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새 가죽부대를 준비하라 마9:17 2020.09.19.
◑포노 사피엔스, 코로나 사피엔스 시대
최재봉 교수님을 아십니까?
이 분이 쓴 <포노 사피엔스>라는 책이 있습니다.
스마트 폰이 낳은 신인류에 관한 내용인데요.
현대인은 스마트폰을 자기 신체의 일부처럼 여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화의 대세의 흐름을 이해하느냐/ 이해하지 않느냐에 따라서
앞으로 미래의 명운이 달려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포노 사피엔스 : 휴대폰 인류
그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세상을 보십시오. 누가 문명의 교체를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TV 와 신문을 끊고
스마트폰을 미디어의 정보와 창고로 선택하지 않았는가.
이것은 누구도 강요한 적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은행지점에 발길을 끊고 온라인 뱅킹을 선택하였다.'
인간스스로의 변화를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과 중국의 사례를 듭니다.
현재 미국은 백화점의 1/3이 문을 닫았다고 합니다.
중국은 상거래에서 알리페이 위쳇페이 등 전자화폐를 주로 사용하고 있고
심지어 상하이에서는 길거리 노숙자마저도 QR 목걸이를 차고 다녀야
밥을 얻어먹는다는 것입니다.
전세계의 36억명의 인구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으며
'포노 사피엔스' 문명과 함께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최교수는 이런 문명의 변화를 언급하면서 이런 과거의 사례를 들고 있습니다.
영국에서 자동차가 처음 나왔을 때
마차의 마부들이 일자리를 빼앗긴다고 막 데모를 했다는 것입니다.
'자동차 운행속도를 말보다 느리게 해야 한다' 면서!
그럼 자동차를 왜 타겠습니까.
처음에는 그 데모가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 영국의 자동차 생산이 미국보다 늦춰 졌습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동차 공장이 처음 지어졌을 때 미국에서
마차 협회, 마부 협회, 말똥 수거 협회 당시 이런 협회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수년간 자동차 공장을 습격하고 기물을 파손했습니다.
자동차가 나오면 자기들은 일자리를 잃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시카고에서는 '자동차의 도로주행 금지법'을 만들어서
1년 반 동안, 자동차가 있어도 거리에 나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자동차가 너무 빠른 속도로 주행하니까
지나가는 마차의 말들이 놀래가지고 히히힝 하며 날뛰니까
마차에 탔던 승객들이 불안해 했던 것이죠.
그래서 핸리 포드(포드 자동차 창업주)는 이런 법이 철폐되도록
수많은 홍보와 로비까지 해야 했던 것입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나가 최초로 선풍기 공장을 지을 때
부채 장사들이 부채 안 팔린다고 데모를 했다는 것입니다.
얼마 후에 에어컨 공장이 세워졌습니다.
그러자 이제는 선풍기 공장 노동자들이 에어컨 공장 앞으로 몰려와서
'우리는 어떻게 먹고 사느냐?'고 떼거리로 와서 항의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의 것만 붙들고 있으면 미래의 예측과 발전이 불가능합니다.
지금 세상은 미래 예측이 불가능할 정도로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지금 인공지능시대입니다. AI(인공지능)이 유튜브 등을 다 검열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직은 AI가 조금 덜 성숙해서...
우리교회 유튜브 채널이 AI에 걸렸어요.
가끔 제가 대중가요를 개사 해서 부르는데 저작권에 걸려버렸습니다.
그래서 노래도 함부로 못 집어넣겠습니다. 저작권에 걸리니까요!
어쨌거나 세상이 지금 무서운 속도로 바뀌어지고 있습니다.
결국 최재봉 교수는 <포노 사피엔스(핸트폰 인류)>라는 이 책을 통해서
"인간은 사회 환경의 변화와 함께 자발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는...
거기에 순응하는 선택을 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 한국교회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우리 한국교회는 지금요, 미래를 준비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바뀌어질 것인가요?
사람들의 의식구조, 삶의 패턴, 모든 포맷이 어떻게 바꿔질 것인가?
경제와 문화, 교회 생태계는 어떻게 바뀌어질 것인가?
미래를 예측해야 됩니다.
그래서 미래학자인 최윤식 박사는
다가오는 한국교회의 미래를 준비하지 않으면
20년 후에 반드시 반토막 난다고 (과거에) 발언했는데
이번에 코로나 19사태와 맞물려 어쩌면 사실 그렇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반토막이 아니라, 더 심하게 감소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일시적인 현상이라 믿습니다만요...
코로나19가 언제쯤 완전 종식될까요?
과연 우리 한국교회는 그때 얼마만큼 회복될 것인가요?
지금 한국교회가 미래를 얼마나 준비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이 명운, 한국교회의 미래가 갈릴 수 있습니다.
우리 한국교회 뿐입니까.
전세계의 교회가 지금 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코로나19는 문명사적 대전환을 지금 이루고 있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석학들이 쓴 책이 또 있습니다. <코로나 사피엔스>
(*공동저자 : 최재천, 장하준, 최재봉, 홍기빈, 김누리, 김경열)
우리나라를 움직이고 있는 분들이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다고 합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신세계에서 살아갈
신인류(소위 '코로나 사피엔스')의 미래에 대해 쓴 책입니다.
최재천 교수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3~5년마다 인류를 덮친다면
우린 뒷북을 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죽어가고
1년, 3년 백신을 개발한다고 허덕이겠지요.
화학 백신은 답이 아닙니다.
정답은 '생태 백신과 행동 백신' 입니다."
(*생태 백신: 생태계를 보호 예방하고, 행동 백신: 위생에 신경쓰는 생활)
코로나 시대를 살기 위해서 우리 모든 사고와 행동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 한국교회도 코로나19로 인하여 위기를 맞고 있지만
이 위기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되느냐 새로운 기회를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위기 사회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블루 시그널(청신호)을
우리가 볼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중략
우리교회는 코로나사태를 통해서 더 강력한 공동체로 결속되고 있습니다.
코로나가 우리를 더욱 결속시키고 더 하나님을 갈망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 교회에서 식사를 못 하게 된 것..
이것은 교회에서 예배(하나님)에만 집중하고 올인하고 치중하라는 하나님의 뜻으로 ..
좋게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밥은 집에서 먹는 게 좋습니다. 왜 교회에서 밥을 먹습니까!
또는 이념 논쟁에 편승에서 일부 교회가 교회의 본질에서 이탈하고
그런 이념 편중 적 모임이나 예배는 우리가 좀 자제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 코로나 상황에서는 본의 아니게 빌미를 줄 수 있습니다.
먼저 신앙의 본질을 살리고
그 다음에 순차적으로 회복시키는 기회로 도리어 삼아야 되겠습니다.
정부가 방역이 필요없는데도 불구하고 괜히 억압하고 예배를 못 드리게 한다면
당연히 우리가 싸워야죠.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지금 먼저 코로나와 싸워야 됩니다.
한국교회가 조심하고.. 코로나가 종식되는데 어느 정도 앞장을 서야죠.
교회가 본의 아니게 코로나 확산에 빌미를 주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의 싸움의 현주소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단과 악한 영들과 적그리스도와 싸워야지요.
우리는 싸움의 상대를 바로 알고, (이념적으로) 편가르기를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정권이 코로나를 핑계대고 은근하게 코로나 파시즘(독재)을 펼치거나
은근하게 교회를 압박한다면... 그러면 싸워야죠.
그러나 지금은 제가 보기에 아직은 전염병을 조심하고 싸워야 될 대상입니다.
코로나사태 이후에 벌어질 시절을 예측할 때,
'너무 제도화 되고 화석화 된 한국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시그널(신호)이 없나?'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저는 그런 감동을 받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코로나 이전을 사모하고 있는데.. 미안하지만
코로나 이전으로만 되돌아가려 하지 마시고
코로나 이전보다 훨씬 더 영광스럽고, 파워풀하고 능력있는 교회를 만들어야 됩니다. 할렐루야!
코로나 이전의 모습으로만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오히려 우리 한국교회가 더 파워풀하고, 비전 있고, 생동감 있는
교회의 청사진을 우리가 지금 그리고 세워야 하는 때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미래를 잘 준비하면, 오히려 코로나 이전보다 더 영광스러운
교회의 모습을 이루게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마9:1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코로나 사태의 새로운 포도주 시대에
우리가 새 부대를 준비하게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새 부대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이 말씀은
예수님의 생명과 그 복음은
과거의 유대종교가 아닌, 복음과 기독교를 통해서만 담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을 오늘 우리 현실에 대입하면,
예수님의 새 생명과 복음을 담기 위해서는 새 부대를 준비해야 되는데,
형식적인 '종교'가 아니라,
생명과 복음이 넘치는 생동감 있는 교회와 성도 각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코로나 사태로 인해 우리가 가져야 하는 '새부대' 입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전통에 찌들린 교회도 있습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여러분 자신이 새 부대가 되고, 우리 교회가 새 부대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너무나 함정에 빠져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학적 순수함이나 정통성을 지킨다고 하면서
이상하게 바리새적으로 빠지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의 전통, 외식 쪽으로 기울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신학적 보수' 와 '문화적 보수'를 구분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문화적 보수, 제도적 보수에 찌들어 버리면 곤란합니다.
교회의 어른들이 꼰대가 되면 절대 안 됩니다.
옛날에는 교회 안에서 기타만 쳐도 난리가 났습니다. 드럼은 사탄의 도구였습니다.
여성도들이 파마를 하고 오면 교회에서 흉을 봤습니다. 그런 시절도 있었습니다.
이것들은 다 문화적인 영역입니다. 신학적이 아닙니다.
코로나 사태를 맞이해서 국민보건과 공공의 유익을 위해서
한시적으로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면 되지 않느냐.. 이런 의견도 있고
목숨 걸고 현장 예배를 사수하자는.. 의견도 있습니다.
다 진정성이 있으면 옳은 것입니다.
현장예배를 강행하는 이들은 '그까짓 코로나 때문에 죽을까봐 두려워서
현장예배를 포기하는 게 말이 되느냐?
625 공산당 앞에서도 우리가 예배를 드렸는데 코로나 앞에서 굴복하냐?'
이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이럴 때 일수록 예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더 강조해야 될 것은, 예배를 드리다가 교회에서 확진자가 집단적으로 발생하면서
기독교인들이 사회에서 욕을 먹고, 전도의 문이 완전히 막힌다면...
기독교가 마치 신천지처럼 비춰진다면.. 그렇다면 이것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그런데 또 어떤 일부의 사람들은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교회를, 정부의 권력앞에 완전히 고개를 숙인 것 아니냐?
이렇게 비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만약에 정부의 공권력이 두려워서 그렇게 예배를 온라인으로 드린다면
비판받아도 싸지요.
그러나 순교적인 각오로 맞서서 현장예배를 강행해야 된다..
물론 순교의 각오로 가지고 현장예배를 드리는 것은 아름답습니다. 존경합니다. 박수칩니다.
그런데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남의 귀중한 생명을 해치는 계기가 된다면
일반 불신자들로부터 교회가 신천지 이단처럼 손가락질을 받게 되고
뭐 이런 부정적인 악순환의 연속이 계속된다면
우리 교회는 유연성을 가지고, 이런 현실을 다시 생각해 봐야 될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의 건강을 지키고 싶고, 우리 지역사회를 깨끗한 동네로 만들고 싶습니다.
이것이 교회가 이웃을 내 몸 처럼 사랑하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지금 이럴 때 우리 한국교회는 코로나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시그널을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 문명사적 대전환 속에서 한국교회가 어떻게 지난 날의 전성기를 다시 되찾을 것인가?
이런 비전을 우리가 다시 세워야 되겠습니다.
결코 꼰대적인 편견과 고집을 가진 교회는
이 사태를 절대로 이겨낼 수 없습니다.
신성욱 교수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에서 설교학과 예배학을 가르치는데
최근 <설교 삼중주>라는 책을 내셨습니다.
이 분도 보수적입니다. 은근히 좌파에 대해 못 마땅해 하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코로나 확산의 온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신교수는 제게 신앙적이면서도 합리적인 권면을 해 주십니다.
저는 이런 분들이 제 곁에 계셔서 참 좋습니다.
삼성전자의 권오현 회장도 <초격차> 책에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새로운 문명과 변화를 거부한 집단은 항상 쇠퇴했다는 사실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변할까 말까,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지금 우리는, 미래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 속에 살고 있지만
미래의 예측을 하면서 뚜벅뚜벅 걷다보면
결국은 길이 보이고, 미래가 우리 앞에 보일 것입니다.
저도 잠시 이런 책을 보면서 묵상하며 기도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때야 말로 우리는 사도행전적 신앙과 초대교회 신앙을 회복해야 되겠다.
정형화 되고 화석화된 교회, 그리고 세상으로부터 질시받고 조롱받는 교회 모습으로는
더 이상 안 된다. 성도도 목회자도 교회도 새로 거듭나야 된다'
교리적인 거듭남을 지금 말하는 게 아닙니다.
문화적, 생태적, 새 부대를 우리가 준비해야 되겠습니다.
오늘의 교회는 초대교회 공동체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모이면 불타 오르고, 흩어져도 각자 자기 사명을 감당했던 초대교회!
우리는 너무나 제도적이고 전통으로 찌그러진 의식에만 갇혀 있지 않는가.
예배의식과 교회의식도 변화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이 공동체적 교회는 반드시 지켜야 하지만
진짜 코로나 상황 속에서도, 전쟁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딱 하나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임을 믿습니다.
전쟁 통에 이사다니면서 예배 드릴 수 있어요.
사마리아 여인을 향하여 예수님은 '예배 장소에 집착하지 말라'고 하셨고,
그 내용은 웨스트민스트 신앙고백서, 도르트문트 고백서에도 나옵니다.
여러분, 우리가 조금은 위험 상황에 예배 형태와 이런 장소가 좀 변경될 수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새부대를 준비해야지, 포도주의 은혜가 잘 보존됩니다.
복음의 본질을 붙잡으면서, 변해야 될 것은 우리가 과감하게 변해야 됩니다.
지금 세상은 문화적 대 변혁을 이루고 있는데, 우리만 꼰대로 남아서 되겠습니까.
꼰대는 청중에게 감동을 못 줍니다. 오히려 걱정만 끼칩니다.
세상과 소통할 수 없습니다.
교회가 결코 이기적인 집단으로, 꼰대 집단으로
목사의 설교가 꼰대의 설교로 비춰져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이웃의 생명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이웃이야 죽건 말건
우리만 종교의 자유를 누리는 꼰대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이웃의 생명을 존중히 여기며, 어떻게 지역사회를 잘 섬길 것인가?..
를 생각해야 될 때입니다.
시대와 역사를 의식하며, 민족을 품을 뿐만 아니라
미래의 가치와 비전을 제시하는 교회가 되어야
우리 민족종교가 될 수 있고
계속해서 우리는 전도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초대교회는 민족에게 추앙받는 민족종교로 자리매김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우리 한국교회도 새 부대를 준비하며
새 리더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위해서 우리가 새 부대를 준비하고, 새 부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새 부대를 준비하지 못하면
그대로 낡은 부대, 꼰대로 남아있으면
여러분, 한국교회는 희망이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코로나 19 이후에 하나님이 준비하신
새 은혜를 담을 새 부대,
코로나 이후에 더 귀한 은혜를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그것을 담으려면 새 부대를 우리가 준비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한국교회가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시 부흥의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