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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지는 교회

LNCK 2020. 11. 10. 19:25

 

수영로교회 NEW WAVE 이규현 목사 - 흩어지는 교회 - YouTube

 

◈흩어지는 교회       행8:1~6      2018.07.22. 

 

우리는 종종 뭉치자, 하나 되자,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이런 얘기들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개인이든, 또 단체든, 국가든

때에 따라서는 위험한 것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이 없는 연합, 하나됨은 굉장히 위험합니다.

하나님이 빠진 인간 중심의 하나됨이, 힘의 자랑으로 발전되면

결국 그것이 하나님을 반역하는 것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창11장에 바벨탑 사건이 나옵니다.

그 탑을 짓는 인간의 의도는 ‘하늘까지 닿게 해서 우리의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지는 것을 면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바벨탑의 건설은 실패하고 맙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막으셨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크다는 것이 하나의 힘이고,

또 그것이 자랑으로 과시될 위험성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커져가고, 하나로 뭉치고, 힘이 모여질수록.. 굉장히 위험한 것이 됩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외적 규모가 우리의 자랑이 되면

이게 하나님께 (바벨탑처럼) 반역으로까지 갈 수 있는..

하나님의 이름보다 우리의 ‘수영로’ 라는 이름을 더 높이는

오류를 범하게 될 가능성이 늘 있습니다.

 

행2장에 성령강림 사건으로 인해서 예루살렘에서 기독교가, 교회가 태동합니다.

갑자기 그냥 커져버렸습니다. 폭발적 성장이 일어났습니다.

 

베드로가 한 번 설교하는데 3천명이 회개하고 돌아왔고,

또 5천명이 그 다음에 돌아오고, 나중에 셀 수 없는 무리들이 돌아옵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에 갑자기 이런 수영로 교회 같은 큰 교회가 하나 생긴 것입니다.

그것도 굉장히 빠른 시간안에요.

 

그리고 예루살렘이라는 도시 자체가 크지 않은데

그 안에서 이런 어마어마한 폭발적 성장이 일어났다고 생각할 때

 

기존의 전통 종교, 유대교 쪽에서는 가만히 있을리 없죠.

그러니까 사회에 큰 이슈가 된 것입니다.

 

갑자기 33세에 형틀에서 죽은 예수를 따르는 자들의 무리가

이렇게 갑자기 늘어갈 때, 그를 십자가에 매달았던 종교지도자들은,

큰 위협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핍박하게 됩니다.

 

▲이 핍박이 점점 가시화되면서, 결국 행7장에 스데반 집사가 순교를 당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데, 사람들이 돌을 던져서

현장에서 돌로 쳐 죽여버렸습니다.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행8:1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큰 박해’ 라고 했습니다.

개인적인 잔잔한 작은 위협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외에는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8:1

여기서 주목해야 할 단어가 ‘흩어지다’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수만 명이 뿔뿔이 산지사방으로 피신을 간 것입니다.

 

8: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 새, 각 집에 들어가서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잔멸’이란 말은, 바퀴벌레 잡듯이 완전히 없애버린다는 뜻입니다.

 

‘각 집에 들어가서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교회가 막 성장하고 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교회가 큰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자 이 위기 속에 사람들이 흩어지게 되는 일이 일어나는데,

어디로 흩어졌느냐면,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8:1

 

이 말씀을 들으면 행1:8절이 떠올려집니다.

핍박으로 인해, 행8:1절에서 행1:8절이 그대로 성취된 것입니다.

 

표면적으로는 핍박인데, 핍박을 받아 흩어졌는데

내용을 알고보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어져 가고 있는 과정이었습니다.

 

여러분, 이 흩어진 사람들이 무엇을 했을까요?

8: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 새’

8: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하니’

 

 

◑흥미로운 것은, 인간은 흩어짐을 면하고 싶지만, 하나님은 흩으시고

그 흩어짐을 통하여 하나님이 하시려고 하는 어떤 의도가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흩어지게 되었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는데

 

▲1. 첫 번째는 복음이 유대인만의 복음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유대주의자들의 약점이 뭡니까? ‘유대인만의 하나님’을 생각하고 믿는 것입니다.

유대인 외에는 다 이방인은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나서도, 사실 유대인이라고 하는 선민사상이 쉽게 없어지긴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 안에 갇혀 있는 것입니다. 심각한 오해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특정한 계층과 부류나 민족만의 배타적 종교가 아닙니다.

지역 종교가 아니고, 어떤 한 민족의 고유종교도 아니고

모든 지역에, 모든 민족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 만민의 복음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실제로 전세계적인 종교로 알려진 것들이 여러 개 있는데

사실 전 세계적인 종교로 편만하게 펼쳐져 있는 종교는 단 하나, 기독교뿐입니다.

 

이슬람도 90% 중동과 북아프리카 동남아시아에만 분포합니다.

힌두교의 95%는 인도와 그 접경지역에 있습니다.

 

불교도 마찬가지입니다. 88%는 동남아시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다 지역종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다릅니다.

모든 민족에게 편만하게 퍼져 있습니다. 유럽, 북중남미, 아프리카, 아시아, 대양주에도..

모든 대륙에 골고루 세계 종교로 퍼져 있습니다.

 

종교분포로 보면 기독교는 서구의 종교가 아니라 진정한 세계 종교입니다.

복음은 특정한 문화에 속한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과 족속과 방언으로 속속히 들어가

그 복음이 미치는 영향력이 어떤 한 민족과 한 문화에 속하지 않고

 

이 복음이 가지는 능력과 그 메시지 자체가, 복음의 내용 자체가

모든 문화에 깊이 들어가서 사람들을 바꾸어 놓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것입니다.

요3:16절에도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 온 세상을 사랑하신 것이지

유대인만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기독교가 서구의 종교로 오해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바울을 아시아가 아니라, 유럽으로 먼저 보내심으로

서구가 먼저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 복음을 받아들였던 서구가 문명의 꽃을 피움으로써

마치 기독교가 서구의 종교로 오해되는데, 그게 아닙니다.

 

예루살렘 안에만 머물러 있던 복음이 유대와 사마리아로 퍼져나갔고,

특히 사마리아 라는 점은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유대인들에게서 사마리아는 한계선입니다.

넘지 못할 증오와 편견의 벽이 오랜 역사속에 문화적으로

유대와 사마리아는 적대적 관계였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땅을 절대 밟기 조차 하지 않습니다.

빙 우회해서 둘러 다녔지 절대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사마리아 수가 성 여인을 만나신 것은

굉장히 의미 있는 사건입니다.

 

자, 도무지 가지 않을 증오의 땅인 사마리아까지 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유대인으로서 스스로는 절대 사마리아 성으로 들어가지 않을 텐데

하나님이 핍박이라는 특별한 방법을 통하여

신자들을 등 떠밀어서 사마리아 땅으로 들어가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사람들도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게 하셨습니다.

 

행8: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들어가서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굉장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자, 우리도 지금 북한에 대한 여러 가지 이념적 생각들로

북한에 대한 생각들이 각양 각색입니다.

 

일본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옛날의 앙금이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으니까요.

 

옛날에는 일본 선교사로 나가면 후원도 안 했습니다.

 

그렇지만 복음은 편견을 뛰어넘게 하십니다.

복음은 모든 민족에게 전해지게 되어 있으니까요.

하나님은 핍박이란 도구를 사용하셔서,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행8:4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할 새’

여기서 ‘흩어지다’는 말은, 농부가 씨를 흩뿌리듯 하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을 흩뿌리심으로, 복음이 곳곳에 퍼져나가게 하신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복음이 너무 풍성하게 흘러 넘쳤습니다.

 

근데 예루살렘에 있던 사람들을, 핍박이란 도구를 통해 흩으심으로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복음이, 곳곳에 민들레 홀씨처럼 흩뿌리듯이 흩어진 것입니다.

 

핍박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결국 복음의 진보가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가끔 우리에게 어려운 일들이 닥칠 때 원망스러울 때가 있지만

돌아보면 ‘그게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그렇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예수 잘 믿고, 신앙생활 잘 하고, 구제도 잘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핍박이 일어나서 삶의 근거지를 옮겨서 산지사방으로 흩어졌을 때

신자들 안에 원망이 생겼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자 그러나 그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더 견고하게 하시고

내 개인적인 삶은 꼬이는 것 같지만

그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는 진보가 나타난 것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시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의도가

그 핍박의 역사 속에 있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신자가 된 후에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것 중 하나는

우리 삶에 일어나는 어려운 일들이, 우리를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에 우리를 가담시키시고, 사용하시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삶이 꼬이지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성공입니다. 덩달아 거기에 가담한 내 인생도 성공하는 거죠.

 

▲2. 흩어져야 하는 이유가, 흩어져야 교회가 교회다워지기 때문입니다.

모이는 이유는 흩어지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모이는 교회, 흩어지는 교회’를 얘기합니다.

건강한 공동체 교회는 먼저 잘 모이는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는 정말 잘 모이는 교회입니다.

 

그러나 모이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모여서 우리는 영적으로 무장한 다음, 세상으로 흩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계속 모이기만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얘기합니다.

성을 쌓는 교회가 있고, 길을 내는 교회가 있다고요!

 

성을 쌓는 교회는, 계속 벽을 치고 울타리를 만드는 겁니다.

‘우리끼리’를 도모하게 되죠.

 

여러분 건강한 교회의 소그룹, 사랑방도 정말 건강한 곳은

분가를 계속 합니다. 그게 영적 건강의 척도입니다.

 

사랑방인데 분가하지 않고, 계속 그 얼굴에 그 얼굴만 모이고 있으면

슬슬 싸움만 납니다. 병들어있는 것입니다. 세포분열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끼리끼리 문화가 강하고, 배타적인 문화가 형성되면서

다른 사람을 품고 용납하고 받아들이지 않게 됩니다.

 

여러분, 떠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인 게 사실입니다.

서로 도움과 위로를 주고 받고 하던 것이.. 거기를 떠난다고 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죠.

 

변화산에서도 베드로는 그곳에 장막 세 개를 치며 눌러 붙으려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곳을 떠나 치열한 세상 속으로 들어가기를 원하셨습니다.

 

여러분, 모임만 있으면 .. 나아가지 않으면 .. 내부지향적이면

결과는 내부 분열입니다. 영역 싸움이 일어나고, 자리 다툼이 일어납니다.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있으면 각종 트러블이 늘어납니다.

 

결국 예루살렘 교회안에서도 구제 문제로 .. 문제가 터졌습니다.

히브리파 헬라파 과부를 돕는 문제 때문에, 서로가 실랑이를 하고

파워 게임을 하고, 키재기를 했던 것입니다.

 

결국 사도들이 일곱 집사를 세우고, 재정적인 부분을 정리하고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에 전무하기로 하고 다 정리가 되었지만

수만 명이 모였는데, 그 안에서 모든 것을 만족시키려 하면..

그런 구조 속에서는 문제가 터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가 모이는 것만 강조하면 비대해지기만 합니다.

서열 따지게 되고, 기득권 다툼하게 됩니다.

결국 비본질적인 문제로 에너지만 낭비하게 됩니다.

 

오래 된 교회들, 모여있기만 하고 흩어지지 않는 교회들,

그 안에서 서로끼리 만족하려 하는데, 그런 구조 안에는

시험들 일만 언제나 가득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교회는 연합을 위해서, 어떻게 해서 연합할 것인가 회의하다가..

도리어 싸우고 깨지고,

남을 돕겠다고 사랑의 바자회하다가.. 서로 싸우고

 

교회가 (흩어지는) 본질을 놓치면,

비본질이 본질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흩어지면 기득권이 없어집니다.

흩어져 있으면 서열 따질 일이 없어집니다.

 

▲우리교회는 단기 선교, 농어촌 선교로 흩어지는 것을 강조합니다.

거기 가면 같이 땀 흘리게 되어 있습니다.

거기서 폼 잡고 ‘내가 누군데..’할 겨를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열린 시스템, 흩어지는 구조, 그게 교회를 건강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경남 임팩트>에도 우리가 교구별로 가서

동네의 큰 프로젝트들을 온 성도들이 붙어서 자기 은사를 따라 막 같이 땀흘리고

수고하고 하는 이 모습 속에.. 건강성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특별히 주목할 부분이 8:5~6절에 나오는 빌립입니다.

행8:5~6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빌립은 집사입니다. 일곱 집사를 세울 때 빌립도 세워졌습니다.

빌립은 사도가 아닙니다. 근데 그의 행적들을 보면, 사도와 같은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시사해 줍니다.

앞에서는 사도들의 독무대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핍박을 받아 살던 곳을 떠나 피신하던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표적을 나타내었습니까?

 

이것은 성령의 권능이고, 복음의 능력입니다.

이미 이것은 베드로의 설교에서 언급한 부분입니다.

 

행2:16~1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말세에 내가 내 영을 어떤 특수한 사도들에게만 부어주는 게 아니라

모든 육체에 부어주겠다..’

 

그래서 너희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어린 아이의 입에서 예언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젊은이들이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이 꿈을 꾸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대목, 특별히 어린아이들까지 예언을 하는 역사!.. 가 감동적입니다.

성령이 부어지니까, 하나님의 거룩한 도구들이 되는 것입니다.

 

▲중고등부 아이들이 금요철야 때 수백 명이 저쪽 자리에 한데 모여 앉습니다.

그래서 매주 금요 철야 때마다 온 성도들이 격려의 박수를 쳐 줍니다.

 

그런데 지난 주간에는 금요철야에 소년부 학생들도 참석했습니다.

중고등부보다 더 어린 소년부(5~6학년) 학생들도 뒤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다같이 소년부 학생들을 위해서도 격려의 박수를 쳐 줍시다.

 

이 소년부 학생들은, 자기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기도그룹을 만들어서

초등학교에서 기도회를 인도한다고 합니다.

그 인도자를 ‘기도장’이라고 부른답니다.

 

13개의 초등학교에서 초등학생들이 ‘기도장’이 되어서

그 초등학생들 주도로 기도회 모임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담당교역자들 얘기에 의하면, 그 초등학생들이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그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5~6학년이지만 기도회를 학교에서

점심시간에, 아이들을 모아서 기도회를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행2:16~17절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여러분,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것입니다. 행2:16~17

직분 중심이 아닙니다. 나이 중심도 아닙니다. 성별 차별도 없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니까 누구든지 쓰임 받고, 능력 받고..

 

사도가 아니었지만 빌립 집사가 복음을 전하니까 능력이 나타났고

그 사마리아 성을 빌립 집사가 뒤집어 놓아버렸던 것입니다. 한 집사가 말입니다!

 

▲여러분, 초대교회 집사들은 대단했습니다.

스데반 집사 같은 이는 순교했습니다.

그의 설교는 명설교였습니다.

 

성경학자들의 해석에 의하면, 행7장 스데반의 설교는

정말 논리정연한 진리로 꽉 차 있는 아주 체계적인 깊은 설교라는 것입니다.

 

설교 도중에 돌들이 날아왔는데도, 조금도 흔들림 없이

돌에 맞으면서도 복음을 전하는데.. 그의 얼굴이 천사와 같았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빌립이 행한 모습은, 사도들에 비해서 조금도 손색이 없었습니다.

바로 이것은, 사도행전 1:8절의 성취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핵심은 이것입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그러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키 워드는 성령, 권능, 증인입니다.

 

여러분, 나의 직분이 무엇인가? .. 이제는 이런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 내가 살면,

하나님의 복음이 합당하게 증거되기 위하여

하늘의 권능이 각 사람들 위에 임하는 것입니다.

 

왜요? 그 사람을 예수 믿게 하려고 하는 하나님의 뜻에 일치되기 때문입니다.

 

시드니에 있는 수지침 배운 분이 있는데,

조금 배우고 인도네시아 어느 섬에 단기 선교를 갔는데

갔더니 의사가 왔다고 해서, 그 섬의 병든 사람들이 대거 모여들었습니다.

각혈, 절름발이, 신경통 환자.. 그들이 침을 맞았는데

 

기도하고 침을 시술했는데, 침 맞은 사람들이 신기하게 다 낫더라는 것입니다.

그 분이 시드니에 돌아와서 이웃 교인에게 침을 놨는데, 그 분은 낫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은 선교지에서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저는 이런 일을 많이 봤습니다.

 

우리가 잘난 사람이 아니고, 우리가 유능한 사람이 될 필요도 없습니다.

초점은 복음이고, 성령이 임하시니까 복음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남자니, 여자니.. 상관없습니다. 직분도 상관없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흩으심을 통하여 복음이 증거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핍박으로 인하여 힘들지만, 그 흩어짐의 도구를 통하여

하나님의 복음이 증거된다는 것입니다.

 

▲130년 전에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같은 선교사들은 한국에 왔을 때

약관 26세, 27세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부산 경남지역에 왔던 데이비드 선교사는

호주 빅토리아 장로교단 출신인데 그 분도 26세 때 한국에 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정든 고향을 떠나서

여러분, 선교사를 보면 짐 엘리엇 같은 분은 정말 유수한 탁월한 인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의 열정으로 인해 자원해서 흩어진 것입니다.

 

오늘날 같은 좋은 교통수단이 없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몇 달에 걸쳐 배를 타고 한국으로, 또한 선교지로 나아갔고,

 

데이비드 선교사는 인천 제물포 항에 내려서 부산까지 걸어서 육로로 내려오다가

도중에 풍토병에 걸려서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소천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자원한 흩어짐이 있어서, 오늘 우리가 복음을 듣고

교회를 이루게 된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민족을 다양한 나라로 흩어셨어요.

본래 우리 민족은 단일 민족을 자랑했고, 외세의 침입을 막고 쇄국정치를 펴기도 했습니다.

 

1970년대 이전만 해도, 우리 국민들이 해외에 나가서 사는 것은 상상도 못했는데

독일에 광부, 간호사들이 취업으로 나가고

남미로 농업이민을 나간 것을 기점으로

서서히 바깥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하고, 한국인들이 세상에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세계에 많이 흩어진 민족으로 알려진 민족이 유대인들입니다.

근데 지금 유대민족보다 더 많이 흩어진 나라가 있는데 중국인들입니다.

이분들은 세계 어디를 가든지 중식식당을 만들고, 차이나타운을 조성합니다.

 

근데 중국인보다 더 많이 세계에 가장 여러 곳으로 흩어진 민족이 한국인으로

지금 알려져 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182개 국가에 흩어져 있습니다.

 

지금은 한국인이 살지 않는 곳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놀라운 것은, 우리 민족 안에 흩어지는 DNA가 들어있는 것입니다.

 

용기도 대단합니다. 아프리카 내전으로 다른 외국인들은 다 피신하는데도

문을 열어놓고 장사하는 민족이 우리 한국인들이라고 합니다.

 

개척자 정신이 있습니다. 우리는 뿌리가 유목민 (노마드)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영적 노마드 정신이 한국인 기독교인들 안에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놀랍습니다. 세계 어디를 가든지 그곳에 교회를 세웁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예수를 안 믿다가, 외국에 나가서 예수 믿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교회가 있고, 교회에 가야 김치 먹고, 교회 가야 사람 만나고

교회 가야 자기 새 차 자랑도 하고, 교회에 가야 정보를 얻고...

그래서 해외에 나가면, 사람들이 다 한인교회로 갑니다.

 

거기서 예수 믿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분, 서구의 교회마저도 한국교회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 같다고요.

우리 민족을 선교사로 보내시고, 자발적으로 세계로 흩으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때 본문에 나오는 모든 성도들이

사실은 주님으로부터 파송 받은 선교사들입니다.

그들이 무슨 선교사 자격증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갔더니.. 실질적인 선교사가 된 것입니다.

 

요20: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교회가 몇 명의 선교사를 보냈느냐가 중요하지 않고요,

사실은 교회 전체가 선교공동체이고,

모든 그리스도인은 선교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Missional Life 선교적 삶을 살아야 되고

선교적 마인드를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내가 비즈니스를 하더라도, 이 사업이 하나님의 선교사업이고,

그 수단으로 내게 비즈니스를 주셨다는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돈을 버는 것이 그 일차적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직업적 선교사의 시대이기 보다는,

평신도들의 전문인 선교사 시대가 열렸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출장을 가거나 여행을 가서 기회가 있는 대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별 일이 아닌데, 그냥 내가 복음을 전했는데

예상 외로 그 사람의 영혼을 흔들어 놓는 역사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언제든지 복음을 전할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는 이 선교적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의 복음이 나를 통하여 이웃과 열방에게로 전파되는

역사가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신약이나 구약이나 모두가 ‘가는 영성’입니다.

우리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창12장에 ‘가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어떤 면에서 최초의 선교사였습니다.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주신 지상명령도 결국은 ‘가라’입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라 Go!

 

신약의 공동체는 끊임없이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동력적인 그런 교회였습니다.

그런 교회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안전하고 편안한 삶을 사는 것을 내려놓고

영적인 노마드로, 흩어지는 하나님의 공동체로 살아야 될 줄 믿습니다.

 

우리 교회에 지금 십년이 넘도록 매년 휴가를 이용해서

단기 선교를 떠나시는 분들이 여러 분 계십니다.

 

그리고 명절 연휴를 통해서 잠시 다녀오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마치 선교에 (좋은 의미로) 중독된 것처럼 그렇게 헌신을 다 하십니다.

 

여러분이 혹시 초신자라 하더라도, 선교지에 나가면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웃어주고 손만 따뜻하게 잡아주어도, 그게 선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만 머물러 있으면서 서로 아옹다옹 하지 말고,

우리 모두 ‘흩어지는 교회’ 정신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제는 고정된 공간이 필요하지 않는 직종도 많아졌습니다.

그들은 계속 움직이면서 일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움직이면서 직장생활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IT 세상으로 바뀌면서 그런 일이 더욱 점차 더 확대되고 있습니다.

 

교회도 이런 시대 상황에 적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이는 교회와 동시에 흩어지는 교회로서의 교회의 정체성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만약 빌립이 사마리아에 가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빌립이 사마리아에 갔더니, 거기서 폭발력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선교를 너무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우리끼리만 성을 쌓고, 우리끼리만 복음을 나누는 것을 주님은 원치 않으십니다.

 

마치 민들레 홀씨가 바람에 흩어져서 이웃집 뜰에 뿌리를 내리듯이

하나님은 우리 각자가 이렇게 흩어져서 복음의 뿌리를 내리기를 원하십니다.

나가든지 대신 보내든지,

우리 모두는 Witness 증인이라는 동일한 정체성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세계 각국에 흩어진 우리 한인교회들이

모두가 다 선교 전진기지처럼 쓰임을 받고 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입니다.

750만 한인 디아스포라가 세계에 5천5백개 이상의 교회를 세워서

그 전진기지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중입니다.

 

선교는 의무적이기라기 보다는, 자발적이고, 자원하는 기쁨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선교하는 우리는 기뻐하는 것입니다.

증인 되는 기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