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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3장. 외형은 작았지만 내실이 알찼던 성전건축

LNCK 2021. 4. 14. 17:18

 

◈외형은 작았지만 내실이 알찼던 성전건축              역대하3:장            큐티묵상

 

역대하 3~6장은 성전건축에 관한 기사이다.

3장은.. 성전 구조 공사, 

4장은.. 성전 안의 각종 기명 제작,

5장은.. 언약궤를 성전으로 들여옴.

6~7장은.. 성전봉헌식 .. 이렇게 전개된다.

 

오늘의 본문 3:장을 분해하면,

1~2절은 성전 터에 관하여

3~14절은 성전의 건물, 즉 지성소와 성소 등에 관하여

15~17절은 성전 앞의 두 기둥, 야긴과 보아스에 대한 말씀이다.

 

성전건축은 7년에 걸친 대공사였다.                       *왕상6 :38

모세가 성막을 지었을 때처럼                                  *출25:8~9

하나님께서 그 모든 설계와 양식을 다윗에게 다 가르쳐 주신 것이다. *대상28:11~12

 

구약에 교회의 원형이 될만한 것이 서너 가지 있다.

첫째는 노아의 방주가 교회의 그림자이다.

둘째는 출애굽 시대 이후 성막이 교회의 모습을 내포하고 있다.

셋째는 가나안에 정착한 후 솔로몬이 지은 성전이 교회의 원형이다.

 

 

◑1. 성전터.                3:1~2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 아비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3:1

 

또한 장래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골고다 언덕’이.. 성전터였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모리아산, 숫양이 대신 바쳐졌고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짐승의 번제를 드리자.. 하나님의 징계 (온역)이 멈춰졌고

-장차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인류에 대한 저주가 해결되었다.

 

위 세 가지 역사적 사실의 공통점은,

즉 ‘번제단 제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멈추어질 것’임을 상징한다.

이것이 성전이 세워지는 의미였다.

 

바로 그 자리 위에 세워진 성전은, 

신약적으로는 '성전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2. 성전 건물의 크기               대하3:3~14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성전의 길이 60, 넓이 20 규빗, 높이 30 규빗이었다. *3:3, 왕상6:2

1규빗을 50센티로 가정하면, 장광고가 30미터, 10미터, 15미터이다.

(왕상 6:2에는 성전의 높이도 언급되어 있는데 30규빗이다)

 

성전은 ‘지성소’와 ‘성소’의 두 지역으로 구분되는데,

지성소는 20 x 20미터, 성소는 20 x 40 미터이다.

평수로 계산하면 지성소는 약 130평, 성소는 약 270평이다. 도합 약 4백평이다.

(요즘 왠만한 교회 건물도 본당이 4백평이 넘는 곳이 허다하다.)

 

참고로, 그 지성소 속의 법궤의 크기도

초등학생 저학년 두 명이 붙어 앉는 책상 크기 정도 된다.

 

성전은 성막과 비교하면 큰 편이었지만,

다른 외국의 신전에 비교하면, 그 규모가 크지 않다. 아담하다고 할 것이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천지와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전능자 하나님의 위용을 드러내기엔

외형적으로는 뭔가 한참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더욱이 인접한 나라 애굽의 피라미드나, 바벨론, 페르샤, 로마의 건축물에 비하면

턱없이 ‘겸손한’ 건물이다.

 

(물론 이것은 성전 내부의 공간 치수만을 가리킨 것일 수도 있고,

따라서 외벽과 그 둘레에 지어진 작은 방들의 치수까지 합하면 이보다는 훨씬 큰 건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것처럼엄청나게 큰 대형 건물은 아니었다.)

   

참으로 성육신 하신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평범한 인간으로서 ‘겸손하게’ 사신 모습과 흡사하다고 하겠다.

 

성전은 다윗이 40여년간 준비하고 솔로몬이 7년에 걸쳐 지었다.

다 합치면 총 공사기간이 47년이다. 쏟아 부은 인력과 자금도 어마어마하다.

그런 것에 비해 다 만들어진 결과는.. 본 건물 크기만 놓고 본다면.. 어쩌면 초라하다.

 

기독교는 본질상 ‘건물의 위용’을 자랑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그게 본질이었다면, 하나님은 자금성보다 더 큰 성전을 짓게 하셨을 것이다.

 

기독교가 중세 때 고딕 양식의 높은 첨탑을 자랑하는 거대한 성당을 많이 건축했지만

그때가 기독교 복음이 빛을 발한 때가 아니라, 오히려 빛이 바래진 시기였다.

 

‘캠핑 가서 텐트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텐트도 가장 싼 것은 몇 만원부터 시작해서, 비싼 것은 초호화 텐트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이다. 그러나 전부 다 야영지에서 잠깐 치는 ‘텐트’일 뿐이다.

 

만약 누가 교회 건축 크게 지은 것으로, 천국에 가서 자랑한다면

앞서간 성도들이 곁에서 듣다가 ‘천국 와서 그까짓 '텐트' 자랑하느냐?’고 핀잔 줄 것이다.

 

▲건물의 크기 면에서 큰 위용은 없지만.. 내부는 알차다.

지성소 안의 벽과 언약궤, 그 위에 그룹 천사는 모두 금으로 입혀졌다.

내부를 정금과 보석으로 장식해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을 드러냈다.

 

대상29:4 ‘곧 오빌의 금 3천 달란트와 순은 7천 달란트라 모든 성전 벽에 입히며’

1달란트를 28킬로로 잡으면 어마어마한 양이다.

이것은 다윗왕이 드린 예물이며

 

대상29:7에 방백과 지도자들이 드린 예물이 나오는데 ‘금 5천 달란트에 금화 만 개’

그 외 백성들이 드린 것까지 다 합치면

금만 대략 1만 달란트가 넘을 것이다. 혹자는 약 100조원 가량의 가치라고 한다.

계산이 안 되는 물질이라고 보면 된다.     

  

그 엄청난 양의 금을 400평 가량의 건물 안에 거의 다 쏟아부었으니,

그 내실이 얼마나 알찬지는.. 짐작이 가능하다.

 

성전이 이렇게 수많은 정금과 보석으로 장식된 것은,

성전된 신약 성도의 믿음 생활이 어떠해야 함을 잘 보여 준다.

 

(벧전1 :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교회의 가치평가는 하나님의 임재여부 와, 성도의 정금 같은 믿음의 가치에 있지,

(이것의 가치 즉 액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외형적 물량의 크기가 아님을 잘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작은 교회도, 건물의 크기가 작을 뿐

결코 신앙, 믿음까지 작은 교회여서는 안될 것이다.

그 건물 외형의 크고 작음에 상관 없이, 그 속에 정금같은 믿음의 무게와 가치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겠지만.. 우리가 사모해서 치장해야될 부분이다.

 

즉 가치를 환산할 수 없을 정도의 정금같은 믿음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믿음의 정금은, 죽어서 천국에까지 가지고 가게 될 것이다.

 

 

◑3. 성전 입구 두 기둥, 야긴과 보아스             3:15~17

 

야긴은.. 성전 오른쪽 입구에 세워진 기둥이며,    (*성전에 들어가면서 볼 때)

보아스는.. 성전 왼쪽 입구에 세워진 기둥이다.

 

야긴은 ‘하나님이 세우실 것이다. He will establish’

보아스는 ‘그분의 능력으로 by His strength’ 라는 뜻이다.                     주1)

 

▲야긴과 보아스 라고 이름지은 이유

아브라함 때부터 모리아 산에서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그를 만나주셨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거기서 무사히 번제를 드리고 숫양을 제물로 바칠 수 있었다.

 

그래서 성전의 시작인 모리아 산에서부터

하나님이 세우신 것이고(야긴), 하나님의 능력으로 지으신 것이다(보아스).

 

그리고 다윗 때도,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여호와의 천사가 다윗을 만나 주시고 번제를 받아주셨기에

그 성전 터가 ‘그가 세우시고, 그의 능력으로' 지은 성전이 된 것이다.

 

그래서 솔로몬은 ‘성전을 내가 지었다’ 라고 하지 않고

아브라함 때부터, 다윗 때부터 여호와의 사자가 만나주시고 준비시켜 주셨기 때문에

‘그가 세우셨다. 그에게 능력이 있다’라고 하는 야긴과 보아스를

두 기둥에 이름으로 각각 붙인 것이다.

 

솔로몬의 이러한 행위는, 고대 열왕들의 행위와 비교해 볼 때 특별한 점이 있다.

고대 열왕들은, 무슨 큰 건축을 하고 나면,

자기의 이름을 거기에다 붙이든지, 아니면 선왕의 이름을 붙여서 명명한다.

또는 그 건물의 기둥 등에, 그런 사람의 이름을 새겨 넣는다.

 

그러나 솔로몬은, 성전의 기둥에, 자기의 이름이나 다윗의 이름이 아닌

오로지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만을 나타내는 이름만 붙였다는 것이다.

 

그렇다. 솔로몬은 이스라엘 역사상 위대한 일을 하였지만,

그것으로 자신의 이름을 남기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성전을 짓고서 오로지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고자 했던 것이다.

 

이것은 실로 타락한 인간의 보편적 특성을 거스르는 놀라운 믿음이다.

사람들의 보편적인 특징이 무엇인가?

사람들은 대개 자기의 이름을 내는 데 마음을 쏟는다.

자기의 기념비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이것은 사울의 기념비, 압살롬의 기념비와 비교된다. (삼상15:12, 삼하18:18)

 

▲마치는 말

지금 예루살렘에 가 보면, 솔로몬 성전 터 위에는

참으로 황당하게도 회교 사원이 자리잡고 있다.       *알 아크사와 황금 돔

어쩌면 하나님이 그렇게 허물어지도록 섭리로 허락하신 것일 것이다.

 

그래서 구약 성전이 허물어지고, 신약교회가 새로 시작되었는데,

21세기에 이르러 신약교회도 허물어지고,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있다.

 

20세기에 들어서 몰락을 시작한 서구 교회가

지금 21세기에 접어들어서는 그 몰락이 끔찍할 정도라고 한다.

 

신자수의 격감으로 교회들은 무용지물이 되어 텅 빈 교회 건물의 매매가 활발하다.

매각된 교회는 휘트니스 센터나 스케이트보드 연습장, 상가나 술집

심지어는 이슬람 사원 등의 용도로 탈바꿈하고 있다고 한다.

 

가톨릭 교회 소식에 의하면

독일에서는 최근 10년 동안 515곳의 성당이 문을 닫은 것으로 파악되었다.

스위스 내 전체 성당 숫자는 1700개인데, 그중 650곳에는 담당 성직자가 없고,

네덜란드도 향후 10년 간 전체 1600개 가운데 2/3가 문을 닫을 것으로 예상한다.

 

네덜란드의 한 대수도원에는 한때 380명의 수도자가 몸담고 있었지만

지금은 달랑 39명으로 줄어들었으며,

현재 이 수도원에서 가장 젊은 수도자의 나이는 70세 라고 한다.

 

이 수도원의 사용되지 않는 공간은 호텔로 바꾸기 위해 리모델링하고 있단다.

개신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 한국 교회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바라볼 일이 아닐 것이다.

우리 교회의 미래라고 할 수 있는 청소년, 청년들의 현 실태를 바라보면 비관적이다.

교회에서 중고생들이나 청년들 찾아보기가 점점 더 하늘의 별따기가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또 되는 곳은 여전히 신자들이 몰린다고 한다.

프랑스 교회의 충격적인 몰락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남부의 떼제 공동체에는 전 세계로부터 몰려온 수많은 청년들로 붐비고 있다.

 

종교라면 고개를 가로 짓는 프랑스인들이지만, 떼제 공동체는 그렇지 않다.

떼제 말고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 그런 공동체들이 몇 개 더 있다고 한다.

 

즉 신앙의 본질, 기독교의 본질을 추구하고, 제대로 구현해 내는 곳에는

본문의 표현대로 하자면 '진정한 성전 제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곳에는'

여전히 21세기에도 사람들이 입소문이 나면서, 찾아서 모여들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교회 본질의 회복과 그것의 실천' ..

이것이 오늘날 성전을 짓는 21세기의 솔로몬의 모습이 될 것이다.

주님은 이런 '솔로몬'들을 찾아서.. 오늘도 당신의 교회를 세워나가고 계신다.

그러므로 미래는 언제나 희망적이라고 봐야 한다.

     

(현재 또는) 미래 교회의 모습이라 할 수 있는 계시록 21장에 보면, 

전체 스케치가 뭐냐면

'신부'와 '어린 양'이 성전으로 하나 되는 것이다.

 

복음서에는 예수님이 '내가 성전이다'라고 하셨고,

바울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다'라고 하셨는데,

계시록에서 둘이 '덮어쓰기'가 되어서.. 진정한 연합, 진정한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교회는

'성도와 그리스도의 연합'을 추구하는 곳이고, 그게 이루어지는 곳이지,

구약적 건물의 개념은 더더욱 아니다.

  

에베소서 2장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 모퉁이 돌이 되셨다.

거 터전 위에서 우리 각자가 서로 서로 연결되어

우리가 하나님의 집이 되어가고...

우리는 거기에 연결된, 예수님과 한 몸을 이루는 하나님의 집이 되어 가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아직도 자꾸 건물로서의 교회 건축에만 열을 올리는 분이 있다면,

아마 하나님 나라의 거대한 물줄기에서 자꾸 도태될 수도 있다.

물론 그것도 필요하지만,

계시록 21장의 교회의 모습이 더욱 시급하게 회복되어져야 하는 건축인 것이다!

 

20년 전에 한국에서 '보이지 않는 교회 건축, 보이지 않는 성전 건축'이란

캐치 프레이즈를 걸고 열심히 활동하신 목회자가 계셨는데, 선견지명이 있으셨다.

앞으로도 이런 분들이 더 많이 나와야 될 것이다.

 

.......................

 

주1)

이 두 기둥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해석하면,

성전에 들어오거나 성전을 바라보는 모든 자들에게

우리 안에 아무 힘도, 자기를 구원할 능력도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해주었을 것이다.

두 기둥은 복음의 메시지였던 것이다.

 

두 기둥의 크기에 대하여 살펴보면,

성전 입구에 세워진 웅장한 두 기둥은 높이 8m이라고 본다.

본문 대하3:15절에 35규빗이라고 표기된 것은

왕상 7:15절에 18규빗이라고 한 것의 거의 두 배인데,

이것은 두 기둥이 바닥에 누워있을 때 두 길이를 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더 자세한 연구를 필요로 한다.