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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상황에서 최고의 레슨을

LNCK 2020. 10. 21. 16:50

 

www.youtube.com/watch?v=kHkyuupzcsA

 

◈최악의 상황에서 최상의 레슨을             출14:1~14                   2020.09.25.설교 녹취

 

출애굽의 과정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사건이 본문에 나옵니다.

바로 홍해를 건너는 사건이죠.

 

어쩌면 구약성경에 가장 드라마틱하고, 가장 강력한 사건, 가장 주목할만한 사건,

이스라엘 역사속에 그들은 끊임없이 이 사건을 기억했습니다.

이 홍해 도강 사건은 신비한 상징적인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의 수중에서 막 벗어났습니다.

그 흥분이 막 가라앉지도 않은 시점입니다.

 

그렇게 오래동안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의 수중에서 마침내 벗어났으니..

아주 흥분했습니다. 기대감이 꽉 차 있었습니다.

 

애굽을 이제 막 빠져나온 이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시는데,

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렇게 명하십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돌이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 출14:2

 

홍해 바닷가인데,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이란 곳은

앞에는 바다, 양쪽으로는 높은 언덕이 둘러쳐져 있는 계곡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령하셔서 이곳으로 온 것입니다.

자 그런데 펼쳐진 상황이 아주 묘합니다.

 

바로는 이 상황을 이렇게 봤습니다.

출14:3 ‘바로가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들이

그 땅에서 멀리 떠나 광야에 갇힌 바 되었다 하리라’

 

여기서 ‘광야에 갇힌 바 되었다’라는 표현을 눈여겨 보십시오.

한 마디로 외통수, 막다른 길, 사면초가에 내몰린 것입니다.

 

바로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인도하셨는데

‘와 이건 우리 밥이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것입니다.

막다른 길에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내몰린 것이니까요.

 

어떻게 이런 곳에 오게 되었나요?

하나님의 인도였습니다. 출14:2

그런데 최악의 상황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한 것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 것 밖에 없습니다.

그대로 따라 왔는데 외통수에 내몰린 것입니다.

바로의 시각으로는 ‘그들이 광야에 갇혔다’고 평가한 것입니다. 14:3

 

이스라엘은 이제 독안에 든 쥐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바로가 마음이 변한 것입니다.

10재앙 후에 처음에는 포기하고 그들을 내보냈지만,

이제 저들이 궁지에 빠진 상황을 보고, 바로가 마음이 달라진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왕은 다시 이스라엘을 붙잡아 와야 되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6~7절에 보면, 바로는 군대를 거느리고 공격을 시도했습니다.

 

출14:6. ‘바로가 곧 그의 병거를 갖추고 그의 백성을 데리고 갈새

7.선발된 병거 6백 대와 애굽의 모든 병거를 동원하니 지휘관들이 다 거느렸더라’

 

병거는, 요즘으로 치면 최첨단의 탱크부대와 맞먹습니다.

이 병거는 한 사람이 말들을 몰고, 두 사람이 싸우는 투사들이 타고 있는 병거였습니다.

 

이들이 이스라엘이 진치고 있는 곳까지

광야의 모래먼지를 마구 일으키면서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병거 6백 대와 애굽의 모든 병거를 동원’했다니.. 1천 대가 훨씬 더 넘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완전한 위기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맞닥뜨린 위기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위기의 순간을 조성했고, 상황으로 내몰리게 했습니까?

많은 경우 우리가 당하는 위기는, 내가 스스로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 백성의 위기는 하나님이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곳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를 생각하면 항상 우리는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를 생각합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는 우리의 생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갈 때가 많습니다.

‘예수 믿으면 형통할 것이다’는 등식은 자주 깨집니다.

 

하나님은 이상한 곳으로 우리를 끌고 가실 때가 많아요.

하나님의 인도속에 살아갈 때, 현실은 더 불확실함으로 나아갑니다.

 

지금 분명히 모세에게 말씀하셨고, 모세는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왔는데

이 상황은 (우리가 이 상황속으로 안 들어가봐서 모르지만)

지금 정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초죽음의 상태로 들어간 것입니다.

몰살될 위기에 빠진 것입니다.

 

믿음의 삶이란 이럴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라는 것은, 항상 우리를 굉장히 좋고 편안한 환경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불확실한 삶으로,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그를 불확실한 상황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그 순간부터 불확실한 삶으로 인도를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의 삶은, 그 불확실함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불확실함이 없는 삶으로 인도받는 것이 핵심이 아닙니다.

 

불확실함 속에서도 하나님을 따르기로 결단하는 것,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 하다보면 누구나 경험했을 것입니다.

‘이게 아닌데, 웬일이지? 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나지?’ 하며 불안해 합니다.

 

내가 기대했던 상황과 전혀 다른 일이 펼쳐질 때, 우리는 위기를 느낍니다.

그때가 굉장히 중요한 고비입니다.

 

분명한 것은 그 길이 하나님의 인도인가/아닌가를 분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에는 실패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왔는데 위기가 왔다면, 그 위기는 위기이긴 하지만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 위기를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위기에 휩싸이면 오해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죽이시려고 이러시는구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을 보십시오.

:10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11~12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12.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지금 이 백성들이 모세에게 불신앙적인 불평을 내뱉었습니다.

 

여러분, 불평을 간단히 보지 마십시오.

불평은 이스라엘에게서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광야 여정 내내 계속 되었습니다.

 

이 불평을, 모세는 앞으로 40년간 이 백성들에게 계속 듣습니다.

한 번 불평은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습성이 있습니다.

사람이 성령으로 완전히 변화되기 전까지는요!

 

이 불평은 전염병과 같습니다. 쉽게 주위로 번집니다.

그 치료도 쉽지 않습니다.

인간의 죄성이 가장 단면적으로 잘 드러난.. 쉽게 해결되지 않는 고질병이

바로 불평과 원망입니다.

 

이 불평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깨닫는 것은,

사람이 쉽게 믿음의 자리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불평한다는 것은, 우리는 우리가 과거에 살아온 방식대로 사는 것이 훨씬 더 편하다는 것입니다.

바로를 섬기고 애굽의 종으로서 사는 것이 훨씬 더 낫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도, 자기 생각대로 상황이 돌아가지 않으면.. 언제나 불평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것이 때로는 자기 주관이라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40년간 광야에서 지도자 모세에게 힘들었던 것은

백성들의 불평을 다루는 것이었습니다.

리더의 운명이랄까요. 백성들의 원망과 불평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왜 이런 불평을 하게 되는 것일까요?

그들의 눈이 순간적으로 감겨있는 것입니다.

지금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그들을 지키고 있고, 그들을 인도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임재가 떠나지 않고, 그 영광이 함께 하시는데도

그들은 지금 당장 뒤에서 좇아오는 애굽 군사들의 말발굽 소리에

두려움에 빠져, 모세를 향해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애굽의 군대를 보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보다 상황이 더 크게 보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점점 더 작게 보이고, 거의 소멸되어 보이고

눈 앞에 현실 상황은 괴물처럼 크게 보이고, 점점 다가오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도 비슷합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은혜 생활 가운데 산다고 간증할 때는 좋았는데

갑자기 그게 끝나고 나면, 내가 예상치 않았던 어떤 일들이 밀어닥칠 때

조금 전에 간증은 온데간데 없고, 형편없이 바닥을 헤매는 모습을 연출합니다.

 

우리는 문제가 일어나면 문제를 확대해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최선을 생각하기보다 최악을 생각합니다.

그 문제에 둘러쌓여 발을 못 뺍니다.

 

무엇인가 자기 마음대로 안 되면 그 화살을 누군가에게로 돌립니다.

남 탓을 합니다. 남편은 아내 탓하고, 아내는 남편 탓하고, 자녀는 부모 탓하고...

목사는 교인 탓하고, 교인은 목사 탓하고..

 

불평은, 내 방식대로 살고 싶다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불평은 불신앙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믿음의 사람은, 문제를 크게 확대해서 보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만났을 때, 하나님을 크게 확대해서 보는 사람입니다.

 

아직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의 삶에 생소했던 것입니다.

사실 믿음의 삶이라고 할 만한 게 아직 생성되지 않았을 시기입니다.

 

사람들이 말로는 쉽게 믿음, 믿음 하지만

조그만 문제만 생겨도 깜짝 깜짝 놀라고 두려워 불평합니다.

생각으로만 믿는 거지, 진짜 믿음의 삶이 아직 없는 것이죠.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믿음을 시작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믿음의 초행길에는 두려움, 불안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가다가 멈칫 거릴 때가 많습니다.

 

믿음이 아직 어릴 때는, 눈에 보이는 대로 세상 방식대로 살아가다가,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고, 생소한 것입니다.

 

◑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어다 Stand still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 원망에 대해 모세의 유명한 발언이 나옵니다.

 

출14: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14.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모세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고 있었습니다.

백성들보다 훨씬 더 하나님을 많이 경험한 사람입니다.

지금 막다른 코너로 인도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란 것을 모세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곳으로 몰아넣으신 이유가 무엇인지 모세도 아직 잘 모릅니다.

그는 지금 이 상황이 위기라는 것은 알았지만, 분명히 하나님이 우리를

죽이시려고 내 모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믿고 알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흔들리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여기까지 인도하셨다는 것입니다.

 

지금 상황은 정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사면초가이고

최악의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여기로 인도하셨다는 것입니다.

 

눈앞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도

이곳에 하나님이 인도하셨다는 것입니다.

 

아마 130여년 전에 선교사님들이 최초로 조선 땅에 왔을 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을 때도 이런 상황 앞에서 잠시 좌절했을 것입니다.

 

내가 불안해서 왔다면 불안한 것입니다. 두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인도하셨고, 하나님이 보내셨다면.. 그건 다른 것입니다.

 

누가 이 상황을 만들었느냐.. 그게 중요합니다.

상황이 얼마나 꼬여있고 문제가 얼마나 극심한지가 ..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만든 위기의 상황이면, 자기가 철저히 회개함으로 그 위기를 돌파할 수 있죠.

그렇지만 지금 본문의 상황은, 하나님이 조성하신 위기의 상황입니다.

 

▲모세는 백성들을 향하여 ‘두려워하지 말라’

그는 하나님의 지혜, 능력, 의로우신 판단, 인도와 섭리를 믿고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상황에 반응하고 있지만

모세는 현실 상황에 반응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 반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려워하지 말라!’

 

그러면서 모세의 처방은 이렇습니다.

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14.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가만히 서서 Stand still’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어다 You need only to be still, You shall hold your peace!’

‘너희 마음에 평강을 유지하면서, 지키면서, 두려워하지 말고..’ 라는 뜻입니다.

 

불평하면서 떠들지 말고, 너희의 마음에 평안을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하시는가를 잠잠히 지켜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할 일과 하나님이 하실 일을 구별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영적 분별력입니다.

 

분별은 어려운 게 아닙니다.

‘내가 아무리 한다고 해도, 될 일이 아니다..’ 라고 생각이 들면

빨리 손을 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 하다 보면, 감이 올 때가 있습니다.

‘야, 이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구나, 내 능력의 범위를 벗어나는 구나’

‘이 일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하나도 없어!’

 

나를 삼키려고 드는 거대한 파도 같은 상황에 마주칠 때

그때 우리는 할 일이 없어짐을 느낍니다. 나는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엄청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성도들은 오히려 대처가 간단합니다.

이제 꼼짝 없이 죽었구나!’ 하는 그런 상황 있잖아요.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때는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대처가 오히려 간단합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만났을 때, 우리가 할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때는 딴 게 없습니다. 찬양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정말 어려운 문제는요,

오히려 쉬운 문제입니다.

왜요? 내가 푸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힘들 때는 언제입니까? 애매한 것들을 만났을 때입니다.

내가 풀어야 될 일인가, 아닌가.. 애매한 경우가 힘듭니다.

‘내가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여러분,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면, 고민하지 마십시오.

너무 신경을 쓰고 힘 주지 마십시오. 그냥 가만히 있으라는 것입니다.

 

괜히 내가 하려고 힘쓰다가 오히려 더 문제를 키우거나 망쳐버립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이 말씀은, 믿음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레슨입니다.

 

이 말씀은 완전 수동태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배우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과정은

수동태적인 삶을 익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가 뭐예요? 완전한 수동태입니다.

내가 할 수 있으면 기도를 왜 합니까? 내가 해버리면 되죠.

 

이것은 자아가 완전히 죽는 경험입니다.

인간적인 혈기가 죽는 시간입니다.

자신의 능력과 자랑이 죽는 시간입니다.

머리를 굴리지 않는..

 

자신의 모든 방법과 수단을 내려놓는..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그 분께 위탁하는 삶!

 

여러분, 이 ‘가만히 있어’ 이 시간은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배우는 시간입니다.

이 과정을 통과해야 됩니다.

 

‘아, 하나님이 하시는구나!’

‘아, 하나님이 행하시려는가 보다!’

여러분, 이것을 경험해봐야 됩니다.

 

자기의 힘을 동원하면 순간적 위기를 모면할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해결의 길이 아닙니다.

도리어 더 험악한 상황으로 몰릴 수 있습니다.

 

‘이제 끝장이구나!’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을 인정하고

내가 자랑하고 붙들고 내세우고 경험했던 모든 것을

다 포기해 내버리는 것입니다.

 

그 완전한 밑바닥까지 내려간 자리에서 하나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바로 홍해의 자리이죠.

 

여러분, 아무나 십자가를 지는 경험을 하는 게 아닙니다.

내가 완전히 죽는 곳에.. 십자가의 부활이 나타나집니다.

 

내가 완전히 죽지 않았는데, 어떻게 십자가를 진다는 것입니까.

반쯤 죽은 사람은 많은데, 완전히 죽은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삶이란.. 자아가 완전히 죽는 삶을 뜻합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 이것은 십자가를 통과하는 또 다른 표현입니다.

 

내가 이것을 경험하지 못하면, 계속 재수, 삼수, 사수하게 됩니다.

 

여러분, 이 하나님의 인도는 기적이 아닙니다.

뭐 홍해를 가르는 기적.. 이런 기적이 중요한 게 아니고

하나님은 홍해를 백 번, 천 번도 가르실 수 있으십니다.

 

홍해 가르는 기적이 중요한 게 아니고

하나님의 초점은, 당신의 백성이 당신 백성 다워지게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백성다워지느냐?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아야 가능합니다.

 

홍해를 건너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아는 것입니다.

 

모든 과정에 최고의 레슨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아는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너고도 그 레슨을 철저하게 배우지 못합니다.

 

여러분, 믿음은 그냥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그 레슨이 무지막지하게 큰 시험으로 내게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우리 마음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이끌어가는 일에

완전히 내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의 본래 기질대로라면 쉽게 순종을 배우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끊임없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려고 하는 이 욕망!

말도 안 되는 고집스러움이 우리 안에 너무 뿌리 깊게 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게 불평으로 표출되는 거죠.

 

출애굽하는 사건 속에서 하나님은 확실히 이스라엘 편에 계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 편이라고 해서,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라는 생각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그 분의 편에 있음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 생활에서 이것을 빨리 익혀야 됩니다.

내가 다 하려고 하는 태도!

 

▲그래서 여러분, 열심 이 오히려 탈을 낼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시키지도 않은 열심을 내는 것이 탈입니다.

 

그 열심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두려움에서 나온 것입니다.

요즘 강박증 환자들이 많은데, 이것도 일종의 두려움의 원인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완벽주의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두려움에서 그런 행동이 나오는 것입니다.

항상 슈퍼맨, 슈퍼우먼 소리를 듣는 사람들,

그 안에 두려움이 있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자기 힘으로 뭔가 이루어내려고 하는..

성공한 사람들 안에는 그런 것들이 많습니다.

 

겉으로는 자신감이 넘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아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남에게 더 멋지게 보여야 되고.. 성공한 사람으로, 잘난 사람으로 보이려고 하고..

 

그러니까 그 열심 이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나온 열심 이 아니라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기 스스로의 몸부림이죠. 이건 불신앙입니다.

 

여러분, 어려움이 심할수록 이 일을 영적 레슨의 좋은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홍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최고의 믿음을 배울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처한 상황속에서 어떻게 반응하는가?

그걸 하나님이 다 보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신뢰하는지..

 

 

◑하나님의 구원을 보라!

 

여기서 모세는 가만히 서 있으라고만 한 것이 아니라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모세는 백성들의 눈이 하나님께로 향하기를 원했습니다.

지도자가 늘 해야 되는 일이 이거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시선은, 우리도 모르게 자꾸 세상을 향하게 하고,

벌어진 현실 상황에 몰두하게 만드는데,

모세는 하나님이 대신 싸우시는 것을 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분명한 것은, 지금 이 길을 하나님께서 인도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가요?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는 찬송가도 있죠.

지나온 모든 세월 되돌아보면, 내가 지금 여기까지 오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고백을 우리가 많이 하는데요.

 

그러면 지금 내가 하나님의 인도 속에 따라왔다면

오늘 내가 부르짖는 상황이 어떠하든지.. 우리는 원망하지 말고

그 주님 인도하심을 신뢰하고 그 분을 바라보면서, 그 분이 대신 싸워주실 것을 믿고 기대하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지 않았던 길로 인도하실지라도

어떤 때는 너무도 엉뚱해서 황당할 때도 있지만 당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냥 가만히 서서 있으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려고 하지 말고...

 

여러분, 인생이 코너로 몰릴 때, 우리의 삶이 참 단순하고 선명해집니다.
괜히 내가 발버둥 치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코너로 몰릴 때는 하나님의 의도하심이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막힌 길에는 하나님의 깊은 섭리가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길에서 하나님이 아니면 전혀 답이 없는 상황으로 몰아가실 때

우리는 절규합니다. ‘너무 힘들어요. 못 살겠어요.’

바로 그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 상황,

그 상황은 불행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게 되는 놀라운 축복의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바로에게 남아 있는 힘을 완전히 꺾으시고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그 완악함을 무너뜨리시고

더 이상 이스라엘을 괴롭히지 못하도록 그 백성들을 완전히 홍해에 수장시켜버렸습니다.

 

마침내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베푸시는 이 절묘한 클라이맥스로 끌고 가셨습니다.

 

그래서 ‘너희는 가만히 서서 오늘날 너희를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보라’

‘가만히 서서’ 이것은 단순히 가만히 있는 게 아닙니다.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싸우시고 구원을 이루어내시는

하나님의 적극적인 구원 역사를 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수동태이지만, 하나님은 매우 강력한 의지와 열정을 가지고

적극적 능동태로 이루어내시는 하나님!

 

이 수동태의 인간과 능동태의 하나님의 합작이 지금 일어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해내시려는 그 의지, 그 뜻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지, 하나님의 작정, 하나님의 열심!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상황이 아무리 꼬여도

그런 것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수레바퀴를 멈출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홍해가 가로막고 있어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은 바다를 지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애굽의 군대가 물밀 듯 달려와도 상관 없습니다.

하나님은 전쟁에 능하신 하나님이시니까요!

 

우리 시선의 초점은 하나님께 있어야 됩니다.

무슨 기적이 일어나는가? 그게 핵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확실하게 아는 경험이.. 핵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기로 몰아가시는 이유도 이것입니다.

괜히 그러시는게 아닙니다.

하나님께 믿음의 초점을 맞추도록..

 

하나님이 이번 어려움만 통과하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은 영원한 열심을 품고 나의 구원의 길을 완성해가시는 하나님이심을

우리고 보고 깨닫고 믿음을 더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깊은 경륜이 있고, 그 계획 안에 이스라엘의 구원이 들어있었습니다.

그래서 ‘위기’ 라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드러내는 보조 장치입니다.

 

▲마치는 말

여러분, 앞으로 우리가 가는 길에 자주 막다른 길로 들어서게 될 것입니다.

예수 믿는다고 꽃길만 열려 있지 않습니다.

 

험란한 삶, 답이 없는 상황, 이해하기 어려운 위기속에 휩쌓일 때가 많을 것입니다.

그때마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을 더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어려운 상황속에서 도망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결할 수도 없는 일을 만난 분이 계십니까?

그냥 서 있으십시오. 바보처럼!

 

이때 똑똑한 척 하면 안 되고, 자기 힘 자랑해도 안 됩니다.

그냥 가만히 수동태로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 믿음이 더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더 간절하게 홍해를 건너하게 하시고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시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 일을 통해 우리에게 믿음의 레슨을 주기 원하십니다.

 

기억하십시오. 어려운 일을 만날 때 정말 불평의 말을 삼가 하십시오.

대신에 눈을 들어 잠잠히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기다리십시오.

하나님만이 답이 되신다는 것을 뼈저리게 가슴에 새기십시오.

 

여러분 우리 삶 자체가 ‘불확실함’입니다.

내일 일이 어떻게 될지 우리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이게 인간의 본질입니다.

 

5년, 10년, 미래의 완벽한 계획을 세우셨나요? 아무 소용 없습니다.

저도 계획한 것이 헛될 때가 많았습니다. 내가 계획한 대로 상황이 안 열립니다.

주님은 전혀 다른 길로 저를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계획 안 세우기로 했습니다.

그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믿음으로 따라가기로 했습니다.

 

오늘 코로나 시대에 어려운 얘기들이 사방에서 계속 들려옵니다.

이것은 우리 역사에 유래 없는 시간을 우리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마치 전쟁을 경험하는 것과 같은.. 기근을 경험하는 것과 같은..

 

계시록에 나오는 기근과 전쟁과 전염병의 재난이 뒤섞여 있는 것과 같은

이 어려운 시대를 우리가 보내고 있습니다.

 

저도 목회적으로 마찬가지입니다,

한국교회도 염려가 되고, 우리 교회의 미래도 생각하게 되는데

이렇게 코로나가 길어지고.. 비대면 예배로 계속 나아가야 되는 이 상황 속에서

정말 홍해 앞 이스라엘 백성들이 맞이한 것과 같이.. 어떤 답이 없습니다.

 

제가 요즘 코로나에 관련된 책을 여러 권 읽고 있는데요.

시중에 책도 엄청나게 많이 나왔더라고요.

‘코로나 팬데믹, 여기에 대한 해법, 여기에 대한 분석, 전망 등’

 

제가 읽어봤는데 다 그냥 사람들이 하는 (일반적인) 소리였어요.

다 읽고 나면.. 우리 인간에겐 답이 없어요.

답은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어려운 시대에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더 깊이 가지기를 원하십니다.

‘나는 여전히 하나님이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는 실패하지 않고,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것을

이제 우리게 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