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권적 권위 와 비제독권 (회중) 권위 눅20:1~8 2020.12.11.큐티묵상
*관련글 / 복종을 통해 깨어진 사람http://blog.daum.net/rfcdrfcd/15976568
‘백성이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니..’ 눅20:6
눅20:1~8절을 읽고서 ‘제도권적 권위와 비제도권적 권위, 즉 회중권위의 조화’에 대해서 묵상해 보았다.
두 권위가 조화를 이룰 때, 건강하게 하나님의 나라가 발전하는데
두 권위가 서로 충돌하거나 서로 무시하면.. 아군끼리 싸우는 셈이 된다.
▲예수님 당시 제도권적 권위는
-제사장 중심의 사두개인,
-그리고 율법사를 필두로 하는 바리새인 들이 있었다.
참고로, 바리새인들도 원래는 제도권적 권위가 아니었다. 주1)
왜냐면 이들은 사두개인과 달리 아론의 후손, 또는 사독의 후손이 아니기 때문이다.
원래 이들의 지도자는 율법사(율법학자)였다.
(율법사는 대표적으로 에스라인데, 그는 아직 바리새인이 등장하기 3세기 전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독실한 신앙심이 점점 대중의 인정을 받으면서,
주전150년 경부터 유대독립운동에 가담하면서
사두개인(즉 제사장들)과 더불어 유대의 정치적 지도자 그룹이 되었다.
이렇게 사도개인, 바리새인들은
예수님 당시의 제정일치 사회에서
그들은 “제도권적 권위”로 인정받고 있었다.
▲반면에 예수님 당시 비제도권 권위, 또는 회중 권위는
-예수님과
-세례요한이었다.
‘회중 권위’라는 말은.. 회중들이 그를 하나님의 종으로 권위를 부여한 사람을 뜻한다.
예수님과 세례요한은
제사장 그룹인 사두개인도 아니요
바리새파도 아니셨다. 제도권 권위하고는 1%도 관련이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영적인 권위를 부여해 주셨고
그래서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막1:5
당시 사람들은 그가 혹시 거짓선지자인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있었겠지만,
그의 사역, 그의 설교 등을 통해 그가 하나님이 세우신 참 종임을 인정하고
그에게 소위 ‘회중 권위, 비제도권 권위’를 부여한 것이다.
'백성이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니..' 눅20:6
예수님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예수님도 그 비제도권 권위를 가지고
본문 1절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셨다.’
그런데 그 당시에 이런 ‘하나님께로 난 권위, 회중 권위, 비제도권 권위’를
도무지 인정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바로 제도권 권위를 가진 자들이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정에서 말씀사역 하시던 예수님께 이렇게 시비를 걸었던 것이다.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눅20:2
이에 예수님은 되물으셨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20:4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과 세례요한이 가지셨던
‘비제도권적 권위, 회중 권위’를 인정하고
하나님 나라 복음사업에 동참하고 힘을 보탰으면 좋았을 것을...
그들은 오직 ‘제도권 권위’ 그것 하나 밖에 몰랐던 것이다.
그것 이외에는 다 가짜이고, 사이비이고, 인정할 수 없다고 나온 것이다.
결국 그들은 엄한 심판을 받고 말았다.
구약시대에도 제도권과 비제도권의 두 권위가 있었다.
-제사장 그룹과
-선지자 그룹이었다.
이 두 권위가 대립이 아니라 조화를 이룰 때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었던 것이다.
▲사도바울도 비제도권 권위였다.
이제 예수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계기로
신약 교회시대가 시작되었다.
이때 다시 리더십은 제도권과 비제도권으로 갈라졌다.
-예수님께 직접 위임 받은 12사도의 제도권 사도들과
-바울이라는 혜성처럼 나타난 비제도권 사도였다.
바울은 예수님께 직접 임명받은 제도권 사도가 아니었기 때문에
자기가 개척한 고린도교회에서 마저도 사도권 논란이 있었다.
법적으로 따지면 바울을 정식 사도로 인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회중들은 결국 바울을 사도로 인정한 것이다.
그의 삶과 사역을 볼 때 ‘그가 예수님으로부터 임명받은 사도임을’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다행스럽게 당시 지도급 사도들도 바울을 인정했다.
갈2:9 ‘또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나(바울)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이는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저희는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당시 지도급 사도였던 야고보, 베드로, 요한은
사도바울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세례요한에게 그랬던 것처럼 대립하지 않았다.
천만다행이었다. 그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았던 것이다.
그로부터 약 1백년 후에 신구약 정경을 완성할 무렵에
당시 교회지도자들은 바울서신 약 13권을 정경에 포함시켰다.
그들도 ‘바울의 사도성’을 인정한 것이다. 아주 다행스런 일이었다.
성령의 인도를 따른 결정이었다.
▲그러다가 중세가 시작되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교회는 암흑기에 들어간다.
이때 교회의 개혁을 요구한 무리들이 일어났는데 16세기의 종교개혁이다.
그래서 이후 장로교, 루터교, 감리교. 성공회 등이 시작되었는데
당시 16~18세기 정황에서 보면
로마 가톨릭은.. 제도권적 교회였고
개신교회들은 .. 비제도권적 교회들이었다.
이런 교회들이 로마 가톨릭의 서슬 퍼런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살아남은 것은
회중들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회중들이 그들을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교회’로 인정해서 명맥이 이어진 것이다.
아니었으면 그들 세대에 모두 문을 닫거나 벌써 뿌리채 뽑혀졌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실 관계는 더 파악해 봐야 하지만)
1965년 바티칸 2차공의회를 통해 가톨릭은 개신교를 ‘형제’로 인정했다고 한다.
뒤늦은 감이 있으나 잘 된 일이다.
그런데 아직도 일부 근본주의 가톨릭들 가운데는
개신교회를 ‘교회’로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섞여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중요시 여기는 것은 ‘전통’이고, 가톨릭교회가 전통적, 합법적 교회라는 것이다.
이 교회를 떠난 자들은 엄밀히 말하면 ‘교회’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 뭔가? 교회가 아니라 ‘교제권 fellowship’ 정도로 여긴다.
여기서 누가 옳다, 그르다를 논하고 따지려는 것이 아니라,
이 글의 요지는 “제도권 권위만 인정하고
비제도권 권위, 또는 회중권위를 절대 인정하지 않을 때는
뭔가 하나님 나라에 큰 과오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제도권 권위를 인정하지만
비제도권 권위, 회중 권위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유연하게 인정하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종교개혁 이후 5백년이 지나면서
처음에 분파로, 비제도권으로 출발했던 개신교의 여러 교단들이
이제는 각 나라에서 메이저, 메인스트림 교회들이 되었다.
이들이 이제는 제도권 권위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또 새로운 비제도권 권위들이 생겨나고 있다.
비제도권 권위가 무조건 옳다는 것은 아니다.
‘내 하늘 아버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다’ 마15:13
▲한국의 개신교회 내에서도 제도권과 비제도권이 있다.
-제도권은 ‘장감성’이라 불리는 기존교단들이고
-비제도권은 CCC, IVP, UBF 등의 여러 선교단체들이다.
한국교회가 한창 부흥하던 시기에는
제도권과 비제도권 교회가 상호 협력하고, 상호 존중하고, 서로 도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제도권 교회가
비제도권 교회를 따돌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제도권) 교회가 아니다. 그들에게 헌금을 내면 안 된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나,
그때부터 제도권 교회가 시들기 시작했다.
비제도권이 먼저 시드니까, 제도권도 따라서 같이 시드는 것이다.
아이러니 한 것은 구교로부터 비제도권이라고 핍박받던 개신교가
이제 주류가 되고 나니 똑같은 방식으로 선교단체들을 홀대하는 것이다.
표현이 좀 과하지만 혹시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잊었던 것은 아닐까?
▲각 지역교회에도 제도권 지도자와 비제도권 지도자가 있다.
A교회에 제도권 지도자는 목회자와 장로이다.
A교회에 비제도권 지도자는 거기서 기도 제일 많이 하는 권사님, 집사님이다.
잘 되는 교회, 부흥하는 교회는
제도권과 비제도권이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를 위해주며, 서로 협력한다.
그런데 마귀는 본래 태생적으로 ‘나누는 자’라서 *디아볼로스
그 교회에 들어가서 교묘하게
제도권 지도자와 비제도권 지도자를 갈라놓는다.
그때부터 그 교회는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다.
제도권 지도자는 구분하기 쉽다. 직함과 타이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제도권 지도자는 좀처럼 분별하기가 쉽지 않다.
그들은 하나님이 기름부으신 종들이기 때문이고, 공식적 타이틀이 없다.
시내산에서 제도권 지도자들이 탄생한 이후부터
지난 3500년 동안
제도권 지도자들만 단독으로 세워졌던 시기는.. 아마 한 번도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시대에
제도권과 아울러
비제도권 지도자도 함께 세우신다.
그래서 그들이 협력해서 하나님 나라를 일구어 나가기 원하신다.
본문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과 세례요한의 비제도권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어지는 본문에 그들에게 내린 예수님의 심판이 이렇게 나온다.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
서기관(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의 이 비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즉시 잡고자 하되 백성을 두려워하더라’ 눅20:18~19
오늘 내 주위에, 비제도권적 권위자, 회중 권위를 받은 지도자가 누구인지 한 번 생각해 본다.
예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권위자 (제도권 + 비제도권) 를 내가 인정하지 않으면
그건 예수님을 대적하는 죄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