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된 하나님 나라의 비전 겔48 :30~35 출처
(◑땅 분배의 영적인 특징 → ▲3. 거룩한 땅 중앙 남단에 있는 “여호와삼마”..
이렇게 갈색 부분이 "새관점"입니다. 천국이 계속 성장한다는 통찰력입니다. )
「죽음의 수용소」의 저자 빅토르 프랭클은
독일 나치에 의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힌 적이 있습니다.
이 사람의 직업이 정신과 의사이다 보니 수용소에서 사람들을 관찰하게 되었는데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사람들이 많이 죽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조사해보니 성탄절에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는데
돌아가지 못하자 소망을 잃고 죽은 것입니다.
소망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아무리 의학적으로 죽을 위기에 처해있는 사람도 소망만 있으면 살아날 수 있습니다.
▲에스겔은 바벨론 포로로 끌려온 유다 백성을 향하여 예언하였습니다.
이들은 고향도 잃었고 성전 또한 파괴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힘으로는 결코 포로생활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절망 가운데 빠져 있는 유다 백성에게, 에스겔 선지자는
소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자신들의 땅과 성전이 회복될 것이며, 떠났던 여호와의 영광도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유다 백성에게 예언하였습니다.
소망이 가득한 새 시대가 올 것이라는 이 말씀을 믿는 사람은
아무리 포로생활이 힘들어도 견딜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 같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천국 소망을 붙들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영혼 속에 천국 소망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에스겔 47:장 13절부터 끝절까지는 회복될 땅의 분배에 관한 내용입니다.
◑땅 분배의 내용
▲1. 에스겔 47 :13~23은 땅은 동서남북 경계를 정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수아 시대에 땅을 분배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는 출생의 순서대로 땅을 분배했습니다.
하지만, 에스겔 47~48장에서는 전혀 다르게 땅을 분배합니다.
동서남북 경계 중 북쪽 경계는 하맛부터 스닷까지입니다.
그리고 동쪽 경계는 요단강까지입니다.
여호수아가 분배할 때는 요단강 동편에도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가 있었지만
에스겔이 분배할 때는 요단강 동편은 분배하지 않습니다.
남쪽 경계는 다말에서 애굽 와디를 지나 지중해까지이며
서쪽 경계는 지중해까지로 경계를 정해서 분배하였습니다.
▲2. 겔 48:1-29은 구체적인 땅의 분배를 정하고 있다.
첫째, 12 지파에게 균등배분하되 동서로 직선으로 배분하라고 했습니다(47 :14).
여호수아서에는 땅의 지형을 따라 분배를 했습니다.
강이 있거나 산이 있으면 그 지형을 따라 땅을 분배하다 보니
지파마다 차지한 땅의 크기가 달랐습니다.
하지만, 에스겔서에는 땅의 지형을 무시하고 균등하게 동서로 나누어 배분했습니다.
12 지파 중 레위 지파는 가운데 땅을 차지하기 때문에
11 지파인데 요셉의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에게는 각각 땅을 주어서
총 12개의 땅으로 나누었습니다.
“내가 옛적에 맹세하여 이 땅으로 너희 열조에게 주마 하였었나니
너희는 피차 없이 나누어 기업을 삼으라 이 땅이 너희의 기업이 되리라” (47:14)
‘피차 없이’라는 말은 영어로 ‘equally’입니다.
즉 아무런 규모의 차이가 없도록 동일하게 나누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둘째, 유다지파의 땅과 베냐민 지파의 땅 사이에 ‘거룩한 땅’을 두라고 했습니다.
셋째, 거룩한 땅 북쪽으로 일곱 지파, 남쪽으로 다섯 지파를 두라고 했습니다.
넷째, 거룩한 땅은 “이스라엘 온 족속”의 소유이며(45:6)
좌우편은 왕의 땅, 중앙 북쪽은 레위인 땅, 중앙 가운데는 제사장의 땅이며
성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앙 남쪽은 “성읍”(Holy City)을 두라고 했습니다.
▲3. 에스겔 48:30~35절은 성읍(Holy City)에 동서남북으로 세 개씩 문을 두어
12개 출입구를 만들고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고 하였다.
에스겔 30~35절에서 성읍의 문이 동서남북으로 세 개씩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총 12개의 문마다 12 지파의 이름이 다 기록이 되어 있었습니다.
동서남북으로 문이 다 열려 있기 때문에
사방에서 어디서나 다 들어올 수 있는 이 성읍이 바로 여호와삼마입니다.
여호와삼마는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땅 분배의 영적인 특징
▲1. 이방인도 이 땅을 기업으로 가질 수 있다(22~23절).
12지파에게 균등하게 땅을 분배하였는데, 어떻게 이방인이 땅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그 방법은 어느 한 지파에 소속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방인도 한 지파에 속하여 자녀를 낳고 살아가면,
그 지파의 땅을 받아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서도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으면 이스라엘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할례를 받아도 이방인들에게는 절대 허용되지 않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땅을 기업으로 갖는 것입니다.
하지만, 에스겔 선지자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이 완전히 없어졌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엡2 :19)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도 이방인입니다.
이 말씀이 없었으면 우리도 이 성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통하여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이 없어졌다고
선포하셨기 때문에 대한민국 사람들도 예수님 믿고 천국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2. 땅의 배분에는 균등한 면도 있고, 차별을 두는 면도 있다.
첫째, 균등한 점은 땅의 규모가 동일합니다. 12 지파 땅의 규모는 모두 같았습니다.
모양이 다르긴 했어도 땅의 크기를 재보면 모두 똑같았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신분, 성별, 국적에 차별이 없는 것입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3 :28)
하나님 나라에는 가난한 자, 부유한 자, 권력이 많은 자에 상관없이
예수님을 믿어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둘째, 차별을 두는 점은 땅의 위치에 있어서는
이스라엘 과거 역사의 공과를 고려하였습니다.
먼저 본처의 소생들은 성전 가까운데 배당받고
첩의 소생들은 성전에서 먼 곳에 배당받았습니다.
땅의 위치를 볼 때 가장 꼭대기 북쪽 땅을 차지한 것은 단 지파입니다.
단 지파는 사사기를 보면 하나님 앞에 항상 반항하고 우상숭배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성전과 가장 먼 북쪽에 자리 잡은 것입니다.
야곱에게 열두 명의 아들과 네 명의 아내가 있었는데
네 명의 아내 중 두 명은 본처고 두 명은 첩입니다.
본처는 외삼촌 라반의 두 딸 레아와 라헬입니다.
그리고 첩은 레아와 라헬의 여종 실바와 빌하였습니다.
야곱의 아들 중 본처에게서 나온 자식은 여덟 명입니다.
그 중 레아가 여섯 명을 낳고 라헬이 요셉과 베냐민 이렇게 두 명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네 명은 첩의 소생들입니다.
지도를 보면 첩의 소생들은 먼 곳을 차지했고
본처의 소생들이 성전 가까운 곳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천국에는 모두 들어가지만,
그 사람의 공과를 계산해서 위치를 배분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단 지파는 12 지파에 속하기 때문에 땅을 분배받기는 했지만,
그들이 범한 과실 때문에 성전과 가장 먼 곳에 있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곳을 차지해야 하겠습니까?
이 세상을 살면서 열심히 공을 세워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곳을 차지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제사장의 땅은 사독의 후손에게만 배당되었습니다(48:11).
제사장의 땅은 가장 중앙에 있습니다. 마치 반지로 치면 다이아몬드가 있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이 땅은 사독의 후손에게만 배당되었습니다.
사독 외에도 아비아달이란 제사장이 있었지만
아비아달의 후손은 그 땅을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이 땅으로 사독의 자손 중 거룩히 구별한 제사장에게 돌릴찌어다
그들은 직분을 지키고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할 때에 레위 사람의 그릇한 것처럼
그릇하지 아니하였느니라” (48:11)
민수기 25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싯딤에 이르러 모압 여인들과 음행을 합니다.
그리고 모압의 신을 받아들입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께서 염병을 내리시고 이만 사천 명이 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이 모압 여인을 데리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본 아론의 손자인 비느하스가 창을 가지고 두 사람을 죽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진노를 거두시고 염병을 그치게 하셨습니다.
“그와 그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
그가 그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니라” (민25 :13)
이 언약을 가리켜 비느하스 언약이라 말합니다. 사독은 비느하스의 후손이었습니다.
그리고 열왕기상 1, 2장을 보면 다윗 시대에 제사장으로
사독과 아비아달 두 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 통치 말기에 다윗의 아들 아도니야가 반역을 일으키자 아비아달은
요압 장군과 함께 아도니아 편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사독은 다윗 편을 들어 끝까지 자리를 지켰습니다.
결국, 솔로몬이 왕으로 세워지자 아비아달을 제사장직에서 파면해버립니다.
그리고 사독을 대제사장으로 임명합니다.
그리하여 제사장의 땅을 영원토록 받게 되는 큰 축복을 얻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균등한 면도 있지만, 차별성 또한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진리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천국에 가는 기본 구원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하지만, 천국에 가서 받는 상급은 그 사람의 일생에 걸친 공과가 그대로 반영되기 때문에
차별성이 있는 것입니다.
짧은 인생을 살아가시면서 하나님을 향해 공을 세우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현세에서 영원히 살 수 없습니다.
우리의 참 생명은 내세에 올 생명인 것입니다.
그때에 하나님으로부터 상을 받는 인생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3. 거룩한 땅 중앙 남단에 있는 “여호와삼마”와
계 21장에 나오는 “새 예루살렘”이 비슷합니다.
새 예루살렘도 열두 문이 있습니다.
그리고 열두 문마다 이스라엘 12 지파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삼마에도 하나님이 계시고 새 예루살렘에도 하나님이 계십니다.
이런 점에서 서로 유사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차이점도 있는데, 새 예루살렘의 영광과 크기가 여호와삼마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의 재료는 모두 보석입니다.
세상에서는 다이아몬드가 매우 귀하지만,
천국에 가면 다이아몬드는 화장실 보도블록으로 쓰입니다.
이것은 새 예루살렘의 영광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새 예루살렘의 크기는, 여호와삼마보다 백배가 더 큽니다.
새 예루살렘의 길이는, 동서남북으로 이천이백 킬로미터나 됩니다.
그러나 공통점이 있다면 오직 믿음이 있는 사람만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계21 :26~27)
새 예루살렘은 천국입니다. 그리고 여호와삼마는 천국의 상징입니다.
이곳에는 어린 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만 들어갑니다.
우상숭배를 하는 자나 이단들은 들어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와삼마가 작고, 새 예루살렘이 크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나님 나라는 그 영광과 크기가 성장하는 나라임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마13 :31~33)
천국은 정체된 나라가 아닙니다. 밀가루에 누룩을 넣으면 점점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천국은 점차 그 크기가 커지는 것입니다.
여호와 삼마는 작지만, 100배나 더 큰 새 예루살렘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4. 이 땅은 하나님이 영원히 임재하시고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중심이 되는 땅입니다.
새 예루살렘은 만국 사람들이 들어갑니다.
이 나라는 정체된 나라가 아니라, 성장을 하다가 결국은 완성될 나라입니다.
이 나라에는 영생이 있어 이 나라 시민은 영원히 삽니다.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생명수강이 흘러나오며 과실나무들이 있어, 매달 과실을 맺습니다.
그리고 과실나무 잎사귀를 데면 병든 사람이 그대로 치유되어
죽지 않고 영생하는 이 나라가 바로 새 예루살렘입니다.
◑이런 비전이 필요한 이유
1. 천국 비전이 있어야 현세의 유혹과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어려워도 쓰러지면 안 됩니다. 지금 힘들어도 절망하지 마십시오.
잠깐 살다 보면 천국 영광이 우리에게 분명히 올 것입니다.
2. 사망의 두려움을 이길 수 있다(빌1 :21).
사람은 누구나 한번은 죽음을 겪어야 합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빌1 :21)
바울은 죽는 것이 더 좋다고 말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들은 많지 않습니다.
조금만 몸의 병이 들어도 죽으면 어쩌나 걱정하며 죽음을 굉장히 두려워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죽으면 더 좋은 세계로 가는데 왜 두려워합니까?
우리에게는 죽음 너머 더 영광스러운 세계가 있는 것입니다.
◑마치는 말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 (시 37:11),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마 5:5),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시 37:9)
온유한 자와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가 차지하는 땅은 바로 여호와삼마의 땅,
그리고 새 예루살렘의 땅입니다.
그런데 이 땅을 차지하되 성전에서 먼 변두리의 땅을 차지하지 마시고
성전에서 가장 가까운 땅을 차지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