역시

‘영혼의 치유, 죄의 치유’를 말씀하는 것으로 봅니다

 

물론 부수 효과 side effect 로

영혼이 치유될 때, 육신의 치유도 파급 효과로 일어날 수 있겠습니다

성경이나 기독교가 신유사역을 100% 부정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것을 최우선 목표로, 하나님 나라의 과제로 설정하고 좇아가진 않는다는 거죠

 

목표와 과제는 당연히 죄의 치유, 영혼의 질병의 치유입니다

왜냐면, 제가 믿기로, 죄는 우리 질병보다

1백만 배 더 위험한 것이니까요!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는

즉 벧전2:21~24의 전체 주제는

육체적 질병의 고침이 아니라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입니다

 

..............

 

(註) 그렇습니다 죄의 치료, 영혼의 치료가

육신의 치료보다 더 중요하며

성경도 그것을 강조해서 가르칩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에도 보면

사도베드로, 사도바울의 사역에

육신의 치료, 신유가 함께 나타났습니다

 

신유를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복음사역을 하다보면 신유가

부수효과 side effect 로 나타나므로

 

육신의 신유를 모조리 부정하는 것은

이 설교의 주제가 아니고요

다만 신유 위주의 방향으로 가지 말라는

뜻인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