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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열매를 맺으십니까? P3 / 폴 워셔

LNCK 2021. 1. 20. 14:53

 

www.youtube.com/watch?v=n7IjH6eFkYY&feature=youtu.be

◈당신은 열매를 맺으십니까? P3          요15:4~6, 고후12:10                출처 (34:10~66:00끝)

Do you bear fruit? 폴 워셔             

 

저의 아들들이 제게 질문을 한 적이 있죠

그 아이들이 아직 어릴 때였죠 이안이 저를 보고 물었습니다

‘아빠는 무슨 일을 하세요?

아빠는 비행기를 많이 타시고 여러 나라를 다니세요

그리고 돌아오셔서는 피곤하시고 아프시곤 하는데 무슨 일을 하세요 아빠?’

 

그때 저는 그냥 설명을 해 줄까 생각했죠 그래서 말해주었습니다

‘아들아 아직 네가 어려서 말해 줘도 모를 거다’

 

그러면 애들이 어떻게 할지 다 아시죠?

갑자기 더 궁금해 하죠

‘무슨 일 하시냐고요 아빠?’

 

제가 대답했죠 ‘말해 줘도 안 믿을 걸?’

그러지 않아 저를 계속 따라다니면서 묻더라고요 ‘아빠 무슨 일 하세요?’

 

그래서 말했습니다 ‘아들아 이 이야기 듣고 내가 인정할 수 있겠니?

그리고 나를 믿겠다고 약속하겠니?’

 

그러자 ‘네’ 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내가 무슨 일을 하냐고? 나는 용들과 싸운단다!’

 

그러자 아들은 ‘에이 아빠, 아빠가 무슨 용 들이랑 싸워요?’

제가 말했죠 ‘아까 아빠 말을 믿는다고 약속했잖니? 나는 용들과 싸운단다’

 

‘정말이에요?’

‘그렇다니까!’

 

‘크고 무서운 머리가 달렸나요?’

‘10개나 된단다 아들아!’

 

‘아빠 그러면 칼도 있어요?’

‘그렇단다’

 

여러분은 제가 아이에게 수수께끼를 하듯이 눈높이를 맞춘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정말로 사람들을 억압하고 죽이고 노예로 삼는 용들과 싸웁니다

용들과 싸운다고요! 너무 동화 같다고 생각하시겠죠

그렇지만 저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건 여러분들의 생각이니까요

 

여러분들은 모든 것들을 물리적으로만 생각하시나요?

그래서 여러분의 삶이 무료하게 느껴지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재미난 것을 찾아 TV를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반지의 제왕>을 시청하든지 아니면 실제로 살아 내실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죽어가고 아이들이 굶주리고 세상에는 억압 천지입니다

 

악한 정부들, 노예들, 상상할 수 있는 것들 모두요

수 천 명의 태아가 어머니의 자궁속에서 살해당하고 있습니다

저는 용과 싸우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모든 것이 달라 보일 겁니다

우리가 기독교 사역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절대로 못 합니다 못 해요

 

놀랍게도 요15:4절에 있는 ‘할 수 없느니라’는 말이 5절에도 반복됩니다

예수님은 이 위대한 진리를 우리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여러 번 반복 하십니다

 

우리는 그분을 떠나서는 할 수 없습니다 15:5

그리고 우리는 그 분을 의지할 때 할 수 있습니다

 

그분께는 무슨 일도 어렵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제가 선교사들을 가르칠 때면 제가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제게 한 남자와 성경책 한 권을 주세요 그리고 무릎 꿇고 기도한다면

우리는 한 나라를 얻을 겁니다”

 

이런 이유로 팔복이 심령의 가난함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이런 이유로 하나님의 섭리가 일하실 때 지속적으로 우리의 약함을 나타내 보이시는 겁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든 시험과 시련의 이유입니다

 

듣고 계시나요? 모든 시험과 시련!

당신의 삶에 모든 풍파 등은 당신의 무능함을 나타내 보이기 위함입니다

 

당신의 약함 그리고 그것들은

당신이 다시 하나님의 좇게 만들죠

 

저와 함께 다시 한번 생각해 봅시다

요한복음을 잠시 뒤로 하시고 고린도후서 4장 7절 보시죠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사용되는 단어들을 잘 살펴보시죠

바울은 ‘능력의 심히 큰 것이 그의 삶과 사역에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는, 그것이 자신이 아닌 하나님께로부터 온다고 말하고 있죠

바울의 말의 뜻은 이렇습니다

 

‘그 능력이 내 안에서 힘있게 역사 한다

그래서 사람이 성령의 기름부음 아래에서

그리고 자신의 은사 가운데서 운동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 능력이 사람 가운데서 역사 한 후에는

그의 육신은 힘이 빠져 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한 거죠

이안 머레이를 저는 신임 하는데, 그의 말을 잘못 인용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런데 진정한 부흥이 지속되지 않는 이유는

계속해서 끊임없이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사람의 몸과 정신이 그것을 견디지 못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못 합니다 그것을 우리의 진을 빼 놓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몇 분만 계셔 보십시오

그것이 어떤 느낌인지 아시겠나요?

 

그것은 EF5 토네이도에서 3자 정도 되는 곳에 가까이 앉아 있는 것과 같을 겁니다

 

바울이 말하죠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많이 고난을 당하나 부서지지는 않습니다

고뇌는 하나 절망하지는 않습니다

핍박을 당하나 버림 받지는 않습니다

호되게 맞으나 멸망 당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항상 그리스도의 죽음을 우리 몸에 지니고 다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나타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사는 자들은 끊임없이 예수님을 위해서 죽음에 넘겨집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의 유한한 육체 가운데 나타나는 거죠

 

바울의 말씀의 뜻을 이해하십니까?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일이며 계획된 것인데요

 

그래서 바울이 그 자신으로서는 어떤 희망도 갖지 못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성경 학자가 한 번만 더 바울의 지식(학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면

저는 아마 그를 쏘아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신약성경의 어느 부분에서 바울이 자신의 위대한 (인간적) 지식을 말하니까?

어디에도 없지요 (성령의, 그리스도의 능력입니다)

 

그런데 왜 바울의 이 모든 위대한 일들을 그의 지식과 결부시키는 겁니까?

바울은 그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서 말했는데요

그는 하나님의 일들에 대해서 무지하기를 원치 않는다고 했죠

 

그런데 그가 분명히 한 것은, 그는 지식적인 노력으로부터 자유하기를 힘썼습니다

그는 그 자신이 말했던 것들보다 훨씬 더 잘 이야기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는 항상 말할 때에, 그의 확신이 그의 지식적인 능력에서 나오지 않고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10절입니다

‘그러므로 이는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

 

제가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당신은 약함 가운데서 만족하시나요?’

이것은 또한 제가 싸우고 있는 부분 중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이 구절을 읽어도 어떤 싸움도 하지 않고

이 구절은 의미하는바 조차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화를 내고 싫어하는데, 이유는 마음이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나 하나님이 원하는 기대치에 못 미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삶이 그들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화를 내곤 합니다

그러나 약할 때 만족하고, 결점에 만족하고, 문제들이나 시험

심지어 핍박에 올 때까지 만족하고,

남들이 욕할 때, 좌절시킬 때, 환란이 올 때, 어려울 때

이 모든 것에서 그리스도를 위해 만족합니다

 

그럼 왜 바울은 그런 상황에서 만족할까요?

그는 말합니다 ‘내가 약할 때 강하고..’

 

그런데 바울 자신에게는 큰 힘이 될 수 있는 ‘약할 때에 강하다’는

그의 유익한 말은

우리가 기도 모임에서 잘 들을 수 없는 기도제목이죠

 

많은 사람들이 기도 모임에서 나눌 때, 이러한 모든 (환란, 약함) 것들을 피하기를 원합니다

그들이 그런 상황에 처해 있다면 그것들로부터 벗어나고자 하지요

 

바울은 그 상황을 안에서 만족한다고 하는데..

그는 이미 배웠기 때문이죠

 

그는 자신에게서 전혀 소망을 찾을 수 없을 때 그리스도에게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능력을 받아서 정말로 강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만약에 당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쓰임 받기 원하면

하나님이 기드온을 부르신 것처럼 당신을 부르실 것입니다.

 

‘기드온이여, 너는 이스라엘을 미디안으로부터 구원할 것이다!’

그렇지만 기드온은 두려움에 떨며 숨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를 찾아내어,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군대를 모으라고 명하시죠

기드온이 군대를 모집하자 하나님은 그들을 집에 보내라고 하시죠

군인의 숫자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문제가 뭘까요?

‘나는 할 수 없습니다..’ 라고 말하실 텐데요

‘왜냐면 저는 너무 작은 자입니다. 제게는 잘 하는 은사가 없어요

저는 특별히 뛰어나지도 않아요, 저는 이것도 저것도 없어요

이런 저런 핸디캡들이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께는 그 모든 인간의 약점들이

사람을 불러 쓰시는데 장점이 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군인들의 숫자를 오히려 줄이게 하셨습니다

‘너는 미디안 군대를 무찌를 수 없다 그러나 나는 할 수 있지

그리고 네가 미디안을 물리칠 때, 네게 그 공이 돌아가기를 원치 않는다’

 

그런데 여러분, 참으로 기이한 일은

하나님이 도저히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행하셨는데

사람들의 눈에 하나님의 역사가 분명히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기드온의 공이 별로 없는데도

사람들은 그를 신처럼 높이 추앙했다는 점입니다

 

우리도 똑같습니다 오직 모든 것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된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스스로, 또는 무리들은

자꾸 사람을 높이는 우를 범합니다

마치 그 놀라운 역사를 사람이 이룬 것처럼 여기기 쉽습니다

기드온의 경우에서 보듯이요!

 

 

가끔 저는 여러분들이 저희 집에 방문해 보시기를 원할 때가 있습니다

이유는, 사람을 누구라도 우상화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제 스스로 진실된 모습을 여러분께 보여드리기 원합니다

제 아내도 마찬가지고요

 

저희는 진정한 크리스천의 가정을 이루기를 노력합니다

저희는 계명으로 자녀들을 가르치고 주의 훈계로 양육하기 원합니다

여러분들이 저희 가정을 방문하시면

그런 좋은 점들도 보실 것입니다

 

그렇지만 또 저희의 인간적인 면도 보시게 될 것입니다

저희 가정도 여느 보통 가정과 비슷한 점들, 연약한 점들이 있습니다

 

여러분께 힘든 문제들이, 저희 가정에도 똑같이 일어납니다

부모의 인격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들, 부부의 인격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들을

저희들도 똑같이 겪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이, 저희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아시기를 원하고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문제를 갖고 있으니까요

 

일례로 우리는 정말 어리석은 문제들로 가정에서 다투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약함을 통해 역사하는 통로가 됩니다

 

그래서 저는, 제 아내가 저를 잘 이해해 주는 점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아내는 제 연약함을 늘 목격하는 사람이지만, 저를 비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 안에서 이해해 주려고 애씁니다

저는 집에서, 가끔 제 양말이 보이지 않을 때

제 급한 성격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정말 그 회색 양말 한 컬레 때문에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는 것이

한 순간에 실패로 돌아가는 것을 보시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 아내는 이렇게 말하지는 않습니다

‘여보, 당신은 양말 때문에 그렇게 화를 내면서

그러고도 외부로 설교하러 다니시는군요!’

 

제가 아내에게, 저는 진실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저도 여러분과 비슷한 한 사람일 뿐입니다

 

제 말의 요지는, 누가 높은 신앙 인격적 단계에 도달해서

주님의 일을 감당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랬으면 좋겠지만요

 

기드온을 위시해서 하나님께 쓰임받은 사람들을 보면

모두들 인간적인 면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연약함을 통해서, 오히려 주님의 능력의 크심을

드러내는 기회로 삼으셨습니다

 

우리가 모두 연약한 점을 가진 사람들이고

그래서 끊임없이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그러나 연약함 가운데서도 얼마든지 주님을 섬길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연약함 가운데서 제가 어디 가서 설교를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부족한 저를 통해서 일 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와 폴 워셔는 대단한 사람인데!’ 그렇게 칭송합니다만

말씀드렸듯이 저도 가정에 돌아가면 여러분과 비슷한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만약 역사가 일어났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부족한 저를 통해서 역사하신 것이지,

제가 위대하고 잘 나서가 아닙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분이 제게 말했습니다

제가 설교하고 떠난 한 대학교에서 부흥이 일어났다고 하더라고요

 

아마도 부흥과 동시에 소동도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 학교의 절반은 아주 저를 좋아했지만

나머지 절반은 아주 제 설교를 싫어할 터이니까요

 

어떤 대학교에서는 설교를 마치고 학생들이 저를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폴 목사님, 저희도 페루에 가서 목사님을 도와서 섬기고 싶은데요

가능할까요? 목사님처럼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저는 좋다고, 페루에 오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비행기 타고 오면서 저를 사도바울처럼 생각했겠죠

 

그런데 두 달 후에, 그들은 페루를 떠나면서

그들은 처음에 왔던 생각과 많이 바뀌어서 돌아갔을 것입니다

아마 제 인간적인 면을 많이 보았을 것입니다

(그 점을 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저는 그런 점을 내심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세상에 슈퍼맨은 없다고요 하나님은 우리 연약함을 사용하셔서

그 분의 위대한 일을 이루십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은 자신이 어떤 신앙 수준에 올라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신을 쓰시고 있다고 생각하죠

 

만약 그게 일면 사실이라고 해도

또 우리는 그 반대적 측면, 제가 위에서 말씀드린 면을 같이 고려해야 합니다

 

제 삼촌은 목회자이신데 언젠가 제게 이런 말을 해 주셨어요

제게는 정말 위대한 교훈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어떤 것도 하지 않는단다

왜냐면 그들은 항상 하나님이 자신을 어떤 수준으로 만드실 때까지 기다리기 때문이지

아니면 하나님의 일을 하기에 완벽한 상황이 만들어지기를 바라면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단다

너는 하나님이 부르시고 감동주실 때는, 지금 그 하나님의 일을 시작하거라!’

 

 

마지막으로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약함은 장애물 obstacle 이 아니고, 오히려 촉진제 catalyst 입니다

 

신자들이 약한 것이 문제가 아니고

오히려 신자들이 자신이 약한 것을 믿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자신이 얼마나 약하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강하다고 생각하는지.. 한 번 시험해 보시겠습니까?

 

여러분은 지난 한 주간 동안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보냈습니까?

여러분은 얼마나 많은 시간동안 기도하셨나요?

 

아주 잠시 잠깐만 여기에 시간을 쓰셨다면

여러분은 아주 자신을 강하다고 여기는 사람인 것입니다

강하니까 기도로 주님께 도움을 구하지 않는 것이죠

 

여러분들은 기도와 말씀안에서 그리스도께 다가가기 위해 애쓰십니까?

만약 아니라면, 그것은 여러분이 강하다는 증거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저는 약해요’ 하면서 거짓된 겸손을 나타내지 마십시오.

 

이제 보셨죠? 여러분은 자신이 얼마나 약하지 않은지...

그런데도 여러분은 입술로는 늘 자신이 약하다고 말하고 있는데요...

 

 

사람이 자기 약함을 더 많이 자각할 때

그는 그리스도께로 더욱 급히 다가가서 그분께 매달릴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그 사람의 강함과 위대함입니다

이것이 정말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우리는 어제 지은 죄를 회개하고, 오늘 또 재차 지을 수 있습니다.

그 전 주간에도 같은 죄를 지었습니다. 그 죄는 당신의 삶에 지겹게 따라 다닙니다

 

그런 사람이 또 실족했을 때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만약 그리스도께 또 용서를 구한다면 위선이 아닐까?

나는 어제도 회개했는데, 오늘 또 똑같은 죄로 넘어졌어

내가 제대로 회개하지 않은게 확실해! 나는 확실히 위선자야!’

 

여기서 더 나아가면 이런 잘못된 길로 빠집니다

‘이제 나는 그리스도께 나아갈 수 없어 그냥 포기, 체념하고 살지 뭐..’

이것은 마귀의 유혹입니다

 

참 회개는, 그 죄를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 회개는, 죄가 없는 완전함은 아닙니다

참 회개는 포기, 체념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믿고 의지하여, 계속 넘어져도 한 번 더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점점 성화의 길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한 번 회개했다고, 당장 성화에 이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저의 죄 중에 가장 큰 죄가 무엇인지 아세요?

제가 힘겹게 싸우고 분투하는 죄는.. 불신앙 unbelief 과 걱정 worry입니다

 

그리고 저는 가장 작은 문제들이, 내 생각속에서

무섭고 걱정스럽게 변하는 것을 봅니다. 불신앙과 걱정이죠

 

하나님은 우리를 큰 문제들로부터 구출 deliver 해 주십니다 *영혼 구원, 천국 영생 등

그런데 저는 작은 문제들로 걱정합니다

그래서 제가 회개하고 그 불신앙과 걱정을 다 내버립니다

 

그런데 며칠 안 되어, 똑같이 작은 삶의 문제로 제가 또 걱정하고 불신앙 하는 것을 봅니다

(건강이나 물질 또는 사역 등 삶의 문제로요)

그럼 저는 다시 불신의 죄를 회개하고 주님께 힘을 얻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전에 제가 회개한 것은 참 회개가 아니었나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회개는.. 지속적인 과정입니다

승리도.. 조금씩 더 더 큰 승리를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한 번 회개했다고, 갑자기 크게 뭐가 달라지지 않습니다.

회개도, 승리도.. 끊임없이 한 걸음, 한 걸음씩 전진하고 성숙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이 느린 성화의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중간에 낙심하고 좌절해서 포기하는 것입니다

‘나는 회개했는데도 또 죄를 짓는 것을 보니 영 가망이 없구나! 나는 위선자구나!’

하면서 포기하고 좌절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굳게 뿌리내리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기 회개가 피상적인 것 같지만, 꼭 그렇지 않습니다

자꾸 똑같은 회개를 반복하면서.. 우리는 점점 성숙해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수없이 반복해서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주님께로 달려갈 수 있는 것은

주님의 사랑에 우리가 굳게 기초할 때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주님께서, 우리가 반복해서 회개한다고, 우리를 물리치시겠습니까?

 

물론 이런 갈등이 전혀 없는 신자들도 많습니다

그들은 성화에 이르렀기 때문에 그런 갈등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아직 진정 거듭나지 못했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새생명이 태동되지 못했으므로, 성화에 대한 갈등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롭게 태어나서, 자기 죄 문제로 계속해서 투쟁하는

진실한 크리스천인 여러분들은

언제나 그리스도의 크신 사랑안에 머물러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 가운데서 가장 어려운 게 뭔지 아시나요?

당신의 신앙 여정에서 가장 힘든 일은

그 높은 경건의 정상에 올라가기 위해 가장 어려운 일은

우리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진실로 믿는 일입니다

 

이것은 당신이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산이 아닐까요?

제 말은 ‘내가 죄를 지으면 은혜가 더하겠지?’ 하면서

죄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사랑’이 아닙니다

 

정말 경건하게 살기 원하고, 정말 성화되기 원해서

매일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며, 포도나무 가지로서 애쓰는데도

우리가 좌절하고, 스스로 위선자처럼 여겨지고

내 마음에 갈등이 일어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한 번 내 마음에 굳게 되새기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실패하고 반복해서 넘어지더라도

내가 회개하고 돌이키면, 나를 용서하시고 다시 사랑해주시는

 

그 크고 넓으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무조건적인 사랑에..

우리가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나의 반복되는 좌절과 연약함을 통해서요!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