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예표 삼손 삿16:30
<08.06.22. 인터넷 설교 <사사기에 계시된 그리스도> 중 발췌
▶예수님을 예표하는 삼손
사사기의 모든 ‘사사’는, 하나님이 세워주신 이스라엘의 ‘구원자’였다.
즉 장차 나타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사사기에 나오는 사사들 중에서도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사람들을 구하실 그리스도’의 모형을 가장 잘 보여준
사사는 다름 아닌 삼손이다.
가로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 삿16:30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이 구절을 사사기 전체의 하이라이트 구절로 규정한다.
모든 사사 중에 가장 뛰어난 사사로... 단연 삼손을 꼽는다.
삼손은, 여러 다른 사사들과 달리,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원수들을 멸하고, 백성들을 구해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가장 잘 예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히브리서 11:32절에는, 삼손을 당당히 믿음의 모델 반열에 올려놓고 있다.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신비한 역사役事
삼손이 들릴라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것과
자기 머리카락에 담긴 나실인의 비밀을 누설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었다.
그러나 초기에 그가 블레셋 여인들과 연애를 한 것에 대해
성경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관할한고로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으나 그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서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 삿14:4
삼손은 블레셋 원수를 갚기 위해서 이방 여인을 사귄 것이다.
그래서 삼손과 블레셋 여자 사이에 트러블이 생겨서,
그 일을 빌미로 삼손이 블레셋을 쳤는데, 블레셋이 보복을 잘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삼손의 개인의 사적 문제요, 또한 문화적으로 용인되던 ‘원수 갚음’
이었기 때문이었다.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이번은 내가 블레셋 사람을 해할찌라도
그들에게 대하여 내게 허물이 없을 것이니라 하고 삿15:3
삼손이 교묘히 머리를 잘 써서, 블레셋 사람(영적인 마귀 의미)들을 괴롭힌 것은,
‘그가 머리가 좋았다’기 보다는, ‘여호와께로 말미암음’이었다고 본다.
그가 머리를 잘 써서 수수께끼를 내서 그들을 곤경에 빠뜨렸다기 보다는,
어떻게 하다보니까(즉 여호와께로 말미암아서) 일이 그런 식으로 진행된 것이다.
▶오해받는 믿음의 영웅
그런 하나님의 ‘섭리’를, 물론 그 부모조차도 잘 몰랐다.
그 부모는 그리스도의 ‘수태고지’와 비슷한 ‘출생 고지告知’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마 인간의 상식적 논리로는,
삼손을 통한 역사役事를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것 역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부모와 가족들조차 까지도
(처음에) ‘미쳤다’고 오해를 당하신 것과 같다.
그런데 신구약 성경 전체를 두루 알고 있는 우리들까지
삼손을 ‘인간 도덕적 관점’에서만 보고 해석해서... 그를 오해하면 안 된다.
삼손 해석의 가장 큰 열쇠는 (모든 구약 인물이 그렇듯이)
*그리스도의 예표 관점에서 해석해야 하며,
**‘여호와께로 말미암음이니라’의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
오늘날까지 2천년 교회사에 가장 오해를 많이 받은 인물이 바로 삼손인가 싶다.
도덕적으로 문란한, 인간 같지 않은 사람 정도로 해석한다.
우리 주님 역시, 오늘날까지, 일부 사람들로부터 계속 오해를 받고 계신다.
또한 역사상 많은 믿음의 영웅들이... 주님의 섭리로 인해 많은 오해를 받았다.
▶죽어서 더 큰 업적을 남기는 사람
특히 ‘그가 죽을 때 죽인 사람이, 살아서 죽은 사람보다 더 많았다’는 말씀은, 삿16:30
즉 자기 백성들을 위해 기꺼이 자기 목숨을 내어 놓은 일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너무 잘 예표하고 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원수와 사망을 멸하시기 위해서 죽으신 것이다.
그 대신 자기 백성들을, 삼손처럼, 구원하셨다.
오늘 우리가 본 받아야 할 모습이 바로, 삼손의 모습, 예수님의 모습이다.
즉 <그가 죽을 때 한 일이, 살아서 한 모든 일보다 더 큰 업적>을 남기는 사람이다.
순교자들이 그랬고, 개혁자들이 그랬다.
그런데도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살아서, 자기가 높아져서, 자기가 성공해서> 자꾸 주의 일을 하려고 한다.
물론 그렇게도 주의 일을 할 수 있겠지만
삼손처럼 <자기가 죽어서> 주의 일을 감당하는 사람을 절대 따라갈 수가 없다!
비교할 수조차 없다.
무엇보다 이 길은, 주님이 우리에게 제시하신 길이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