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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38~39장.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종말의 전쟁

LNCK 2021. 2. 25. 15:05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종말의 전쟁         겔38~39장        2021.02.25.큐티묵상

 

에스겔 38~39장은 소위 ‘곡과 이스라엘의 전쟁’으로 알려진 유명한 장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미래 어느 시점에, 즉 종말에,

이스라엘을 둘러싼 여러 주변 국들이, 모두 연합해서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이며

절대 열세인 이스라엘이 그러나 기적적으로 승리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사람들은 본문 겔38~39장의 전쟁을, 종말에 되어질 '아마겟돈 전쟁'과 연결시킨다.

왜냐면 계시록 20:장 8절에서 본문의 전쟁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  계20 :8

 

▲이 종말전쟁을 문자적으로 볼 것인가, 상징적으로 볼 것인가?

정통 복음주의 진영에서는, 본문의 전쟁과 요한계시록의 종말전쟁을

‘상징적’ 전쟁으로 본다.

 

실제로 사람들이 무기를 들고 싸우는 전쟁이 아니라

마귀와 하나님의 백성 간의 영적인 전쟁으로 본다.

그래서 본문의 이스라엘의 승리는

믿는 신자들이 마귀로부터 승리하는 식으로 해석한다.

 

이와 반대 진영에서는 본문의 전쟁, 요한계시록의 전쟁을 ‘문자적’으로 해석해서

실제로 종말에 중동에서 세계대전이 일어날 것으로 해석한다.

소위 ‘아마겟돈 전쟁’이다.

 

내 생각에는, 두 주장이 서로 대립하거나 싸울 필요가 없다고 본다.

둘 다 장점만 받아들이면 된다.

두 진영이 가지고 있는 극단적 단점을 배격하면서, 장점만 각각 받아들이면 된다.

 

▲먼저 생각할 것은, 본문 겔38~39장은, 요한계시록처럼 <묵시적>이라는 것이다.

(뒤 이어지는 40~43장의 새 성전에 대한 환상에 이어 48장 끝까지도 주로 묵시적)

 

묵시문학이란 말 자체가 어려운데, 쉽게 우리가 쓰는 말로는 ‘판타지’이다.

그러니 본문 겔38~39장이나 요한계시록은 ‘판타지 장르’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본문에 ‘판타지, 묵시’라는 단어가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신학자들은 그렇게 분류한다)

 

이 ‘묵시, 판타지’ 말은.. 이 본문의 내용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손오공전, 홍길동전을 읽을 때, 문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과 같다.

 

그렇다고 반대 극단으로, 그래서 본문을 ‘100% 상징적으로만’ 이해한다면

나중에 실체가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되는.. 극단에 빠질 위험이 있다.

 

본문의 전쟁도 상징적인 영적 전쟁이요, 계시록의 전쟁도 다 영적인 전쟁이라면..

더 연장선상에서 계시록의 ‘천국과 지옥도 다 영적인 천국과 지옥이다'...

이렇게 (잘못, 극단적으로) 빠질 수도 있는 것이다. 

‘전쟁만 상징적이고, 천국과 지옥은 실제적인 곳이다’라고 차별할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정리하면,

본문 겔38~39장이나, 요한계시록의 전쟁은

실제적인 전쟁이 있으리라고 보지만, 이게 100% 문자적 예언은 아니다..

라고 본다. 왜냐면 ‘묵시문학, 판타지’니까!

 

▲에스겔이 본문의 예언을 한 다음에,

그 성취는 아직까지는 일어나지 않았다고 본다.

 

바벨론에 이어 헬라, 로마시대에 이스라엘이 헬라제국, 로마제국의 공격을 받았으나

그들이 (각국에서 군대를 차출했다고 하더라도) ‘연합군’으로 보기는 어렵고,

또한 이스라엘이 그 헬라제국이나 로마제국을 싸워서 이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20세기에 1967년의 ‘육일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한 것은,

아마도 본문 겔38:~39장의 전쟁에 가장 가까운 성취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이 연합해서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였으나

열세였던 이스라엘이 정말 기적처럼 승리했었다.

 

앞으로 미래는 어떨지..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본문의 ‘로스’가 정말 ‘러시아’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도.. 단정할 수는 없다.

그래서 미래에 되어질 상황을 족집게처럼 예측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앞서 요한계시록에서도 살펴 보았듯이, 성경의 예언서는

‘미래를 족집게처럼 예측해서 보여주는 목적’으로 쓰여지지 <않았다.>

그게 본문 기록의 일차적 목적이 아니다.

 

‘성경은 미래를 전혀 예측하지 않았다’ .. 라고 단정지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성경은 미래를 예측해 보여주는 책이다’ .. 라고 규정하기도 어렵다.

 

본문 겔38~39장이나 요한계시록이 쓰여진 목적은

‘미래에 이런 저런 어려움이 있을 것이나, 승리가 작정되어 있으니

성도는 흔들리지 말고, 너무 불안해하지 말고.. 믿음 생활에 인내로 승리해라!’

이것이 본문의 기록 목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본문 겔38~39장이나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미래의 타임테이블을 짜면서,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려는 시도를 중단해야 하며

(어느 정도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 모르나, 정확한 예측은 성경만으론 불가능하다)

성경의 묵시록을 그런 호기심으로 접근하는 것 자체가.. 건강하지 못하다.

 

건강한 신앙은.. 하나님이 알려주신 범위 안에서

신앙생활을 더 열심히 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의 표현대로라면 ‘이기는 자’가 되는 것이다.

 

 

◑본문 겔38~39장에서 한 가지 묵상할 주제는

하나님이 기획하고 이끌어가시는 종말 전쟁’이다.

 

마치 욥의 고난을, 하나님이 천상에서 다 각본을 짜셨듯이

‘곡과 이스라엘의 전쟁’ 역시, 하나님이 전쟁 촉발의 제1 원인자가 되신다.

 

즉 마귀가 일으키는 전쟁?

곡과 그 연합국이 일으키는 전쟁?

그런 요소가 없잖아 조금 포함되어있을지 모르나,

전쟁을 일으키시는 제1 원인자는 하나님이시다. 본문 성경에 그렇게 나온다.

 

겔38 :4~6절 ‘(내가) 너를 돌이켜 갈고리로 네 (곡의) 아가리를 꿰고

너와 말과 기마병 곧 네 온 군대를 끌어내되

완전한 갑옷을 입고 큰 방패와 작은 방패를 가지며 칼을 잡은 큰 무리와...

내가 이 큰 대군을 끌어내리라’

 

하나님이 곡을 갈고리로 꿰어서 다른 연합군과 함께 전장으로 끌어내신다는 것이다.

 

겔39 :2절에도 “하나님이” 너 곡을 강제로 이끌로 나오신다고 본문에 나와 있다.

여기도 ‘이스라엘 산 위에 이르러’ 라고 했는데,

계시록은 이 전쟁이 행해지는 장소를 ‘아마겟돈’ (하르 므깃도, 므깃도 산)이라 했다.

  

겔38 :6 ‘고멜과 그 모든 떼와 북쪽 끝의 도갈마 족속과 그 모든 떼

곧 많은 백성의 무리를 너와 함께 (내가, 하나님이) 끌어내리라’

 

 

◑하나님이 (영적) 전쟁을 붙이시는 이유

 

1) 이방 나라에 대한 심판이 그 이유가 될 것이다.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해서, 이스라엘을 추격하게 하신 것은

바로와 그 군대를 멸하기 위함이셨다.

 

2) 이스라엘에 또한 주변 열방에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리시고,

하나님이 영광을 받게 하기 위함이다.

 

3) 이스라엘의 신앙적 연단과 성숙을 위함이다.

 

본문의 전쟁이 미래에 일어날 종말전쟁일 뿐만 아니라,

오늘날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영적 전쟁’으로 이중적으로 해석할 경우,

 

오늘날에도 하나님이 격동하고 촉발시켜서

나의 대적들이 연합해서 나를 에워싸고 공격하게 하시는 것은

나를 강하고 담대한 용사로 만드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요, 훈련과정인 것이다.

 

내가 저절로, 아니면 태어날 때부터 강한 용사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런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정말 우리 각자는, 하나님이 붙여주시는 크고 작은 영적 전쟁에서

하나씩 그 승리를 경험해 나가면서.. 종국에는 크고 강한 용사가 되는 것이다.

 

마치 소심하고 겁이 많았던 기드온이 크고 작은 전쟁을 거치면서

크고 강한 용사가 된 것과 같다고 하겠다.

 

 

◑참고로, 요한계시록의 재앙도 <하나님께서> 일으키신다.

 

계6:장 이하에서 하나님께서 권세나 허가나 승인을 해주셨다는 말씀에

밑줄을 그어 보면, 아주 자주 나온다.

 

'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그가 면류관을 받고' -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계6 :2

 

'이에 다른 붉은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계6 :4

그 말탄 자가 땅에서 화평을 제하도록 허락을 받았다. 하나님이 허락해 주셨다.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그들이 땅 1/4의 권세를 얻어' 계6 :8

 

그들이 땅을 해할 권세를 얻었다.

누가 이런 것들을 주셨는가? 하나님께서 주셨다.

 

이것은 계시록 7:장에서도 계속된다.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계7 :2

 

'내가 보매 하나님 앞에 일곱 천사가 서 있어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 8 :2

 

그 외 9 :1, 9 :3, 9 :5절 또 13:장에도 곳곳에 나와 있다.

본문 겔38~39장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주도하시는 전쟁이다.

 

▲마치는 말

이렇게 계시록과 아울러, 본문 에스겔 38~39절의

소위 ‘곡 연합군과 이스라엘의 전쟁’에서

하나님이 그 모든 전쟁을 기획, 주도, 이끄신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물론 그런 와중에 마귀의 간계, 인간의 죄성, 타락한 본성을

도구로 사용하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도권은 엄연히 전능하신 하나님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의 눈에는 쓸데 없어 보이는 이런 전쟁을

(그게 영적이든지, 육적이든지, 아니면 둘 다 든지)

우리에게 고통받도록 허락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위에서 그 이유를 대략 세 가지로 급하게 상상해 보았는데,

욥기에서도 비슷한 비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욥기 1~2장에 하나님과 마귀가 등장해서, 어떤 대화가 오고 간 후에

그때부터 욥이 이 지상에서 극심한 환란을 겪게 된다.

하나님이 주도하신 환란이었다.

 

그렇지만 결국 욥의 승리로 끝났다.

이 환란 (어떤 의미에서의 영적 전쟁, 육적 전쟁)을 통해서

욥은 신앙이 정결해지고, 연단을 받았으며

더욱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존귀와 영광을 돌려드리는 영적 거물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욥의 승리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셨다!

‘하나님께 영광 돌림!’ - 이것이 욥의 환란, 신앙 승리의 가장 큰 주제일 것이다.

 

우리모두는 쉽게 쉽게 살다가, 무사하고 평탄하게 천국에 가기를 소원한다.

영적 전쟁이든지, 육적 전쟁이든지, 환란이든지.. 그런 것은 아예 없기를 바란다.

 

그런데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그들에게,

이스라엘의 회복의 약속을 주시는 가운데서, 즉 겔25~48장 가운데서

하나님은 또 ‘곡 연합군과의 전쟁’을 묵시적으로 보여주셨다.

 

왜 이런 쓰잘데기 없는 전쟁을 주시느냐고.. 우리는 하나님께 물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근본적 통치적 주권에 속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런 질문은 ‘하나님과 동급’에 속한 천지의 주재자나 할 수 있는 질문이다.

다만 우리 현실은 ‘그런 전쟁을 통과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이다.

 

계시록에서처럼, 최후 승리는 이미 약속, 보장되어 있다.

그렇다면 전쟁이 있다는 현실을,

현실로 겸허하게 수용하고 받아들이고

이 전쟁을 내가 어떻게 겪어나가고, 헤쳐나가야 할 것인가? .. 이것이 내 과제다.

 

-하나님의 섭리의 선하심을 믿고서

능동적, 긍정적, 적극적으로 헤쳐나가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래서 그 전쟁을 어느 정도 즐기는 수준에 도달한 성도도 있을 것이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부족해서

수동적, 부정적, 소극적으로 마지 못해 불평하며 헤쳐나가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전쟁을 몸서리만 치며,

마치 어릴 적에 학교에서 예방주사 맞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다가

결국 주사를 맞고야 마는..

그렇게 어렵고 힘들게 전쟁을 치르며 지나가는 성도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