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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2 :14~21 당신은 영적 설득력을 가졌는가?

LNCK 2021. 4. 5. 06:17

 

 

당신은 영적 설득력을 가졌는가?   행2:14~21   2006-10-15스크랩

 

오늘 저는 영적 설득력에 대하여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잘 생각해보면

처음 만나서 이야기할 때는 사람들이 서로 정보를 나눕니다.

 

잘 모르는 사람과는 기상정보가 최고입니다.

‘날씨가 참 좋네요! 가을하늘이 맑지요?’ 그게 맘 편하죠.

 

그러다가 조금만 가까워지면 정보에서 더 들어가 생각을 교환합니다.

무슨 문제에 대해서 자기 의견을 말하는 거죠.

 

남자들은 정치 얘기, 주로 정치인들 욕하는 얘기 많이 합니다.

대선 주자 얘기, 북한 핵실험 얘기, 이게 다 생각 교환입니다.

그런데 자주 만나는 사람끼리, 정보나 생각 교환만 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단계에 가면, 드디어 정서를 교환하게 됩니다.

자기 기분이 지금 어떤가에 대해서 말합니다. 이 순서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처음 만난 사람끼리 자기 깊은 내면의 얘기들을 불쑥불쑥 꺼내놓으면

서로 당황하게 돼요. 초면에 통성명 하고 나서

‘아, 그런데요, 제가 지금 죽고싶은 심정이거든요!

어제도 한강다리 갔다 왔고, 아파트 옥상에도 올라가고, 살고 싶지가 않아요!’

 

이런 얘기 불쑥 꺼내면 어때요? 듣는 사람의 마음이 좀 불편해지지요.

‘이 사람이 무슨 이야기 하려고 이러나?’ 부담스러운 생각이 들지요.

 

▲그런데 정작 우리가 사람들과 친구들이나 일터에서 동료들과 함께 이야기하다 보면

사실은 그들이 외로워하고 불안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를 안 하고 싶은 게 아니예요.

깊이 속 털어놓고 얘기할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사람이 어느 정도 친해지면 자기 감정, 자기 정서를 조금씩 말합니다.

그런데 그 말을 경청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스티븐 코비가 영향력 있는 인간관계를 말할 때, 첫 번째 원칙이 경청하라!입니다.

왜냐면 우리가 그들의 얘기를 잘 듣다 보면, 얘기 중에 간절한 아우성이 있어요.

 

그건 뭐냐면 ‘내가 지금 문제가 있다, 문제가 있긴 있는데

뭐가 근본적인지 잘 모르겠다,

내가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 나가야 하는지를 알고 싶은데

혹시 무슨 길이 없냐?’ 이런 것입니다.

 

▲저는 그런 점에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의 상담자가 될 자격이 있고

또 책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주님이 우리에게 뭐라고 하셨냐면,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너희 빛을 사람들에게 비치게 하라!’

 

그런데 에베소서에 보면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었는데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그래요. 엡5 :8

 

우리도 전에는 어두움속에서 살았어요.

캄캄한 둥굴 같은데서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서, 어디가 출구인지 몰라서,

아무리 열심히 살아보려고 해도 길이 보이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는 말이예요...

 

▲오늘 본문 행2 :14~21절은 베드로의 첫 설교입니다.

이것은 예루살렘 교회를 탄생시킨 유명한 설교입니다.

신약교회의 기원이 여기 있습니다.

 

그런데 이 베드로의 말에 얼마나 설득력이 있었는지,

이 말을 들은 사람중에 3천 명이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을 해요.

이 내용을 잘 읽고 묵상해보면서

우리가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영적인 설득력을 가지려면

이런 태도와 이런 내용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같이 14절을 읽어보십시다.

‘베드로가 열 한 사도들과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행2장 서두에 보면 지금 군중들이 예루살렘 거리에 몇 천 명이 됩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진 사람들 120명이 예루살렘 거리로 쏟아져 나와서

사람들을 붙들고 무엇인가를 말했는데

11절에 보면, 120명의 성도들이 사람들에게 말한 것이 뭐냐면,

‘하나님의 큰 일’이라고 되어있어요.

 

사람들이 굉장히 놀라고 신기할 만한 일이었는데,

그 예수믿는 120명과 그리고 리드하는 열 두 명이

그렇게 주목받을만한 사람들이 아니었단 말이예요.

 

그런데 지금 뭐라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120명에게 내면에 뭔가 변화가 생겼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가 없어요.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라고 사람들이 의아해하고 있는데,

베드로가 일어나서 설명을 해주는 것입니다.

 

14절, ‘유대인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그리고 베드로의 설교가 14~36절까지 나옵니다.

 

▲그런데 그 설교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이 37절에 뭐라고 되어있습니까?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이것은 베드로의 말이 사람들 마음속으로 뭐에 찔리는 것처럼 아팠다는 뜻입니다.

베드로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마음에 찔렸어요.

이것은 사람들이 베드로의 말을 다 듣고, ‘그래 좋은 말이야 베드로 말 참 잘하네!’

그러고 말았다는 뜻이겠습니까? 그게 아니죠.

 

마치 자기 배를 뭐로 찌르는 것처럼 마음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아 내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진지하고 절박한 질문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베드로와 사도들을 붙들고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하며 간절함으로 물어봅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세 가지로 나누어보면

사람들이 많이 모여 베드로의 말을 들었는데

마음에 찔려 그냥 있을 수 없는 세 가지, 인생 문제에 대한 대안이 나옵니다.

 

첫째, 인생의 의미에 대한 대안,

둘째, 인생의 죄책감 문제,

셋째, 내 인생 길에 대한 확신 .. 이런 것들입니다.

 

베드로의 말에는 엄청난 설득력이 있어요.

이 말을 듣고나서 마치 아무 일 없는 듯이 살아갈 수가 없는 도전이 있었어요.

 

▲첫째, 베드로는 자기 인생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를 말했습니다. (2:15~21)

 

베드로는 모여든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너희들에게 이 일을 설명해주겠다,’

이것은 우리들 120명에게 일어난 변화를 말하는 거예요.

어떻게 우리가 이렇게 담대하게 변화되었는지, 어떻게 이렇게 힘있게 되었는지

그것을 설명해줍니다.

 

‘이 일의 의미는 바로 구약 선지자 요엘이 예언한 말씀이 오늘 성취된 것인데,

그 예언이 오늘 성취된 것이다! 그게 뭐냐?

바로 성령님이 우리 안에 오신 것이며, 우리에게 삶의 방향을 주신 것이다!’

 

행2:17절에 보면 선지자 요엘의 예언이 뭡니까?

‘마지막 때에 내 영을 부어주는데, 그 영을 받는 자들은 모두가 변화된다,

그 변화는 삶의 방향이고 삶의 목표이다! 너희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여러분, 가장 설득력이 있으려면, 얼굴에 생기가 돌아야 합니다.

여러분, 저는 우리가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을 만나서 대화할 때,

바로 이 생기가 우리 얼굴에서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예수를 믿고 나서, 내가 예수를 알고부터 내 안에 어떠한 꿈이 생겼는지,

어떠한 환상을 갖게 되었는지, 영어로는 비젼이죠,

어떤 비젼이 생겼는지 그걸 말해줘야 합니다.

 

이것은 내가 갖고있지도 않는데 친구 교회 나오게 하려고 감언이설로,

‘난 말이야 이런 꿈이 있어’라고 말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진정한 꿈이 없습니다.

자기가 꿈이라고 말하는 것이, 대부분 어떻게 직장 잡아서 성공할 것인가?

연봉 얼마나 되는 위치에 올라갈 것인가? 이런 것입니다.

 

밥 버포드가 쓴 <하프 타임>을 읽어보세요.

그가 미국 케이블 TV사장으로 성공해서, 성공지향적으로 살아보았는데

자기 속이 얼마나 공허하고 허전함이 생겼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 전반전을 열심이 뛰었는데, 돈도 벌고 높은 위치도 잡았는데, 이것은 아니다!

그래서 하프타임 때 자기 문제를 진단했더니,

성공을 목표로 사니까 의미가 없더라는 결론이 나왔어요.

 

베드로는 자기 인생에 꿈이 있었나요?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예수 따라가서 성공하겠다는 야심이었어요.

 

그러니까 결정적 순간에 예수님이 십자가 지지 못하게 막은 거 아닙니까?

그런데 오늘 베드로는 진정한 꿈이 생겼어요.

 

그러니까 사람들에게 담대하게 소리를 높여 말하는 거예요.

‘당신들,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우리가 예수님을 아직 만나지 못한 친구들과 동료들하고 이야기하다 보면,

그들이 두 가지 문제로 허덕이고 있음을 볼 수 있어요.

하나는 성공주의 이고, 하나는 패배주의입니다.

이 두 가지가 섞여있는 사람도 많습니다.

 

빨리 내 자리를 잡아서 성공해야 하는데 저 사람이 걸리고 이 사람이 방해하고

그래서 죽겠다는 것입니다. 얼굴에 야심과 경쟁심이 가득합니다.

 

패배주의는 뭡니까? 경쟁에서 자꾸만 뒤쳐진 경험을 하다가 지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얼굴에 힘이 없어요. 그런데 둘 다 문제가 뭡니까? 의미가 없어요.

무한 경쟁에서는 무의미밖에 남지 않습니다.

 

잘 경청하다 보면 사람들은 길이 없는 곳에서 열심히 길을 찾거나

아니면 피곤하여 주저앉아있어요.

 

그럴 때, 베드로가 한 말, ‘당신들 내 말을 한번 들어봐!

나는 내 인생에 꿈이 있고 비젼이 있어!’ 이 얘기를 들려줘야 한단 말이예요.

 

성공주의자들은 자기보다 성공한 사람 말만 듣습니다.

패배주의자들은 누구 말을 들을 힘도 사실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주목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들의 얼굴입니다.

꿈이 있는 사람들은 얼굴에 씌어져 있어요.

취직을 해야만, 몸이 아프지 않아야만, 나이가 젊어야만,

돈을 많이 벌 가능성이 있어야만 꿈이 있나요?

 

아니예요. 베드로의 꿈은 뭡니까?

‘난 이제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로, 평생 복음 전하며 살겠다!’

이것은 돈 버는 것과 아무 관계가 없어요...

 

마틴 루터 킹은, 미국의 흑인 목사였는데 그가 꿈을 가졌어요.

흑인과 백인이 아무 차별없이 함께 사는 나라!

이 꿈을 다 이루지 못하고 권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삶에 엄청난 의미를 가집니다.

제 꿈은 제 주변 가정들의 진정한 회복을 통해 건강한 교회 하나를

이 땅에 실현하는 것입니다.

 

경기도 분당에 ‘독수리 중학교’라는 대안학교가 있습니다.

1996년부터 시작해 10년 되었는데 교장 선생님의 꿈이 뭐냐?

‘이 땅에 청소년들에게 성경을 심어 이 나라의 미래를 만들어가겠다’는 것입니다.

 

돈 많이 벌까요? 아닙니다.

일용할 양식 하나님이 주실까요? 확신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진정한 꿈이 생깁니다. 이것을 베드로가 사람들에게 말했어요.

베드로가 자기 변화, 자기 얘기를 하니까 설득력이 있잖아요!

 

▲둘째, 베드로는 사람들의 죄책감 문제를 다룹니다. (2:22-23)

저는 사람들이 제일 시달리고 있는 것이 죄 문제라고 믿습니다.

인간에게는 하나님이 양심이라는 것을 만들어 집어넣으셨기 때문에,

양심에 어긋나게 행동하고나면 사람은 괴롭게 되어있어요.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지 않고 사는 것이 죄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 죄인입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사람을 죽였냐? 도둑질을 했냐?

난 평생 사람들에게 해를 끼친 적이 없는데 뭐가 죄인이냐?’ 그래요.

 

그런데 성경은, 미움과 살인은 똑같은 죄로 봅니다.

온갖 종류의 거짓은 다 하나님께 속하지 않고 마귀에게 속한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거짓말 안하고 평생 산 사람 있을까요?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것은

자기 눈에 들보를 꽂아놓고 상대 눈에 티를 가지고 뭐라고 하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의 죄 문제를 우리가 해결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어,

우리 대신 죽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몰랐지만 사실은 죄인인 우리가

죄 없으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인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베드로 당시 그의 말을 듣고 있는 사람들은

바로 50일 전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친 군중들입니다.

 

‘너희가 예수를 못 박아 죽였느니라!’

듣는 사람들이 굉장히 싫어할만한 얘기를 베드로가 서슴없이 꺼냅니다.

 

사람들의 모든 문제의 근원에는 영적인 문제가 잠겨있습니다.

고민과 불안은 영적인 방황이예요.

그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품에 들어오지 못해서,

집을 나간 탕자가 허송세월하고 고통으로 앉아있는 것처럼,

영적인 문제가 있어요.

 

이 문제는 마치 잠수함처럼 수면 아래 깊이 다닙니다.

바로 이 문제를 다루어줘야 합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 때, 얼마나 죄책감으로부터 자유해 졌는지를 말해줍니다.

예수님이 괜히 십자가 위에 올라가 죽은 것이 아니라,

당신과 나의 죄 문제를 해결하신 것이라고 말해줘야 합니다.

 

사람들은 놀랍게도 자기만 가지고 있는 숨겨진 죄 문제가 많습니다.

그 문제를 십자가 앞에 가지고 나아가도록 안내해줘야 합니다.

사람들은 순한 양같이 인도를 받습니다.

 

▲셋째, 베드로는 자기 인생에 대하여 확신을 말합니다. (행2 :32)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다.

이 일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다 증인이다!’ :32

 

이것은 자신감의 표현입니다. 이 자신감은 어디에서 올까요?

그것은 내가 믿는 주님은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32

 

기독교의 가장 위대한 진리는, 교리가 아닙니다. 형식이 아닙니다.

윤리도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에서 살아나셨고,

지금도 살아계신다는 사실 fact에 있습니다.

 

여러분 복음은 그래서 설명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계신 예수님을 내 마음과 내 삶에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사실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당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경험이 없이는 절대로 할 수 없는 말이예요.

바로 50일 전에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된 것을

거기 모인 군중들이 다 알고 있어요.

 

만약에 베드로가 예수님의 부활을 거짓말했다면

사람들이 예수의 시체를 묻은 무덤에 가보면 탄로날 일입니다.

 

36절, 다같이 읽어볼까요?

'이 확신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는 살아나셨고,

지금 예수님은 내 삶에 주님이십니다.'

 

베드로가 이 얘기 하고 잘못하면 체포됩니다.

예수를 죽인 대제사장 그룹이 군사를 풀면 베드로는 여기서 바로 잡혀서 죽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의 확신은 자기 목숨보다 강해요.

베드로는 목숨 내놓고 예수의 부활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설교를 하고 있을 때, 120명의 제자들도 정말 놀라지 않았을까요!

‘베드로가 이 정도로 담대한 사람이었나!’

 

50일 전에 예수님 잡히실 때 얼마나 비겁하게 도망가던 사람인데,

여러분 그러니까 우리에게 확신과 담대함이 생기면

그 변화는 가장 먼저 우리 주변에서 알게 됩니다.

 

이 변화는 다 살아있고 생생한 베드로의 삶 얘기예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어때요? 설득력이 있죠. 영적 설득력이 있어요.

 

▲마치는 말

나는 예수님만나서 꿈을 가지고 산다,

나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을 믿고 죄 문제가 해결되었다,

나는 예수님이 살아계심을 믿는다,

 

이 체험을 말할 때 사람들이 우리의 어디를 본다고요?

얼굴에 진정한 변화가 씌어져요.

 

이 세 가지는 반대로 이렇게도 우리 자신에게 도전해볼 수도 있습니다.

나는 예수 믿고 살면서 정말 꿈으로 벅차게 살고 있는지?

나는 예수님의 십자가로 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는지?

나는 예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그 확신이 내 삶을 이끌어가고 있는지?

이 세 가지가 내 안에 없다면 우리는 묵은 신앙이요, 껍데기만 신자입니다.

 

베드로가 이 말을 했을 때, 사람들은 마음에 찔림을 받습니다.

그리고 예수 앞으로 걸어 나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의 사람들이라면 우리에게도 살아있는 간증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설득력>입니다. *설교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