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라고 말합니다. 이때 말하는 믿음은 무엇일까요? 믿음을 설명하는 말은 많습니다만, 거의 모든 설명이 우리가 이미 아는 것 이상으로 설명해 주지는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 구절을 읽으면 믿음을 설명하기가 더욱 복잡해진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의도는 쉽게 설명하려는 것이었지만 결과는 더 복잡해질 가능성이 큽니다. 믿음을 설명하려는 우리의 노력은 누구도 이해시키지 못 할 수 있습니다. 제가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를 바랍니다. 믿음은 어떤 것보다 단순한 것입니다. 어쩌면 그 단순함 때문에 설명이 더 어려운 지도 모르겠습니다.
◑믿음의 세 가지 요소: 지식, 동의. 신뢰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믿음은 세 가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곧 지식과 동의와 신뢰입니다.
▲1. <지식>이 제일 먼저 나오는 것에 주의하십시오. 로마 가틀릭 사제 들은 모르는 것도 믿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아마 그들은 사람이 할 수 없는 것도 할 수 있다고 여기는모양입니다.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오(롬10:14)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은 먼저 어떤 사실에 대해 알아야 밀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것저것을 믿지만, 듣지도 못한 많은 것들을 믿는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온다'고합니다. 우리는 먼저 들어야합니다. 그래야 무엇을 믿어야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누군가 여러분을 신뢰한다고 말한다면 적어도 그는 여러분의 이름 정도는 아는 사람일 것입니다. 믿음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지식이 필수적입니다. 그러므로 지식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옛 선지자는'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사55:3)고 말했습니다. 이 말씀은 지금도 복음의 말씀입니다. 성경을 찾아 성령께서 그리스도와 그의 구원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시는지 배우십시오. 하나님을 알려고 하십시오. 하나님은 자 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십니다(히11:6).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여호와를 알고 경외하는 마음'을 주실 것입니다. 복음을 아십시오. 기쁜 소식이 무엇이며, 값없이 주시는 용서가 무엇인지, 회개에 대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그 외에 수없이 많은 축복들에 대해 배우십시오. 하나님이 누구신지 아십시오. 복음을 배우십시오.
특별히 그리스도 예수, 하나님의 아들이신 구세주를 아십시오. 그분은 인간으로서 우리와 연합하시고, 신으로서 하나성과 연합되신 분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가 되셔서 그 손으로 각각 하나님과 사람을 붙잡고 계십니다. 그분은 죄인과 세상의 심판자 사이를 연결하십니다. 그리스도를 점점 더 많이 알도록 노력하십시오. 바울은 회심한 지 20여 년이 지난 후에도 자신이 그리스도를 알기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의 고백을 통해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알수록 더욱더 그리스도를 알기 원하고, 그리하여 우리의 믿음은 더 욱 자라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의 희생에 관한 교리를 알도록 노력하십시오. 그것이 믿음이 지향하는 목표의 중심입니다. 구원을 얻는 믿음이 바로 여기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히5:19)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저주를 받으셨음을 알기 바랍니다.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3:13). 그리스도의 대속 교리를 깊이 연구하십시오. 바로 여기에 인간의 죄에 대한 위로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5:21). 그러므로 믿음은 지식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입니다.
▲두 번째는 <동의 belief>입니다. 이제 생각은 그 지식이 진실하다고 동의하는 단계로 나아갑니다. 영혼은 하나님이 존재하시며 그분은 진실한 마음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또 복음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사실이라는 데 동의하게 됩니다.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얻는 것은 하나님이 이 말세에 그의 성령으로 전에 없이 분명하게 드러내 보여 주신 위대한 진리라는 데 동의합니다. 그 다음에는 분명히 그리고 진실로 예수님께서 우리 하나님이요, 구주요, 인류의 구속자요, 선지자요, 제사장이요, 왕이심을 마음으로 받아들입니다. 여러분도 여기에 이르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신다'는 사실을 굳게 받아들이십시오. 하나님은 인간을 위한 예수님의 희생을 완전하고 온전한 것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는 정죄를 당하지 않습니다.
▲이제 믿음의 세 번째 요소가 남았습니다. 바로 <신뢰 trust>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자비로우신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여러분의 소망을 은혜로운 복음에 두십시오. 여러분의 영혼을 죽으시고 살아나신 구주께 위탁하십시오. 여러분의 죄를 대속의 피에 씻으십시오. 그의 완전한 의를 받아들이십시오. 그러면 모두 해결될 것입니다. 신뢰는 믿음에 생명을 주는 피 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구원을 얻는 믿음이 아닙니다.
청교도들은 믿음을 종종 '기대 누움'이라는 말로 설명했습니다. 여러분은 그 의미를 알 것입니다. 저는 지금 이 단에 기대고 있습니다. 저의 체중을 모두 여기에 기댔습니다. 이처럼 늘 그리스도께 기대십시오. 온몸을 한껏 뻗쳐서 바위에 기대어 남작 드러눕듯 그리스도께 완전히 던지십시오. 자신을 그리스도께 던져 그분 안에서 쉬며 그분께 맡기십시오. 그렇게 한다면 여러분은 구원을 얻는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믿음은 맹목적인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지식에서 시작됩니다. 신앙은 짐작이 아닙니다. 확실한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신앙은 비실제적인 것, 꿈같은 것도 아닙니다. 신뢰하는 것으로 계시된 진리에 그 운명을 거는 것입니다. 믿음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진리에 거는 것입니다. 쉬운 말은 아니지만,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 시인의 말은 제가 의미하는 바를 잘 보여줍니다.
그에게 걸어라, 모든 것을 걸어라.
다른 어떤 신뢰도 침투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이 믿음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한 방법입니다. 혹시 제가 '복잡하게' 만들지는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누구를 믿고, 무엇을 믿는가?
다시 살펴봅시다. 신앙이란, 그리스도께서 그 자신이 친히 말씀 하신 그분이라는 것, 그리고 그분은 자신의 약속을 반드시 행하신 다는 것을 믿고, 그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그분은 하나님이시며, 인간의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이시고, 성품은 완전하시며, 우리를 위해 화목제물이 되셨고, 우리의 죄를 지고 친히 나무에 달리셨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허물을 해결하셨으며, 죄에 종지부를 찍으셨고, 그리하여 영원한 의를 가져오셨다고 말합니다. 나아가 성경은 그가 ‘부활’하셨으며, 그리하여 '살아계셔서 우리를 위해 영원히 증보하고 계시고, 그는 영광을 입으셨으며, 천국에 자기 백성이 있을 곳을 마련하시고, 곧 세상을 의로, 그의 백성을 공평으로 심판하기 위해 다시 오실 거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분명히 그렇다고 굳게 믿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막9:7)고 증거 하신 사실입니다. 이는 성령 하나님께서도 증거 하신 사실입니다. 성령께서는 말씀과 여러 가지 이적을 통해,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역사하심으로써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증거를 사실로 믿어야 합니다.
신앙은 또한 그리스도께서 친히 증거 하신 대로 행하실 것을 믿습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자기에게 오는 자를 내들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않으면, 그분은 분명 우리가 그분께로 갈 때 우리를 내쫓지 않으실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4)고 말씀하셨으면, 그것이 진실하다고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생명수를 그리스도께로부터 받는다면, 이 생명수는 우리 안에 남아 있을 것이며 우리 안에서 거룩한 생명의 샘물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무엇이든지 약속하신 것을 행하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밀고 그분의 약속에 따라서 용서와 칭의와 견인과 영원한 영광을 그분께 받을 것이라 믿어야합니다.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친히 말씀하신 바로 그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친히 행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을 행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각 사람은 그 분을 신뢰 하고,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나에게 그분은 자신이 친히 말씀하신 그분이시다. 그리고 그분은 친히 하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나를 위해 행하신다. 나는 나를 구원하기 위해 지정되신 그분의 손에 나를 맡긴다. 그러면 그분이 나를 구원하실 것이다. 나는 그분이 말씀하신 그대로 행하실 것이라 믿으며, 그분의 약속을 의지한다. "이것이 구원을 얻는 믿음입니다. 이 신앙을 가진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가집니다. 그에게 어떤 위험과 어려움이 닥치든, 그가 어떤 어들과 침체에 빠지든, 그가 어떤 허물과 죄를 가지든 이 처림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정죄함이 없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정죄를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설명이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설명이 하나님의 성령께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세 가지 믿음에 대한 예화
오늘 아침은 매우 덮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졸지 않도록 몇 가 지 예화를 더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혹시 누가 졸게 된 다면 옆에 계신 분이 살짝 찔러 깨워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여러분은 깨어 있어야합니다. 지금 다루는 주제와 같은 경우에는 특별히 그렇습니다. 흔히 사용하는 예화들이 많지만, 저는 저만의 예화를 한두 가지 이야기하려고합니다.
믿음은 지식의 분량이나 혹은 다른 이유들에 따라 그 수준이 매우 다릅니다. 때로 믿음은 단순히 그리스도께 매달리는 수준에 불과합니다. 의지한다는 생각, 또는 의지하겠다는 의지에 불과한 것 입니다.
바닷가에 가면 우리는 바위에 붙은 조개를 볼 수 있습니다. 바위 위를 살금살금 걸어가 막대기로 힘껏 내려친다면 조개는 떨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조개를 내려치는 소리를 옆의 조개가 들었다고 합시다. 그래서 옆의 조개는 있는 힘을 다해 매달립니다. 여러분은 그 조개를 떼어낼 수 없습니다. 치고 또 쳐 보십시오. 막대기만 부서질 것입니다.
이 조그마한 조개는 아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매달립니다. 자기가 매달린 바위에 대해, 그 바위의 지질학적 성분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매달립니다. 그 조개는 매달릴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이 조개가 아는 작은 지식입니다. 그리고 조개는 그 구원 의 바위에 매달림으로써 자신의 지식을 사용합니다. 매달림으로 써 조개가 생명을 얻습니다.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들도 이 이상의 지식을 갖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마음과 목숨을 다해 예수님께 매달리는 데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강하고 능한 구주십니다.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는 반석입니다. 그들은 생명을 얻기 위해 예수님께 매달립니다. 이 매달림이 그들을 구원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매달리는 성향을 주십니다. 마당에 자라는 완두콩을 보십시오. 혹시 콩 줄기가 땅바닥에 떨어졌다면, 줄기를 들어 시렁 위에 올리거나 붙들어 매 보십시오. 줄기가 이내 시렁을 붙잡을 것입니다. 완두콩은 닿는 것은 무엇이든 붙잡는 덩굴손이 있기 때문입니다.
완두콩은 위로 자라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덩굴손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도 모두 하나님을 향한 덩굴손이 있습니다. 생각과 소원, 소망이 있어서 그것으로 그리스도와 그의 약속을 붙잡습니다. 이것은 아주 단순한 종류의 믿음이지만 아주 완전하고 효과적인 형태의 믿음입니다. 사실 이것이 모든 밀음의 핵심입니다. 우리가 어려움에 빠지거나 우리의 생각이 병들고 영적으로 침체에 빠졌을 때 우리는 종종 이 믿음으로 이끌립니다. 다른 무엇을 할 수 없을 때에도 우리는 매달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본질입니다.
복음에 대해 마땅히 알바를 알지 못한다 해도, 아는 것에 매달리십시오. 자신이 아직 생명의 강에 겨우 들어선 어린양 같습니까? 깊은 곳으로 헤엄쳐 들어갈 만큼 강하지 않다 해도 그 생명수를 마시기 바랍니다. 헤엄치기 때문이 아니라 마시기 때문에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매달리십시오! 예수님께 매달리십시오. 그것이 믿음입니다.
또 다른 믿음의 형태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그를 의지하고 따릅니다. 첫 번째 예화에 나온 조개는 바위에 대해 많이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설명하려는 단계의 믿음에는 더 많은 지식이 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안내자를 신뢰합니다. 안내자 가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는 안내자를 신뢰하고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 걷습니다. 선천적으로 앞을 보지 못해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해도, 그는 시각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리고 자신의 안내자는 시각을 가졌다는 사실도 압니다. 그래서 스스럼없이 자신의 손을 안내자의 손에 맡기고 그가 이끄는 대로 따릅니다.
이것은 믿음에 대한 좋은 예화가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 가 가지지 못한 공로와 능력과 축복을 가지고 계심을 압니다. 그래 서 기쁨으로 우리 자신을 예수님께 맡깁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신뢰를 결코 배신하지 않으십니다.
▲권위와 사랑에 근거한 믿음
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모두자신이 배우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지리 선생님이 지구의 형태와 어떤 큰 도시, 또는 국가에 대해 설명을 합니다. 학생은 이것이 사실인지 알지 못합니다. 다만 선생님과 교과서를 믿을 뿐입니다. 바로 이것이 여러분이 구원받기 위해 그리스도께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렇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구원을 주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분을 신뢰해야 합니다.
여러분과 제가 아는 거의 모든 것은 믿음으로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의 과학적 발견이 있으면 우리는 그것을 확신합니다. 무엇을 근거로 확신합니까? 저명한 학자의 권위가 그 근거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한 실험을 직접 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증거 한 것을 믿습니다.
그리스도께 대해서도 이와 같이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어떤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의 말씀을 믿고 그를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보다 무한히 뛰어나신 분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주와 주인으로서 자신을 보여 주셔서 우리가 신뢰하도록 하십니다. 우리가 그 분과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면 구원을 얻게 됩니다.
또 하나의 고상한 형태의 믿음은 사랑에서 자라나는 믿음입니다. 아이가 자기 아버지를 신뢰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예를 들어 우리가 그 아이보다 그의 아버지에 대해 약간 더 안다고 합시다. 그러나 우리는 그 아버지를 무조건적으로 의지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자기 아버지를 신뢰하는 이유는 아버지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복되고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성품에 매력을 느끼고 그의 사명을 좋아합니다.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인애에 흠뻑 빠졌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존경하고 경외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신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의심하는 일은 힘듭니다. 만일 그런 상태에 이르렀다면 그 다음에는 질투라는 끔찍한 감정이 기 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죽음처럼 강하고 무덤처럼 잔인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온통 신뢰하고 확신하는 상태에 이르도록 합니다.
구주를 사랑으로 신뢰하는 방법은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의사의 아내가 있습니다. 그녀는 매우 심각 한 병에 걸려 눕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아주 차분하고 조용합니다. 자기 남편이 그 질병을 전문적으로 연구해 왔으며, 그 병에 걸린 사람들을 수없이 치료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조금도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이의 손에 맡겼으니 이제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최선을 다해 모든 기술과 사랑을 쏟을 것입니다. 그녀의 믿음은합당하고 담연합니다. 남편은 어느 모로 보나 아내가 그런 신뢰를 가질 만한 사람입니다. 가장 행복한 신자들이 그리스도를 향해 갖는 믿음이 바로 이런 믿음입니다. 그리스도와 같은 의사는 없습니다. 그분처럼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자신을 그분의 손에 맡기고, 그분이 어떤 처방을 내리든 받아들이고, 무엇을 요구하든 따릅니다. 그분이 우리를 지도하시는 한 잘못된 지시를 받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너무도 사량하시기에 우리로 멸망을 당하게 하시거나 불필요한 고통을 당하게 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어린아이 같은 믿음
믿음은 또한 살아계신 하나님과 구주의 임재하심을 체험하게 합니다. 그 결과 다음 예화의 어린아이가 보이는 고요함과 평온함이 그 영혼 안에 생깁니다. 광풍이 불자 어린아이의 어머니는 깜짝 놀랍니다. 그러나 그 귀여운 아이는 즐거워하며 기뻐서 박수를 칩니다. 번개가 번쩍여도 창가에 서서 "엄마 보세요. 아름다워요, 정말 아름다워요" 라고 소리칩니다. 어머니는 "얘야 이리 온. 번개는 무섭단다." 라고 말합니다. 그래도 아이는 하나님께서 하늘에 만드시는 그 아름다운 빛을 보게 해달라고 졸라댑니다. 하나님께서 자신 의 어린아이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실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하지만 저 무서운 천둥소리를 들어 봐." 라고 말하자, 아이는 "엄마가 하나님께서는 천둥소리로 말씀하신다고 하지 않았어요.“ 라고 말합니다. 어머니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그래" 라고 대답하자, 아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니 얼마나 멋져요. 하나님이 아주 큰소리로 말씀하셔요.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들으라고 그러시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아요, 엄마? 아이는 새처럼 즐거워합니다.
아이가 이처럼 평온할 수 있는 것은 그 아이가 하나님을 실제적으로 바라보며, 또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에게는 번개가 하나님의 아름다운 빛입니다. 천둥소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음성입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아이의 어머니는 자연 법칙과 전기 에너지에 대해 아주 많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지식이 그녀에게 위로를 주지는 못합니다. 어린아이의 지식은 작지만, 그 지식은 확고하고 소중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자부심이 매우 강해져서 자명한 진리에 위로받지 못하고, 의심스러운 이론들로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들기를 더 좋아합니다. 후드(Hood)의 다음 노래는 심오한 영적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워라, 그리워라.
그 검고 커다란 전나무.
나는 이따금 생각했지.
가느다란 꼭대기가 하늘에 닿겠구나!
어렸고 어리석은 생각이었지.
그러나 이제 나는 슬픔을 느끼네.
그때보다 지금 더
천국에서 멀어졌음을 알기에.
저는 그릇된 길로 똑똑하게 성장하기 보다는 다시 어린아이가 되고 싶습니다. 믿음은 그리스도를 향해 어린아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지금 이 순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분을 믿는 것 입니다. 이것은 유치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 안에서 행복 하려면 우리는 모두 이런 어린아이와 같은 자세로 나아가야 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눅18:17).
믿음은 마치 어린아이가 그의 아버지를 믿는 것처럼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그분이 하신 말씀 그대로 받아들이고 과거, 현재, 미래를 아주 단순하게 신뢰하고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믿음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더는 증거가 필요 없는 믿음
확고한 믿음은 분명한 지식에서 나오며, 은혜 안에 성장함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란 그를 알기에, 그의 한결 같은 신실함이 입증되었기에 그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이제 증거와 증표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다만 용감하게 믿습니다.
항해사의 믿음을 보십시오. 저는 종종 그의 믿음에 놀랍니다. 그는 닻줄을 풀고 해안에서 떨어져 나갑니다. 며칠, 몇 주, 몇 달씩 그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도 항해를 합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않고 밤낮으로 항해하여 어느 아침, 그가 가려고 했던 안식처에 이릅니다.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곳에서 그는 어떻게 길을 찾았을까요? 그는 나침반과 항해력, 망원경, 천체를 신뢰하고 그것들의 안내를 따랐습니다. 그래서 정확하게 항해하여 목표했던 항구에 도착한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상태로 항해하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보이는 해안을 떠나 "내안의 느낌, 증거, 증표여 안녕. 이제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나는 즉시 천국을 향해 항해할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영적으로 복된 일입니다. “보지 않고 믿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들은 언젠가 멋지게 입항할 것입니다. 그 항해길도 안전할 것입니다.
이런 믿음이 우리 영혼과 그 모든 영원한 관심들을 구주께 쉽게 맡기도록 합니다. 어떤 사람은 어느 정도의 신뢰만으로 은행에 가서 자신의 돈을 맡깁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은행의 거래 내역을 살피고 은밀한 내용을 조사하여 그 은행이 막대한 투자금을 확보하고 있음을 확인하고는 절대적 확신을 가지고 자기 돈을 맡깁니다. 그는 알고 믿음을 가졌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자기의 모든 것을 은행에 맡깁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아는 우리는 그분이 우리를 끝까지 지키실 것을 알기에 우리의 모든 것을 그분의 손에 맡깁니다.
하나님은 갈수록 많은 확신을 주셔서 우리가 마침내 흔들리지 않는 믿음에 이르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코 의심하지 않고 신뢰하게 됩니다. 쟁기질하는 사람을 보십시오. 그는 나무에 잎도 없고 즐거운 새소리도 없는 추운 겨울 동안 열심히 쟁기질을 합니다. 쟁기질을 한 다음에는 소중한 씨앗을 이랑에 심습니다. 싹이 날 것을 확신하며 말입니다. 그 농부는 이미 수십 번 추수를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추수를 기대하며, 믿음으로 소중한 곡식을 뿌립니다.
좋은 곡식을 흩뿌려 땅에 심는 행위는 겉보기에 인간이 하는 행위 중 가장 어리석어 보입니다. 혹시 여러분이 그 결과를 보거나 들은 적이 없다면, 그저 낭비요 농사일이 아닌 것으로 여길 것입니다. 그러나 농부는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는 씨를 뿌리기를 갈망합니다. 그는 믿음을 가지고 씨 뿌리기에 좋은 날씨를 고대합니다. 만일 그에게 어리석다고 말한다면, 농부는 여러분의 무지함을 비웃으며 추수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이것은 경험을 통해 믿음이 자라는 것을 보여 주는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경험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 상관없이 우리가 행동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또한 우리의 모든 것을 그리스도께 맡기도록 합니다. 우리의 소망과 우리의 삶을 그와 함께 묻으면서 우리가 그와 함께 죽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것을 기쁨으로 확신합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죽음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셔서 새로운 생명을 얻게 하시도 기쁨과 평안을 수확하게 하실 것입니다.
모든 것을 그리스도께 맡기십시오. 그러면 더욱 풍성하게 되받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강한 믿음을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해가 뜨고 지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 것처럼 구주께서 시시때때로 우리를 도우심을 의심하지 않는 것처럼 구주께서 시시때때로 우리를 도우심을 의심하지 않게 되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 주님을 의뢰했고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아무리 믿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그러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14:1)는 그 말씀을 듣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