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들도 성령을 받다 행10:44~48 2022.09.25. <방언>
부제 : 성령세례의 증거는 방언인가?
*주제 요약 및 해설
행10:44~48절, 고넬료의 집에 성령이 강림한 본문에서
성경이, 그리고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 포인트는
'유대인에게 부어졌던 성령이, 이방인에게도 똑같이 차별없이 부어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럼 본문에 의거
'성령 받은 증거는 방언을 말하는 것이다' 라는 주장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틀린 주장인가요?
'성령 받은 증거는 방언을 말하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계는, 이 신학 명제는 100% 맞다고 주장하지는 않는 게 대세입니다.
만약 이 명제를 100% 맞다고 주장하면... 성령론에 있어서 극단에 빠지는 거죠.
그렇지만 '성령 받은 증거는 방언을 말하는 것이다'
이 주장이 틀린 말도 아닙니다.
거의 almost 맞는 말입니다. 다만 예외가 있다는 거죠. (방언 못 해도 성령 받습니다)
'성령 받은 증거는 방언을 말하는 것이다'
이 주장이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이 말이 100% 틀린 것처럼 말해서는 안 됩니다. 거의 맞는 말이니까요.
예를 들면, '한국 사람은 김치를 좋아한다'는 말은 맞습니다.
그렇지만 '한국 사람 중에 김치를 안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애들은 안 좋아해요)
그렇다고 ''한국 사람은 김치를 좋아한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닙니다.
성령 받은 모든 사람이 방언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령 받은 사람은 방언을 말한다'는 명제가, 틀린 말은 아닙니다. / 편집자 주)
◑행10:44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가 설교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설교가 도중에 끊깁니다.
설교를 듣고 있는 가운데, 성령이 내려오셨기 때문입니다. :44
누구에게요?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요.
여기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은, 이방인 모두를 말합니다.
이방인 고넬료와 그가 초청한 이방인 무리들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은 거죠.
이걸 우리는 신학적으로 '성령 세례'라고 부릅니다. Baptism of the Holy Spirit
성령 세례라는 건 예수를 믿을 때 받는 성령을 말합니다.
고전12:3절은 이렇게 말씀을 하는데요.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성령이 아니고서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로 믿을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성령이 무엇을 하시는 분이신가?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게 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 성령 세례가 오늘 이방인들에게 일어난 것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을 때, 그들이 성령을 받습니다.
그 결과로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이걸 우리는 '성령 세례'라고 부릅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예수를 주로' 진실로 믿는다면
성령 세례를 이미 받은 자입니다.
또 한 번 더 받아야 할 성령 세례는 없습니다.
예수를 (진실로) 믿는 사람은 이미 성령 세례를 받은 자입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의 남은 과제는, 엡5:18절의 말씀처럼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이것이 성령(세례) 받은 사람들이 평생에 걸쳐 감당해야 할 순종의 삶입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성령 세례를 받은 이들에게 나타난 현상인데요. 그 현상이 무엇이죠?
10:46절에 보시면 '이들이 다 방언을 했다'고 말합니다.
-첫 번째 장면은 이방인들이 다 성령 세례를 받았고요.
-두 번째 장면은 모두가 다 방언을 했습니다.
성령 세례를 받더니, 모두가 다 방언이 터진 거죠.
만일 여러분이 예수를 믿는다면, 성령 세례를 받은 자입니다.
이 본문에 나오는 성령 세례와 방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요?
먼저 이걸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도행전의 전체적인 그림 안에서
이 본문을 이해해야 합니다.
여러분 성경을 해석할 때 가장 중요한 원칙이 있습니다.
성경은 언제나 언제나 문맥 안에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본문 또한 문맥 안에서 해석이 되어야 합니다.
넓게는 '사도행전 전체'라는 문맥 안에서 해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사도행전에 보면, 성령을 받는 장면이 몇 번 나올까요?
굉장히 많이 나올 것 같지 않습니까?
우리가 사도행전하면, 성령행전이다.. 그렇게 이해하지 않습니까?
성령을 받는 장면이 굉장히 많이 나올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딱 4번밖에 안 나옵니다. 4번밖에 나오질 않습니다. 굉장히 의외이죠.
오늘 본문을 포함해서 네 번이 전부입니다.
1) 첫 번째 성령받는 장면은 2:4절인데요.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오순절에 모였던 120명의 제자들, 이들은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이들 유대인들이 오순절에 성령을 받습니다. 예수님이 약속하셨던 성령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제자들에게, 오순절 날에 임했습니다.
이걸 우리는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이라고 말합니다.
이게 성령을 받는 첫 번째 장면이고요.
2) 두 번째 장면은 8:17절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여기 그들은 사마리아 인들을 말합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혼혈인이었죠.
이방인과 유대인이 섞인 혼혈인이었습니다. 이들이 성령을 받습니다.
3) 세 번째 장면은 오늘 본문입니다.
10:44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 성령이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의 말씀을 듣고 있던 이방인 모두가 성령을 받습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성령을 받는 장면은 딱 3번만 나왔습니다.
-첫 번째는 유대인들
-두 번째는 사마리아인들
-세 번째는 이방인 고넬료와 그의 무리들, 이 순서대로 성령을 받습니다.
물론 이 사람들 말고도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은
모두 다 사도행전 안에서 성령을 받았습니다.
사도행전은 지금 10장까지, 딱 세 번만 성령 받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성령받은 장소를 눈여겨 보십시오.
첫번째는 유대, 두번째는 사마리아, 세 번째는 땅끝
행1:8절이 떠오릅니다. 1:8절의 순서대로 복음이 확장되고, 그 순서대로 성령을 받습니다.
처음에는 유대인들이, 그 다음에는 사마리아 인들이, 그 다음에는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예수를 믿은 확실한 증거가 무엇이냐?
바로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 성령 강림이 대표적 상징적으로 2장에 나오는 거고요.
유대인들이 오순절에 성령을 받았던 거죠.
두 번째 성령 강림이 대표적 상징적으로 8장에 나옵니다.
8장에서는 사마리아 인들이 상징적으로 성령을 받습니다.
세 번째 성령 강림이 대표적 상징적으로 10장에 나옵니다.
이방인들이 성령을 대표적으로 받습니다.
이걸 연이으면, 행1:8절의 퍼즐이 맞춰지는 거죠.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
행1:8절의 순서대로 구원의 문이 열립니다.
그 증거로, 성령을 받은 사건이 상징적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새 언약 백성이 되었다는 샘플로
2장의 오순절 성령 강림이 나옵니다.
이어서 사마리아인들도, 하나님의 백성에 편입되었다는 샘플로
8장에 성령 강림이 나옵니다.
이어서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백성에 편입되었다는 샘플로
이방인의 첫 회심자인 고넬료가 대표로, 상징적으로 성령을 받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대와 사마리아와 이방인들로 복음이 넘어가는 딱 그 지점마다
성령을 받는 장면을 기록해 놓음으로써
행1:8절의 성취를, 누가는 우리에게 친절하게 마치 이정표처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지금 고넬료가 성령을 받았다는 기록이 상징적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이제는 이방인들도 구원을 받는 일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가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성령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성령이죠?
마가의 다락방에서 유대인들에게 임했던 오순절 성령을
이방인들도 똑같이 받습니다.
이런 의미로 학자들은 본문 행10:44~48절을 <이방인의 오순절>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독립된 본문이 아닙니다.
행2장에 나오는 오순절 성령 강립 사건과 그대로 겹칩니다.
그 증거가, 오늘 본문 45절에 있는데요.
◑행10:45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여러분, 이 한 절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세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1)첫째는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받은 신자들이 놀라는 장면입니다.
이들은 욥바에서 온 유대인들이겠죠. 유대인 신자들이 깜짝 놀랍니다.
놀라는 이유가 무엇이죠?
성령이 부어지는 대상이, 유대인들이 아니라, 이방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원래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구원의 대상으로 전혀 보지 않았었죠.
'이방인들은 지옥의 뗄감이다. 이방인은 구원 받을 수 없다' 라고 여겼는데,
그런데 그런 이방인들이 자기들의 눈앞에서 성령을 받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보고 놀라는 거죠.
2) 두 번째 주목해야 할 장면은,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성경에는 '성령을 부어주셨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원문에 보면 '성령의 선물을 부어주셨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령'이 아니라 '성령의 선물'이 더 맞는 표현이죠. *gift of the Holy Spirit
그런데 이 표현이, 행2:38절에 오순절 성령 강림 때 그대로 나온 적이 있습니다.
2:38절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 *gift of the Holy Spirit
여기 보면 '성령'이 아니라,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고 했죠.
유대인들은 오순절에 '성령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성령의 선물'을 동일하게 이방인 고넬료 가정이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에는 누가의 의도가 있는 거죠.
오늘 이방인들이 받은 성령은
오순절에 유대인들이 받았던 성령과 동일한 성령이라는 것입니다.
3) 마지막으로 세 번째 주목해야 할 장면이 있습니다.
성령을 주시는데 어떻게 주신다고 본문은 말하고 있죠?
부어주신다 pour 고 말합니다.
이 말은 '엑케오'라는 헬라어 단어입니다. 여러분 이 단어도
오순절 성령 강립 때 나온 적이 있습니다.
행2:33절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무슨 얘기죠? 오늘 이방인들이 받은 성령은
오순절에 유대인들이 받은 성령과 하나도 차이나지 않는, 똑같은 성령이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본문 46절을 한번 보세요.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고 나서 방언을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높입니다.
여러분 이 장면도 본 적이 있으시죠?
오순절 성령 강림 때 우리가 보았던 장면입니다.
행2:8절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오순절날 유대인들이 성령을 받았고요. 성령을 받고 나서 방언을 말합니다.
행2:11절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오순절날 유대인들이 성령을 받습니다. 성령을 받고 나서 방언을 말합니다.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이 일이 똑같이 일어납니다.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습니다. 그리고 방언을 받고요. 방언으로 하나님을 높입니다.
그러니까 정확히 두 장면이 지금 겹치고 있는 거죠.
행2장이 <오순절 성령 강림>과
오늘 본문 행10장, <고넬료 집에서의 성령강림>이 겹칩니다.
유대인들이 오순절에 성령을 받았던 장면과,
오늘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는 장면이 사실 그대로 오버랩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여기에는, 누가의 의도가 다분히 있는 거죠. 어떤 의도예요?
오늘 고넬료의 집에서 이방인들이 받은 성령은, 다른 성령이 아니라
오순절에 유대인들이 받았던 그 성령과 똑같은 성령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건을, 학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오순절의 경험에 이방인 신자들이 참여하는 것이다."
이제는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백성에 편입되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통해서요? 똑같은 성령 받음을 통해서요.
※본문, 행10장에 고넬료의 집에서 이방인들이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단락 편집자 주)
그 사건의 원래 목적은, 가장 중대한 목적은
'유대인에게 부어졌던 성령이, 이방인에게도 똑같이 차별없이 부어졌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독자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성경 본문에 기록되었다는 것이죠. 이게 핵심 포인트입니다.
그런데 행10장의 사건을 '성령받은 증거는 방언이다' 라고 주장하는 것은,
예를 들자면, 고급 식당에 가서, 메인 디시를 먹지 않고, 반찬 side dishes만 먹고 나오는 셈이 되는 거죠.
행10:44~48절 넬료의 집에 성령 강림 본문에서
성경이, 그리고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 포인트는
'유대인에게 부어졌던 성령이, 이방인에게도 똑같이 차별없이 부어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럼 '성령 받은 증거는 방언을 말하는 것이다' 라는 주장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오늘날 주류 기독교는, 이 명제는 100% 맞다고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이 명제를 100% 맞다고 주장하면... 성령론에 있어서 극단에 빠지는 거죠.
동시에 '성령 받은 증거는 방언을 말하는 것이다' 이 주장이 또 틀린 말도 아닙니다.
거의 almost 맞는 말입니다. 다만 예외가 있다는 거죠. (방언 못 해도 성령 받습니다)
'성령 받은 증거는 방언을 말하는 것이다'
이 주장이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말이 100%맞는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100% 틀린 말도 아닙니다.
예를 들면, '한국 사람은 김치를 좋아한다'는 말이 있죠.
그렇지만 한국 사람 중에 김치를 안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애들은 안 좋아해요.
그렇다고 ''한국 사람은 김치를 좋아한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닙니다.
성령 받은 모든 사람이 방언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령 받은 사람은 방언을 말한다'는 명제가, 틀린 말은 아닙니다. / 편집자 주)
................................ 더 읽으실 분 ................................
이 모습을 나중에 바울은요. 한 구절로 정리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고전12:13절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이제는 차별 없이 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가 무엇이냐? 그들도 다 '한 성령'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임했던 오순절 성령을, 이방인들도 똑같이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편입이 되어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이 하나님의 백성 한 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통해서요? 똑같은 성령 받음을 통해서요.
그러면 이방인들이 똑같은 성령을 받았다는 가시적인 증거가 뭐예요?
똑같은 방언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았어요.
그런데 방언은 하지 않았어요.
그러면 베드로와 유대인들 입장에서는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았는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 성령은 눈에 보이지 않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성령을 이방인들이 받았는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죠?
아마 이방인들이 방언을 하지 않았다면,
베드로나 유대인들은 확신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았다는 걸 확신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증거로
이방인들에게도 오순절과 똑같은 방언을 주셨던 것입니다.
이거를 보고 베드로와 함께 온 유대인들이 확신을 했던 거죠.
'우리에게 일어난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이
이방인들, 이들에게도 임했구나! 이방인들도 우리와 똑같은 방언을 하는구나!
그들도 성령을 받았구나. 이방인들도 구원을 받는구나.
구원에 있어서는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이 이제는 차이가 없구나!'
실제로 여러분 47절을 보면, 이 장면을 본 베드로가 뭐라고 말하나요?
'이방인들이 우리와 같은 성령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10:47
그러니까 오늘 본문의 방언은
'성령을 받으면 방언을 말한다'는 차원으로/목적으로 기록한 게 아닙니다.
'방언을 해야 성령을 받은 거다' 거기에 의도가 전혀 없습니다.
(아멘, 위 말은 맞습니다. 그렇지만 그 말이 100% 틀린 말은 아닙니다.
almost 맞는 말입니다. 일부 예외가 있지만요... /주)
여러분 왜 방언이 나왔어요.? 가시적인 증거로,
이방인들도 똑같은 성령을 받았다는 가시적인 증거로 방언이 나온 것입니다.
먼저 믿은 유대인 신자들에게, 확증을 주기 위한 수단으로 방언이 나온 것입니다.
이 본문을 가지고 '성령 세례의 증거가 방언이다. 성령 받으면 방언을 해야 한다'
라고 말하면 안 됩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성령 세례의 증거가 방언이다. 성령 받으면 방언을 해야 한다'
라는 주장이 100% 틀린 말은 아닙니다.
거의 맞는 말입니다.
성령을 받고도, 방언을 말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령 세례의 증거가 방언이다. 성령 받으면 방언을 해야 한다'는 말이
100%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럼 맞는 말은 무엇입니까?
'성령 세례의 증거로 방언도 나타난다. 성령 받으면 방언을 말한다' 입니다.
실제로 성령 세례 받은 사람들은 상당수 방언을 말합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방언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