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친 마리아보다 복된 사람 되기 눅11:27~28, 막3:33~35 2020.12.01.큐티묵상
눅11:28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여자로 태어났으면 누구든지 ‘혹시 내가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라면 어땠을까?’라는
이런 상상을 한 번쯤 해봤는지 모르겠다.
꼭 가톨릭처럼 모친 마리아를 높이 떠받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주님의 모친 마리아는 아주 복되고 영광스러운 ‘자리’임에 틀림없다. 그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그 무한한 영광의 모친 마리아보다 더 복된 사람이
누구나 될 수 있다고
예수님이 본문 누가복음11장28절에서 말씀하신다. 그 말씀은 이렇다.
눅11:27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이르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즉 모친 마리아가) 복이 있나이다 하니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아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더 복이 있다니..’
도대체 그게 얼마나 중요하길래
예수님의 어머니 신분보다 더 복된 자가 된다는 것일까?
예수님은 비슷한 말씀을 한 번 더 하신 적이 있다.
막3:33 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34 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35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요즘 금수저, 흙수저 논란이 유행이다.
‘삼포세대’로 대변되는 젊은 층들은, 자신이 사회에서 뒤처지는 것이
※삼포세대 : 결혼(연애), 직장, 출산 등의 세 가지를 포기하는 세대라는 뜻.
부모나 집안 배경이 자기를 뒷받침해주지 못해서
즉 자기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못하고,
흙수저를 물고 태어났기 때문에.. 사회에서 점점 루저로 살 수밖에 없다는
일종의 자조 섞인 변명이다.
그런데 예수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런 금수저 흙수저 따질 필요가 전혀 없다.
주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자리, 특권, 지위’는
예수님의 어머니 위치는 물론이요, 예수님의 형제자매도 될 수 있다.
▲과거에 전해 들은 일화가 생각난다.
자기 아들을 학교 교장으로 둔 아버지 장로님은
가끔 지팡이를 짚고 그 학교를 방문했다고 한다.
그 학교 교문을 들어서자마자, 운동장 중간쯤 와서 서서는
아주 학교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의 큰 목소리로
자기 아들 이름 석자를 부른다고 한다.
“아무개야! 아무개 교장 나오너라! 아무개 교장은 어디 있냐?”
그러면 교사 또는 서무직원이 쩔쩔매면서 운동장으로 달려나와서
그 노인을 영접한다고 한다.
학교에서는 교장이 제일 높은 직책인데
교장 이름을 함부로 부르고, 그것도 반말로 부르는 사람이 나타났으니..
교직원들이 그 노인을 깎듯이 모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50년 전이라서 이런 일도 가능했겠지만
자기 아들이 학교 교장이라는 게 얼마나 자랑스러웠으면 그랬을까 싶다.
우리도 다 마찬가지다.
자기 가족이 어느 회사나 기관의 책임자 자리에 있으면,
그 건물에 들어갈 때 기가 죽어 들어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 어깨 펴고 당당하게 들어간다.
예수님이 거짓말하실 리는 없으시고
내가 한 번, 예수님의 모친, 예수님의 형제, 예수님의 자매로 살아보자는 것이다.
정말 그렇게 사는 사람은
더이상 자신의 ‘흙수저’를 한탄하지도 않고
자신이 ‘삼포세대’인 점으로 기죽어 하지 않을 것이다.
▲핵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것’이다.
그게 얼마나 중요했으면
그 사람이 예수님의 모친, 형제, 자매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
매일 성경을 읽지도 않고, 성경말씀이 오히려 지루하게 여겨진다.
그리고 성경말씀을 지킬 생각도.. 거의 하지 않는다.
이런 분위기에 일조한 것이 ‘이신칭의’ 신학의 과도한 적용이다.
그러니 예수님의 모친, 형제, 자매로 사는 특권을
나는 어쩌면 스스로 포기하고 사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하다못해 세무서장, 판검사의 아들이나 딸의 권세
아니면 그의 어머니가 되고 싶어 한다.
아니면 그런 사람을 부러워한다.
아니면 연예인을 조카로 둔 이모라도 되고 싶어 한다...
아~ 성경을 모르니까 우리는 한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니, 우리는 거의 무시하는데..
그 존재감이 요즘 말로 1도 없는데,
그 하나님의 말씀, 또는 예수님이 계명이 얼마나 중대하기에
그걸 지키는 자는 예수님의 로열 패밀리가 되고,
그걸 지키지 않는 자는 그냥 꽝인 것일까?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은 ‘로열패밀리’를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모른다.
로열패밀리로 입사한 사람은, 그냥 가만히 있어도 승승장구하는 것이다.
그 사람은 회사에 놀러 다니는 것 같은데도, 출퇴근이 자유로운데도
언제나 늘 승진한다.
그런 대기업의 로열패밀리(회장의 직계 또는 친인척)가 아니라
예수님의 로열패밀리가 되는 길이
예수님 말씀에 의하면, 계명을 지키는데 달려 있다는데...
나는 그 계명을 개무시 하듯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무시하는 그 하나님의 계명을
예수님은 그토록 강조하신 것일까?
그저 믿기만 하면 다 천국간다는데 말이다...
▲예수님이 율법(도덕법)의 권위를 부여하셨다.
눅11:28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하실 당시 ‘하나님의 말씀’(헬. 로고스)은, 율법 더 자세히는 도덕법을 뜻한다.
당시에는 아직 66권 정경은 없었어도, 단권의 구약성경이 두루마리로 존재했었다.
그래서 예수님도 회당에 들어가셔서 ‘이사야서 두루마리’를 건네받아 읽으신 적도 있었다. *눅4:17
이 율법의 시작은 시내산에서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율법이 그 출발점이다.
하나님은 출애굽시킨 히브리인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들과 계약(언약, 법)을 맺으셨다.
그래서 기독교를 ‘언약의 종교’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저 ‘얘들아, 너희들 나를 믿어라, 그리고 나를 존경해라, 그러면 내 백성으로 삼아줄게!’
이렇게 두루뭉술하게 자기 백성을 삼으신 것이 아니다.
마치 우리가 사업상 계약을 할 때, 그 계약서 조항이 작은 글씨로 촘촘한 것처럼
출애굽기 후반부, 레위기, 신명기에 율법(계약, 언약) 조항을 자세히 주신 것이다.
그걸 지킬 때 ..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며,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으며
그걸 어길 때 .. 그들은 그 백성으로서의 지위가 박탈되고, 하나님의 보호가 떠나게 되어 있었다.
그게 계약서(율법)에 조문으로 자세하게 다 나와 있었다.
일례로, 그들이 그 계약을 어길 때는
어떻게 망하게 되리라는 것이
신명기 28장 후반부와
레위기 26장에 아주 자세하게 나와 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망할 때, 그 신명기와 레위기의 언약, 계약 그대로
정확하게 망했다. 그래서 아이도 잡아먹고, 포로로 잡혀갔다. 계약의 성취였다.
▲언약, 계약의 긍정적인 측면을 살펴보면
구약의 언약은.. 너희가 이방 족속들과 구별되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이렇게 살아라..는 것이 그 내용의 주제이다. 그렇게 살 때 그들은 위험, 권위, 생명이 있었다.
그래서 이방민족과 차별되는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 물론 천국에도 가고...
신약의 예수님의 계명(대표적으로 산상수훈)도 마찬가지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살아가야 하는 하나님 나라의 법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공생애도, 사복음서를 찬찬히 읽어보면
사명선언문(눅4:18)에 따라서 병자도 고치시고, 귀신도 쫓아내셨지만
예수님이 제일 먼저하시고, 근본적으로 하신 사역은
말씀을 가르치신 것이었다. 즉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사는) 법’을 가르치신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고 죽으셔서 구원역사를 이루시는 것이 주된 사명이었다면
공생애 동안에 말씀을 하나도 가르칠 필요가 없었고, 설교하실 필요가 없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골고다 이전 예수님의 공생애 최우선 사역은 ‘말씀사역’이었다.
그 말씀사역이란 무엇인가?
계명을 가르치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의 하나님 나라에서 사는 법인데,
그것은 구약의 율법(도덕법)의 재해석이요, 교정이요, 발전된 형태의 계명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말씀이나, 말씀사역에 정당한, 올바른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 원래 무게가 100이라면, 우리는 1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성경도 읽지 않고, 제대로 된 설교도 듣지 않는다.
성경이나 설교를 들어도 ‘나를 유익하게 하는 책’ 즉 자기계발서처럼 읽고 듣는다.
(이신칭의 신학이 주는 유익이 있으나, 잘못 받아들이면 큰 폐해가 된다)
이렇게 해서는 내가 예수님의 모친, 형제, 자매가 될 수 없다.
그 영광, 그 특권, 그 밥상을 제 발로 걷어 차버리는 형국이 된다.
시내산 이후 구약 1천 5백년의 역사도 한 마디로 이런 이야기다.
그 계명을 잘 지켰더니 흥왕했으나, 그 계명을 등한시했더니 망하고 주변 민족에 갈굼을 당했다.
신약의 예수님의 계명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이런 말씀이다.
‘이 말씀을 잘 지키면 반석 위에 세운 집이 되어 어떤 풍파가 몰아쳐도 든든히 서 있으나
이 말씀을 안 지키면 모래 위에 세운 집이 되어 조금만 바람 불어도 무너져 파괴된다!’
그런데 이 원리는 신자뿐 아니라 불신자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아무리 잘 나가는 민족, 기업, 출세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세월이 지나면 다 망하는 데가 있고
아무리 변변찮은 민족, 작은 기업, 흙수저라 할지라도.. 세월이 지날수록 든든히 서 가는 데가 있다.
산상수훈의 법칙이 적용된 것이다.
그게 1년, 2년사이에는 모르나.. 30년~40년 세월이 지나면 반드시 말씀대로 결론지어지게 되어 있다.
말씀 공부를 게을리했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이 모친, 형제, 자매가 되는 특권과 자부심과 그 영광을 누리기 위해서라도
한 세대 전에 ‘Back To The Bible 성경으로 돌아가자’ 라는 운동이 있었듯이
그 운동이 내 삶과 내 주위에서 불씨가 되살아나기를 기도드린다.
잠시 천국에서 벌어질 어떤 불행한 일에 대해 머릿속으로 상상을 해 본다.
A성도 : 저는 지난 평생 50년을 교회를 다녔는데, 왜 천국 문을 열어주시지 않는 겁니까?
천사장 : 너는 계약서를 읽어보지 못했느냐?
A성도 : 계약서라뇨? 세례증서 라는 말은 들었어도, 계약서라는 말은 금시초문 입니다.
그런게 있었습니까?
천사장 : 있었다. 너는 그걸 네 집에 지난 50년간 보관은 했는데, 자세히 읽어보지는 않았구나!
그것은 바로 구약과 신약이다!
그렇다. 구약은 영어도 그렇고, 한글도 그러하듯이 옛 계약서이다.
신약은 그 의미가 새 계약서이다.
기독교는 엄격한 계약의 종교인데, 오늘날 우리는 '무계약, 무약정'으로 신앙생활 하고 있다...
편집장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