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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 타락자들이 주고 받을 변론 / 아이작 암브로스

LNCK 2020. 11. 4. 16:18

 

www.youtube.com/watch?v=MrG4X2gJ8bU&feature=youtu.be

 

◈그리스도와 타락자들이 주고 받을 변론    마25:42~45, 약2:13    출처

 아이작 암브로스

 

<예수를 바라보라 2권> 아이작 암브로스, 부흥과 개혁사, p.618-620

 

그리스도와 성도들이 타락자들에게 심판을 내릴 때 타락자들과 주고받을 변론에 대해

우리 구주는 다음과 같이 말씀해 주신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 하였느니라 하시니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 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마25:42~45).

 

그것은 마치 그리스도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과 같다.

"내가 비난과 비참함, 재앙과 궁핍함에 처했던 때가 있었다.

​나는 거지 나사로처럼 온통 상처투성이로 너의 집 문 앞에 쓰러져 있었다.

​나는 너에게 많은 것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단지 작은 것을 기대했을 뿐 이었다. 

그러나 오, 너는 얼마나 잔혹했는가!

 

​너의 그리스도가 굶주린 것을 보고도 먹을 것을 주지 않다니!

너의 그리스도가 목마른 것을 보고도 목마름을 시원하게 해 주지도, 채워 주지도 않다니!

 

​너의 그리스도가 나그네 된 것을 보고도 하룻밤 묵을 곳조차 드리지 않다니!

​너의 그리스도가 헐벗은 것을 보고도 옷으로 그분을 가려드리지도 않다니!

​그분은 너를 의의 옷으로, 구원의 옷으로 기꺼이 덮어 주셨을 텐데 말이다.

 

​오, 끔찍하고 비정한 마음이여!

​오, 비열한 탕자여!

​이교도가운데 누가 그들의 우상을 그렇게 대한 자가 있었느냐?

​열국 가운데 어느 나라가 자신의 우상들을 굶주리게 했으며 문 밖으로 내쫓았느냐?

 

 오직 나만이 그렇게 무시당하고 멸시당해야 하는가?

​내게서 떠나라. 타락자들아!

​너희는 내게 조금도 긍휼을 베풀지 않았다.

​이제는 내가 너희의 재앙을 보며 비웃는다. 

분명히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약2:13)."

  

그들은 이 말에 의아해 하며 서 있다.

​그들은 그런 상태에 계신 그리스도를 자신들이 보았던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들이 말한다.

"아, 주님, 언제 저희가 당신이 굶주리고 목마르며 헐벗은 것을 보았습니까?

 당신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분이 아닙니까?

​하늘에 높이 오르사 가장 높은 천사장보다도 더 높임을 받으신 분이 아닙니까?

 

​하나님이 당신을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고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당신의 이름에 꿇게 하신 분이 아닙니까?(빌2:9~10을 보라)

​그런데 어떻게 저희가 그런 상태에 있는 당신을 볼 수 있었겠습니까?

​지금 당신이 영광 속에서 다시 오신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낮고 겸손한 모습으로 당신이 처음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저희가 살고 있었단 말입니까?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단 말씀입니까?

 

​오! 왜 당신에게 긍휼을 베풀지 않았다고 저희를 책망하십니까?

​분명히 당신이 그런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을 저희가 알았다면

당신에게 필요한 것들을 드렸을 것입니다.

 

​당신은 우리가 갖고 있는 것들을 필요로 하시는 분이 아니지 않습니까?

​게다가 당신에게 그것들이 필요했다면 저희와 그것들에게 명령만 하 시면 되지 않으셨겠습니까?"

 

구주가 그들에게 대답하신다.

"오, 기만하고 무지하며 어리석은 영혼들아!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대해 그렇게밖에 알지 못한단 말이냐?

 

​내가 교회의 머리가 아니냐?

​머리에게 몸 된 지체가 없겠느냐?

​진실로 너희가 내 몸 된 지체들을 사랑하고 도와주며 선행을 베풀었다면 내게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긍휼을 베풀지 않았다면 너희는 내게 긍휼을 베풀지 않은 것이다.

​너희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친절을 베풀지 않았으면서

그리스도에게 이런저런 친절을 베풀었다고 결코 말하지 말라!

여기에 너희 마음의 기만이 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 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 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렘17:9~10).

 

너희가 내 지체들 가운데 가장 작은 한사람에게 긍휼을 베풀지 않았다면

바로 내게 긍휼을 베풀지 않은 것과 같다.

​그러니 지옥으로 떨어지라.

​내 임재에서 떠나라.

​천사들아, 저들을 마귀와 그 사자들이 있는 곳으로 영원히 데려가라."

 

이것이 그리스도와 타락자들 사이에 주고받는 변론이다. 

그렇다면 성도들과 타락자들 사이에 주고받는 변론에 대해서도

그와 비슷한 것을 상상할 수 있지 않겠는가? 

 

타락자들과 최고 심판자 사이에 나누는 변론처럼

타락자들과 일반 심판자들 사이에도 변론이 있지 않겠는가? 

 

만일 그리스도와 타락자들 사이에 그와 같은 논쟁이 있다고 인정한다면

성도들과 타락자들 사이에도 논쟁과 변론이 있다고 상상할 수 있다. 

 

그들이 이 땅 위에서 서로를 더 잘 아는 사이이기 때문이다. 

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서로 가까운 사이거나 사랑하는 사이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한 쪽이 다른 쪽을 영원한 불에 떨어지도록 심판하게 될 것이다.

 

​오! 그들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고 가겠는가! 

나는 이 땅 위에서 가장 가까운 관계에 있던 두 사람을 예로 들 것이다. 

 

주인과 종, 부모와 자녀, 남편과 아내, 목회자와 성도들의 관계처럼 말이다. 

분명히 이런 친밀한 관계들 속에서도 어떤 이들은 심판하게 될 것이고

다른 이들은 심판 받게 될 것이다.

​우리 구주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발하거니와, '그 밤에는 두 사람이 한 침상에 있다가

한 사람은 데려가게 되고 한 사람은 남게 되리라. 두 여인이 함께 및 들을 갈고 있다가, 

한 사람은 데려가게 되고 한 사람은 남게 되리라. 또 두 사람이 들에 있는데

한 사람은 데려가게 되고 한사람은 남게 되리라.' 고 하시니라" (눅17:34~36, KJV).

​그 말씀에서 주님은 모든 사람이 택하심의 대상이지만

가장 가까운 관계도 그 택하심에서 나누어질 수 있음을 보여 주시는 것 같다. 

다시는 노아 시대처럼 가족 단위로 구원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한사람은 그리스도가 하늘로 데려가시고

다른 사람은 사탄이 지옥으로 끌고 가도록 남게 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