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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9장. 왕 됨을 원치 않았던 자들

LNCK 2020. 12. 10. 16:15

 

◈왕 됨을 원치 않았던 자들               눅19:11~28                    2020.12.10.큐티묵상

 

오늘은 “열 므나의 비유”를 읽고 묵상해 보았다.

1므나는 2백 데나리온 쯤 된다고 한다.

 

 

이 비유는, 재림에 관한 예수님의 교훈이다.

왜냐면 11절에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

 

예수님을 따르던 이들은, 이번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이

그들이 고대하던 ‘지상 메시야 왕국의 회복’일지도 모른다는

잘못된 기대감이 있었던 것이다.

 

이에 예수님은 그들의 잘못된 상상을 교정해 주실 겸

주님의 재림을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지에 대해

열 므나의 비유를 통해 가르치셨다.

 

:12 이르시되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13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여기서 ‘먼 나라로 가심’은 부활 후 승천을 의미하며

‘돌아올 때까지’는 재림의 때까지를 뜻한다.

 

▲본문에서 서두와 말미에 두 번 반복해서 나오는 말씀이 있다.

‘왕 됨을 원치 않았다’이다. 14절과 27절에 각각 나온다.

그래서 이 묵상글 제목도 ‘왕 됨을 원치 않는 자들’로 잡아보았다.

 

‘왕 됨을 원치 않았다니’.. 이게 무슨 뜻일까 생각해 보니

답은 쉽게 나왔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지 않는 것을 의미했다.

 

10명의 종들에게 각각 한 므나씩을 주고 떠날 때는 아직 왕이 아니었다.

본문에 ‘주인’으로 나온다.

주인이 떠나는 이유는 왕위를 받아 오기 위해서이다. :12

 

그래서 ‘왕 됨을 원치 않았다’는 말은,

반역, 반발.. 이런 느낌을 받게 되지만

본문 중심으로 해석하면 일차적으로

‘주인이 왕이 되어 돌아오는 것을 원치 않았다’

즉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재림하실 때, 영광스런 왕으로, 심판주로 재림하실 것이다.

그런데 그 날을 기다리지 않는 사람들은...

왕으로 오시는 그 분이 ‘죽이라’고까지 하신다. :27

 

오늘 나는 주님의 재림, 왕의 재림을 기다리고 고대하고 있는가?

오늘날 너무나 삶이 편해지고 재미와 오락거리가 많아서

다들 여기가 천국인줄 알고, 여기에 정착하려고 하는 마음이 많이 있는 것 같다.

 

어느 TV방송국 광고 카피에 “즐거움엔 끝이 없다!”라는 묘한 말이 들린다.

얼마나 즐거우면 그게 끝이 없을 정도일까!

 

그래서 인생을 누리며 즐겁게 사는 것이 일면 좋은 면이 있으나

문제는 ‘내가 왕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만약 내가 왕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지 않으면, 본문의 ‘왕 됨을 원치 않는 자’가 되어

‘왕 앞에서 끌어내져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27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자세를 더욱 구체적으로 가지기 위해서

주일 예배 때, 예배 순서 마지막에 마치기 직전에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기도’를 다같이 1분간 드리면 좋다.

다른 말로는 ‘자신의 임종을 준비하는 기도’도 된다.

주님의 재림이나 자신의 임종이나 .. 주님을 만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외국의 어느 교회에 가면, 예배 순서로 ‘복음의 개요’를

성경 본문을 나눠서 몇 명의 교우 대표가 읽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복음의 개요’라 함은,

메시야 탄생 예언(구약) -- 구세주의 탄생 — 생애 -- 십자가 수난 — 부활 — 재림

이 여섯 주제에 관련된 성경을

6명의 신자 대표가 나와서 몇 구절씩 대표로 읽는 것이다.

 

이렇게 함은, 일주일에 한 번 교회 나오는 신자들에게

복음의 개요를 자꾸 리마인드 시켜 주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메시야 탄생은.. 일년 중에 성탄절에 한 번만 기억하게 되고,

십자가 수난은.. 고난주간에 한 번, (그리고 잊어버린다)

부활은 .. 부활주일에 한 번 기억하고,

재림은 .. 어쩌면 일년에 한 번도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꼭 6개일 필요는 없다. 성령강림이 들어갈 수도 있고,

매 주일이 아니면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복음의 개요를 말씀을 통해 ‘기억하는’ 것이 좋다.

 

과거에 찬송가는 신기하게도

4절에는 ‘재림’으로 끝나는 찬송이 꽤 많았다.

‘저 공중에 구름이 일어나고 큰 나팔이 울려날 때..’

‘내 주예수 세상에 다시 올 때 저 천국으로 날 인도하리..’

 

찬송가 한 편만 불러도 거기에

‘십자가-부활-재림’ 등의 복음적 요소들이 골고루 들어가 있었다.

 

오늘날 우리의 주일 예배에,

그것도 대부분 신자들은 일주일에 한 번 예배드리는 경우가 많은데

복음의 개요, 복음의 요소들이 고루고루 들어갔으면 좋겠다. 광고 시간 좀 줄이고..

 

안 그러면 본문에 나오는 ‘왕 됨을 원치 않았던 자들’이 되고,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된다.

 

▲이렇게 ‘왕의 귀환을 기다리던 자들’의 특징은

자기가 받은 한 므나로 (2백 데나리온 가량 된다고 한다)

장사해서 뭔가를 남겼다.

 

열 므나를 남긴 사람은.. 혹시 10명을 전도하고 제자만든 사람은 아니까?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남긴 사람은.. 혹시 5명을 회심시킨 사람은 아닐까?

한 므나로 아무 것도 남기지 못한 사람은.. 혹시 전도 한 명도 못한 사람은 아닐까?

(열 명에게 한 므나씩을 주셨는데, 그럴 경우 아무 것도 남기지 못한 사람은 혹시 8명이었을 것 같다)

 

주인이 떠날 때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13

예수님이 떠날 때 하신 말씀을 ‘지상명령’이라고 부른다. 가장 중요하고 위대한 명령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지상명령 The Great Commission’에 평소에 헌신하지 않는 사람,

‘가든지, 대신 보내든지’ 하지 않는 사람 역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지 않는 사람이다.

즉 한 므나를 받았으나 땅에 파묻어 두었다가 나중에 엄중히 심판을 받게 되는데

이런 자가 자기가 과거에 신앙고백 했다고 구원을 받을런지는... 글쎄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왕의 귀환, 즉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제자는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지 지상명령에 순종하게 되어 있다.

그것이 받은 므나로 장사해서 열 므나, 다섯 므나를 남기는 일이다.

 

자기가 받은 것을 땅에 파묻어 두지 않는다.

땅에 파묻어 두는 것은 결과적으로 ‘왕 됨을 원치 않기 때문’인 것이다.

 

성숙한 제자는 반드시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주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살게 되어 있다.

누가 시켜서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살게 되어 있다.

 

▲그런데 ‘복음(의 개요)'을 매주 또는 종종 리마인드 시켜주는

예배순서를 가지면.. 실제로 많이 지루할 것이다.

 

마치 성경통독 하듯이 성경을 쭈욱 쭈욱 읽어가면

대부분 사람들은 지루해 할 것이다.

 

그 이유는, 복음이 너무 익숙해서 수 백 번 들었던 이야기라서 지루할 것이고

또 그 복음이란 게 피부에 와 닿는 내용이 아닌 것이다.

이런 것은 죽는 순간에나 피부에 와 닿지, 젊고 건강할 때는 관심 없는 이야기다.

(정치, 경제, 예능, 스포츠 등의 이야기가 아니니까!)

 

그런데 나중에 임종을 앞두고 결판난다.

늘 복음의 개요를, 지루하더라도 억지로라도, 듣고 묵상한 사람들은

자기 개인의 임종이 닥쳤을 때.. 크게 당황하지 않는다.

 

왜냐면 벌써 30년~40년 전부터 그 날이 올 것을,

즉 주님의 재림이나 본인의 임종의 날을,

그래서 주님을 만나고 심판 받을 날을 마음으로 꾸준히 준비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준비가 없이, 매주일 교회에서 피부에 와 닿는

재미있고 유익한 현세적 지혜, 처세술 등을 집중적으로 듣고 즐긴 사람들은

나중에 그 날이 왔을 때 아주 허둥지둥 당황하게 될 것이다.

준비하지 않았고, 왕의 귀환을 기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편집장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