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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가까이 모시려 한 다윗 역대상15:장 2021.03.22.큐티묵상
앞서 13:장에서, 기럇여아림에서 법궤를 옮겨오는 도중
법궤에 손을 댄 웃사가 즉사하는 바람에.. 법궤는 예루살렘으로 옮겨오는 시도가
일시적으로 중단되었고, 그 때부터 법궤는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 동안 모셔졌다.
그러던 중 오벧에돔의 집에 머무른 법궤로 인하여
그 집에 큰 축복이 임했다는 소식은, (대상13 :14)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풀렸음을 확인해 주는 것이었다.
이에 힘을 얻어 예루살렘에 법궤를 모실 만반의 준비를 마친 (1~3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법궤를 운반해 오는 일만 남겨 둔 것이다.
앞서 13:장과는 달리, 두 번째로 법궤를 옮겨오는 일은 순조로웠다.
:26절 ‘하나님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을 도우셨으므로’
이는 하나님께서 지난 번 웃사를 죽이심 같은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셨다는 말이다.
◑하나님을 갈망한 다윗 (오늘의 묵상 주제)
다윗이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오려는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온 이스라엘을 다 모으고, 즉 백성의 대표들을 다 모으고
다윗 성 옆에 새로운 장막 (성막)를 지어놓고
군대 및 수행원을 3만 명이나 대동하고
또한 성가대 및 악기연주자들을 대거 동원해서
기럇여아림의 아비나답의 집이나 오벳에돔의 집 마당에
그냥 계속 보존해도 될 법궤를 왜 굳이, 그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성으로, 왕궁 곁으로 모셔오려 했던 것일까?
법궤를 모시다가 자칫 잘못하면 재앙이 발생해서
벳세메스 사람들처럼 70명이 죽고, 웃사가 손을 댔다가 죽고.. 하는 일이
앞으로도 계속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데 말이다. 삼상6:19
그것은 다윗의 하나님께 대한 사랑 때문이다.
다윗은 법궤 앞에서 옷이 벗겨질 정도로 춤을 추었으며
그 정도로 정말 ‘미치도록’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다. 삼하6 :14
다윗은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시는 성막으로
매일 나아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기럇여아림이 예루살렘에서 불과 15킬로 떨어져 있었지만
매일 다니기에는 불편한 거리였을 것이다.
그는 자기 궁궐에서, 하나님의 성막을 바라보는 것을 상상하며 즐거워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기쁨과 즐거움이 너무 흘러넘쳐서
드디어는 성전을 짓고야 말겠다는.. 그런 소원과 결심까지 마음에 품게 된다.
그래서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수 있도록, 모든 재료를 다 마련해 놓았다...
오늘 나는 이런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갈망이 있는가?
오늘 나는 이런 하나님의 존재하심에 대한 사랑이 있는가?
이 주제에 관해 설교한 폴 워셔의 설교내용을 묵상해 보려고 한다.
Do you desire God? / Paul Washer
“당신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는 열정 passion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그저 옳은 일만 행하는 것’ - 그것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지만,
거기에 그치면 안 됩니다.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 - 그것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지만,
거기에 만족하면 안 됩니다.
‘그저 인내하고 친절한 인격으로 사는 것’ -
이것도 필요하지만, 이 수준에 만족하면 안 됩니다.
저는 오늘, 한 가지 더 중요한 증거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사랑은 열정입니다.’ Love is a Passion!
그렇다면 제가 질문 드리겠습니다.
‘당신은 지금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있으십니까?’
‘당신은 오늘 하나님을 갈망하고 있습니까?’
(다윗이 하나님을 사랑해서 법궤를 다윗 성 안에 모셔오려고 했던
그런 열정, 뜨거움, 갈망이 있으십니까?)
‘그 분이 임재하시는 것을.. 당신은 오늘 기다리고 계십니까?’
오늘날 많은 크리스천들이 ‘자기는 하나님을 당연히 사랑한다’고 여깁니다.
자기는 특별히 죄에 빠지지 않고, 언제나 옳은 일을 행한다고 여깁니다.
자기는 눈에 띄게 잘못하는 것 없이, 언제나 계명을 잘 지킨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인격이 눈에 띄게 모나지 않고, 항상 친절하게 사람을 대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한 마디로 자기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제 폴 워셔가 묻겠습니다.
‘Do you have a passion for God?’
당신은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갖고 계십니까?
하나님을 열망하고 계십니까? 그 분의 임재, 동행, 동거를 말입니다.
그것을 열정적 passion으로 원하고 계십니까?
만약 아니라면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생각을 재고해 보십시다.
물론 우리 마음이 때로는 무미건조할 때가 있습니다.
언제나 늘 그렇게 쉬지 않고, 하나님을 열정적으로 사랑할 수만 있겠습니까?
항상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이, 우리 신앙 아닙니까?
언제나 뜨거울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예, 맞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때로는 낙심해서, 격려를 받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쳐다보지 않아야 될 것에, 매료되는 때도 잠깐 있을 것입니다.
맞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것들 때문에 늘 갈등하고 싸웁니다.
그래서 때때로 우리 신앙이 잠시 다운 될 때가 있다고 칩시다.
그러면 제가 질문을 약간 바꾸어서, 이렇게 물어보겠습니다.
“만약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을 바라볼 때,
‘저 사람은 정말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열정 passion 이 있는 사람이야!’
라는 평가를.. 여러분은 들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저는 사역이나, 선교에 대해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사역에 열정이 넘쳐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쉴새 없이 움직이는 분도 있습니다.
선교에 열정이 넘쳐서, 전 재산을 쏟아붓고, 정말 애쓰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교회봉사에 열정이 넘쳐서, 자기 직업을 제쳐 놓고, 교회에서 사시는 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는, 그런 사역 ministry 에 대한 열정을 묻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분들은, 자기 야망 성취나,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어서,
교회 사역을 ‘목숨 바쳐 열정적으로’ 수행하시는 분들도 가끔 있습니다.
그런 사역 말고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당신은 지금 그 분을 열정적으로 갈망하고 있습니까?
(어떤 분들은 하나님을 사랑해서 교회 옆으로 이사를 가는 분들도 있는데
사실은 하나님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기 소원을 들어주시도록 하나님을 닦달하기 위해서 이사한 것입니다.
내 소원을 들어주셔서 내가 그 분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구원해 주시고, 내 아버지요 목자요 신랑이 되셔서
그 분의 존재 자체로 그분을 사랑하고 목말라하고 갈망하십니까?)
다른 사람이 보기에 ‘저 사람은 하나님을 진정 갈망(사랑)하는 사람이야!’
라는 평가를 당신은 받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저, 교회 일에만 목숨 걸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까?
그건 종종 ‘자기 야망’ 일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증거는 - 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의를 사랑하시고 불법을 미워하셨으니..’ 히1 :9
하나님이 진실로 내 마음에 역사하셨다는 증거는,
내가 예전에 사랑하던 그 죄를, 이제는 내가 미워하며
내가 예전에 무시했던 그 의를, 이제는 내가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 사실을 동의 agree 할 수 있습니다.
이 사실에 대해 설교 들을 때 한 번 도전 challenge 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동의, 도전으로 만족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께 묻습니다.
이 사실이 여러분께 현실 reality이 되었습니까?
그래서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매일 실제로 그렇게 살고 계십니까?
내가 예전에 사랑하던 그 죄를, 이제는 내가 미워하며
내가 예전에 무시했던 그 의를, 이제는 내가 사랑하게 된 것 말입니다.
죄에 대하여.. 나의 미움이 점점 커져가고,
의에 대하여.. 나의 사랑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까?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당신은 이 질문에 자신있게 Yes 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까?
문제는 진정 내 속에
‘하나님을 사랑함에 대한 열정 passion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을.. 내가 사랑하고,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을.. 내가 미워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점점 죄를 미워하고, 의를 사랑하며 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 삶에 꾸준한 현실 reality 이 되어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제게 와서
‘자기가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었다(헌신했다, 내 삶을 드렸다)’고 간증합니다.
그러면 저는 그 분께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은, 이전에 당신이 사랑하던 죄와 관계를 끊었습니까?
왜냐면, 당신이 습관적인 죄와 절교를 하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당신이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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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Thing 오직 한 가지 일
시편27 :4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One Thing>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원 씽, 오직 한 가지 일’을 구하는 목사님이 있습니다.
그 분은 매주 수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매주 수요일마다 10시간씩 (식사시간 두 시간 제외)
하나님만 바라보는, 그 한 가지만 하십니다.
수요일 원씽 타임(오전 9시~오후 9시)에는,
성도들이 목사님을 못 뵙습니다.
오후 9시가 지나서야 잠시 담소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하나님을 바라라’고 했듯이
그 분은 매주 수요일은, 다른 일은 일절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앉아서, 하나님만 묵상하고, 하나님의 얼굴만 구하신답니다.
‘오직 그 일 한 가지’만 하신 답니다. 시편27 :4
몇 년을 하셨냐고 물어보니
그렇게 한지 4~5년 되었답니다.
수요예배는 원씽 시간 중에 있고, 성도들은
예배 전후에 자유롭게 "원씽"에 참여한답니다.
하나님 한 분만을 구하는 것을
몰라서 못 하는 게 아니라,
알아도 그게 잘 안 되는데
그 분은 그래도 주님의 얼굴을 구하는, 오직 그 일 한 가지를
지난 4~5년 계속 해 오면서, 영적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물론 피곤하면 예배당에서 잠시 누워있기도 한답니다.
그러나 다른 일은 일절 하지 않고,
목회적 사역이나, 만남, 심방, 이런 것 일절 하지 않고,
오직 주님과 독대하는 일에만, 그 시간을 할애해서 쓰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 시간을 마치고 나면 그 분의 얼굴이 환합니다.
주님의 존전 앞에서 받은 은혜를 반사하는 것인지요?
야고보서 4: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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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절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를 찢으셨나니’
'전에는'이란 3개월 전 기럇여아림에서 법궤를 운반했을 때를 지시한다.
그때 다윗 왕은 수레로 궤를 옮기다가 웃사의 죽음을 목격하게 되었던 것이다.(대상13:1-14).
그런데 그때에 여호와께서 충돌하신 자는 웃사 한 사람인데
다윗은 여기서 여호와께서 '우리'를 충돌하셨다고 말하고 있다.
다윗이 여기서 '우리'라는 말을 사용함은 그때의 잘못이 웃사 개인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신과 수행하던 모든 레위인들에게 있었음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레위인들은 성막의 성물(聖物)들을 운반할 때에는
반드시 그것들을 막대기에 꿰어서 어깨에 메고 운반해야만 했었다(출 25:13;민 4:10,12).
그것은 물론 운반의 편리함을 위한 목적이었겠지만,
그 보다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물에 손을 댐으로써 부정을 입히는 것을 막기위한 조처였다.
언약궤는 오직 레위지파 중 고핫 자손들만이 관리하게 하셨다. (민4:15,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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