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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상10장. 다시는 사울처럼 살지 말자!

LNCK 2021. 3. 16. 16:30

 

◈다시는 사울처럼 살지 말자!              역대상10:장              2021.03.16.큐티묵상

 

역대기의 저자가 누구인지는, 역대상에 나와 있지 않다.

그렇지만 대부분 학자들은 역대상의 저자를 에스라로 추정하는 첫 번째 이유는

(원래 역대기는 한 권의 책이었다) 역대기의 맨 마지막 구절이

에스라서와 그대로 연속해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대기 저자를 에스라로 보는 것이다.

 

성경을 찾아서 역대하의 마지막 끝 두 절과,

에스라서의 첫 세 절을 읽어보시면, 누구나 저자가 에스라 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본문 역대상10:장은 ‘사울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본문은 사무엘상 31:장의 중복 같아 보인다.

삼상 31:장을 보고 베껴썼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워딩도 아주 비슷하다.

 

에스라가 학사 겸 제사장인데, (학사 the scribe 란 율법학자를 뜻한다)

사무엘상의 사울왕의 죽음 이야기를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 왜 굳이 사무엘상에 뻔히 나와 있는 이야기를 역대기에서 반복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1) 본 장의 사울의 죽음 이야기는

본서 역대기의 주인공인 다윗 왕을 소개하기 위한 예비적 과정으로 보는 견해이다.

다윗 왕을 소개하기 위한 징검다리 역할로, 사울을 먼저 소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관점이 석연치 않다.

본론을 소개하기 위한 서론 정도로, 사울 왕의 죽음을 소개하기에는

그의 죽음에 대한 묘사가 너무 사실적이고, 세부적이다.

‘그냥 죄를 지어서 죽었다’하고 짧게 끝내지 않고, 아주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사울을 소개할 때도, 그의 치세 중 다른 토픽도 수 십 가지 있을 터인데

꼭 ‘비참한 그의 죽음’을, 특별히 길게 할애해서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2) 이런 추측을 해 본다.

사울의 죽음에 대한 결론은 본문에 이렇게 나온다.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 주셨더라.’ 대상10 :13~14절

 

여기에 사울 대신에 ‘이스라엘’을 대입해 보자.

 

‘(이스라엘 나라가)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라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방인에게) 넘겨 주셨더라.’

 

사울이 전쟁에 패하고 비참하게 죽은 것은, 그의 개인적 불행의 차원을 넘어서

나중에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패하여 죽고, 살아남은 자들은 포로로 잡혀간 것은

사울과 같이 제 멋대로 살았기 때문이라는.. 교훈이 복선으로 담겨있는 것은 아닐까?

 

특히 역대기보다 앞서 쓰여진 열왕기에는 ‘다윗과 같았다/ 다윗과 같지 않았다’는

표현이 반복해서 나온다.  왕상14:8, 15:3, 왕하14:3, 16:2 등

 

즉 나라가 망하게 된 것은 ‘다윗과 같지 않았고, 사울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남유다 사람들이 거의 죽고, 남은 자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것은

본문의 사울 왕의 이야기와 오버랩 (겹치게) 되는 것이다..

라는 복선이 본문 10:장에 깔려 있다고 본다. 

 

그러니까 본 장의 사울의 죽음과 결말은 ‘반면교사’가 되는 셈이다.

다음 장인 11:장부터는 다윗의 치적이 ‘좋은 모범’이 된다면

직전 장인 10:장의 사울의 비참한 결말은 ‘반면 교사’가 되어서

‘다시 이래서는 안 된다. 앞으로는 절대 이러지는 말아야 한다’..를 교훈한다고 본다.

 

 

◑도대체 사울의 죽음과 결말이 얼마나 비참했기에

역대기 기자 (에스라)가 이렇게 상세히 언급하는지, 한 구절씩 살펴 보자.

 

2절,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과 그 아들들을 추격하여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이고’

 

여기서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이는데,

결국 이스보셋 하나만 남게 된다.                          주1)

  

3절, ‘사울을 맹렬히 치며 활 쏘는 자가 사울에게 따라 미치매

사울이 그 쏘는 자를 인하여 심히 군급하여’

 

‘사울을 맹렬히 치며’ - 이를 직역하면, 사울 주변에서 싸움이 치열해졌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보호의 손길을 거두시면, 적군이 그를 맹렬히 치게 된다.

이때는 속수무책 당하게 된다.

 

원래 하나님의 자녀는 ‘약한 자라도 강한 자를 이기게’ 되어 있다. 수17:18등

그러나 삼손의 예, 본문 사울의 예에서도 보듯이

하나님의 보호의 손길이 떠나면 ‘강한 자라도 약자에게 당하게’ 된다. 레26:36등

 

3절, ‘활쏘는 자가 사울에게 따라 미치매’

어지럽고 먼지가 자욱한 전장터에서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기도 힘든 상황인데,

용케 적군의 활쏘는 궁수가 사울을 발견한 것이다.

하나님이 사울을 죽이시기로 작정하시니, 일이 더욱 어렵게 꼬이는 것이다.

 

북왕국 아합이 하나님의 침을 받아 전사할 때도

적군의 화살이 하필이면 갑옷 솔기(이음새)에 꽂혀서, 결국 아합은 죽고 말았다.

비슷한 상황이 지금 사울에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울은 블레셋 궁수들의 추격을 받게 된다.

 

3절, ‘사울이 그 쏘는 자로 말미암아 심히 다급하여’

 

과거 개역에는 ‘군급하여’라고 했는데,

이 말은 마음이 매우 초조해진 것은, 그가 이미 부상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냥 마음만 초조해 진게 아니라, 몸에 심한 부상을 당해서 다급해진 것이다.

 

영어성경에는 '다급하여'를 ‘wounded 부상당했다’고 번역했다.

히브리어에는 ‘부상당하다/초조하다’는 뜻이 둘 다 들어있다.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도 죄를 지어서 마귀의 밥이 되면 이런 다급한 신세가 된다.

 

4절, ‘자기의 병기 가진 자에게 이르되 너는 칼을 빼어 나를 찌르라

저 할례 없는 자가 와서 나를 욕되게 할까 두려워하노라

그러나 그 병기 가진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즐겨 행치 아니하매

사울이 자기 칼을 취하고 그 위에 엎드러지니’

 

우상숭배자는 이렇게 비참한 최후를 마치게 된다.

적에게 당하든지, 스스로 자해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4절, ‘사울이 자기 칼을 취하고 그 위에 엎드러지니’

삼하1:장 10절에서 아말렉 소년은 자신이 죽어가는 사울을 완전히 죽인 것으로

다윗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다윗으로부터 보상을 받으려는 목적으로 한 허위 보고였다.

 

6절 ‘이와 같이 사울과 그 세 아들과 그 온 집이 함께 죽으니라’

 

사울의 왕권의 몰락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한 사람이 범죄하면, 그의 가족이나 지인들이 함께 망하게 되는 수도 있다.

 

7절 ‘골짜기에 있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저희의 도망한 것과

사울과 그 아들들의 다 죽은 것을 보고

그 성읍들을 버리고 도망하매 블레셋 사람이 와서 거기 거하니라’

 

여기서 ‘골짜기’는 길보아 전투가 발발했던 이스르엘 골짜기를 가리킨다. 삼상29:1 주2)

 

8절 ‘이튿날에 블레셋 사람이 와서 죽임을 당한 자를 벗기다가

사울과 그 아들들이 길보아 산에 엎드러졌음을 보고’

 

여기서 ‘벗겼다’는 말은 ‘탈취하다’는 뜻이며,

죽은 병사로부터 무기나 갑옷을 탈취하는 것을 뜻한다.

역시 하나님께 징계를 받으면, 자기 것도 적들에게 다 빼앗기게 된다.

 

9절 ‘곧 사울을 벗기고 그 머리와 갑옷을 취하고

사람을 블레셋 땅 사방에 보내어 모든 우상과 뭇 백성에게 광포하게 하고’

 

‘머리를 취했다’는 말은 머리를 잘라 전리품으로 가져갔다는 뜻이다.

그리고 사람을 사방에 보내어 요란하게 선전을 했다는 것이다.

 

‘사람을 블레셋 땅 사방에 보내어’

히브리 원문에는 목적어 '사람을'이 나타나 있지 않다.

따라서 블레셋 사람들이 보낸 것은 사울의 죽음 소식을 알리는 사자使者가 아니라

사울의 머리와 갑옷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우상숭배를 하다가 하나님이 보호의 손길을 거두시면

원수와 대적들에게 이런 끔찍한 수치와 모욕을 당한다는 것이다.

그저 패하거나 죽는 것으로 깨끗하고 쉽게 마무리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10절 ‘사울의 갑옷을 그 신의 묘에 두고 그 머리를 다곤의 묘에 단지라’

 

병행 구절인 삼상 31:10에 따르면 사울의 갑옷은 아스다롯 신전에 두어졌다.

 

고대 근동에서 전쟁의 승리는, 자기들이 믿는 신의 도움으로 인해 얻어진다고 여겼다.

때문에 블레셋 인들은 그에 대한 답례로 사울의 갑옷을 자기 신전에 바쳤던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다윗에게 죽임을 당한 골리앗의 칼은

놉의 제단에 바쳐졌었다. 삼상21 :9

 

10절, ‘그 머리를 다곤의 묘에 단지라’

 

병행 구절 삼상31:10에는 본절과 달리 블레셋인들이 사울의 시체를

벧산 성벽에 못박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두 개의 상이한 기록은 상호 보완적이다.

즉 블레셋 인들이 사울의 머리는 다곤의 묘에 단 반면

머리없는 시체는 벧산 성벽에 못 박은 것이다.

 

아무튼 본절에서 우리는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들의 승리를

자기들의 우상과 그 신들에게 알리는 장면을 목도하게 된다.

성도가 범죄하면, 마귀가 이렇게 영광을 받게 되고, 성도는 마귀의 전리품이 된다.

 

11절 ‘길르앗야베스 모든 사람이 블레셋 사람의 사울에게 행한 모든 일을 듣고’

 

과거 사울은 암몬 왕 나하스의 침략으로부터 이곳 거민들을 구출했었다. 삼상10:27, 11:15

따라서 이들은 이번에 비극적 죽음을 당한 사울 왕에게 과거의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그와 그의 아들들의 시체를 벧산에서 취하여 왔던 것이다. 삼상31:12

 

▲마치는 말

본문 역대상 10:장에서 저자 에스라가 하고 싶은 말은

즉 사울의 비참한 죽음을 상세하게 소개하는 이유는,

 

‘앞으로 우리 나라는 사울처럼 되지 말자, 사울처럼 비참하고 처참하게 망하지 말자’

 

‘사울은 처음에는 겸손하고 준수한 자였으나, 우리 유다 나라도 처음에는 그랬다.

그러나 시일이 흐를수록, 그는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치 않고, 신접한 자에게 묻고..

우리 유다 나라도 그랬다. 시일이 흐를수록 더 나빠져 갔다.

 

그래서 사울은 죽어도 보통으로 죽지 않고, 아주 비참하고 처참하게 죽었다.

우리 유다 나라도 사울처럼 아주 비참하고 처참하게 완전히 죽고 망하고 말았다.

 

그러니 70년의 포로기를 거쳐서 다시 나라를 재건한 지금의 우리는

다시는 사울 왕과 같은 길을 걷지 말자. 다윗 왕의 길로 나아가자!’

 

그런데 본문은 남유다 만의 교훈이 아니다.

오늘날 21세기를 사는 우리 성도 각자도,

다윗의 길이 있고, 사울의 길이 있는데,


만약 성도가 사울의 길을 따른다면

망해도 보통으로 망하지 않고, 아주 비참하고 처참하게 망한다는 것이다.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물어 뜯는데, 당해낼 재간이 없을 것이다.

처참하게 찢기게 된다.

그러나 다니엘은 굶주린 사자 굴에 던져져도, 그 사자들을 다스렸다.

 

오늘 나는 사울처럼 비참하고 처참한 길을 가고 있는가?

다윗처럼 영광스러운 길을 가고 있는가?

 

 

..........................................

 

주1)

이스보셋은 나중에 다윗과 왕위계승을 놓고 다투다가

결국 자기 편인 레갑과 바아나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다윗이 결국 왕이 된다.

 

그런데 8장의 베냐민의 족보에서 사울의 아들들은,

‘요나단과 말기수아와 아비나답과 에스바알’ 이라고 나온다. 8:33

즉 에스바알이 이스보셋인 것이다.

 

그런데 이스보셋은, 요나단의 아들로 다윗의 은총을 입은 므비보셋과

혼동하면 안 된다. 이름이 비슷해서 혼동하기 쉽다.

 

역대기에서는 므비보셋의 이름은 므립바알로 기록되어 있다. 대상8:34, 9:40

 

 

이스보셋

므비보셋

 

사울의 아들

다윗에게 반란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역대상에 나오는

이름

에스바알

8:33

므립바알

8:34, 9:40

 

주2)

그러나 블레셋 족속이 이땅을 차지하고 통치한 기간은 대단히 짧았던 것 같다.

왜냐면 이스보셋의 군장 아브넬이 길보아 전투에서 패전한 군사들을 다시 규합하여

이곳을 재탈환한 사실이 삼하2 :9절에 암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의 승리는 잠시 후 다윗 왕에 의해 다시 한 번 물거품이 되고 만다.

대상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