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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장. 작정대로 사는 삶이 영광스럽다

LNCK 2020. 11. 20. 15:34

 

◈작정대로 사는 삶이 영광스럽다        눅1:17, 16:25              신앙칼럼

 

신앙생활을 오래 했지만, 성경을 대할 때 여전히 의문스러운..

어쩌면 피하고 싶은.. 참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 있다.

 

바로 세례요한의 인생이다.

 

온 세계 역사를 통털어 가장 억울한 사람을 한 사람 꼽으라면

나는 세례요한을 들고 싶다.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일평생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으나

그가 받은 보상은, 메뚜기와 석청부터 시작해서 결국은 감옥에 갔다가 참수형이었다.

 

만약 누구에게 ‘당신은 세례요한처럼 살기를 기원합니다’고 한다면

그걸 아멘 하고 기쁘게 받아들일 사람이 누가 있으랴!

 

▲세례요한의 삶을 이해하는 키워드는 ‘하나님의 작정’이다.

 

예정이.. 성도의 구원과 관련된 하나님의 미리 정하심이라면 *predestination

작정은.. 성도의 삶과 일생에 관련된 하나님의 미리 정하심이다. *decree

 

세례요한이 왜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세상을 떠났는가?

하나님의 작정이다!

 

세례요한이 왜 하나님의 뜻을 대언하다가, 의를 전파하다가

그렇게 비참한 최후(순교)를 맞이했는가?

그건 하나님의 작정이다. 다른 설명으로는 대답할 수 없다.

 

세례요한 뿐만 아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신약의 베드로, 사도요한, 사도바울 ...

모두 하나님의 작정에 의한 삶을 충실히 살았다.

 

베드로가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한 것.. 작정이었다. *요21:18

사도바울이 이방인의 사도가 된 것도.. 주님의 작정이었다.

행22:21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야곱에게는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지라’는 작정이 주어졌다. *롬9:12

예레미야는 ‘모태에서 열국의 선지자로 부름 받았다’ *렘1:5

 

세례요한에 대한 하나님의 작정은 그의 임신 때부터 주어졌다. *눅1:13~17

 

그 하나님의 작정하심(예언)대로,

그는 정말 구약의 엘리야 선지자처럼 살았다.

눅1:17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작정대로 사는 삶이 가장 영광스럽다! ←이 글의 제목이자 주제

3차원적 인간적 시각에서 보면 세례요한처럼 불쌍한 하나님의 종이

세상에 없다.

 

나무 몸통속에 들어가서 톱에 켜져 죽었던(히11:37) 이사야도 억울한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래도 그는 왕족으로서 왕궁에서 사는 호사를 누렸었다.

 

인간적인 시각에서 보면 그렇지만, 영원한 각도에서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보면.. 세례요한의 삶이 내게 영광스럽게 보여져야 한다.

 

왜 그가 그토록 하나님 앞에서, 또한 사람들 앞에서 영광스럽게 살았을까?

그 답은, 하나님의 작정대로 살았고, 그 작정에 충실하게 살았기 때문이리라!

 

어릴 때부터 나실 인으로 자라서 사고나 탈선 한 번 못해본 그를

우리는 불쌍히, 또는 가엽게 여기는 시각을 버려야 한다.

그는 어려서부터, 또한 청년 시절에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광야 빈들에서 먹을 게 없어서 종종 메뚜기와 석청을 채집해서 먹었던 그를 보면서

참 가엽게만 여길 것이 아니라

광야 빈들에 그의 위에 임하신 하나님의 영광, 그 임재, 그 영적 권위, 그 거룩함..

우리는 그런 영광과 아름다움을 그에게서 볼 수 있는 눈을 길러야 한다.

 

시골의 농촌교회에서 목회하던 중년의 목회자가 어느 날 도시의 작은 교회로 새로 부임했다.

그는 그날 아주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시골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늘 단돈 1천원 권을 헌금으로 드렸는데,

도시에 오니까 그래도 사람들이 5천원, 1만원 권을 헌금함에 넣더라는 것이다.

그래도 그것 다 모아도 매월 임대료 내기도 버겁겠지만...

 

개척교회 목회자들에게도 세례요한과 같은 이런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야 한다.

자기가 마치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약대 털옷을 입는 처지라 하더라도..

그런 의식주의 풍요나 비천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영광이 자기에게 임하고,

자기는 하나님이 불러주시고 세워주신 종이라는 자부심과 아울러

자기는, 숫자의 다소에 관계없이, 하나님이 시키신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는 그 영적 권위!

자기는 성도들과 주변 사람들을 위해 중보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다는 그 신적인 권위! devine authority!

 

사실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세례요한이나 예수님이 막상막하였다.

예수님도 머리 둘 곳이 없이 풍천노숙 하실 때가 숱한 나날이었지만

그 권위, 그 권세, 그 영광으로 충만하셨다.

요1:14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세례요한이 얼마나 권위가 충만했는지, 분봉왕 헤롯이 그 앞에서 몸을 떨었다.

눅9:7 ‘분봉 왕 헤롯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당황하니

이는 어떤 사람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도 하며..’

 

▲작정은 위로부터 주어지는 것!

어떤 사람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 하나님 곁으로 부름을 받는다.

데이빗 파슨 목사의 딸도 30대의 젊은 나이에 소천(하늘의 부름 받음)했으며,

데이빗 윌커슨 목사의 손녀 딸도 유년 시기에 암으로 부름을 받았다.

일평생 하나님께 헌신한 종들의 가정에도, 일찍 부름받는 일이 다반사다.

 

데이빗 파슨 목사는, 그렇게 찬양대를 열심히 섬겼고,

해외선교까지 자원해서 헌신했던 그 믿음 좋던 사랑스런 자기 딸이

일찍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실에 처음에는 아주 당혹스러웠다고 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작정>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정하신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하나님이 작정하신 그 깊은 뜻을 이 세상에서는 다 알 수 없지만

천국에 가면 다 알 수 있으리라..

 

욥이 까닭 없는 고난을 당한 것도.. 하나님의 작정이다.

다르게 해석하려고 하다가 미궁에 빠져서 헤맬 필요 없다.

하나님의 주권에서 정하신 하나님의 작정!

그걸 우리는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 각자에게도 하나님의 작정이 있다.

시편 139:16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위 구절은 물론 일차적으로 예수님에 대한 예언이지만,

이차적으로 시인인 다윗의 이야기도 될 수 있으며

확장하면 작은 예수인 우리 각자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작은 그림은 내가 그리더라도

큰 그림은 주님이 그려 놓으신다. 작정하신다.

그 큰 그림 속의 작은 빈칸은 내가 채울 몫이지만.. 큰 (밑)그림은 내가 바꿀 수 없다.

 

1956년경 에콰도르에서 순교한 짐 엘리엇 등 20대의 미국 선교사들이 있었는데

그 남은 미망인들의 증언에 의하면 ‘등떠밀림이 있었다’는 것이다. *즉 작정

 

하나님은, 그들이 순교하도록 그 아우카 부족의 거처로 밀어 넣으셨다는 말이다.

그들의 순교는 우연히 일어난 돌발사고가 아니요,

어떤 영웅심리로 사지로 뛰어든 것도 물론 아니요,

영광의 문으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그들은 떠밀려서 그 문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1997년 아프간 배형규 선교사의 순교도 마찬가지)

 

우리 주위에도, 자기가 장래에 어떤 배우자와 만나서 결혼할 것이라는 작정을

받는 사람도 있다. 자기가 받든지, 부모가 대신 받든지, 받는 사람도 있다.

 

우리 중에도, 자기가 어디서, 어떤 죽음을 맞이할런지.. 어렴풋하게 아는 사람도 있다.

다이애나 비의 다큐 영상을 보면, 청소년 시절 다이애나는

어렴풋하게 자기가 왕비가 될 것이라는 느낌이 있었다고 했다.

 

너무 이성적인 사람은, 이런 하나님의 작정, 주권, 예언 등을

고의적으로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작정, 주권, 예언 등을 인위적으로 받으려고 어떤 상황을 만들어낼 필요는 없지만

어떤 이해 안 되는 상황에 봉착하게 될 때 (예를 들면 젊어서 불치병 판정을 받을 때)

자꾸 억지로 하나님의 뜻을 해석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작정’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신앙의 갈등이 의외로 쉽게 풀린다.

 

※참고로 ‘내게 작정이 전혀 없는 경우’ ...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믿음으로 살면 된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나를 사랑하시고, 나에 대한 계획을 갖고 계시며, 내 길을 인도하신다는

믿음으로 살면 된다. *관련글 http://blog.daum.net/rfcdrfcd/15978919 (강추)

 

▲하나님은 미안한 게 없으시다.. 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세례요한이 고생만 하다가 천국에 갔다 하더라도

아무리 5세 꼬마가 소아암에 걸려서 세상을 떠났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미안한 게 없으시다.. 라는 말이 있다.

왜냐면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공평하시고, 반드시 천국에서 갚아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보면, 하나님의 공평하심이 이렇게 나온다.

눅16:25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부자가.. 호화롭게 연락하는데도 계속 부자로 산 것은.. 하나님의 작정의 측면이 크다.

 

나사로가.. 거지로 살아가 천국에 갔는데 거기서 위로를 받은 것을 보면

나사로의 궁핍은, 자기 무절제와 방종 때문이 아니라, 신앙과 믿음으로 살았는데도

하나님의 작정에 의해서.. 그는 거지처럼 살았던 것이다.

 

하나님은 불공평이 아니라, 의로우시고 공평하신 분이시다!

그래서 부자는 괴로움을 받고, 나사로는 위로를 받았던 것이다.

 

※참고로 부자가 지옥에서 ‘고민했다’고 성경에 두 번 나온다.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눅16:24, 25

 

개역개정에는 ‘괴로워했다’고 했는데, 과거 개역에는 ‘고민했다’라고 나온다.

원어를 찾아보니 ‘고민했다’가 더 원어에 가까운 번역이었다.

 

상식적으로는 부자가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해야 되는데, 왜 고민을 했을까?

아마 두 가지 이유일 것이다.

-자기가 거기서 영원히 살아야 된다는 데 대한 고민과

-존경받고, 부러움을 받았던 자기는 지옥에,

반대로 천대받고 멸시받던 나사로는 천국에 간 사실에 대해.. 쉽게 납득 안 되는 고민이었으리라!

 

어쨌든 세례요한도, 이런 비유가 죄송하지만, 나사로처럼 천국에서 특별 우대를 받고 계실 것이다.

그리고 그를 괴롭혔던 헤롯은, 오늘도 뜨거운 지옥에서 물 한 모금을 그분께 구걸하고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세례요한에게 미안할 것이 없으신 것이다!

그런 영생의 관점에서 보면, 세례요한의 인생이 .. 납득 안 되는 것이 아니다.

 

아니, 그는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종으로서 영광스럽게 살았고,

저 천국에서는 더 영광스럽게 우대를 받고 계신 것이다.

 

그러므로 혹시 여러분이 세례요한이나 거지 나사로 과科에 속한 다면

너무 신세 한탄만 하지 마시라!

오히려 당신의 삶 위에 머무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온 천지 사방에 발산하시라!

 

누가 알랴, 저 천국에 가면

이 세상에서 당신을 멸시하던 그 사람이

당신 집에 도움을 요청하러 올 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발달 지체 장애우, 한센병자, 제3세계 가난한 신자들... 절대 무시하지 마시라

혹시 내가 천국에 가서, 그의 집에 찾아가서 무슨 도움을 받을 지 모를 일이다.

그들은 일평생 이 세상에서 고생을 했기에.. 거기서 위로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교적 여유롭고 안정적으로 안일하게 그들을 무시하며 살았던 우리들은.. 모를 일이다.

 

 

그리고 첨언하면, 오늘날에 건강진단, 암 조기발견, 암보험.. 이런 것이 대 유행이고

60세가 지나신 분들은 건강에 초긴장 하시면서 사는데.. 하나님의 작정도 생각해 봐야 한다.

믿음으로 담대하게 살다가, 때가 되면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나 보다' 하고 영광스럽게 가면 된다.

왜냐면 하나님이 작정하신 때가 가장 완벽한 때이므로! 

건강을 너무 염려해서 삶의 질이 떨어지는 삶을 살면 .. 믿음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작정을 무시하면 안 된다!

 

 

편집장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