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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양을 찾는 진지한 마음 눅15:1~7 2020.12.05.큐티묵상
큐티묵상글을 매일 써 보니 한 가지 내게 좋은 점은
성경을 더 꼼꼼하게 읽게 되었다는 것이다.
큐티묵상글을 쓰기 전에는 성경을 덤성덤성, 또는 재빠르게 읽어나갔는데
글을 쓰려다 보니 이제는 본문의 단어 하나 하나에까지 신경을 쓰게 된다.
오늘은 누가복음 15장을 읽으면서
주님이 내게 주시는 음성을 들어보려고 한다.
눅15장에는 세 가지 비유가 나온다.
잃은 양의 비유, 잃은 드라크마의 비유, 잃은 아들의 비유
세 비유 모두 잃었다가 다시 되찾은 기쁨을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에 작정된 숫자가 있다.
이 본문을 읽고 내가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 또는 작정>이다.
하나님은 이미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원할 계획과 작정을 갖고 계신다는 점이다.
먼저 ‘잃은 양의 비유’에서 왜 양의 숫자가 꼭 100일까?
양의 숫자가 57도 될 수 있고, 랜덤하게 236마리도 될 수 있고,
실제로 어느 양치는 집에 양의 숫자가 꼭 100마리 인 집은 찾기 힘들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숫자 10은 ‘만수’라고 한다. 찰만滿에 숫자 수數이다.
뭐가 가득하다, 충분하다.. 라는 뜻으로 10을 쓴다.
일례로 ‘서머나 교회가 10일 동안 환란을 받게 하리라’는 것은 *계2:10
하나님이 정하신 환란의 기간이 충분히 차야 한다.. 라는 뜻이다.
또 이마에 인 맞은 14만4천은 12X12X10X10X10 *계7:4
이스라엘 12지파와, 이방인 12지파의 충만한 숫자가 (10이 세 번)
구원 받기로 작정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숫자 ‘10’을 만수의 개념으로 볼 때,
본문에 잃은 양의 비유에서 양의 숫자가 모두 100마리 인 것은
10X10 즉 구원 받을 숫자가 충분히 작정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한 마리를 잃어버려서 99마리만 남았다.
그래서 목자는 99마리를 버려두고라도, 1마리를 찾으러 나선 것이다.
그 1마리는 그저 한 마리가 아니라
양우리에 가득 차야할 충분한 숫자(100)를 채워야 되는 한 마리이다.
그 한 마리가 빠지면.. 하나님의 구원 계획, 구원 경륜에 차질이 빚게 된다.
▲두 번째 비유인 ‘열 드라크마’도 마찬가지이다.
8 드라크마일 수도 있고, 14드라크마 일수도 있는데
왜 하필이면 10 드라크마일까?
물론 우연일수도 있으나, 10을 만수滿數의 개념으로 볼 때
‘하나님은 어떤 충분한 숫자, 충만한 영혼의 숫자를 작정하고 계신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는 반드시 찾아져야 한다.
그 한 드라크마가 가지는 어떤 경제적 가치 때문이 아니라,
그 한 드라크마가 없음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구원 경륜, 구원 계획의 완성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위대한 세기라고 불리는 19세기부터
오늘날의 21세기에 이르기까지
해외로 선교하러 나가고, 또 국내 전도를 하러 나갈 적에
신자들의 구호는
‘하나님이 구원하기로 작정하신 영혼들을 구원하러 가자!’
또는 ‘하나님이 추수하기로 정하신 영혼들을 추수하러 가자!’ 였다.
이런 구호가 전도와 선교에 상당한 힘과 동기부여를 주는 것은 사실이다.
사실 해보면 어려운 것이 영혼구원이다.
그래서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 영혼구원, 즉 전도이기도 하다.
그런데 내가 나가서 전도하려고 하면, 그것은 무한 힘든 일이지만
‘하나님이 구원하기로 작정하신 영혼을 거두러가자’ .. 이러면 전도가 쉬워진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전도사역에, 내가 그저 도구로 동참하는 것이므로!
물론 칼빈의 예정론을 싫어하는 분들도 많다.
그렇지만 꼭 ‘칼빈의 예정론’이란 말을 쓰지 않더라도
하나님이 작정하신 구원 경륜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부인할 수는 없다.
일례로 성경에 이런 구절도 나온다.
계6:11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그리고 앞서 살펴본 14만4천도 .. 어떤 정해진 숫자가 있다는 것이다. *계7:4
그리고 사도바울도, 예레미야도 만세 전에 택정하시고,
모태의 복중에서 자기를 택하셨다는 말도 했다.
‘하나님이 구원하기로 작정하신 영혼들이 있고, 그 숫자가 차기까지 기다리고 계신다’
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 때,
그러면 우리의 전도나 선교활동에 어떤 활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 없이 무작정 전도를 하는 것은,
마치 큰 산을 옮기는 것 같이 어렵다면
‘하나님이 저 산을 옮기기로 작정하셨다’고 생각하면,
하루에 한 삽의 흙을 퍼서 나르더라도.. 그 느낌이 달라진다. 자신감이 생긴다!
실제로 칼빈주의 설교자인 존 파이퍼 목사도
이런 식으로 설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하나님의 구원 경륜, 완성하시려는 구원 계획에 우리가 전도로 동참하자!’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어떤 숫자를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다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그 말이 꼭 ‘그 외 나머지 사람들은 구원하지 않기로 작정하셨다’는 뜻은 아니다.
성경에는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한다’고 나온다. *딤전2:4
그런데 성경을 떠나서 실제로도 오늘날 구원 받은 사람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거의 대부분은 ‘하나님이 믿음 주시고, 택해 주셔서 자기가 믿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자기 힘으로 믿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모르니까 우리는 더욱 찾아내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전도하는 것 이전에
하나님이 구원하기로 작정하신 사람을, 내가 찾아내는 것이다.
그 숫자가 충분히 채워졌을 때.. 주님은 세상에 다시 오실 것이다.
◑참 하나님의 종의 관심은?
찰스 스펄전의 설교를 들어보면 그는 ‘참 하나님의 종의 관심’을 강조했다.
즉 하나님의 종은 ‘영혼 구령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다.
또는 ‘회심에 대해 깊은 관심과 기도를 가진다’는 것이다.
(2, 3, 4 도 있습니다, 숫자 밑줄에 클릭!)
즉 참 하나님의 종은
그저 교회를 무탈하게 유지하는 데 관심이 있지 않고,
항상 구령의 열정을 가진다는 것이다.
성도가 회심했는지, 진정 구원을 받았는지.. 거기에 관심을 갖고 설교하며
또한 그런 주제로 늘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전도에 앞서 기도부터이다.
참 하나님의 종은 (꼭 목회자만 얘기하는 것 아님, 모두 다)
항상 사람들의 영혼을 바라본다.
자기가 만나는 사람들의 영혼, 또한 멀리 떨어진 사람들의 영혼..
그리고 그들의 영혼을 위해서 기도하게 된다.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해 주시도록!
내 주위에도,
다 채워지지 못하고 한 마리의 양이 비어 있을 수 있다.
다 찾아지지 못하고 한 드라크마의 동전이 잃어버려져 있을 수 있다.
그것을 찾아내게 되기를... 기도해야 되겠다.
◑노령인구가 급증하면서
동남아 저계발국에 가보면 놀라는 것이 ‘어딜 가도 애들이 바글거린다’는 것이다.
동네에도 애들, 길거리에도 애들, 사방에 아이들 천지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일본 등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나라일수록
반대로 노인들이 많이 보인다.
차를 차도 노인들, 시장에도 노인들, 식당에도 노인들...
특히 병원에는 노인왕국이다.
노인들의 마음은 복음에 상당히 열려 있다.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호스피스 설교모음’을 만들어서, 노인들 전도용으로 쓰고 있다.
명절에 지방에 친지분들을 뵈러 갈 때 꼭 전달해 드린다.
그리고 요양원에 계신 어르신들도 계신데
그 자제분들이나 간병인에게 어르신이 듣게 해드리라고 부탁한다.
그 자제분이나 간병인에게 호스피스 설교 핸드폰으로 틀어달라고 부탁드리는 일이
약간 넘사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그 정도 일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
반응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대부분 좋아하시고 감사해하는 눈치다.
과거에 신앙생활은 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여러 가지 이유로
신앙생활을 쉬고 계시는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오늘도 하나님이 구원하기로 작정하신 영혼들을
추수하는 일에
내가 한쪽 귀퉁이 작은 일을 감당할 수 있게 되기를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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