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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1장. 하나님이 일으키신 종교개혁

LNCK 2021. 1. 19.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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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일으키신 종교개혁          겔1:3                  2021.01.19.큐티묵상

 

‘갈대아 땅 그발 강 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겔1:3

 

▲부시의 아들인 에스겔은 제사장 가문의 출신이다(겔1:3).

그는 주전 597년에 여호야긴 왕이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잡혀 올 때

같이 잡혀 왔다.  겔1:2

 

그리고 잡혀 온지 5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1:2 주전592경

그러니 본문 에스겔 1장 상황은

성전이 불타고 남유다가 완전히 파멸한 주전 586년보다 약 6년 앞의 일이다.

 

그런데 에스겔은 바벨론에서 다른 유다인들보다 배나 더 처량했을 것이다.

왜냐면 그는 제사장 가문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30세였다고 밝히고 있다.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1:1

 

제사장은 30세에 직무를 시작한다고 한다. *민4:3참조

그래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도 30세에 공생애를 시작하셨다.

 

그런데 지금 제사장인 에스겔은.. 바벨론 땅에서 자기 사역지가 없는 것이다.

왜냐면 거기엔 성전이 없었으므로!

제사장이 할 일이 완전 봉쇄되어 버린 것이다.

 

요즘 청년 실업이 문제가 되고,

명퇴자, 조기 퇴직자들의 구직 문제가 사회 이슈가 되고 있는데

그런 ‘무직자’의 허탈감, 상대적 박탈감 같은 것을.. 에스겔은

다른 포로들보다 더욱 심하게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그가 자주 그발 강가를 거닐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3

 

▲하나님이 일으키신 종교개혁

지금까지 모세의 성막으로부터 시작해서 솔로몬 성전으로 이어지는

성전 제사 제도가 약 1천년을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지난 1천년 동안, 성막 제사, 성전 제사를

단 한 번도 거르거나 중단한 적이 없었을 것이다.

 

항상 아침 저녁으로 성전에서 상번제를 드렸고,   *민28장

번제단에는 각종 제물이 드려졌을 것이며

유월절과 절기를.. 그들은 빼먹은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제사 제도’가 올스톱 되어 버렸다.

왜냐면 바벨론 땅에 포로로 잡혀 왔는데,

거기에는 ‘성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제까지 자기들의 모든 하나님을 향한 제사와 예배는

오직 ‘성전’을 중심으로 드려졌는데,

‘성전’이 없게 된 상황에서... 이스라엘은 바벨론에서 패닉에 빠졌을 것이다.

 

더욱이 엎친 데 덮친 것은

본문 상황으로부터 약 6년 후에

즉 주전 586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불타 버리고 만 것이었다.

 

도대체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우째 이런 일이....!

차라리 태산이 무너질지언정, 성전은 안 무너질 줄 알았는데..

차라리 해가 안 뜰 지언정, 성전 제사는 끊어지지 않을 줄 알았는데...

 

지금 포로로 잡혀온 이스라엘 백성들,

그리고 특별히 제사장 신분인 에스겔은

모든 게 뒤죽박죽이고 도대체 이해, 수긍, 납득 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심정이었다!

 

사실 이런 현상은 예레미야가 앞서 예언한 것이었다.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렘7:4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너는 성전 문 앞에서 예배하러 가는 사람들 앞에 면전에다

위 말씀을 전하라고 시키셨다.’ 렘7:2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 곳에 살게 하리라’ 렘7:3

 

그러나 그 당시 사람들은

이런 예레미야의 예언을 귀담아 들었을 리 없다.

거의 대부분 모든 사람들이 예레미야의 예언 선포를 무시했을 것이다.

 

▲포로로 잡혀 오고.. 이제 물리적으로 예루살렘에 갈 수 없었다.

성전이 무너지고.. 이제 후에 예루살렘에 가더라도 예배를 드릴 수 없었다.

 

이 가운데서 시작된 새로운 예배제도가 있었으니 <회당 모임>이었다.

그러니 <회당 모임>은 하나님이 강제적으로 인도하신 종교개혁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주일 예배 형식의 그 기원은

이 바벨론 포로기에 생긴 <회당 모임>에서 나온 것이다.. 라고 신학자들이 말한다.

 

이 회당 모임의 특징 중 한 가지가 “말씀 위주” 예배였다.

그전 성전 제사는 “예전 위주”의 예배였다. 오늘날의 가톨릭처럼.

 

그러나 회당에서는, 성전 건물이 없으니까,

자연히 “말씀 위주”의 예배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은 안식일 날 회당에 모여서, 두루마리로 내려오는 성경을 읽었던 것이다.

 

에스겔서에 가장 자주 나오는 말씀이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세어보니 49회나 반복해서 나온다.

 

과거에 성전에서 제사를 드릴 때는 ‘여호와의 말씀이 임했다’는 역사가

거의 없었다. 적어도 그 성전 안에서는, 즉 제사장들 가운데는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성전 제사는 못 드리고 있는데도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는..’ 말씀 회복의 역사가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스라엘 포로민들이 바벨론에서 과감하게 회당 모임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는..’ 역사가 그 동기가 되었을 것이다.

에스겔에게 임한 그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려는 계기가 되어서

사람들이 신앙공동체를 다시 형성할 수 있게 되었으리라! (라고 추측한다.)

 

성전제사 시대에는.. 그동안 제사장을 중요시하고, 선지자는 무시한 경향이 있었는데

이제 회당 시대에는.. 제사장은 쓸모없고, 선지자가 중용되는 시대로 변모했다.

그들이 회당에서 주로 읽은 것은 오경과 선지자들의 말씀이었다.

구약성경 대부분은 선지자들이 기록한 것들이었다.

 

▲말씀 회복과 아울러, 또 한 가지 포로민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회복한 것은

여호와의 영광’이었다.

‘여호와의 영광’ 또는 ‘하나님의 영광’ 이란 말이 또 15차례 나온다.

 

에스겔서 1:4~28절에는 희한한 하나님의 모습이 길게 나온다.

이 하나님의 모습이 무엇을 상징하는지는 잘 알 수 없으나

한 마디로 설명한다면 <여호와의 영광>이다.

에스겔을 통해, 포로민 이스라엘에게 <여호와의 영광>을 보여주신 것이다.

 

겔1:28 ‘그 사방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

내가 보고 엎드려 말씀하시는 이의 음성을 들으니라’

 

‘내가 보고 엎드려’

여호와의 영광을 본 자는 엎드리게 되어 있다. 경배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그들은 부랴부랴 회당을 만들어 다시 모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성전이 없거나, 성전이 무너지면.. 다 끝날 줄 알았는데,

외적 건물로서 성전은 없어졌지만

내적 본질로서 ‘여호와의 영광’은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여호와의 영광’은 여전히 바벨론 땅 포로민 이스라엘 위에 머물고 있었고,

그들이 거주한 정착촌 델아빕 근처에

그 ‘여호와의 영광’의 임재가 나타났던 것이다.

 

(나중에 포로민의 후예들은 돌아와서 팔레스틴 땅에 델아빕 마을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오늘날의 텔아비브 라고 한다. 이스라엘의 국제법적 수도)

 

 

한국교회가 지난 20년 동안, 가장 강조했던 신앙 덕목 중 하나가

‘예배를 회복하자, 예배의 성공자가 되자 (그래서 인생의 성공자가 되자)’였다.

그런데 이 말은 교회당 안의 예배를 안 빠지고 드리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데 요즘 코로나19 사태로, 정말 역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는데

예배당 문이 (일정 기간) 닫혀버린 것이다.

하나님이 강제로 닫게 하셨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지금 현재 우리 상황은, 마치 포로민 이스라엘 상황과 유사하게 되어버렸다.

교회당에서 주일 낮예배가 문이 닫힌 이유는 여러 가지 측면이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하나님이 닫는 것을 허락하셨다는 것이다.

 

어쩌면 대부분의 우리 예배가 하나님 보시기에

이사야서 1장처럼 형식적이었다는 것일 수 있다.

이것은 세계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꼭 특정 나라가 아니라!

 

이런 지금 현실 상황에서

우리는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였느니라’ 하는 에스겔 같은 선지자들이

등장하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고 사실 이런 피눈물나는 마치 바벨론 포로민 같은 수모를 겪으면서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는’

그런 예배, 그런 신앙공동체들이 생겨나기를 기대해본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묻지마 식의 무조건) ‘과거 예배 회복’을

간절히 소망하며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나

 

그 날이 오기 전에 먼저 회복되어야 될 것은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는.. 진정한 말씀 중심의 예배’

‘여호와의 영광이 임하는.. 진정한 임재 중심의 예배’

이와 같은 본질이 어서 속히 회복될 때

비로소 하나님은 ‘이제 되었다 (게고넨)’ 하시며, 이 재앙을 거두실 것이다.

*계1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